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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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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와서도 못쉬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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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 주 5일 근무제를 앞두고 각 종교는 설왕설래했다. 일요일에 종교모임이 있는 그리스도교는 대체로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반면 음력 초하루에 법회를 갖는 불교는 산사에 불자들과 관광객들이 몰릴 것이라 기대했다. 그래서 23일의 주말 연휴와 포교를 연계하는 대안 마련에 불교계는 나름 고민했다. 나는 그때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 전에 산사에서는 주로 여름에 참선과 경전 강독 등 불교수련회를 실시했다. 그러나 새벽숲길은 종교적 색채를 거의 두지 않았다. 수려하고 맑은 자연의 품안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는 데 주안을 두었다. 모두들 꿈 같은, 꿀 같은 휴식이었다고 말했다. 세간에서는 쉬어도 마음 편히 푹 쉬지를 못했는데, 산사에서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쉴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쉬는 시간을 충분히 주어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오전과 오후에 편안하게 쉬라고 했는데도, 일부 직장 남성들은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에 어찌할지 모르고 내심 불안해했다. 심지어 가벼운 항의를 했다. 왜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 않고 방치하고 있느냐고 했다. “아니, 공지를 보지 않았습니까? 새벽숲길 템플스테이는 무언가를 가르치지 않고 모든 것을 자유롭게 알아서 쉬는 곳이라고요” “그래도 뭔가 지도해주어야 하지 않는가요?” 역설이 아닐 수 없었다. 매사가 틀에 짜인, 일상에서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주어진대로 살아온 습관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어진대로 살다보니 무언가에 길들여져살아 온 것이다.

 

그런 경험 이후, 진정한 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먼저, 지친 몸을 쉬어야 한다. 쌓인 피로를 푸는 일이다. 그런데 고단한 몸을 쉬면 진짜로 심신의 피로가 사라지는 것일까? 몸은 자유로운데 정작 마음은 불안하고 불편하지는 않는가? 마음의 표면과 이면에 무언가 응어리지고, 얽혀있고, 깊이 자리잡고 있는 감정과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진정 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고요한 산중에서 누리는 잠시의 후련함으로 내면의 평온과 기쁨은 오지 않을 것이다.

 

절집 수행자들은 늘 을 삶의 목적으로 살고 있다. 수행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인 해탈과 열반이라는 말은 근원적인 마음의 해방을 말한다. 해탈은 자유에, 열반은 평화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해탈과 열반의 세계와 방식은 그 무언가를 채워서얻는 게 아니다. 스승과 제자의 문답을 살펴보자.

 

제자: 스승님, 해탈이 무엇입니까?

스승: 누가 너를 묶어 놓았더냐?

제자: 정토(淨土)가 어디에 있습니까?

스승: 누가 너를 더럽혔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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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현재 무언가에 갈등과 시비로 소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삶터가 오염되고 있기 때문에 정토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갈등과 시비가 존재하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감정은 미움과 불신, 분노와 불안으로 가득할 것이다. 갈등과 시비는 관계에서 비롯한다. 그 관계의 한쪽은 이고 이다. 나와 네가 마주하고 부딪치면서 갈등이 발생하고 마침내 나의 마음과 감정이 불안한 것이다. 마음이 불안한데 몸이 편안할 리 없다.

앞서 문답에서 보았듯이 진정한 이 있기 위해서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본디 있었던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중요하다. 가령 악취가 나는 곳은 처음부터 악취가 있었던 곳이 아니라 오염 물질을 버렸기 때문에 악취가 가득한 것이다. 하여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있었던것이 아니라 만들어진것이다. 관계 사이에서, 혹은 자신만의 내면에서 그 무엇들이 오고 가면서 갈등이 발생하고 마음이 혼란하고 불안해진다. 갈등과 불안은 다른 무엇으로 덮어 서 해소되지 않는다. 갈등의 요인을 치워야만 해소될 것이다. ‘에 앞서 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무더운 여름을 맞아 심신의 피로를 풀기 위하여 산과 바다를 찾을 것이다. 더위의 고통이야 시원한 바람과 푸른 그늘 앞에서 해결될 수 있겠지만, 마음의 불편과 압박은 내면의 성찰과 내려놓음으로 해소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한번, 새겨보자. “누가 너를 묶어놓았더냐?”

 

* 이 글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 <참여사회>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절하던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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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년 임기의 천도교 최고지도자에 취임한 송범두(70) 교령은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첫 기자감담회를 열어, 최근 최인국씨의 월북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했다.

 송 교령은 “(최인국씨가) 교단에서 큰 직책을 맡지도 열심히 교회 활동도 하지않은 교인이었지만 대한민국의 법을 어겼다는 점에서 유감”이라며 “그러나 기왕 북에 갔으니 남북 교류와 통일에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최동오~최덕신·류미영 부부~최인국 3대로 이어진 가족사를 보면 그의 유전자 속엔 남북의 분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로 보고, 통일을 이루려는 의지가 있었던 듯 하다”고 말했다. 


 최씨의 조부 최동오는 일제 때 중국에 독립운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화전의숙을 설립한 독립운동지도자로서 화전의숙을 다닌 김일성의 스승으로 한국전쟁때 납북됐고, 부친  최덕신 전 천도교교령 박정희정권에서 외무장관과 서둑주재 대사로 활동했으나 박 전 대통령과 갈등 끝에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월북했다. 그때 함께 월북한 류미영은 임시정부 참모총장을 지낸 유동열 장군의 딸로  청우당위원장을 남편 사후 물려받아 수행했다. 송 교령은 “최인국씨가 지난 4월에도 찾아와 만난 적이 있는데, 남에서 아무 것도 (기여)하지못하는 무력감을 호소했다”면서 “부모가 월북한 이후 직장도 잃고 가정도 깨지고 제대로 된 삶을 이어가지못한채 70살을 넘기자  고뇌가 깊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송 교령은 “북에선 천도교청우당이 당원 1만6천명이 있는 두번째 당으로 최씨집안이 위원장직을 승계해온 점으로 미뤄볼때, 류미영위원장의 사망(2016년 11월) 뒤 공석으로 비워둔 위원장을 최인국씨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최인국씨는 남 천도교의 천도교청우당격인  동학민족통일회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으며 누구보다 북쪽과 많이 접촉해왔다고 한다.


송범두3-.jpg» 천도교 송범두 교령


  송 교령은 “북에서 종교활동이 미미한 다른 종교와 달리 천도교청우당은 북한 전역에 전교실 700여개에 교인이 1만5천명이 있고, 최고인민회의에도 대의원 23명이 있다”면서 “정부 차원의 교류는 틀에 매여있으니 종교 사회단체 차원의 교류의 물꼬를 트는데 천도교와 북 천도교청우당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교령은 “동학혁명 당시 나라를 살리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학(천도교) 교도들이 최소 30만명에서 60만명이나 목숨을 잃고, 일제 때는 3·1운동을 주도했는데, 현실적인 교세만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지식인들이 적지않다”면서 “그러고도 일본을 우리가 욕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 <녹두꽃>이 방영되면서도 동학혁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어 반갑다”면서 “인본 사상의 뿌리인 인내천과 사인여천을 널리 알리기 위해 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천도교세가 가장 센 경남 남해 출신인 송 교령은 어려서 천도교에 깊게 빠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며 인내천사상의 위대성을 강조했다.


 “다른 곳에선 예의범절을 강조하면서도 윗사람들에게만 절하고 아이와 여성을 무시하는데 반해 천도교당에선 아이와 여성에게도 맞절을 했는데, 처음엔 껄끄러웠지만 이런 모습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10대때 해변길을 따라 20리길을 걸어 천도교당에 간 것은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그런 ’사인여천’에 매료된 때문이었다.”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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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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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가 모든걸 다 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을 고집,불통이라고 합니다. 이런사람들의 생각은 등식화되었다고 합니다. 변수가 없이 단답형 뇌구조를 가진것입니다. 대개 이런사람들은 물음이 허용되지않는 주입식교육의 희생자들입니다. 이들의 뇌는 경직되고 퇴화되어서 창의적인 생각을 할수없다고 합니다.


 아인쉬타인의 뇌는 어린아이의 뇌와 같았다고 합니다. 창의적인 뇌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뇌에 자극을 줄만한 새로운 정보들을 읽고  외우지말고 생각하는 그래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갖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늘, 하던 독서만하면 새길이 나지않고 아집이 세지기에 다양한독서가 고집불통이 되어서 민폐를 끼치는 어른이 되지않는길입니다.
 
조언하나

 반드시 책을 보셔야 합니다. 인터넷의 글들 특히 가짜뉴스들은 비논리적 선동적이기에 중독성이 강해서 뇌를 알콜중독자처럼 만들 위험이 크니 조심해야 합니다.

중은 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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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은 종이다.
한국에서 스님으로 살면서 대우와 보시를 기대하게 됩니다. 스님이 신도보다 우월하고 다르다는 개념은 불교가 아닙니다. 부처님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셨고 위아래를 구별하는 카스트제도를 부인하셨습니다. 스님들이 잘 못하면서 신도들이 못하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잔소리하고 야단 치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원래 '비구'의 뜻은 거지입니다. 거지가 주인이 되었습니다. 가장 겸손해야 할 사람이 가장 오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님의 역할은 신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해탈하는 것입니다. 승단은 사문(Shramana) 전통이며 소유가 없는 남의 은혜로 사는 출가수행자 법맥입니다.
현대시대는 위아래 질서를 절대적으로 받들고 아래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시키는대로 하라는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불교계는 여전히 고지식하고 현대의 상황에 가장 느리게 적용을 하는 같습니다.
기대와 아집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남을 존중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온화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바로 스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의 고통은 남을 다스리려고 해서 있는 것이고
스님의 행복은 자신을 다스리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은 마음을 다스리고 대중을 시중드는 종이라고 생각합니다.
~못난 중, 자신에게 하는 소리


아우라지술집의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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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신부1-.JPG»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김영식 신부



현대사의 고비마다 거리의 미사를 통해 민중들의 갈 길을 앞서 걸었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돌이킬 수 없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매주 월요일 미대사관 앞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미사를 거행한다. 첫 미사는 15일 오후7시다. 특히 오는 8월12일엔 1989년 여름 사제단이 문규현 신부를 평양에 파견해 당시 ‘임수경 학생’과 함께 분단선을 넘어온지 30돌을 맞아 대규모 미사를 계획 중이다. 광화문을 시작으로 전국 교구별 순회 미사를 봉헌하겠다는 사제단 대표 김영식(60) 신부를 만나 거리로 나선 이유를 들었다.

