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Viewing all 3077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애나 호박이나 같은 것이여

$
0
0


"이상하게 나는 호박을 못 키워. 매년 호박이 안돼."

그러자 호박을 따서 씻던 시인이 무심해 대답했다.

"거름이 부족한 게지."

"아니야, 심기 전에 퇴비 주고 고양이 똥 삭힌 거랑 우유 남은 거 이런 거 주는데 잎만 무성해서 무슨 칡덩굴처럼 2층 창까지 올라갔어."

그러자 시인이 피식 웃었다.

"첫 순을 따버려야지."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평상에 앉아 따박따박 호박을 썰던 시인이 다시 대꾸했다.

"거름이 너무 많아도 농사가 안돼. 쉽게 말하면 먹을 게 많은데 왜 애쓰며 꽃피우고 열매를 맺겠느냐고. 순지르기라는 걸 해서 첫 번에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걸 확 보여줘야 하는 거야. 그러면 '아, 세상이 그리 녹록지 않구나. 우리 세대는 힘들 것 같으니 다음 세대에 기대를 해보자'하고 호박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지. 사람하고 똑같아."

"지영이 너는 아이들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고생도 시키고 그러는 거로 아는데 호박은 과보호를 했구만그래. 애나 호박이나 같은 것이여."


<시인의 밥상>(공지영 지음, 한겨레출판) 중에서

 


내 안의 나를 깨우는 장자

$
0
0

소설처럼 읽히는 장자 3권


장자.jpg


<장자>는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장자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진 내편 7편과 전국시대 말부터 한대까지 후학들이 덧붙인 외편 15편, 역시 제자나 후학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잡편 11편 등 모두 33편으로 나뉜다.


최상용 인문기학연구소 소장이 최근 펴낸 <내 안의 나를 깨우는 장자>(전3권)는 내편, 외편, 잡편을 각 권으로 분리하고 읽기 쉬운 우리말로 옮겼다. 중국 학자들의 주석본에서 느껴지는 난해함이나 모호함을 극복하려고 한자의 독음과 해설 등을 생략하는 대신 원전의 뜻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설처럼 구성했다. 각 편의 끄트머리에는 한자어원풀이를 수록해 이해를 도왔다.


지은이는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대로 자연스럽게 행해야 한다”는 장자의 뜻에 방점을 찍는다. 깊은 바닷속 거대한 물고기인 ‘곤’과 등 길이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큰 ‘붕’이라는 새를 등장시킨 내편 제1편의 ‘소요유’(逍遙遊)는 걸림 없는 대자유의 삶과 높은 경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풀었다.


기업, 대학, 사회단체 등에서 동양학을 강의하는 지은이는 참선, 명상, 도인법 등 다양한 수련을 거쳤고 동양학의 과학적 접근을 위해 경락과 생체에너지 등을 연구해왔다. 글자에 담긴 역사적 배경을 소개한 <브레인 한자> 등 한자 학습서들과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들을 위한 <하루 3분 수면 혁명>을 썼다. 3권 세트 2만9000원. 총 836쪽.


이유진 기자


친절하라, 행복하라

$
0
0


졸업생들에게 하는 조언, 행복과 친절


<한겨레 책 섹션> 정혜윤의 세벽세시 책읽기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커트 보니것 지음, 김용욱 옮김/문학동네(2017)


졸업생1.jpg


이제 곧 졸업할 대학생, 취업만 생각하면 사는 맛과 입맛을 동시에 잃을 대학생이 책을 읽을 정신이 있을까? 그래도 굳이 추천한다면 커트 보니것의 졸업식 연설문 모음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의 첫번째 장점, 두껍지 않다는 것이다. 두번째 장점, 커트 보니것은 예술가의 본분은 ‘사람들 기분을 전보다 좋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 책은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세번째 장점, 그는 졸업생을 미숙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이 작은 행성은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보다 훨씬 정상적인 곳’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네번째 장점, 커트 보니것이 같은 말을 하고 또 한 덕분에 상당한 수준의 건망증을 앓고 있지 않는 한 할 수 없이 내용을 기억하게 된다. 심지어, 나까지도 정확하게는 아니어도 비슷하게 외울 수 있다


1. 삶에 더 많은 사람을 데려오세요. 따뜻함과 소속감,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빼면 나머지는 다 거품입니다.
2. 지루함은 삶의 일부예요. 그걸 견디지 못하면 어린애예요.
3. 만약 예수가 자비의 메시지를 담은 산상수훈을 전하지 않았다면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방울뱀이 되었을 거예요. 젠장, 세상의 규칙은 딱 하나, ‘친절하라’.
4. 하늘에 계시는 알렉스 삼촌이 무엇보다 개탄한 것은 사람들이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어요. 삼촌은 행복할 때마다 그 순간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노력했어요. 한여름의 사과나무 아래서 레모네이드를 마실 때면 그는 외쳤어요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여러분도 남은 생애 내내 평화를 느낄 때나 일이 순조로울 때마다 외치세요!
5. 마크 트웨인은 삶의 끝자락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스스로 물었어요. “이웃의 좋은 평가”.
6. 아버지, 우리는 왜 태어났죠? 서로 삶을 잘 헤쳐나가도록 도와주기 위해 태어난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이 순간과 장소를 바람직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잘 해냅시다.
7. 어떻게 내가 이 일을 해냈지? 우리는 어떻게 이걸 해냈지? 그래 해낸 거야.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야!’
8. 저는 여러분을 깊이 동정합니다. 졸업식과 동시에 아주 힘들 테니까요. 여러분은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될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니까 신은 아담과 이브에게 지구 전체 땅덩어리를 주지는 않았어요. 이 행성의 작은 부분을 안전하게 잘 맡아주세요.


