미국 브루더호프공동체
8.뒷담화 말고 앞에서 솔직하게 얘기하라
독재의 기억이 만든 불문율, 대놓고 할말 다하기
» 브루더호프의 힌들리 대가족.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일과후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끼리 보내며, 충분히 대화하고 교감하는 시간을 갖느는다. 온마을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점심때도 가족끼리 앉는다.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공동체마을 3백여명 전체 잔디밭 모임
어른 아이 다함께 거의 매일 모여
방문자에게 진솔한 논쟁 속살 보여줘
평화로운 마을 뒷면엔 부끄러운 ‘흑역사’
지도자 크리스토프의 부친 하인리히
독재자로부터 밀림 귀양 보내져도
누구도 저항 못했던 부끄러운 기억들
이젠 ‘할말 있을땐 당사자에게 직접’
“저 사람, 음주운전했다”
면전에서 말하고, 공개적으로 사과
‘식사 재료’ 놓고도 반론에 반론
민주주의 지켜내는 그들만의 지혜
» 브루더호프에선 남이 없는데서 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금기다. 당사자에게 솔직하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브루더호프 사람들은 주일에만 모이는 게 아니다. 점심시간에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식사할 뿐 아니라, 평일에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야외에 모일 때가 많다. 따라서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한 내게 ‘고독의 자유’를 즐길 시간은 그다지 없었다. 호스트 글렌이 모임 때마다 우리 부녀를 데리러 와 슬그머니 빠질 수도 없었다.
타이 아속과 인도 오로빌을 거쳐 브루더호프에 오기까지 공동체마을을 신문에 소개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개인적 관심에 따른 순례 여정으로 여겼기에 ‘취재’에 민감한 브루더호프 쪽에도 순수한 방문일 뿐이라고 전했다. 취재 필수품인 카메라도 휴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드크레스트에서 생활하면서 이런 삶을 독자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직업병’이 발동했다. 무엇보다도 말이 넘치는 한국 교회와 달리 말없이 예수 정신을 삶으로 살아내는 그들을 보고는 그런 열망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런데 공장에서 일하는 시간 외엔 대부분의 시간을 글렌이 꼭 달라붙었다. 그래서 휴대전화로나마 사진 하나 마음대로 찍을 수 없었다. 이처럼 후에 사진 사용을 허락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면 속을 끓이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다.
브루더호프는 카메라에 상당한 경계심을 보였다. 공동체원들의 초상권을 보호해주고 싶은 배려심 때문이겠지만, 종교개혁 세력과 나치 정권에 이어 영국에서까지 박해를 받고, 공동체를 컬트(이단)로 음해하는 이들에게 당한 트라우마 때문에도 그런 듯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열망이 컸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을 만큼 모습 하나하나가 아름답고도 특별했다는 뜻이다. 한국의 보통 개신교인들과 달리 내놓고 포도주나 맥주를 즐기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 브루더호프에선 점심은 모든 공동체마을 사람들이 함께 먹는다. 식사때는 가끔 찬송을 하고, 새로 온 식구를 소개하기도 하고, 좋은 경구들을 누군가 일어나서 읽어주기도 한다.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 브루더호프는 교육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입시교육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하고 캠핑하고 놀고 진솔하게 대화하며 삶 속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이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인간으로 자란다.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공동체원 전체가 모이는 모임의 대부분은 언덕 위 잔디밭에서 열렸다. 원으로 겹겹이 배치된 긴 나무의자에 가족들끼리 앉았다.
주일에도 주기도문 암송과 찬송가, 설교 등으로 이어지는 ‘예배 틀’이 없었다. 노래는 많이 불렀지만, 일방적인 전달인 설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공동체원이 자신들의 신상이나 생각을 나눴다.
모임 도중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파라과이 등에 있는 브루더호프 마을 공동체원들과 전화를 연결해 안부를 묻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재해지역과 분쟁국에 파견된 형제들과 연결해 소식을 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사망했다거나 아프다거나 사고를 당한 슬픈 소식엔 모두 함께 슬퍼했고, 기쁜 소식은 축하해주었다.