 

“지난 6월30일 김정은 북 국방위원장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아무런 경호 조치 없이,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사상 최초로 북한 땅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이 만남은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종착지에 이르러야한다. 문재인 정권 5년의 소명은 어떤 정파나 당략에 의해 더 훼손될 수 없는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우리의 뜻을 모아 문재인 정부에 격려와 채찍을 하며, 미국엔 우리의 강력한 의지를 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사제단은 찢기고 짓밟힌 약자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해온 전력 때문에 ‘거리의 사제’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들도 각기 본당에서 책임을 맡고있는 사제들이다. 따라서 사제단도 거리 미사에 나설 때는 교회 안팎의 비난조차도 감내할 각오를 하지않으면 안된다. 사제단이 처음부터 교회 밖 거리로 나선 것은 아니다.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와 서울대교구 김수환 추기경이 나설 때는 대부분의 활동이 성당 안에서 이뤄졌다.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로 불렸다. 그러나 점차 명동성당이 약자들을 외면하면서 약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교회 내 공간이 사라지자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사제단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드러난 불평등한 한미조약인 소파협정 개정을 요구하면서 한겨울 광화문광장에서 노숙교회를 열었고, 이를 실천불교전국승가회와 목회자정의평회협의회가 이어가면서 촛불광장의 서막을 열었다.


 이처럼 사제들이 거리미사를 봉헌하자 주교 가운데는 ‘지붕이 없는 곳에서 미사를 봉헌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가톨릭 교회 내 상황이 한결 나아졌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북한을 방문할 뜻을 밝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어서 요즘은 교우들만이 아니라 주교회의에서도 내놓고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게 김 신부의 해석이다. 따라서 교회 안 평화미사도 얼마든지 가능해졌지만, 다시 거리로 나서는 이유를 김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21세기 한복판을 살아가면서도 우리 운명을 우리 마음대로 못하니, 우리가 처한 현실이 안방의 따뜻한 아랫목이 아니라 창호지 숭숭 뚫려 찬바람이 들이치는 곳이 아닌가. 우리가 놓인 현실이 얼마나 척박하고, 강대국들에 의해 잘못될 수 있을만큼 백척간두에 서있는지 알리는데는 거리 미사가 적절하다.”


 실제 사제단도 남북교류가 외부 여건에 의해 얼마나 좌우되는지 경험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남북 교류가 한창 진행될 때 평양과 개성, 금강산을 다녀왔다는 그는 “지난 10월 남북 가톨릭 대표단이 중국 심양에서 만나 북의 조선가톨릭교회협회 창립과 장충성당 설립 30돌을 맞는 올해 남북 가톨릭 공동 정기총회를 복원하고, 하반기엔 남쪽 가톨릭 대표단이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도 봉헌하고 백두산도 방문하기로 합의했었는데, 지난 3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돼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남북 가톨릭 간에도 교류에 차질을 빚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신부는 30살에 늦깍이로 신학교에 들어갔다. 엄혹한 시절에도 권력에 굴하지않고 저항하는 사제들을 보며 ‘일당 백의 삶이 여기에 있구나’란 생각으로 사제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경북 안동교구 소속인 그는 안동시내 태화동성당 주임을 맡고 있다. 태화동성당은 한 프랑스인 신부가 복권을 샀다가 당첨된 돈 전액을 초대 안동교구장인 두봉주교 서임 25돌 기념으로 쾌척해 세워진 곳이다. 김 신부는 “평화라는 열매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시일반의 나눔의 결실로 얻어지는 것이라는게 성서의 가르침”이라며 “우리의 평화를 남에게만 맡겨두지않고 사제들뿐 아니라 교우와 국민들까지 우리의 온 마음을 함께 모을때 한반도 평화정착이 로또처럼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열혈사제’보다는 ‘낭만 사제’다운 그는 <아우라지 술집>이란 이동순의 시를 들려주며 ‘남북민이 함께할 그 날’을 꿈꾸게 했다.
 ‘사발 그릇 깨어지면 두셋 쪽이 나지만/삼팔선 깨어지면 한 덩이로 뭉치지요’

간헐적 가족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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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jpg» <에스비에스스페셜>의 <간헐적 가족> 갈무리



에스비에스 티브이 <에스비에스스페셜>이 14일 방영한 <간헐적 가족>( https://www.youtube.com/watch?v=LH7fsbn5wCI )은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이들을 위한 마을공동체 탐사기‘<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휴 펴냄)에 나온 두 공유주택만을 다룬 것이다.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는 국내 18개와 해외 5개 마을공동체의 현장을 전하고 있다.


<한국방송2티브이>의 <다큐3일>은 이 가운데 기존 평범한 마을에서 공동체성이 강화된 전환마을인 ‘파주 문발동 28통’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살기로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sUCKeceTzE )는 제목으로 방영했고, <에스비에스스페셜>은 서울 은혜공동체와 성미산 소행주1호 두곳의 공유주택만 발췌해 다뤘다.


 공유주택은 코하우징, 쉐어하우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유럽에서부터 널리 퍼지고 있다. 세계에서 복지와 행복도 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스웨덴에서는 전국민의 5분의1가량이 공유주택에서 살아가고 있다.


12-.jpg» <에스비에스스페셜>의 <간헐적 가족> 갈무리. 은혜공동체 건물



 공유주택은 다양한 형태들이 있고, 사는 수도 둘부터 수백명까지 워낙 차이가 있어서, ‘이것이 공유주택이다’고 설명하긴 어렵다. 그러나 대여섯가구가 한데 모여사는 공유주택의 대표적 사례를 든다면, 집 설계 전부터 매주 모여 논의해 함께 사는 이들이 1층에 커뮤니티 공간을 두고, 이곳에서 공동으로 아이들이 뛰어놀게 하고, 저녁식사를 이곳에서 함께 준비해 함께 나누며, 주거 공간은 가구별로 별도로 살아가는 것이다.


 공유주택은 도시에서 유용하다. 급격한 도시화로 핵가족이나 1인가족으로 고립되면서도 더욱 바빠져 외로움과 고독사의 문제를 피하기 어렵고, 독박육아와 독박 가사의 부담에서 벗어나 고통을 나누고 기쁨은 배가하려는 시도가 바로 공유주택이다. 전세계에서 도시화율 92%로 세계 최고수준인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공유주택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유주택에서 관심이 있는 이들이 급증하고, 실제 공유주택을 준비하는 이들도 적지않다. 따라서 은혜공동체와 소행주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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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같은 점은 둘 다 한건물에서 여러 가구가 모여사는 ‘공유주택’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공유의 정도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은혜공동체는 14가구 50명이 한집처럼 살아간다. 반면 소행주는 9가구 30여명이 가구별로 각자의 집에서 살며 커뮤니티하우스에서 저녁식사와 모임 등만 공유한다. 따라서 은혜공동체가 공유와 개별적 삶(프라이스버시)이 7대 3정도라면, 소행주1호는 그 반대로 3대 7 정도로 보여진다.


 이처럼 공유주택이라고 하더라도, 가구수 규모, 공유의 비율, 규율, 시스템 등은 다 다르다. 즉 공동체 구성원들이 정하기 나름이다. 가령 우린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삶에 너무 길들여져 있으니, 우선 일주일에 저녁 두끼와 독서모임과 육아 등 10~20%의 삶만 공유하고,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살아가자고 정하면 그렇게 살면 된다. 아니면 은혜공동체처럼 10여년간 공동육아를 해보니, 한집처럼 살아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대폭 공유하는 부분을 늘려서 한가족처럼 살아갈 수도 있다. 이처럼 공유와 프라이버시는 8대2, 7대3, 6대4, 5대5로 하든 반대로 2대8, 3대7, 4대6으로 하든 구성원들이 정하기 나름인 셈이다.


1-.jpg» 은혜공동체엔 싱글들도 7명이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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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은 은혜공동체는 개신교 교회인인데, 소행주는 종교적 기반 없이 신촌 부근에 대학원에 다니던 이들이 개별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를 함께 키워보자고 시작한 어린이집이다. 그렇게 시작해서 한집살이까지 온 것이다.


 은혜공동체는 오랜 공동육아의 체험을 바탕으로 3년전 서울 도봉동에서 건물을 지어 한집살이를 시작했다. 이들은 공동체적 삶이 깊어지고 ‘함께 살이’에 자신감이 커지면서, 종교예식이 거의 사라지고 삶 자체의 나눔과 행복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됐다. 예배와 삶이 분리돼 예배시간을 고수하지않고 ‘삶이 곧 기도’라는 식으로 변화된 것이다. 지금은 사실상 예배 형식도 없다. 일요일에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10여명씩 소그룹 토론을 하고, 점심식사 후에도 인문학 강사를 모셔 강의를 듣거나 독서모임을 하거나 깊이있는 소그룹 토론을 이어간다. 한달에 한번은 전국의 산하로 야유회를 떠난다.


7-.jpg» 은혜공동체에 함께 사는 싱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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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비에스 스페셜>은 은혜공동체원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육아와 가사의 부담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지 주로 초점을 맞췄지만,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갈등 없이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했다. 은혜공동체에서 갈등 치유의 비법은 심리상담과 소공동체 대화모임 등의 시스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50명이 4개 부족으로 나뉘어 부족단위로 일과 대화, 생활을 나누고 함께 한다.