요새 같으면 졸업생 중 누군가 질문할 수도 있다. “커트 할아버지, 취업은요?” 그는 작은 일이라도 인간적 가치를 잃게 하지 않는 한 고군분투하길 바랐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모험도 꿈꿨다. 문제 많은 행성에 순응하느니 아직 존재한 적 없는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 행성이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을 창조하세요.”


나도 덧붙이고 싶다. 실망과 환멸, 좌절, 피로는 어차피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들에 결정적으로 발목을 붙잡히지 않기를.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기를. 따뜻하고 현명한 친구를 만나길.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수감자 노숙자의 따뜻한 국물 한술

$
0
0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 특히 가난한 이들, 노숙하는 이들,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 소외된 이들이  민들레국수집에서 환대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제는 청송을 다녀왔습니다. 청송의 형제들이 베베모가 다시는 청송에 오지 않을 줄 알있답니다. 그러면서 거의 석달만의 만남을 좋아했습니다. 지난 12월과 1월 그리고 2월달에 생일이거나 축일인 분들을 촛불 켜지 못한 케이크로 축하를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영치금도 이만원을 더 보태서 오만원씩 넣어드렸습니다. 


얼마전부터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넣을 수 있는 물건은 칫솔과 안경뿐입니다. 나머지 필요한 것은 모두 수용자들이 자기 영치금으로 사야합니다. 그래서 법자(법무부 자녀들)들이 대부분인 우리 자매상담에 나오는 형제들에게 매달 영치금을 삼만원씩 넣어드리고, 생일이나 본명축일 때는 오만원씩 넣어드리고 있답니다. 그러면서 절대 비밀이라고 당부했습니다. 다른 종교의 자매상담에 나가는 사람들이 알게되면 큰일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북북부교도소의 우리 형제들은 어제는 18명이 모임에 나왔습니다. 제일 어린 사람이 스물다섯 살입니다. 칠순이 다 된 분도 계십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에 징역 형량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유기징역을 삼십 넌이 넘게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겨우 나이 서른넷인데 남은 징역이 28년이나 있으니 징역 다 살고 출소할 때면 예순 둘 이나 됩니다. 또 어떤 분은 지금 나이가 예순 일곱이신데 받은 징역을 다 살려면 팔십이 넘습니다. 그때까지 살아 있을 수나 있을는지….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교도소도 치매 노인 때문에 어려운 일들도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민들레11.jpg


오늘은 하비에르 신부님의 첫미사가 민들레국숫집에서 있습니다. 오전 열시부터 손님들께 대접을 하다가 오전 11시에 미사를 드렸습니다. VIP 손님들도 경건하게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14년 전에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할 때 개인용 냉장고 하나 놓고 시작했다가 점점 손님들이 늘어나면서 냉장고도 조금씩 커지고 늘어났습니다. 지금은 냉동고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냉동고가 단열이 거의 되지 않아서 전기료가 엄청납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새로 냉동고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설치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깍아주셨습니다. 400만원이나 합니다. 반찬냉장고도 바꾸고 싶습니다. 지난 번에 반찬 냉장고를 마련할 때 중고 제품을 사서 설치 했더니 자주 고장이 납니다. 


민들레22.jpg


다음 아고라의 감동빵 분들이 아주 진한 사골곰국을 커다란 상자로 두 상자나 보내주셨습니다. 양지머리 소고기를 조금 사다가 삶아서 엷게 저몄습니다. 그리고 소면도 삶아서 작게 사리를 지어 놓았습니다. 대파는 송송 썰어 놓고요. 손님들이 두세 번을 더 드십니다. 손님들이 참 잘 드십니다. 그런데 간을 맞추는 소금이 문제입니다. 소금을 한 숟가락 듬뿍 넣으려는 분이 많아서 잘 지켜봐야 합니다. 손님 한 분이 소금 조금 넣으라고 당부했는데도 보란듯 한 숟갈 듬뿍 넣었습니다. 



진짜 감정과 가짜 감정 구별하기

$
0
0

4유형도형.jpg


유형 - 네 번째 
         특별(창조)을 추구하는 사람

    

핵심동기 : 특별(창조)
자신의 시각 : 독특함, 의미추구, 개인주의
타인의 시각 : 질투, 인위적승화, 자유스러움


4유형은 관계에서 의도적 거리를 둡니다

밀당.jpg


4유형은 자신에 대해 드러내는 것은 잘합니다. 기댈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한 없이 자신의 감정, 느낌, 생각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서로 주고받는 관계 맺기에서는 감정표현이나 해야 될 말, 생각 전달이 서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 관계에서도 가까워져 가면 의도적으로 물러나고 멀어진 것 같으면 어느 새 가까워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하지요. 이들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가까이 다가가기를 더 힘들어 합니다. 마치 ‘짝사랑’처럼요. 4유형은 정말 상대방을 사랑하나 그 사랑을 보여주고 싶지 않는 반면에 사랑하는 이와 긴밀하면서 친밀감을 갖길 원합니다.


사례 1> 4유형의 애인 : 뜨거운 사랑을 하면서도 애인과 늘 헤어질 것을 꿈꾼다.
       2> 4유형의 신부 : 신혼여행을 가면서 이혼을 생각한다.