예배나 기도를 위한 별도의 시간 속에서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려는 시도는 시간 낭비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들은 일상 속에서 ‘사랑’을 나눔으로써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나도 함께하고 있다’는 그리스도의 말을 증거하는 것처럼 보였다.
» 보트를 타고 놀이를 즐기는 브루더호프의 청년들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브루더호프의 지도자인 요한 크리스토프 아르놀트는 노령으로 거동이 불편했다. 그런데도 ‘한 사람이 주님’인 것처럼 한명 또 한명에 대한 그의 집중력은 놀라웠다. 누군가 그에게 인사하러 다가서면 절뚝거리며 일어서서 마치 죽음에서 돌아온 자녀나 형제를 맞이하듯 상기된 모습으로 반겼다.
크리스토프는 도저히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용서하는 ‘폭력의 고리 끊기’(BTC·Breaking the Cycle)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과 영국 사회의 놀라운 변화를 이끌고 있는 기독교 지도자다.
그러나 그가 브루더호프의 창시자인 에버하르트 아르놀트의 아들 요한 하인리히 아르놀트에 이은 손자로서 ‘공동체 지도자직도 부자 세습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런데 2000~2010년엔 아르놀트가와는 무관한 리처드 스콧이라는 이가 지도자직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던 사람으로 공동체원들에게 기억되는 리처드 스콧은 우리 부녀를 돌봐준 호스트 글렌-아델 부부 가운데 아델의 아버지였다. 평화스럽고 고결한 심성을 잃지 않던 아델을 보며 6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리처드 스콧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 거의 매일 갖는 브루더호프의 모임은 대부분 야외 잔디밭에서 있다.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우드크레스트를 떠나기 전 크리스토프 부부의 집을 찾았다. 벽면에 리처드 스콧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크리스토프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환대해주었다. 브루더호프에 대해 칭찬하자 크리스토프의 부인은 “우린 연약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프는 “왜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휴직 기간에 공동체를 찾아다니며 살아보는 희한한 기자에 대한 당연한 궁금증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어린 시절 부친과 모친이 방물장수·보따리장수들과 걸인들을 그냥 보내지 않고 늘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고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하느라 가족들끼리만 식사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던 고향집의 모습을 소개하며, “우리집도 공동체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부인 베리나는 “바로 당신의 부모님 같은 이들이 천국을 만드는 분들 아니냐”며 감동했다.
브루더호프에서는 지도자들이 군림하지 않고 모두를 섬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 신자를 사익의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하대하고 군림하는 종교인들을 적잖이 보면서 ‘성직자란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컸기에 이들의 비권위적인 섬김이 더욱 감동이었다.
그런데 공장장인 델프가 때마침 준 <꿈꾸는 인생>(홍성사 펴냄)이란 한국어판 책을 읽고 감동이 부서졌다. 브루더호프의 창시자인 에버하르트의 아들이자 크리스토프의 아버지로서, 브루더호프 100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요한 하인리히 아르놀트의 전기였다.
그 책 표지 날개엔 내가 1999년에 영국의 다벨 브루더호프를 방문해 쓴 르포기사와 함께 내 이름이 실려 있었다. 처음엔 살짝 훑어만 볼 셈으로 집어들었는데, 손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고 말았다. 그 책엔 브루더호프의 흑역사가 담겨 있었다. 에버하르트 사후 지도자가 된 사위 한스에 의한 독재와 배신과 갈등과 분열이 낱낱이 소개된 것이다. 주인공 하인리히가 매형 한스에 의해 파라과이 밀림 속으로 귀양 보내져 처자식도 만나지 못하는 등 몇년을 죽음의 위기 속에서 보내며 처절히 부서져버린 지옥 같은 삶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한스가 ‘성공적인 공동체’란 ‘장밋빛 성공신화’를 제시하며 공동체원들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오랫동안 아내 외 여성과 부정을 저질렀던 사실마저 공개돼 있었다. 전기 저자는 하버드대 출신으로, 주인공 하인리히의 외손자인 피터 맘슨이었다. 등장인물은 모두가 저자의 외증조부모와 외조부모와 어머니의 형제 등 가족들이었다.