 박민수 대표 부부는 심리상담 전문가다. 또한 이들로 부터 오랫동안 상담을 받은 대여섯명의 공동체원들이 심리상담을 해줄 수준을 갖추고 있다. 은혜공동체에서는 누구에게나 ‘가톨릭의 대부’와 같은 목자가 있어 힘들 때면 상담을 한다. 아이들도 자기 부모 외에 멘토가 정해져 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또한 개인간에 마음 속에 불편한 것이 있을 때 마음에 담아둬 개인과 공동체의 병을 키우지말고, 절대 하루가 넘기 전에 서로 만나 풀도록 하는 것도 은혜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요소다.


소행주1-.jpg» 서울 마포 성미산 소행주1호 모임



소단체1-.jpg» 성미산 소행주의 설날



소술자리1-.jpg» 소행주1호 여자들끼리만 갖는 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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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 성미산 소행주1호는 공동육아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공유주택을 지어 2011년 입주했다. 그 이후 소행주는 각기 다른 곳에도 10호까지 생겨났다. 여성싱글들만의 소행주, 성소수자들의 소행주 등도 있다.


 소행주에서 가장 먼저 시도된 것은 ‘저해모’라는 ‘저녁해방모임’이었다. 집마다 따로 식사를 준비해야하는 번거루음에서 해방되기 위해 2층 공유공간을 활용해 공동밥상을 시도한 것이다. 소행주 엄마들이 식단을 짜서 장을 봐놓으면 주방 아주머니가 오후 3~6시까지 와서 밥과 요리를 해놓고 간다. 그러면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는 각자가 한다. 이렇게 하니 인건비와 부식비를 합쳐 4가족이라도 한 달 20만원 정도면 된다. 은혜공동체도 식사비와 난방비 전기세 생활비를 모두 합쳐 1인당 25만원 가량으로 공유주택에서 생활비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을 알수 있다.


 소행주 건물은 1층은 주차장, 2층이 커뮤티티 공간이고, 3~6층까지는 가구별로 살아간다. ‘따로 또 같이’가 이들의 모토다. 개인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존중해주지만, 공동체 전체들의 모습은 한가족이나 다름 없다. 이들은 전체가 한데 모여 놀고 식사하고 놀러가는 것도 즐기지만, 남자들끼라만 2박3일 국내여행, 여자들끼리만 3박4일 외국여행 등 종과 횡, 다양한 끈으로 연결된 삶을 즐긴다.
 

일본인과 미국인을 축복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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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자 한겨레신문 쉼과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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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보복에서 가장 마음 아픈 건 아베의 극우적 행태가 아니라 일본 국민의 여론입니다. 여론조사에서 일본인 56%가 ‘경제 보복을 잘한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는 개인적으론 너무도 친철한 내 일본의 친구들도 섞여 있을 것입니다. ‘오래전 일을 언제까지 계속 물고 늘어질 것이냐’는 힐난이 보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과거에 묶여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고 단 한번도 제대로 사죄하지 않은 데에서 기회가 되면 언제든 다시 칼을 휘두르겠다는 속마음이 보여서 그런 겁니다. 역사는 현재이자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선 ‘힘센 놈이 장땡’이라는 사무라이를 찬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에 도륙과 수탈을 당한 피해자로선 언제든 다시 돌아온 가해자가 휘두른 칼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현존합니다. 일본의 대성인 니치렌은 ‘하루의 목숨은 전 우주의 재물보다 낫다’고 했지요. 우리의 목숨도 니치렌이 제외한 목숨일 리 없습니다.


니치렌-.png» 니치렌(일련) 대성인   5-.jpg


 #개인적으로 일본의 보복 조처보다 더 놀란 건 미국발 뉴스입니다. ‘미국인 33%가 10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해도 미국이 북한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소식입니다. 

 2001년 9월11일 인도를 순례 중일 때입니다. 유럽의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든 곳이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던 수십명이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며 옥상으로 올라가더니 폭죽을 터트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텔레비전을 보니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겼으니 자기들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했습니다. 이날 테러로 2996명이 사망하고 6천여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아무리 히피적 성향의 젊은이들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마치 승전가를 부르는 듯한 모습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죽는 사람이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목숨이 귀하면 그의 목숨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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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지성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이 재판에서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인식조차 못 하고 있음을 보면서 “악의 원인을 사유하지 않음”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나만이 아닌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와 세상에서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인식입니다. 누구나 다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류 성인들의 핵심 가르침은 ‘내가 원치 않은 일을 타인에게 하지 마라’는 데로 이어집니다. 교육도 그렇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도 그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이 교육받은 사람의 특징”이라고 했지요.


7-.jpg»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 전시물. 일제 형사가 한국인을 고문하는 장면  아히히만-.jpg» 전범재판을 받는 아이히판. <EBS> 갈무리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했지요. 그런데 미국인에겐 미국이 척도고 일본인에겐 일본이 척도라면, 즉 강자는 무슨 짓을 해도 된다면 타(他)와 호혜적 관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경고한 예수는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했지요.

 제국시대와 나치, 2차 대전의 반성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이끄는 강대국들이 예수의 마지막 기도의 대상이 된다면 한두 사람, 한두 나라의 불행만은 아닙니다. 나는 미국인과 일본인들의 생명을 존중하며,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jpg» 십자가 위의 예수


백만 죽일수있단 미국에 예수회 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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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원장-.JPG» 가톨릭 예수회 총원장 아르투로 소사 신부



가톨릭 예수회 총원장 아르투로 소사(71) 신부가 방한했다. 남미 베네수엘라에서 고위관료 집안에서 태어나 철학과 신학과정을 마친 뒤 정치 사회개혁에 큰 관심을 갖고 베네수엘라 국립대에서 정치학박사를 받은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예수회 교육 네트워크’인 ‘신앙과 기쁨’운동에 물두해왔다. 2016년부터 예수회를 이끄는 소사총원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속한 예수회 대표이자 교황의 오랜 ‘절친’답게 남북한 평화와 통일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17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 예수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소사 총원장은 “한국 가톨릭교회가 가장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도움을 주어야할 도전은 남과 북, 두 사회가 가진 차이점을 조화롭게 극복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시대적 소명’을 제시했다. 그는 ‘최근 미국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1가량이 북한이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테스트한다면 북한 주민 100만명 이상이 사망해도 선제적 핵공격에 찬성한다’는 보도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는 “살상을 용인하는것은 비인간적인 태도”라며 비판했다.


 “가톨릭 교회와 예수회의 입장은 폭력으로서는 어떤 문제도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핵무기를 통한 해결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핵화의 문제는 북한의 문제만이 아니다. 어떤 국가도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선언해왔다. 핵무기를 이미 가진 나라도 핵무기를 쓰지않을 것임을 선언하기를 바란다.”
 그는 “남미의 슬프고도 비극적인 현상들을 보면 무장과 폭력, 가난은 함께 가는 것”이라며 “비핵화만이 아니라 비무장화로 나아가야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또 “그리스도교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숨진 모습으로 비무장 상태에서 심장이 창에 뚫려 피를 흘리며 죽음으로써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내어놓고 세상에 생명을 가져다주는 태도”라고 설명했다.


 소사 총원장은 다양한 종교 문화가 공존하는 한국의 상황과 관련해 “하느님은 또 다른 방식으로,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말씀했다고 믿고 그들 안에서 보여주는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가는 노력을 할 수 있다”며 “하느님의 얼굴은 다양한 인종, 다양한 종교 문화 속에서 볼 수 있고, 그 다양성이 하느님께서 주는 풍요로움으로 여기기에 그리스도교는 어떤 문화와도 함께 할수 있는 종교이며 크리스찬이 되기 위해 특정 문화를 배척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복음은 자기가 속한 문화에 더 충실하며 깊게 들어가도록 주와주는 면과 함께 다양한 세계에 자기를 열어보이도록 돕는 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며 “교황께서는 ‘다른 종교인들이 자주 만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 더 깊은 신학적 철학적 차원의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고 전했다.


2-.JPG» 예수호 총원장 소사 신부의 기자회견을 통역하는 한국 예수회관구장 정제천 신부



 소상 총원장은 끝으로 “크리스찬들이 영신수련을 통해 하느님 체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종교적 회심으로 그쳐서는 안되고, 공동체를 통해 이웃에게 봉사하고 이바지하며 공동의집인 지구를 잘 키우고 지켜가는 의식까지 가져야 복음을 온전히 산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참여하는 난민과 이민자 돕기 프로젝트와 관련해 “난민문제, 이주민 문제가 얼마나 삶의 곳곳에 침투해 있는지를 잘 볼 수 있도록 알리고, 우리가 얼마나 그들에게 개방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알리고 있다”며 교육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난민캠프에서 지내온 시간을 보면 최소 17년, 27년이 된다. 어린 시절을 그냥 보내게 한다면, 그들은 평생을 난민으로 살게 된다. 교육을 시켜 이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 적응하고 시민으로 잘 살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난민캠프 안에서도 예수회 대학들의 지원을 받아 인터넷, 에스엔에스를 통해 그들이 일반학교에서 하고 있는 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인권옹호 차원의 노력을 말하자면, 이주민들이 얼마나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배척이나 거부 당한 사례는 없는지 조사하고, 입법화를 위해 노력한다.”
 그는 빈곤문제에 대해 “예수님이 한 방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가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특히는 그는 “젊은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이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이라며 “가난에 대항해 싸우는 것은 이 세상의 미래를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당신도 성인과 왕같은 영적 자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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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재-.JPG» 자신이 번역한 <양명학자 채인후의 중국철학사>를 들고있는 정인재 명예교수



조변석개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지만 하나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하나로 모두를 꿰뚫는다일이관지’(一以貫之)의 경지를 넘볼 수는 없다. ‘중국철학한길을 걸어온 노학자 정인재(78) 서강대 명예교수가 <양명학자 채인후의 중국철학사> ·하권(동방의빛 펴냄)을 번역해 내놓았다. 무려 1400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그는 이미 풍우란(펑유란)<중국철학사>와 노사광(라오쓰광)<중국철학사> 네권을 번역한 바 있다. 호적(후스)의 철학사와 함께 현대 중국의 대표적 철학서로 꼽히는 풍우란, 노사광의 철학서에 이어 채인후(차이런허우)의 철학사까지 번역해 마침으로써 대미를 장식한 그를 서울 목동의 개인공부방 학이사제로 찾았다.