4유형의 이런 밀고 당기는 내적 갈등은 거부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실제로 먼저 떠나는 행동을 하거나, 거부에 대한 두려움의 반응이 때론 수줍음으로 나타납니다. 4유형은 애정을 얻으면 고독을 원하고, 고독하면 애정을 갈구합니다. 이들은 완전한 사랑을 갈망하지요.
 
이것이 지나칠 때 관계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지나치게 자신에게 몰입한 4유형은 타인의 감정을 미처 보지 못하지요.
그래서 상대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가?’라며 오해하거나 상대가 버거워서 떠날 수 있습니다.


4유형은 인생의 ‘苦’를 미리 상상합니다

내면의결핍.jpg


4유형은 상실, 고통, 이별에 흥미가 있고 특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가까이 있다고 느낍니다. 자신이 깊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을 항상 갖으며 살고 있지요. 4유형이 한발 짝 물러서는 이유도 커다란 상실감을 미리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4유형을 바람에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일상 속에서 곁에 있는지 없는지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같습니다. 가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세찬 바람을 일으킵니다. 바람이 성내면 춥듯이 사람들에게 차가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다 자신의 내면을 정리해 주고 싶을 때 태풍이나 허리케인으로 변신을 하지요. 해소가 되면 다시 살랑살랑 꽃내음 풍기는 바람으로 돌아옵니다.


박향률.jpg

4유형의 사랑의 표현은 깊은 우수어린 눈빛, 분위기가 녹아 있지요. 직접 표현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감정표현은 좋다, 나쁘다 이분법적으로 합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에니어그램 유형 중에서 가장 우아하며 세련된 사람이 4유형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지요. 할머니는 소녀 같이 곱다는 말을 듣고, 할아버지는 로맨스 가이입니다.
4유형은 따뜻하며 이해심이 많습니다. 만약 당신이 속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다면 4유형에게 요청해 보세요. 이들은 연민의 정으로서 사람의 속을 통째로 봅니다. 그 마음의 슬픔을 그대로 받아주고 느끼는 훌륭한 상담자 입니다.


한마디코너:


자신의 진짜 감정과 가짜 감정을 구분하세요.
감정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그 자체로서 특별합니다!



4유형의 기도문


이제 나는 내려놓습니다.
절망하고 실망하는
모든 감정을


이제 나는 내려놓습니다.
사람들이 항상 나를 실망시킨다는 생각을


이제 나는 내려놓습니다.
지나치게 주관적인
나의 정서와 행동을


이제 나는 선언합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열어 보일 것을


이제 나는 선언합니다.
나의 삶, 나의 친구들,
그리고 나 자신의 선함을


이제 나는 선언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선함과 아름다움을 가져오고 있음을


                            <에니어그램의 활용 / 知와사랑> 中에서 일부 수정함




꿈같은 이야기를 현실화시키는 곳, 인도 오로빌

$
0
0

 1.왜 공동체인가 

 

  타이 아속

 2.가장 ‘핫한 남자’ 포티락을 만나다

  3.이윤을 포기하고 부자가 된 사람들

 

  4.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다

 

 인도 오로빌

 5.자기로 살면 누구나 천재가 된다

 

 미국 브루더호프

 6.돈 없이 최고급리조트에서 살아보기

  7.공부보다 청소와 요리에 더 열심인 아이

 8.뒷담화 말고 앞에서 솔직하게 얘기하라

 

 일본 애즈원

 9.인간과 사회 탐구, 제로에서 시작한다

 10. 아무도 명령 하지않는 일터에서 일하다

 

 일본 야마기시

 11.못난이도 잘난이도 함께 살아가는 곳






반얀나무사본.jpg

*오로빌 마트리만디르 앞 정원의 반얀트리



신화와 소설과 꿈…. 이들의 공통점은 허구라는 것이다. 인간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만들어낸 가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짜를 진짜로 만들어가는 게 인간의 역사다. 


남인도 첸나이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푸두체리(퐁디셰리)의 오로빌 또한 그렇다. 오로빌은 25㎢, 750여만평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공동체마을이다. 마을이라기보다는 시다. 황무지에 대규모 공동체를 일군 것만으로 신화랄 수는 없다. 외관만 보자면 서울 강남이 천지개벽한 것과 비교할 때 이곳은 변화랄 게 없다. 1968년 첫 삽을 뜬 지 50년이 다 됐지만, 비가 오면 통행조차 어려울 만큼 질척거리는 길들이 적지 않으니, 발전 속도는 지렁이처럼 늦다. 45개국에서 온 2500명이 한곳에 모여 산다는 것도 그것만으로 경이롭다고 할 수 없다. 미국 맨해튼엔 전세계에서 온 160여만명이 모여 있으니 말이다. 


오로빌에서 부나 고도성장을 바라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마더’로 불리는 프랑스 출신 설립자 미라 알파사(1878~1973)는 “우리는 다른 이들이 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다른 이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고 했다.


마티르만디르외관.png

*마트리만디르



‘오로빌의 영혼’이라는 ‘마트리만디르’(어머니의 전당)를 보면, 이들의 존재 방식이 보인다. 1971년에 시작돼 최근에야 완성된 이 명상센터는 오로빌리언들의 성소다. 지구상에서 가장 볼만한 건축물로도 꼽히는 명소를 너무 쉽게 접하면 그 가치를 모른다고 여긴 때문일까. 방문자센터에서 예약하고, 당일 함께 모여 미리 영상물을 관람한 뒤 버스를 타고 가서도 침묵을 지키며 줄 서 들어가야 했다.


오로빌의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 아우로빈도(오로빈도·1872~1950)는 “인간이 아직 이르지 못했으나 이르러야 할 어떤 경지가 있다”고 했다. 마티리만디르는 그 영적 진화를 위해 발사대 위에 있는 우주선 같다.