저자는 한스가 오랫동안 성공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내세워 리더라는 직책을 통제수단으로 사용하며 브루더호프의 초기 정신과 반대로 나아가는데도 아무도 저항하지 못한 음울한 역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토록 아름다운 공동체에 그런 독재와 갈등이 있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자기 가족의 비사를 세상에 남김없이 공개한 자신감이 놀라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기의 주인공 하인리히가 수십년간 자신을 죽이려 한 독재자에게 협조한 사람들까지 용서로 끌어안고, 섬기며, 자기 아버지가 꿈꿨던 ‘오늘날 브루더호프의 하모니’를 이루어갔다는 점이었다.
» 이들은 상대의 문제가 있을 때 상대 앞에서 직접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통해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 전세계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 크리스토프 장로와 부인 베리나. 사진 조현 기자
그 독서 이후 겉모습의 브루더호프가 아닌 좀더 실제적인 브루더호프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 느낌이었다. 브루더호프 사람들은 방문자에게도 속살을 보여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한번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잔디밭의 야외 전체모임이 무르익었을 때 한 중년여성이 앞으로 걸어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한 이웃 남성의 이름을 거명하며 “술을 마셨으니 운전대를 잡지 말라고 했는데도 운전을 했다”고 말했다.
브루더호프엔 ‘상대에게 할 말이 있을 때는 뒷담화를 하지 말고 당사자에게 직접 솔직하게 말하라’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그 지독한 흑역사의 갈등을 거치며 배운 지혜일 것이다. 그러나 대중 앞에서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은 과해 보였다. 그 남자도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이내 그도 마이크 앞으로 나와 그 여성에게 “위험에 빠뜨려 미안하다”며 “이제 조심하겠다”고 사과했다.
우드크레스트를 떠나기 전날 밤엔 실내에서 어른들만 모인 가운데 열린 마을회의에 참석했다. 외부에서 식자재를 사오는 공급담당 청년이 “이 정도의 식사라면 어느 곳과 비교해서도 괜찮은 거 아니냐”고 말했다. 공동체의 누군가가 ‘요즘 식사가 형편없다’고 문제를 제기한 모양이었다.
우드크레스트에 머물며 음식이 고급호텔에 못지않아 공동체가 너무 잘 먹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기에 그런 문제제기가 의외였다. 누군가 청년의 말에 반론을 펼치자, 청년은 다시 나와 눈물을 흘리며 “지금 가난한 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굶주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물었다.
브루더호프는 미국의 빈자들을 돕고 있다. 소년소녀들이 가꾼 채소도 인근 홈리스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준다. 또 시리아 난민들이 도착하는 그리스를 비롯해 이라크, 요르단, 팔레스타인, 파키스탄, 네팔 등에 형제들을 파견해 난민들을 돌보거나 병원이나 집을 지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이미 그런 일을 모범적으로 하는 자선단체 16곳에 재정지원도 하고 있다.
이어 중년의 남성과 여성이 잇따라 일어나 “우리 형제들은 이 공동체 안에서 사는 사람들만이 아니다”라며 “세상 모든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욕심을 포기하고 헌신함으로써 지상천국을 만들어가는 게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가 아니냐”고 말했다.
브루더호프에선 개인이 받는 월급도 용돈도 없다. 신용카드도 없다. 개인은 아무도 통장이 없고, 오직 한개의 통장만 존재한다. 유일한 통장을 관리하며 식자재 등을 살 때나 개인이 외출할 때 돈을 지출해주는 회계책임자가 일어났다. 그는 “우리는 전쟁과 박해, 재해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늘 아껴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늘 말발이 센 사람들만이 발언권을 행사하는 바깥세상과는 다른 회의가 이어졌다. 누구나 일어나 나와 말했고, 토의는 길었고, 진지했다.
다시 비민주적인 흑역사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진솔한 대화의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타이 아속
인도의 오로빌
미국 브루더호프
일본 애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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