그는 먼저 채 선생이 떠나기 전 번역을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채인후의 제자들이 지난 4월 대만에서 연 채인후 90세 기념학술대회에 강연자로 초청을 받았을 때 막 인쇄를 끝낸 이 책을 들고 가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채인후는 지난달 세상을 떴다. 채인후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20세기 이래 만족할 만한 <중국철학사>를 시종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발분의 저작을 썼다오랜 친구가 나의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다니 즐거운 마음이라고 고백했다. 정 교수는 40여년 전 대만 유학 시절부터 채인후와 알고 지냈다. 그의 딸 정소이(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도 채인후의 문하에서 학위를 했다. 정 교수는 당시 딸에게 선생의 학문과 함께 인품을 배우라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근대 서양의 총칼에 중국이 유린당한 반성에서 공자 타도를 주창한 호적과 그 뒤의 철학서들은 서양 철학의 틀로 중국 철학을 정리했다. 채인후는 이를 비판하며 중국 유학, 특히 생명 중심의 양명학 관점에서 중국 철학의 본의를 드러냈다고 평했다. 현대양명학의 태두인 웅십력(슝스리)을 잇는 신유학자 모종삼(머우쭝싼)의 수제자인 채인후는 이 책에서 대가답게 중국 철학과 세계 철학의 요체를 단 몇줄로 정리했다.

 


저작들-.JPG» 정인재 명예교수가 저술하거나 번역한 책들


서양 철학은 지식을 중심으로 하고, ‘안심입명’(安心立命·천명을 깨닫고 마음의 평안을 얻음)은 종교에 맡겨버린다. 중국 철학은 생명을 중심으로 삼는다. 그리고 심성의 학문과 덕을 완성하는 두 가르침을 발전시켰다. 중국에서 학문과 가르침은 합일된 것이다.”

 

노사광은 중국 철학을 심성론 중심우주론 중심으로 나눴다. 채인후는 풍우란의 저서엔 심성론적인 주체성이 빠져 있고, 노사광의 저서엔 형이상의 천도론이 생략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양자를 아울러 천도론과 심성론이 하나의 생명으로 관통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이 책 후기에서 과거 불교를 흡수 소화하여 신유학을 만들어냈듯이 서양 철학과 종교를 소화하여 새로운 중국 철학을 창조해내야 한다고 썼다. 지금까지 주로 번역에만 집중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겸허하기 그지없던 그는 번역한 책들도 짚지 못한 주요 흐름과 맥락들이 보인다고 했다. 그가 대학이든 도서관이든 자리가 마련되면 중국 철학사 전체를 관통하는 강의를 30회 정도로 정리해서 해보고 싶다고 노익장을 내보인 것은 그런 자신감의 발로다. 중국 철학을 종횡무진으로 누벼온 그가 최후의 정착지로 삼은 곳은 채인후와 같은 양명학이다. 한국양명학회 회장을 지낸 그는 <양명학의 정신>을 저술한 바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불교와 노장은 물론 양명학까지 이단으로 배척했다. 양명학의 심학이 불교의 심학과 같다고 본 까닭이다. 그런데 정통 한학자가 왜 굳이 아웃사이더를 택했을까.

 

서양 문화가 들어올 때도 주자학의 전통만 지키고 사특한 서양 문물을 배척한다는 위정척사를 외친 건 다른 생각’(이단)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는 닫힌 의식때문이다. 서울 지하철에선 ‘(어디) 가시려면 여기서 내리세요라고 하는데 주자학의 전통이 강한 대구 지하철 방송은 여기서 내려야 한다고 한다. 개개인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문화의 반영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분간하지 못한 것도 그런 닫힌 문화 때문으로 분석했다. 그는 개인주의는 나뿐 아니라 타인의 다름도 존중하는 것이지만 이기주의는 오직 내 이익만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구분했다.


사상단련-.JPG» 사상마련이란 편액을 가리키는 정인재 교수. 사상마련은 하나의 사물을 깊게 궁구해 진리를 깨닫는 성리학과 달리 일체의 일을 하는 속에서 단련해 간다는 양명학의 취지를 표현한 성어다

 

정 교수는 주자학에는 판단의 기준은 있어도 마음 자체가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다또한 사농공상을 상하주종적 위계질서로 수직적 사회를 만들고,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타율적 사고방식이 성행케 해 질문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식인들이 학문으로 알기만 하고 실천을 하지 않으니 참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창하고 나온 것이 양명학이라고 했다.


양명학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과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적 기반인 야마구치현에서 이토 히로부미,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미친 정한론자 요시다 쇼인의 학문이라 하여 더 관심을 사고 있다. 정 교수는 아직 일본의 양명학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그의 말에 답이 담겨 있었다. 그는 조선이 500년간 주자학 이외 일체의 사상을 배제한 왕과 주자학자들에 의해 소현 세자가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면 청나라로부터 도륙과 치욕을 겪지도 않고, 일본보다 더 빨리 근대화를 이뤘을 수도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청나라에서 서양 선교사들과 교류하며 서양 문물을 배우고 귀국한 소현 세자가 살아 있었더라면 이른 개방으로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열린 학문인 양명학을 위해 그는 준비된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는 일제 강점기 경북 군위에서 흑룡강(헤이룽장)성으로 이주한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태어나 해방 뒤 귀국했다. 유아세례자인 그는 고교 때는 교사의 영향으로 니체에 심취하기도 하고, 인천 신신예식장에서 불교학의 대가인 이종익 박사의 유식학 강의를 듣고 큰 감화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어느 사상, 종교도 배척하기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양분화하는 그는 이 시대 양명학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양명학은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양지(良知)를 천리라고 본다. 따라서 왕이나 윗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나 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양지가 있다고 여긴다. 직업과 지위가 달라도 성인이 되는 길은 같다고 보니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열린 시민사회를 만드는 학문이다.”

향기나는 냄새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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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난후 지인들간의 대화중 한사람이 벌컥 화를 냈습니다. “그 사장은 죽어마땅해. 어떻게 사람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코를 싸맬수가 있는거야”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는 고개를 갸웃하는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사람들의 느낌이 다 같은 것이 아니구나’ 하는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생충이란 영화는 사회학적관점에서 보면 빈부격차 문제 계층문제를 다룬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것과는 달리 보고나면 마음이 불편하다는 분들이 적지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코를 싸매는 사장을 보면서 왜 화가 난다고 하는것인가? 반면 어떤분들은 운전기사가 선을 넘는다고 은근히 괘씸해 합니다. 이런 심리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사실은 자신의 처지를 투사했기 때문입니다. 사장에 대해 화를 낸 사람들은 자신의 지금 처지가 반지하 신세란 것을 입증하는것이고 사장의 입장을 옹호하는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지상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는사람들이란 것입니다.그런데 영화를 보는내내 아 이 영화는 반지하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사람들이 만든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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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자체가 너무 단순하게 사회를 삼등분으로 묘사해서 그런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의 성격상 부자인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을 만나면서 제가 알던 사회가 기생충에서 묘사한 사회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했습니다. 지상에 사는 부자들은 다 똑같이 여유롭고 살만한 사람들인줄 알았는데 막상 들여다보게 된 부자들의 삶은 그리 여유있지도 똑같지도 않았습니다. 우선 지상에 사는사람들이 더 계층의식이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상이라고 해서 다 같은 지상족이 아니었던것입니다. 지상위에 더 높은 곳에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은곳에 사는사람들이 수두룩하여서 지상에 사는데 마음은 반지하에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마음의 여유로움도 그리 많아 보이질 않았습니다. 돈을 뜯으러 오는사람들, 사기치려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으로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피하고 마치 지하에 사는사람처럼 사는사람들도 적지않았습니다.


재산으로 계층을 나누고 행복여부를 가늠 하는 것은 어쩌면 반지하에 사는사람들이 하는 구분법이란 생각- 마음의 행복으로 따진다면 심리적 지상인과 반지하인 지하인은 외면상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지도 모른다는것입니다. 다시 냄새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람들은 특유의 냄새를 가지고 살아 갑니다. 외국인들을 만나다보면 민족마다 가진 특유의 냄새를 맡게 되는데, 이런 냄새는 같은 한국인들간에서도 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냄새가 계층을 구분하는데 사용되기도 하는 것인데 좋은 냄새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만 역한 냄새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우리는 은근히 냄새에 신경을 쓰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수많은 화장품 향수들이 만들어지는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피상적인 구분은 자칫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질 우려가 큽니다.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냄새나는 것들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하는 무식한짓을 할수 있다는것입니다.


프란치스코-.jpg» 프란치스코 성인의 임종을 그린 그림



우리교회에서는 그런 피상적인 냄새말고 영적인 냄새에 대하여 오랫동안 강조를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서 기도를 많이 하는사람들에게서는 장미향이 나지만 죄를 많이 짓고 사는사람들에게서는 아무리 향수를 뿌리고 치장을 하여도 역한 냄새 죄악의 냄새가 난다고 경고하여왔던것입니다. 심지어 평생을 선행한 사람들의 시신에서는 부패한 냄새는커녕 향내가 난다고 하여서 주검을 잘 모시는 신앙풍습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이 보면 비상식적인 것이라고 혀를 찰지도 모르지만 돈으로 자신의 냄새를 만들고 가난한 냄새를 역겨워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썩은 냄새를 제거하려면 내적인 향 내적인 냄새를 강조하는 것이 진정으로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전직대통령들이 말을 할때마다 구린내가 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의 삶이 그러하였기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오지에서 평생을 봉사하신 분들에게서 향내가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삶이 그야말로 천사와 같은 삶이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옛 인물사진 속의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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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선생 영정에 색깔 뺀 선글라스를 씌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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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쓴 옛 초상화를 처음 대한 것은 매천 황현(1855-1910)선생 영정이다. 전남 구례의 지리산 입구에 있는 사당 매천사(梅泉祠)에 봉안된 것이다. 안경너머 쏘는듯한 눈빛 안에 가려진 서늘함이 함께 하는 이 그림은 상상화가 아니였다. 이미 그 영정의 모본이 된 사진이 있기 때문이다. 한일합방 일년 전 1909년 천연당(天然堂)사진관에서 찍은 것이라고 했다. 그 사진관 주인은 서예가 화가로 유명한 해강 김규진(1868-1933)선생이다. 일본에서 사진기술을 익힌 뒤 40세되던 해 서울 소공동에서 1907년 개업하여 1915년까지 운영했다고 한다. 고종임금 어진도 촬영할만큼 전문성을 인정받았고 장안에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손익계산에는 그리 밝지 못했던 모양이다.