내부엔 어떤 종교적 성소에서도 보기 어려울 만큼 경건하게 서 있는 오로빌리언들이 지키고 있다. 뇌 속을 걸어 마음의 심연으로 걸어가는 듯한 중앙엔 지름 70㎝의 거대한 크리스털이 있다. 어둠 속에서 오직 그 수정 위로만 한줄기 빛이 내려온다. 방문자들은 고요히 앉아 침묵한다. 약육강식 속에서 생존을 위한 악다구니 속에서 빼앗긴 평화를 되찾아 영적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침묵이다.


마티르만디르내부.png

*마트리만디르 내부의 중앙 명상홀


마트리만디르을 중심으로 산업구역, 주거구역, 문화구역, 국제구역으로 뻗어나간 오로빌은 마치 ‘신시’(神市)를 연상케 했다. ‘오로빌’은 ‘동트는 새벽’이란 뜻의 프랑스어(aurore)와 시(ville)의 조합이다. 마더의 멘토이자 영적 파트너였던 오로빈도의 ‘오로’와 시(市)의 조합으로도 읽힌다. 


오로빈도는 인도 캘커타(현 콜카타)에서 부유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7살에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벵갈루루(방갈로르)국립대학 초대 학장을 지냈다. 인도 독립운동에 투신하다 국사범으로 체포돼 감옥에서 깊은 영적 체험을 했다. 그는 그 체험을 토대로 <사비트리>란 대서사시를 썼다. 또 몸운동 위주의 아사나를 넘어 전인적인 영적 변화를 위한 ‘통합요가’(integral yoga)를 주창했다. 


오로빌엔 이를 기리는 ‘사비트리바반’이 2004년 지어졌다. 마트리만디르와 함께 오로빌의 양대 영적 장소로 꼽히는 이곳에서 ‘통합요가 이론과 명상 실습 워크숍’에 참가했다. 이론을 듣고 잔디밭에 나가 옆사람과 짝을 지어 눈을 감고 공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10분가량이 지나자 상대가 공을 건네줄 때 내가 손을 내밀어 공을 척척 받아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이심전심이 된 것이다.


명상워크숍.jpg

*명상워크숍


오로빈도는 38살에 아내와 헤어져 퐁디셰리에 은거했다. 프랑스령 퐁디셰리에 1920년부터 머물던 프랑스 국적 유대인 마더는 오로빈도를 만난 뒤 그를 멘토로 삼아 새로운 의식을 탄생시킬 오로빌의 건설을 구상한다. 오로빈도는 1950년 세상을 떴지만 마더는 1968년 첫 삽을 뜨면서 이 원대한 꿈을 구체화했다. 착공식엔 124개국에서 가져온 흙을 묻고, ‘오로빌은 전체 인류의 것이며, 끝없는 교육과 지속적인 진보, 그리고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의 장이 될 것’이라는 헌장을 채택했다. 


프랑스에서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권위주의 체제에 도전하며 청년문화운동을 이끌던 68세대들이 대거 오로빌에 동참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디바인(Divine·신성한) 아나키스트’라고 불렀다.


오로빈도 사후 절대적 존경을 받던 마더가 1973년 세상을 떠난 뒤 퐁디셰리의 수행공동체인 ‘스리 오로빈도 아슈람’이 오로빌을 복속시키려 하면서, 독립을 원한 68세대와 ‘내전’을 겪기도 했다. 이제 오로빌은 인도 정부에서도 인정한 자치 도시가 됐다.


초기 정착자들은 황무지를 일구느라 고생도 많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이제 숲에 둘러싸인 정원 딸린 저택에서 살고 있다. 더구나 오로빌은 산골살이와 달리 문화공연과 배움, 사교의 기회도 풍부하다. 다만 5만명을 수용하는 공동체를 구상한 오로빌에서 초기 정착자 등 2500명의 기득권자들이 좋은 부지를 선점해,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그런 단독주택은 꿈꾸기 어렵다. 요즘은 빌라 등 공동주택을 구입하는 데도 2억원가량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오로빌의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


방문자들은 오로빌 안에 있는 49개의 게스트하우스와 28개의 홈스테이를 예약해 이용할 수 있다. 가격은 거리와 시설에 따라서 다르지만, 내 경우 하루 숙박비가 우리 돈으로 1만원 정도인 500~600루피의 방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게스트하우스엔 취사 시설도 완비되어 있어 장을 봐 요리를 해 먹을 수 있고, 공동체 안팎에 다양한 식당이나 베이커리, 카페 등을 이용해도 된다. 공동체가 워낙 넓어 걸어 다니기는 어렵다. 대부분 스쿠터를 빌려 타고 다닌다. 누리집이나 방문자센터가 워낙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이용에 별 불편이 없다. 오로빌 안에선 방문자들도 참여할 수 있는 승마와 요가와 힐링, 마사지, 침 등 치료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그러나 공동체 밖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다. 오로빌에 1000명가량의 인도인이 살고 있다. 하지만 오로빌을 이끌어가는 주류는 유럽 등 서구인들이다. 그러니 오로빌 밖과는 물가 차이가 상당하다. 하지만 일단 이곳에 살기를 원하는 뉴커머 등록을 하면 대부분의 혜택을 거저 이용할 수 있다.