 

황현선생의 사진은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뒤 의자에 앉아 부채를 들고 책을 펼쳐 든 모습이다. 영정사진이 될 것을 염두에 두고 미리 찍어둔 것이리라. “동그란 안경너머 생각에 잠긴 듯 앞쪽을 정시하는 시선과 비통함을 참는 듯 살짝 다문 입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옷깃을 여미고 숙연한 분위기에 젖게 한다”(조선미 한국의 초상화)는 감상후기에 공감!’이란 댓글을 보탰다. 촬영을 마친 이듬해 1910년 그는 망국의 한을 안고 가을 등불아래 책덮고 옛일을 돌이키니 글 아는 사람노릇하기가 어렵다는 절명시를 남기고 자진(自盡)했다.

 

그로부터 일년 뒤 1911년 영정이 제작되었다. 두루마기(일상생활복)가 아니라 심의(深衣예복)를 입혔고 갓(실외용)은 화려한 정자관(程子冠실내용)으로 바꾸었으며 의자는 돗자리로 대치했다. 둥글고 소박한 뿔테안경과 책 그리고 부채는 사진을 그대로 반영했다. 그린 화가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어진화가 채용신(蔡龍臣1850~1941)이다. 고종임금 흥선대원군 등 왕가어진은 물론 항일의병 운동을 한 최익현 등 기개있는 선비영정도 그렸다. 황현영정 제작도 그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그가 그린 영정 3점은 뒷날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의 초상화는 기록화에 그친 것이 아니라 예술의 경지까지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안경은 임진란 전후에 조선에 들어왔다. 4명의 임금이 안경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임금도 꼭 써야할 때를 제외하고는 착용하지 않았다. 사용할 때보다 보관할 때가 더 많은 물건인지라 안경집도 덩달아 정교해졌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안경착용조차 불경(不敬)을 이유로 반대했다. 안경을 쓰고 고종을 알현한 일본공사를 보고는 이 자가 조선을 얕보는구나. 내 앞에서 어찌 감히.”라고 할 만큼 안경이란 그렇고 그런 물건이었다. 황현 역시매천야록에서 서재필이 고종을 알현하는 자리에 안경을 쓰고 나타나.....조정이 온통 분노했다.”고 기록했다. 어찌 그 때 뿐이라. 대한민국 시대 1970년대 무렵까지도 스님들이 다른 사찰로 몸을 옮길 때 그 절에서 안경을 써도 괜찮은지 기존 대중들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안경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황현4-.jpg  황현5-.jpg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안경은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이 착용했다는 안경이다. 대모갑(玳瑁甲 바다거북 등껍질)으로 테를 만든 엄청 고급안경이다. 장수를 상징하며 재질이 단단하고 또 구하기가 어려운지라 고관대작과 부자만이 소유가 가능했다. 어찌보면 이 안경이야말로 당신을 대변해주는 또다른 상징물이리라. 선생은 선조임금의 명으로 1576년 명나라 1590년 일본을 다녀왔다. 그 무렵 안경이란 물건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피나무로 만든 안경집까지 완벽하게 남아있다.

그는 참으로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퇴계(1502~1571)선생의 학풍을 이어받은 당대 최고의 도학자이며 대궐에 있을 때는 임금에게도 직언을 서슴치 않았던 호랑이였다. 사신으로 일본을 다녀온 뒤 조선침략 가능성이 없다는 허위보고를 하고도 살아 남았으며, 임진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이런 다양한 그의 모습을 한 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조선말 궁중화가 채용신은 황현사진이 남아있어 그것을 통해 영정을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김호석 화백은 얼굴도 알 수 없는 오백년 전의 인물인 학봉선생의 영정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후손에게 받았다. 그야말로 대략난감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화(禪畵)처럼 백지족자를 내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후손들의 모습을 통해 조상의 모습을 추적하고, 남아있는 문집과 각종문헌을 통해 그의 우렁우렁한 성격과 기골이 장대한 모습을 구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 복잡다단한 이력을 가진 그의 내면세계까지 그림으로 옮겨낸다는 것은 난제 중에 난제였다. 그 때 안경을 발견했다. 그래. 바로 저거야! 안경을 씌웠다. 그리고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그대로 색깔없는 선글라스가 된 것이다. 도무지 그의 심중을 헤아릴 길 없는 모습을 재현하는데 비로소 성공한 것이다.

 

채용신이 어진화가에서 선비화가로 영역을 넓혔듯이 김호석 화백도 어진화가(노무현 대통령) 고승화가(법정스님 등)로 활약하면서 틈나는대로 집안의 할아버지 아버지 모습을 통해 꼬장꼬장한 선비모습까지 그렸다. 마지막은 자신의 자화상으로 그 계보를 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정으로 보건데 언젠가 그의 아들도 그 선비 계열에 줄을 세우리라.

 


목 잘린 토마스 모아를 딴 세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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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자비,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은 복되나니

                           


lee1.jpg» 인권 민주화운동을 하다 구속 수감중 법정에 가면서도 만면에 웃음을 잃지않은 이돈명 변호사

 

얼마 전 이희호 여사가 돌아가셨습니다. 국민과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마지막 말씀이 있었답니다. 민주주의와 평화, 여성, 장애인등 평생 이웃을 위해 애쓴 분 유언답습니다. 임종 때 가족들이 부르는 찬송가를 따라하려고 희미하게 입술을 움직이다 평화로이 가셨다니 참 복 받은 게지요.

 

10여년 전 가신 이돈명 변호사 마지막 모습도 그렇게 평화로웠습니다. 소식을 듣고 바로 댁으로 달려갔는데 저녁 잘 드시고 주무시듯 가셨더군요. 변호사님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인권, 시국사건을 변호하다가 급기야는 감옥살이까지 했으니 마지막 평화로움으로 그 보상을 받은 걸까요. 평생 자가용 차 한번 가지신 적이 없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전철을 타고 다니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지요.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자비롭고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받을이란 게 그냥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바로 그 복일까요? ‘안 아프고, 돈 잘 벌고, 부모 자식 간 가정 화목하고, 사람들 칭찬받고, 죽을 때 고생 안하고하는 그 복. 여기다 더 욕심내면 구원받아 죽어서는 하늘나라 가는.

 

이제는 장가갈 나이가 된 우리 아들 녀석 첫 영성체 본명 지을 때도 그랬습니다. 나는 처에게 아들 본명을 토마스 모어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영국 헨리 8세 때 최고 법관이자 재상이요 사상가로 <유토피아>라는 저서를 남겼지요. 세속(世俗)적 기준으로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었지만, 세속의 욕심에 빠지지 않고 내면의 자유를 누렸던 성인이었습니다. “세속 안의 자유”. 한스 큉 신부는 그의 삶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하지만 본명을 고르면서 아들이 좋은 건 다 누리기를 바라는 내 심사는 세속 안의 자유와는 영 거리가 멀었습니다. 처도 나와 똑같이 세속적인 욕심에서 내 제안에 반대를 했습니다. “아니, 우리 귀한 아들에게 하필 절두형을 당한 분 이름을 붙이다니요. 안돼요.”토마스 모어가 헨리 8세의 재혼을 반대하다 처형당한 걸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맞받았지요. “, 현 김대중 대통령도, 내 옆방에 계시는 이돈명 변호사님도 토마스 모어인데 다 출세하고 칠, 팔십 장수하고 계시쟎아.” 결국 아들 세례명은 토마스 모어로 낙착되었지만 처는 여전히 찜찜해 했습니다.



dj1.jpg» 목이 잘린 토마스 모어를 세례명으로 쓴 김대중 전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

 

그런데 현세의 두 토마스 모어는 부귀와 장수의 복을 다 누렸다지만, 형장에서도 내 수염은 죄가 없다며 수염을 젖히고 태연히 목에 칼을 받았다는 저 옛날 토마스 모어도 복 받은 사람일까요. 세속의 기준으로는 당연히 아니오입니다. 하지만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이는 행복하다 하셨으니 분명 예수님께서는 그를 행복한 이라고 일컬으시겠지요.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라고도 하실 겁니다.

 

그러면 토마스 모어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박해를 받았지만 하늘나라 가서는 정말 잘 먹고 잘 사는 영복을 누리게 되는 걸까. 예수님 말씀을 보면 그 하늘나라마저도 우리 기대와는 영 다른 곳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기득권층의 압제에 신음하던 2천년 전 유다 땅을 두고도 하느님 나라가 이미 가까이 와 있다고 하셨고, 우리 마음 속에 있다고도 하셨고, 겨자 씨 같고 누룩 같다고도 하셨으니, 묵시록에 묘사된, 문자 그대로 각종 옥과 유리와 순금으로 이루어진 그런 천국은 아닙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초한 칼 라너 신부는 믿음이나 착한 일에 대한 보상으로 받을 복인 영원한 삶이나 부활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영원(한 삶)은 우리의 시공적, 생물학적으로 살아온 시간의후에의 시간을 계속한다는 것이 아니고, 영원이란 시간에서 해방되었다는 의미로 시간을 지양(止揚)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죽은 뒤 이 내 몸이 다시 살아나 시공간에서 계속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인격과 관심사의 존속이며 이는 누군가 한 사람의 인간과 역사의 존속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영원한 삶을 희구합니다. 힌두교 성전 <바가바드 기타>에도 즐거움과 괴로움을 같은 것으로 여기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이는 영원한 삶을 얻기에 적합하나니’(215)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대통령까지 지낸 저명한 인도철학자 라다크리슈난은영원한 삶이라는 대목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Eternal life is different from survival of death. It is the transcendence of life and death. (영원한 삶이란 죽음을 넘어서서 존속한다는 것과는 다르며,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현세와 내세에서 의 행복을 누리려 종교를 열심히 믿고 착한 일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모든 종교의 스승들께서 가르치신 알짬은 자기중심성, 이기심을 버리고 해서 자비를 베풀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요, 영원한 삶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의 자기주장과 욕심 없이는 한 치도 굴러가지 않습니다. 이런 세속 안에서도 저 토마스 모어들처럼 이기심을 자제하고 정의와, 자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은 복됩니다.

그리고 그들의인격과 관심사는 영원히 존속할 것이요, 하늘나라가 그들 것입니다. <공동선 2019. 7, 8월호 머리글>


웃음은 선택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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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왕 카네기는 평생의 재산이 우리나라 돈으로 330조의 재산가였다. 그가 이렇게 세계적인 부자가 되기 전에 매우 어려운 고비가 많았다. 한때는 그는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강물에 몸을 던질 생각을 하고 집을 나섰다. 강으로 가는 길에 한 건물 모퉁이에서 한 남자가 다리가 없는 몸으로 스케이트보드 위에 앉아 있었다. 카네기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고 그냥 지나스쳐 지나가고 있다. 그때 그 남자는 큰소리로 카네기를 불렀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선생님, 연필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카네기는 그가 구걸을 하는 것으로 알고 주머니를 뒤져 1달러를 그 남자에게 주고 강가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 남자는 스케이트보드를 굴려 카네기를 따라오며 소리쳤다. “돈을 주고 연필은 안 받으셨지 않아요?” 카네기는 그 말에 관심이 없었다. 곧 죽을 몸인데 내게 연필이 뭐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카네기를 계속 따라오며 연필...을 받으라고 외쳤다. 카네기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내겐 연필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말했다. "그럼, 돈을 돌려 받으셔야죠?"카네기는 돈도 필요 없으니 그냥 당신이 가지라고 말했다. 남자는 막무가내로 카네기를 뒤따라오면 연필을 받든지 돈을 돌려받든지 해달라고 했다.


카네기는 강가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 그 남자로부터 연필을 건네받았다. 그 순간 카네기를 죽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 이유는 남자 때문이었다. 그는 분명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을 따라오는 내내 활짝 웃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가난한 사람도 살면서 몹시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데 자신은 조금 어려운 일이 생겼다고 해서 그냥 죽어서야 되겠는가! 하며 발길을 다시 집으로 돌렸다. 그리고 카네기를 다시 용기를 갖고 일어났고 결국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다. 이후 카네기는 무조건 웃으라고 말했다.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스스로에게 웃도록 했다. 만약 행복해지고 싶다면, 만약 성공하고 싶다면 억지라도 웃어야한다고 말했다.
+


웃음은 반전의 계기를 만듭니다. 울면서 인생을 시작했지만 웃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 회장은 자신의 성공의 비결을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하고 하루를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성공을 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웃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일본 여류작가 스즈키 도모코는 그녀가 쓰는 ‘스마일 데이즈’에서 ‘하루 세 번 웃을 수 있으면 당신의 인생은 성공’이라고 말했습니다. 웃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오늘도 성공적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어느날 깨달음을 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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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잘못된 자신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Practice is not about fixing your defective self. It is about realizing that we are not defective.


수행은 자신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소멸하는 것입니다.
"가치가 없다. 할 수 없다. 운이 다 했다. 부족하다. 최악이다. 행복할 수 없다."...
Practice is about extinguishing the wrong views about your self.
"I am not worthy. I cannot do it. I am doomed. I am deficient. I'm the worst. I'll never be happy."


수행은 자신에 대한 바른 견해와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가치가 있다. 행복할 수 있다. 모자르지 않다. 있는 그대로 괜찮다. 나는 이미 부족함이 없고 행복하고 선량하고 지혜롭다."
Practice is about getting used to the correct view.
"I am worthy. I can be happy. I'm not deficient. I'm OK just the way I am. I'm already whole, happy, good, and wise."


불교는 세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있는 그대로 괜찮고 가치가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설득하는 겁니다. 사실은 우리가 사랑 그 자체, 지혜 그 자체, 평화 그 자체 입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 입니다.
Buddhism is a form of brainwashing. It's a matter of convincing our self that we are OK just the way we are. We are worthy. We can be loved. In fact, we are love itself. We are wisdom itself. We are peace itself. We are Chenrezig.


드디어 깨달음을 얻을 때 한바탕 폭소를 터뜨릴 겁니다. 그때 우리가 줄곧 완벽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When we finally reach enlightenment, we will roar with laughter. Because then, we will know we were perfect all along.

억지 감사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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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내담자들이 과거나 미래에 마음을 두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자책하거나 앞으로 오지않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마음이 지금 여기에 머물지않으면 마치 차가 공회전하듯이 심하게 자기소모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심리치료에서뿐만 아니라종교계에서도 마음을 지금 여기 머물게 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들을 고안해왔습니다.


 그중 가장 간단하면서 효과가 큰것은 감사하는 기도를 하는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지금 내가 사는 삶의 맛을 보게 해주고, 괴로움을 견디는 힘을 주며, 얼굴에 작은 미소를 갖게 해줍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종교인들은 신에게 이웃에게 감사기도를 바쳐왔고, 미사경문에도 감사송이 들어있는것입니다
  

 물론 이런 감사하는 수련은 평소에 하는것입니다. 즉 마음의 힘을 키우기 위한것이지 절대적인것은아닙니다. 아주 힘들때 억지 감사는 하지 말라는것입니다. 간혹 종교인들 중에성격장애자들이 힘겨운 삶을 사는사람들 에게 왜 하느님께 감사하지않느냐고 지랄을 하기도하는데, 그것은 일종의, 자신의 우월성 자기과시를 위한정서적 폭력이지 치료용 언어는 아닙니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음되잖아 했던 마리앙트와네트와 같은 멍청이들이 주로 그런 폭력적인 종교언어를 사용해서 심약한 사람들의 마음을 훼손합니다.


 감사는 내 마음이우러나서 할때 치유효과가 발생합니다. 마음이 힘든때 누가 와서 감사하라고 하거든 입에 걸레를 물려주고 외칩십시요.
"SHUT UP YOUR MOUTH!"



다른 길, 옳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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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본질을 갖는다. 미인의 본질은 미모가 아니라. 친절과 부드러움 아닐까? 싸움의 본질은 힘이나 기술이 아니라 용기일 것이다. 
성소의 본질은 별다른 신분이나 단체생활이 아니라 '헌신의 응답'이다.
사제 수도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스승의 부르심에 대한 불꽃처럼 뜨겁고 폭포처럼 줄기찬 응답은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생명의 본질이자 삶의 빛과 향기를 내게하는 영성의 원천이다.
우리들의 성소는 친구 이웃 세상과 ‘다른 길’로 시작했다. 사제, 수도자의 길은 그렇게해서 세상과 별다른 길을 출발점으로 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과 다른길에서 성찰컨데 ’소명과 응답’, ‘사랑과 헌신’의 언어들은 예비신학생과 성소자 모임 때의 것일 뿐 세월과 함께 멀어져 퇴색되어 가고 있음을 절감한다. 동료들과의 대화 속에서 사라져 버렸고 내 영은 흐린 창문처럼 거미줄로 가득하고, 나의 영성은 재래시장의 호객과 흥정 소리처럼 혼란하다. 성소의 신념은 이기와 욕구와 아집으로 길을 잃고 의무감에 쫓기며 관행과 권태로움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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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의 소설 ‘세 여자’의 주인공들,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가 선택한, 일반 여성들과는 그들의 다른 길, 그들이 투신했던 혁명의 길은 시시로 쫓기고 감시와 체포와 고문과 추위와 굶주림, 유형과 혁명동지들의 냉혹한 차별과 심판으로 마침내 죽어갔던, 정말 끈질기게도 고난뿐인 십자가의 길 이었다. 
신여성으로서 고난받는 민족의 해방과 자유와 독립을 위한 혁명에 투신했던 그들의 유별난 삶의 끝에는 공신의 보상은 물론 칭송도 기념도 헌화 한송이도 없었다. 다만 지식인으로서의 옳은 삶, 옳은 길을 살다 마침내는 저멀리 별이 되어 사라져 갔던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이 선택했던 다른 듯한 옳은 길은 민족의 밤하늘에 이름모를 별빛이 되어 동방박사를 인도하였듯이 우리시대 지성과 역사의식 세계의 밤길을 밝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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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신부 수녀의 다른길은 옳은 길의 겉옷일 뿐이다. 사제 수도자라는 다른 길이 옳은 길로 사회화로 성장되지 못하고 유별난 삶에 묶여있다면 끝내 하느님의 성사가 될 수 없어 다른 길 마저 잃게 된다. '다른 길'은 늘 '옳은 길'안에 있어야 한다.

진실한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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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년 4월 26일~1616년 4월 23일) 는 오랜만에 친구의 집을 찾아갔다. 친구는 집에 없고 하인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하인은 셰익스피어를 보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하인은 조금만 기다리면 주인이 돌아올 거라고 말하고 셰익스피어를 거실로 안내했다. 그가 거실 소파에 앉자 하인은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대접해주었다. 그리고 하인은 그가 심심할까봐 홍차 쟁반에다 책 한 권을 올려놓았다.


그는 하인의 작은 배려에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가벼운 눈웃음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하인은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한 후 부엌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남의 집 거실에 혼자 앉아 있기가 미안하고 머쓱해서 하인으로부터 차 한 잔을 더 얻어 마시고 싶어 부엌으로 갔다. 그런데 하인은 부엌에서 혼자 양탄자 밑을 물로 청소하고 있었다. 양탄자는 누가 일...부러 들춰보기 전까지는 더러운지 깨끗한 지를 알 수 없는데 하인은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양탄자를 청소하고 있었다. 더구나 주인이 시킨 일도 아니고 누가 더럽다고 말한 것도 아닌 데 혼자 알아서 콧노래를 불러가며 양탄자 밑을 닦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 이후는 셰익스피어는 다른 사람들이 “인생의 성공 비결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는 그 하인의 행동을 떠올리면서 대답했다. “혼자 있을 때에도 누가 지켜볼 때와 다름없이 행동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무슨 일에서나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아무도 없을 때 하는 행동이 정직입니다. 아무도 없을 때 하는 행동이 바로 진짜 자기 자신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가식적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 혼자 있다고 여길 때 자신의 본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품성을 닮은 사람은 먼저 자신에게 정직합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이 매사에 진실하고 정직합니다.