오로빌엔 조그만 수공예나 목공예 공장, 농장 등 크고 작은 일터가 200여곳 있다. 하루 6시간, 일주일에 36시간 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일을 더 많이 하거나 자기 일터의 수익이 좋다고 더 가져가는 구조가 아니다. 애초 자산이 많은 사람들은 대가 없이 자원봉사자로 일한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메인터넌스’라는 기초생계비를 신청한다. 그러면 의료보험료 등을 면제해주고, 솔라키친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 월 8500루피, 우리 돈으로 약 15만원 정도의 돈도 나온다. 


오로빌리언들은 공동체 내 병의원도 대부분 돈 없이 이용할 수 있다. 헬스케어센터엔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뿐 아니라 인도 전통의 아유르베다 의사도 있다. 나도 자가면역질환의 치료를 위해 아유르베다 의사와 면담을 하고 약을 꽤 먹었다.


오로빌은 무엇보다 아이들의 천국이다. 학비는 모두 무료다. 학교에는 선생도 아이들도 모두 이름만 부를 뿐, ‘교장선생님’이나 ‘선생님’ 같은 호칭도 없다. 시험과 상벌도 없다. 마음껏 놀고, 억압받지 않고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발현하게 한다. 깊은 내면의 자아가 존재의 중심에 서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이 금수저든 흙수저든 상관없이 함께 어울려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다. 오로빌엔 세계적 수준의 음악가와 화가, 의사, 음악감독, 건축가 등이 적지 않다. 아이들은 이들로부터 무료로 개인지도까지 받을 수 있다. 


허혜정씨와 볼커1.jpg

*한국인 오로빌리언 허혜정씨와 그의 남편 볼커


솔라키친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한국인 허혜정씨를 만났다. 오로빌엔 한국인 장기 거주자 33명이 있다. 2002년부터 살고 있는 고참인 허씨는 오로빌 안의 국제구역에 인류공동체 교육과 교류의 장으로 활용할 동북아센터와 코리아파빌리온을 짓는 사업을 추진 중인 코디네이터다. 허씨의 초대를 받아 독일인 남편 폴커가 설계한 그의 집에 들어설 때, 자연과 인간과 집이 서로를 감싸주면서도 구속하지 않는 듯 조화롭고 평안한 느낌을 받았다. 폴커는 따로 건축을 공부한 적이 없다. 오로빌에 20여년째 명상을 하며 채식주의자로 살아온 그의 건축물을 보면, 창조란 외부로부터 배우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발현되는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된다. 


볼커와 지은집.jpg

*볼커가 직접 지은 집


한국인 신참자로는 강기태씨가 있다. 그는 삼성 계열 회사에 10년간 다니며 술과 담배에 찌들어 건강이 망가지자 직장을 그만두고 몇개월 전 과감히 오로빌로 이주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다운 음악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선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생각으로 악기와 노래를 배웠기에 그 과정이 노동이 되어버렸는데, 이곳에선 박치건 음치건 개의치 않고 자기만의 파동에 집중하고 자기 느낌 그대로 연주하다 보니, 내면의 감성을 깨워 치유가 되고, 사람과 자연에 대한 감사가 되고, 저절로 예술가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허혜정씨와 볼커의 아름다운 집에서 저녁을 보낸 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올 때였다. 인도는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오로빌도 가로등이 없어 캄캄했다. 스쿠터를 타고 나오다 길을 잃어버렸다. 한참 올라가니 밀림 같은 숲이 나왔는데, 아무리 가도 불빛조차 없었다. 칠흑 같은 숲에서 야생 호랑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방향을 돌려 한참을 가자 멀리서 불빛 하나가 보였다. 여자를 태운 한 청년이 다가와 “어디를 찾아가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따라오라’며 그 깊은 밤 게스트하우스 앞까지 나를 이끌어주었다. 마음대로 자란 것 같은, 어른들을 미덥게 하지 못할 것 같은 자유분방한 그 청년 커플이 그날 밤 길을 잃고 헤매던 나를 마티리만디르의 수정처럼 밝게 안식으로 인도한 것이다.


푸두체리(인도)/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부족한 듯 행동하기

$
0
0


덕을 잘 갖춘 사람은 부족한 듯 행동하는 법이다

제27편 우언(寓言) 7-1


초나라의 현인 양자거가 노자를 만나기 위해 남쪽 패 땅으로 갔을 때, 노자는 서쪽으로 진나라를 유람하고 있었습니다.

양자거는 패 땅의 교외로 마중 나갔다가 양 땅에 이르러 노자를 만났습니다. 함께 오는 도중에 노자는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하며 말합니다.

"처음 자넬 보았을 땐 가르칠 만하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보니 아니구나."


양자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선 노자에게 세숫대야와 양치물과 수건과 빗을 가져다 올린 다음, 문밖에 신발을 벗어놓고는 무릎걸음으로 그의 앞으로 다가가 말했습니다.

"조금 전에 저는 선생님께 여쭙고 싶었으나 선생님께서 바삐 걸으시며 틈을 주지 않아 감히 여쭙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한가하니, 왜 그리 말씀하셨는지 그 까닭을 여쭙고자 합니다."


그러자 노자가 말합니다.

"자넨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누가 자네와 함께 지내려 하겠는가? 아주 흰 것은 더러운 듯하고, 덕을 잘 갖춘 사람은 부족한 듯 행동하는 법이다."