미국에서 불교철학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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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jpg» 기저귀를 갈면서 한 체험담을 들려주는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홍창성 교수



미국 미네소타주립대에서 서양철학을 강의하는 홍창성 교수(55)가 <불교철학강의>(불광출판사 펴냄)를 냈다. 그가 10여년 전부터 미네소타주립대에서 개설해 가르친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서양철학과 불교의 만남도 흥미롭지만 서양학생들과 동양 종교의 만남이 주는 신선함이 있다. 하나의 종교 속에만 있으면 도그마에 빠져 질문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서양학생들의 질문은 예리하다. ‘무아(無我·내가 없다)라는데 도대체 무엇이 열반에 든다는 말이냐’는 질문 같은 것이 그렇다. 홍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알렉산더의 후손인 북인도의 그리스국가 메란드로스 왕이 던진 같은 질문에 불교 고승 나가세나 존자가 한 대답을 들어 응수한다. ‘촛불을 이 초에서 다른 초로 옮기듯이’ 윤회하는 것은 없지만 윤회는 있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만남이 낳은 질의와 응답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도록 돕는다.
 

 책-.jpg 홍 교수는 1992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는 어린시절 교회도 가고, 성당에도 가고, 절에도 가며 한국의 다양한 종교를 설렵했다고 한다. 그의 전공은 서양철학이다. 미네소타주립대에서도 주로 서양철학을 강의한다. 그는 서양철학자이면서 불교에 심취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은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서양인들은 한계에 부딪친 것을 안다. 그러나 불교는 한계보다 늘 한걸음 더 나아가 있다. 그리고 심오한 침묵의 단계로 들어간다.”
 그는 미국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미국철학학회 아시아분과위원 회장으로 활동하며 불교 학자들과 만나고 다양한 불교 관련 논문과 책을 접하면서 불교에 새롭게 눈을 떴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학자이면서도 교학이 아닌 돈오적 경험이 의외의 곳에서 뜻하지않게 있었다”고 했다. 그는 10여년전 쌍둥이 아이들의 기저기를 갈면서 온 체험을 전해주었다.
 아내 유선경(54)교수가 늦깎이 철학공부를 시작해 대학원에 다녀 자신이 쌍둥이 육아를 전담했는데, 매일 기저귀 24개를 갈며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육아 책자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라’고 조언한 이유를 절감할만큼 힘들었다고 고백하며 그 때의 체험을 이렇게 전했다.
 “기저귀를 7천개쯤 갈았을 때쯤 갑자기 막혔던 것이 쭉  내려가면서 온몸에 즐거운 전기 자극이 오는 느낌이 왔다. 2박 3일 정도 계속된 그 경험을 하며 ’깨쳤다‘라는 생각을 했다. 스님들이 하듯이 안거 수행을 하며 용맹정진한 것은 아니지만, 기저귀 갈이 용맹정진을 하면서, 아이들이 찌뿌둥해 있다가도 기저귀를 갈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숭산 스님이 짧은 영어로 미국인들을 지도하는 것을 직접 보고 “저렇게 짧은 영어로도 미국인들을 가르치는데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 한국불교를 영어로 된 불서로 접해서 제대로 불교를 공부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큰 감화를 준 현응 스님(조계종 교육원장)의 저서인 <깨달음과 역사>를 2010년 접하고, 내가 삼천포로 빠진 것은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의1-.jpg»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에서 홍창성교수로부터 불교철학 강의를 경청하는 학생들



강의2-.jpg» 불교철학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모으는 좌선명상인 입정을 하고 있는 학생들




 홍 교수는 불교 철학 강의를 듣는 미국 대학생들의 반응에 대해 “제 경험을 담아 강의하다 보니 재미있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강의 시작 전 5분동안 마음을 가다듬는 좌선인 ‘입정’을 시키는데, 바이킹족의 후예들 30여명이 고요히 입정에 든 모습이 장관이다”고 전했다. 그는 서양학생들이 교학으로 불교를 배우면서도 교학보다 ’선(禪)‘을 흥미있어 하는게 독특하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학생들이 ‘무아’와 ‘공(空)’ 같은 불교적 개념들을 직관적으로 동양인들보다 오히려 더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서양식 강의는 같은 개념도 여러 각도에서 각기 토론을 집중적으로 벌이기 때문에 더 쉽게 이해하게 되는 듯 하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불교가 서양에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가지는지 묻자 “제 강의에서 한국 불교에 할애하는 시간보다 일본 불교에 2배 넘게 투자한다”면서도 “학생들에게일본과 한국 불교 중에서 주제를 선택해 에세이를 쓰라는 과제를 내면 일본보다  한국 불교를 주제로 잡아 작성하는 학생이 오히려 2배가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불교가 역동적이고 익스사이팅(exciting·흥미진진)해서 일본불교보다 미국인에게 더 어필할 수 있다고  본다”고 평했다.

조선 아웃사이더 불승과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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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쉼과깸'칼럼

나랏1-.png» 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에서 세종대왕역의 송강호와 신미대사역의 박해일이 마주한 모습



 #세계적으로 한국이 가장 독특한 점은 다종교의 공존이다. 한국은 개신교와 불교, 가톨릭 3개 주류 종교가 정립해 있고, 원불교와 천도교 등 근세 민족종교와 전통적인 무교와 유교 등이 혼재하고 있다. 인도가 다종교국가의 대표처럼 불리긴하지만 힌두교의 비율이 80%가 넘어서 비슷한 세력으로 정립해있는 한국과는 다르다. 특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까지 있으니, 한반도는 종교·이데올로기의 시장과 같다. 그러니 다른 것들끼리 만날 수 밖에 없다. 다른 것들끼리 만나면 싸우기도 하지만 배우기도 한다. 2300여년전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으로 인도의 종교와 그리스철학이 만나 헬레니즘문명을 낳았듯이 만남은 새로운 것의 잉태와 창조로 이어진다. 한국의 대표철학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다산 정약용도 유학와 서학(가톨릭)의 만남을 통해 실학을 꽃피워냈다.


정약용.jpg» 다산 정약용


알렉산더-.jpg» 알렉산더



 #그런 역동적인 만남이 한국적인 독특한 영성을 낳았다. 북간도의 지도자로 문익환·문동환, 윤동주 등의 스승이었던 규암 김약연을 비롯해 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 설립자인 김재준, 류영모, 함석헌이 깊은 동양철학에 대한 토대를 갖춘 가운데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여 서양 기독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문학적 기독교’를 선보였다. 가톨릭 교도로 유럽유학을 가서 원효로 박사학위를 받고 불교학자가 된 이기영 박사, 개신교인이면서도 고려의 대표적 승려인 보조 지눌 국사의 선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길희성 심도학사 원장, 역시 개신교에서 출발해 노자, 장자, 동학 등을 비교해 소개한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등이 다른 것의 만남을 갈등이 아니라 조화로 승화한 이들이다.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한때 신학대인 한신대를 다닌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도 그렇다. 동서양 종교·철학을 종횡무진하는 그는 최근엔 <스무살 반양심경에 미치다>를 통해 또한번 동서고금을 누볐다.


김약연-.jpg» 북간도의 독립운동지도자이자 목사이자 교육가이자 한학자였던 규암 김약연(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우리나라는 무속과 선도의 고조선, 불교의 통일신라와 고려, 유교의 조선 등 주류종교가 시대에 따라 급변하는 유일한 나라이기도하다. 따라서 종교간 헤게모니 다툼도 치열했지만, 때론 적과 아군을 나누기 어려웠다. 가령 한국불교의 대표승려인 원효대사의 아들 설총은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유학자다. 고려때 국교였던 불교는 조선의 억불숭유정책으로 아웃사이드로 밀려났다. 조선을 주자학의 나라로 세웠던 정도전은 <불씨잡변>을 써 불교의 폐단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왕권을 견제한 선비들과 달리 왕가는 불교와 끈을 놓지않았다. 태조 이성계부터 무학대사와 관계가 그랬고, 임진왜란과 같은 국난엔 서산대사와 사명당 등 승군들이 앞장섰다.


나랏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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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나랏말싸미>가 역사왜곡논란에 휘말렸다. 신미대사를 한글창제의 주역처럼 묘사했다는 것이다. 신미대사는 범어를 비롯한 언어의 천재로 한글 창제에 관여했다는 불교 내의 오랜 설 말고도 세종과 각별한 사이였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태종때 영의정을 지낸 김훈의 장남으로 출가승려가 됐고, 친동생 김수온이 집현전 학사다. 김수온의 문집에 세종대왕이 신미대사를 절에서 불러내 긴밀히 대화를 나눴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대왕은 유언으로 ‘우국이세’라는 칭호를 내렸다. 우국이세는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한자’라는 뜻이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세종이 한글본으로 석가 찬가로 지은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월인석보> 등이 모두 불서들이다. 세종의 형으로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이 모두 극진히 존경했던 효녕대군은 신미·김수온 형제와 <불설수생경>을 함께 편찬한 각별한 사이다. 선비들 위주의 주자학의 나라였음에도 친민(親民)을 표방하며 ‘어린 백성’들에게 각별했던 세종이 주자학에 밀린 불교의 신미를 비롯한 승려들과 함께 백성 누구나가 읽을 수 있는 글자를 만든다는 창조적 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창작의 숨길마저 막으려는 건 오직 힘있는 것만을 숭상하는 또 다른 사대주의이자, 아웃사이더들을 끝내 내치고야 말겠다는 '무자비'가 아닐까. 이런 편가르기가 쉬운 글자를 만들어 남녀노소 선비 양민 상민 유자 불자 등 서로 다른 이들도 함께 공존케 하려던 세종의 뜻이 아님은 말할 나위가 없다.