양자거는 흠칫 놀란 듯 낯빛을 바꾸며 말합니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전에 양자거가 왔을 땐, 여관에 묵고 있던 사람들이 그를 맞이하고 전송하였습니다. 여관주인은 그가 앉을 방석을 내왔고 안주인은 수건과 빗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여관에 묵는 사람들은 그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고, 불을 쬐던 사람들도 그에게 따뜻한 부뚜막을 양보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노자를 만나고 돌아간 뒤엔 여관에 묵고 있던 사람들은 그와 함께 자리를 다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내 안의 나를 꺠우는 장자-잡편>(장자 지음, 최상용 옮김, 일상이상) 중에서


 

왜 그렇게들 안달인지

$
0
0


내가 말했다.

"가톨릭에 황창연이라는 유명한 신부님이 계시는데 그분이 그러셨어. 다리가 떨릴 때 말고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떠나라고. 이스라엘이나 이런 데로 성지순례도 떠나라고. 신자들이 '돈 없어요'하니까 '애 학원 보내지 말고 그 돈으로 가요. 애 휴학시켜요, 지가 벌게. 그러면 여행갈 수 있어요'하셨어."

우리는 모두 웃었다. 그러자 버들치 시인이 말했다.

"일리가 없는 거 아니야. 여기 귀향하는 사람들, 애들 대학 안보내겠다고 마음먹고 와. 그러면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와 아이들의 삶의 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어. 부모, 애들 다 행복하고. 신기한 것은 그중에서 또 몇은 대학에 간다는 거야. 것도 좋은 대학에. 그냥 생긴 대로 살면 다 제자리로 가는 것을 왜 그렇게들 안들을 하는지."


<시인의 밥상>(공지영 지금, 한겨레출판) 중에서


 


설산의 절경보다 반가운 선물

$
0
0



[덕기자 덕질기]



1.히말라야에서는 누구나 별이 된다

2.분노와 애욕의 벼랑 끝에 서다
3.사람 한명이 천하절경보다 낫다

4.설산의 화려한 나신보다 반가운 선물    

 



설산의 빛이 어둠을 부수고 찬란히 빛나는 체험에 일단 사로잡히면, 이를 외면하고 살기는 어렵다. 안나푸르나에서의 고산증이나 고행의 기억쯤은 간데없고, ‘죽어도 좋다’고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사 복직을 앞두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있는 쿰부히말라야로 향했다. 이번엔 당시 광주5·18트라우마센터장이던 강용주 원장과 함께였다. 5·18 당시 변두리를 맴돌던 나와 달리 그는 겨우 한살 위인 고교 3학년생이었지만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켰고, 의대 본과 1학년 때 끌려간 감옥에서 14년을 보냈다. 그를 초대한 데는 그가 병원문을 닫고 1년 안식년을 가져서이기도 했지만, 짠하고, 어쩐지 미안해지는 마음을 덜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덕1.jpg

*짙은 운무가 가득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가운데 명상하는 도중 갑자기 개어 모습을 드러낸 쿰부체 로라 에베레스트 로체


그런데 강 원장은 300여미터 이상은 올라간 적이 없다고 했다. 인왕산에 올라가본 게 고작이라는 것이다. 배낭도 등산화도 없다고 했다.
많이 쉬고 충분히 놀면서도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올라가는 ‘사부작산행’엔 그런 초보라도 문제 될 게 없다. 나만 따라오면 된다고 했다. 문제라면 절망의 무게다. 그는 이념 같은 건 일찌감치 버렸지만 강압에 굴하지 않으려 ‘비전향’을 택해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로서 차마 인간으로서 당해내기 어려운 고문과 징벌을 당해야 했단다. 그가 그 어두운 지하에서 나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걷는 것이다.


나처럼 가이드나 포터 없이 가도 별문제는 없다. 그러나 정상 등반을 위해 어두운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마지막날엔 경험 많은 가이드나 포터를 따라붙어야 한다. 그래서 고참 포터를 고용한 미국인 부녀와 말을 터, 함께 5550미터 칼라파타르에 올랐다.


그런데 푸모리봉이 꿈인 듯 생시인 듯 드러난 것도 한순간, 짙은 안개가 덮쳤다. 100여명의 등산객들도 추위와 바람을 못 이기고 내려갔다. 한시간을 더 버텼으나 안개는 걷힐 기미가 없었다. 하산해야 했다. 미국인 부녀가 포터를 따라 앞서가고, 강 원장도 저만치 내려갔다. 그러나 나는 갈 수 없었다. 설산의 서광이 강 원장을 가뒀던 그 징벌방의 절망을 부수길 소원하며 빌었다. 내가 눈을 감고 명상하는 사이 저 아래에서 갑자기 환호성이 들렸다. 짙은 운무가 한순간에 걷힌 것이다. 쿰부체 로라 에베레스트 로체 4대 명산이 화려한 나신을 드러냈다. 결코 웃지 않던 강 원장이 두 손의 족쇄가 풀린 듯 모처럼 호쾌하게 웃었다. 내게 가장 큰 선물은 여신의 나신이 아니라, 그의 웃음이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덕2.jpg

*안개가 갑자기 걷힌 설산을 배경으로 미국인 부녀와 강 원장(왼쪽 둘째)과 조현 기자(맨 오른쪽).


덕3.jpg

*새벽 고랍셉에서 칼라파타르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


덕4.jpg

*칼라파타르 정상에 선 조현기자. 뒤에 푸모리의 위용이 드러나있다.


덕5.jpg
*설산에 핀 야생화


손원영 교수 파면 철회 촉구 결의

$
0
0

성명서

 

서울기독대학교 손원영교수 파면 관련 연세대학교 신학과 및 연합신학대학원 동문회의 성명 발표회

 

일   시 : 2017.02. 24(금) 16시

장   소 : 연세대학교 (신촌) 신학관 105호

내   용 : 서울기독대학교 손원영교수 파면에 대한 

           연세대학교 신학과 및 연합신학대학원 동문회의 성명서 발표 기자간담회 

 

참석자 : 손원영 교수(연신 84), 동문회회장 원진희 목사(연신 75, 한우리교회)

         신학 교수 - 정석환, 권수영, 박종현, 김선정, 민경식, 김학철, 손호현, 박숭인 등 10여명 

 

성명서 서명자 : 김거성 목사(연신 76, 구민교회), 김응교 (81, 숙명대학교), 민영진박사(연신 57,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박숭인 (82, 협성대학교), 이영미 (84, 한신대학교)조성돈 (86,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 허호익 (71, 대전신학대학교

              연세대 신학과 동문 210 여명 (2월 23일 현재)


첨부자료 : 성명서 1부, 서명자 리스트 1부 


문의 및 안내 : 옥성삼 박사(연신 84, 크로스미디어랩 원장), 010-5269-5798




<성명서>

서울기독대학교 이사회의 손원영 교수 파면은

신앙의 양심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우리는 2017217일 서울기독대학교 이사회가 손원영 교수를 우상숭배의 혐의와 교단의 정체성 등의 이유로 파면하기로 결정한 것은 신앙의 양심과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 처사라고 판단하며, 이의 철회를 요구한다.

 

서울기독대학 이사회는, 손 교수가 한 기독교인에 의한 개운사 불당훼손 사건을 접한 후 기독교의 목사이자 교수로서 이에 대해 사과의 글을 발표하고 훼손된 불당복구를 위한 모금활동을 한 것을 두고 우상숭배 행위에 해당하며 그 여파로 신입생 모집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는 이유로 파면을 결정하였다.

우리는 기독교인의 불상훼손에 대한 손 교수의 사과와 모금활동이 배타적인 기독교에 대한 자성의 표현이자 동시에 신앙 양심의 발로이지 결코 우상숭배 행위와는 상관없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에 의한 이웃의 피해를 원상회복시키려 한 손 교수의 행위는 오히려 타종교를 존중하고 성숙한 신앙을 지향하는 기독교인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그 배타성으로 인한 세간의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한 행위로서 오히려 칭찬받을 만한 것이다.

모금행위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이사회와 손 교수 사이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종교적 이유에서 모금행위가 처벌의 사유가 된다면 앞으로 어떤 개인도 이러한 사회적 선행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우리는 우려한다.

 

또한 서울기독대학 이사회는 모금운동 이외에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과 건학이념을 지키지 않아 손 교수가 성실의무 위반을 하였다고 파면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우리는 서울기독대학교 건학이념이 성경으로 돌아가자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성경에 나오듯 곤경에 처한 이웃을 위해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자 한 손 교수의 행동은 이러한 건학이념을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실현시킨 것이라 판단한다.

손 교수의 신학적 성향이 개방적이고 포괄적이어서 중도보수적인 신학을 추구하는 서울기독대학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파면사유가 될 수 없는 자의적 평가일 뿐 아니라, 교수의 학문적 자율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견해이다. 학문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의 헌법적 가치는 국민의 존엄한 기본권이다. 학문적 표현은 옳은 것뿐만 아니라 설혹 틀린 것도 보호해야 한다고 우리나라 법원은 판시한 바 있다. 더구나 만약 손 교수의 학문적 태도가 서울기독대학교의 정체성과 그토록 맞지 않는다면, 그가 지난 23년간 교수직을 수행하며 교무연구처장, 신학전문대학원장, 교수협의회 회장 등의 보직을 맡은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우리는 이사회의 손 교수 파면결정은 헌법상 보장된 학문의 자유와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신앙의 양심에 반하는 교권유린으로 즉시 철회할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우리는 당사자 모두가 상식적 판단을 존중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라는 성서의 준엄한 명령을 들을 것을 호소한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36-37)

 

---


서명자 명단 (23, 17:00 현재)

 

강성신 (96, 오산대학교)

강정욱 (93, Canaan 연합감리교회))

강화평 (93, New Creation 연합감리교회)

강혜성 (Livingstone 연합감리교회)

계단실 (83)

고동원 (87, 멜번한인교회)

고은애 (88, 삼성영어)

곽지선 (83, 연합감리교회)

곽호철 (91, 계명대학교)

권봉성 (81)

권수영 (87, 연세대학교)

권오성 (94)

권용화 (89, 상명대학교)

권윤경 (95)

권재경 (95, 연세대학교)

권현정 (94)

근승언 (85, 맘앤차일드소아청소년과의원)

김거성 (76, 구민교회)

김광호 (88, 부산중부교회)

김근수 (83, 두란노감리교회)

김도현 (91)

김도형 (86)

김동석 (88, 믿힘연구원)

김동수 (85, 국민은행)

김동환 (90, 연세대학교)

김두식 (95)

김명현 (66)

김민영 (88, 연세대학교)

김백희 (95, Brite Divinity School, TCU)

김보한 (82, 전주중부교회)

김빛나 (99, 연세대학교)

김상진 (89, 세브란스)

김선정 (84, 연세대학교)

김성래 (93)

김성언 (95, 명지대학교)

김성종 (99, 오클랜드 온누리비전교회)

김엘리 (84, 성공회대학교)

김영근 (86,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김영신 (87, 송도예수소망교회)

김영옥 (04, 이삭전인성장센터)

김영호 (79, 동연출판사)

김원진 (95, 뉴프론티어교회)

김은선 (96)

김은식 (96)

김은해 (96, 세브란스)

김은혜 (91)

김은호 (95)