비폭력대화의 현장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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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JPG» 비폭력대화법 교육 참여자가 2인2조로 솔직하게 말하기와 공감으로 듣기를 직접 해보고 있다.



왜 사람들 틈에 있어도 외로울까. 왜 내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을까. 왜 혼자인 것만 같을까. 열린 공간에서 말할 자유를 누리고있으면서도 왜 새장에 갇힌 새처럼 숨이 막힐까. 제대로 된 소통이 없는 불통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현상들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다 됐지만, 혀 속에 숨은 칼로 이 순간도 많은 이들이 베어 신음한다.
 19~21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95길 23 남양빌딩 3층 한국비폭력대화센터엔 20명이 3일 일정의 처음 비폭력대화를 배우는 NVC1 코스에 참여했다. 더이상 말로서 남을 죽이지 않고, 말이 칼이 아닌 꽃이 되게 하는 걸음마를 시작했다. NVC란 ‘Nonviolent communication’의 약자로 비폭력대화로 번역되며, 때로는 연민의 대화 (Compassionate Communication)로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폭력은 인도의 비폭력 독립운동가 간디가 사용한 것이며, ‘우리 마음 안에서 폭력이 가라앉고 자연스러운 본성인 연민으로 돌아간 상태’를 가리킨다. NVC는 장자, 간디, 마틴 루터킹, 크리슈나무르티, 마틴 부버, 칼 로저스 등의 영향을 받은 미국 임상심리학박사이자 평화운동가인 마샬 로젠버그(1934~2015)에가 창시한 대화법이다. 한국에는 2003년 캐서린 한에 의해 들어와 최근 갈등해소 프로그램으로 학교와 마을 등에서 각광 받고있다. NVC1은 25만원의 수강료가 있음에도 몇달전 조기 마감될만큼 인기가 있다.
 김영옥 강사가 진행하는 대화모임 참석자들은 대부분이 직장인이었다. 김강사는 “비폭력대화법은 외국어를 배우듯이 배워야한다”고 먼저 강조했다.
 입에서 내뱉는다고 다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일방적인 불통언어에 길들여져있기 때문에, 소통을 위한 언어 습관을 연습하고 훈련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배운지 수십년도 더 지나, 고정된 언어습관이 깊게 자리잡은 어른들이 새롭게 대화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5-.JPG» NVC1 교육을 이끈 김영옥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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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하게 말하기, 공감으로 듣기
 대화의 기본은 말하기와 듣기다. 말하기와 듣기는 누구나 하는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렇지않다. 비난조로 말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면 제대로된 말하기와 듣기라고 볼수 없다. 그래서 이곳에선 ‘솔직하게 말하기, 공감으로 듣기’를 강조한다. 이때 한 참석자가 질문했다. ‘말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듣는 것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닌데, 비난 섞인 말을 들어야 할 때는 어떻게 제대로된 소통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자 김 강사는 “들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돌려주는 것(말)은 선택해서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할 때는 ‘나’에 대해서만 말하고, 들을 때는 ‘너’에 대해서만 들으라고 한다. 가령 ‘부장님은 너무 권위적이야’라고 말할때, 이것은 ‘내 느낌’이 아닌 ‘타인’(부장)을 말하는 것이다. 대신 ‘부장님이 오늘 내 보고서를 다 읽어보지도 않고 다시 써오라고 했을 때 서운했어’라고 했다면 나에 대한(자기 느낌) 것을 표현한 것이다. 듣기의 경우,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아유, 열받아”하며 책가방을 던지고 누워버렸을대 “엄마한테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라고 한다면 ‘나의 느낌’을 말한 것이지만 대신 ‘무슨 속 상한 일 있었는지 엄마한테 말해줄 수 있어?’라고 한다면 ‘너의 느낌’을 들어준 것이다.



부부공감워크숍2-.jpg» 부부공감워크숍 현장. 사진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제공



부부공감워크숍1-.jpg» 부부공감워크숍. 사진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제공


가족캠프-.JPG» 가족끼리 비폭력대화법을 익히는 가족캠프. 사진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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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JPG» 비폭력대화 국제심화교육현장. 사진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제공


IIT1-.JPG» 비폭력대화 국제심화교육현장. 사진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제공



 
 관찰, 느낌, 욕구, 부탁
 비폭력대화법에서 첫번째로 숙지해야하는 모델이다. 대화가 산으로 가는 이유의 대부분은 자신의 판단과 평가를 사실과 혼동하는 것이다. 가령 “네가 나를 무시했을때~”라고 한다면 ‘사실’이 아닌 자신의 판단이다. 그보다는 ‘네가 오전 회의 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잘라버렸을때’라고 비디오로 찍듯이 ‘관찰’한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또 ‘철수는 너무 공격적이더라’라는 판단이지만, ‘철수가 컵을 친구한테 집어던졌다’라고 하는게 ‘관찰’ 대화다.
 다음이 비폭력대화법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수 있는 ‘느낌’ 표현이다. ‘느낌’이란 뭉클해, 황홀해, 유쾌해, 기뻐, 감미로워, 포근해, 훈훈해, 뿌듯해, 상쾌해, 후련해, 홀가분해, 느긋해, 안심이 돼, 가벼워, 평온해, 짜릿해, 흥분돼, 들떠, 걱정돼, 까마득해, 염려돼, 신경 쓰여, 뒤숭숭해, 불안해, 무서워, 섬뜩해, 오싹해, 두려워, 막막해, 불안해, 조마조마해, 떨려, 거북해, 쑥스러워, 난처해, 답답해, 서먹해, 찜찜해, 슬퍼, 서글퍼, 우울해, 섭섭해, 허전해, 쓸쓸해, 따분해, 심심해, 부끄러워, 화냐, 약올라 등이다. 대부분은 말할 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일쑤다. 가령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않는 것처럼 느껴져’라고 한다면, ‘느껴져’라고 말했음에도 이것 느낌이 아니라 생각이다. 이와 달리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않는 것 같아서 속상하고 서운해’고 ‘자기 감정’을 말하는게 느낌 표현이다. 또 ‘아까 내가 그 사람한테 불친절하게 한것 같아’고 한것도 생각이다. 대신 ‘그가 집에 왔을 때 물 한잔도 안주고 보내고 나니 찝집하다’가 느낌이다, 김 강사는 “요즘은 학생들도 ‘좋아, 나빠, 헐, 대박, 빡쳐’ 등 몇가지로만 표현을 고착화하는 경향이 강한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느낌 표현이 중요한 것은 이 느낌을 통해 내 자신 혹은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정확히 알수 있기 때문이다. 즉 느낌 속에 ‘욕구’가 담겨 있어서다. 가령 아내가 홈쇼핑에서 배달된 옷을 입어보고 남편에게 ‘이거 입으니 좀 답답하다. 어때?’라고 물었을 때 ‘반품할 이유를 찾기위한 동의를 구하고싶은 욕구가 담겨 있다.
 비난하는 말의 속내엔 욕구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가령 ‘그는 너무 거만해’라고 하는 말속엔 ‘그가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줬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담겨 있다. 비폭력대화법의 창시자 마샬은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은 충족되지않은 자기 욕구의 비극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가령 아이가 “엄마 미워!”라며 엄마를 탓하는 듯한 말을 하고있지만, 공감의 마음으로 경청해보면, 아이는 자신의 욕구가 총족되지않은데 대한 고통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법의 대미는 ‘부탁’이다. 부탁은 막연하게 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해야한다. 가령 “우리 사무실에서는 좀 더 나은 인간관계를 만듭시다”가 아니라 “아침에 출근할때 먼저 바라본 사람이 항상 인사를 합시다”라고 하는게 좋다. 이 때 조심할 것은 부탁과 강요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부탁이란 상대방에 의해서 거절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부탁이다. 가령 “네가 좀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라는 식은 막연하다. 연습을 많이 한 한 40대 학부모는 “발표할 때 청중들과 한명 한명과 눈을 맞추며 또박또박 큰소리로 말을 했으면 좋겠어”라고 구체적으로 부탁했다.
 김 강사는 “이런 모델이 잘 떠오르지않으면 상대방의 의중을 물어주는 것만으로도 비폭력대화가 된다”고 했다. 가령 엄마가 “순희야, 저 가게에 가서 두부 좀 사와”라고 하기보다는 “순희야, 두부 좀 사다주면 좋겠는데,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어주면 비폭력대화가 된다는 것이다.



1-.JPG» 김영옥 강사의 지도로 기린과 자칼이 되어서 실제 사례를 가지고 비폭력대화 상황극을 해보는 참가자들


중재2-.jpg



 
  ‘기린과 자칼’이 되어보니
 참석자들은 대화 모델을 익힌 뒤 기린과 자칼이 되어서 실제 대화 상황을 연습해본다. 기린은 비폭력대화의 상징이고, 자칼은 공격적인 언어를 쓰는 이를 상징한다.
만약 엄마로부터 ‘언니 반만큼이라도 해봐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칼식으로 반응은 ‘엄마는 왜 맨날 나만 미워해?’라고 엄마를 공격하든지, ‘그래 나는 제대로 하는게 없어’라고 자신을 할퀴게 된다. 그러나 비폭력대화를 익혀 기린식이 된다면 누군가를 공격하기보다는 ‘저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프다’고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든지, 아니면 ‘엄마, 내가 이걸 좀 더 야무지게 해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거지?’라고 공감하는 것이다.
  비폭력대화법을 해본 30대 남성은 “이성만 발달해서 나는 감정도 없고 공감 능력이 없는 줄 알았는데, 기린 연습 도중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공감해주는 말을 들으니 울컥해졌다”고 고백했다. 40대 남성도 “내 느낌과 욕구를 알아야 내 자신을 제대로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50대 여성은 “지금까지 다른사람들의 눈치는 너무도 잘 살피며 살아왔는데, 내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모르고 방치해둬 나는 ‘늘 괜찮다’고만 해왔다”고 말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50대 여성은 “진심어린 공감의 말을 듣는 순간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생애 처음으로 달콤한 눈물을 흘렸다”고 감격해했다. www.krnvc.org: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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