김응교 (81, 숙명대학교)

김 인 (84, 한일장신대학교)

김인기 (88, 일산신광교회)

김인배 (97, 남원살림교회)

김장섭 (91, 장신대학교)

김정대 (91)

김종명 (93)

김정준 (87, 신광교회)

김종수 (74, 목포산돌교회)

김종식 (90, 관악중앙교회)

김종우 (81, 주소망교회)

김준기 (87)

김준철 (10, 연세대학교)

김진영 (95)

김진혁 (96,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김치범 (94, 연세대학교)

김학철 (90, 연세대학교)

김한규 (89, 삼덕창고)

김현조 (72, 대현교회)

김현호 (91, 동두천나눔의집)

김효성 (82, 연세대학교)

김효성 (99, 성실교회)

남오성 (89, 주날개그늘교회)

류삼준 (93, 명지대학교)

류호성 (85, 서울장신대학교)

마호영 (99, 서울한우리교회)

문기정 (91)

문단열 (83)

문병천 (91, 요셉선교회)

문영주 (87)

민경식 (89, 연세대학교)

민영진 (59, 전 대한성서공회)

박덕진 (83, 임시정부기념사업회)

박선진 (83, 서울복음교회)

박숭인 (82, 협성대학교)

박영희 (95, 연세대학교)

박융식 (89, KBS)

박정현 (93, Fair Oaks 연합감리교회)

박정희 (72)

박종현 (83, 연세대학교)

박찬웅 (85, 목원대학교)

박현호 (93, GTU)

배경모 (87, 일산감리교회)

배요한 (87)

배현묵 (84, 해보중앙교회)

백상훈 (89, 한일장신대학교)

백석근 (83)

백영민 (88, 연합감리교회 고등교육국)

설윤정 (01, 트리니티월스트릿교회)

손주범 (01, 대전산성교회)

손호현 (89, 연세대학교)

송기훈 (03, 영등포산업선교회)

송명종 (95)

송용섭 (90, 영남신학대학교)

신수일 (87)

신윤호 (93, 삼성전자)

심중보 (97, CJ헬로비전)

양내갑 (82, 연세대학교)

염승철 (83, 남녁교회)

오성욱 (90, 꿈의교회)

오택현 (82, 영남신학대학교)

오화철 (89, 강남대학교)

옥성삼 (84,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우찬제 (04, 연세대학교)

원진희 (75, 한우리교회)

위일선 (81)

유미호 (85,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유승현 (93)

유영경 (81)

유지황 (87)

윤명헌 (New Brunswick Theological Seminary)

윤병민 (82)

윤상은 (90, 반석영광교회)

윤승훈 (89, CBS)

윤여철 (90, 푸르덴셜생명)

윤지훈 (94, 더불어민주당)

이경섭 (83, 충실감리교회)

이광환 (82, 연세대학교)

이기무 (90, 반도중앙교회)

이나경 (83, KBTA)

이남기 (87)

이도윤 (95, 신명교회)

이동오 (89, 성광교회)

이민형 (98, 보스턴대학교)

이병수 (89, 은광교회)

이병일 (91, 강남향린교회)

이보라 (07, 머니투데이)

이보영 (83)

이상두 (89, 연세대학교)

이상목 (89, 평택대학교)

이상욱 (88, 성수교회)

이상현 (93)

이성호 (81)

이세리 (95)

이세영 (90, 한겨레신문사)

이승문 (93, 명지전문대학교)

이영미 (84, 한신대학교)

이요셉 (07, 성석교회)

이용주 (89, 숭실대학교)

이원석 (95)

이은경 (87)

이의진 (86)

이인경 (86, 계명대학교)

이정미 (77)

이종호 (82)

이주석 (94, 안산대학교회)

이지현 (93, 연세대학교)

이 진 (90, 웰케어강북주식회사)

이진희 (84)

이창건 (86, 대구YMCA)

이해수 (86, 용인CE영어학원)

임재선 (96, 행신초등학교)

임재훈 (83, 독일 칼스루에교회)

임종선 (87)

장기용 (81, 성공회대학교)

장준식 (94, 세화감리교회)

장진원 (83, MBC)

장효수 (81, 경동교회)

전성복 (97, Living Faith 연합감리교회)

전인영 (06)

전진택 (81, 남녘교회)

전현식 (76, 연세대학교)

정미현 (96, 번역가)

정복자 (72)

정석환 (78, 연세대학교)

정승우 (87, 연세대학교)

정용한 (93, 한남대학교)

정준태 (82, 만종감리교회)

정진회 (84, 샘터교회)

정윤숙 (95)

정현태 (91)

정혜인 (91)

조동천 (84, 신촌교회)

조성돈 (86,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성래 (93)

조성식 (82)

조승태 (95, 메트라이프생명)

조영우 (83)

조은하 (86, 목원대학교)

조일환 (90, 코너스톤아트)

조정복 (67)

천정민 (96, 관악구 건강가정지원센터)

최경영 (90, 연세대학교)

최대열 (85, 발달장애인선교연합회)

최동혁 (87)

최만자 (62)

최민화 (69)

최순육 (77)

최영현 (88, 한일장신대학교)

최우로 (93, SFTS)

최태성 (86, 루터교대조동교회)

최학희 (89, 시니어라이프)

최형묵 (81, 천안살림교회)

최형철 (83, 세브란스)

하현혜 (95)

한지원 (84)

허호익 (71, 대전신학대학교)

홍국평 (93, 연세대학교)

홍려희 (84)

홍이표 (95)

황덕신 (85, 한국컴패션)

황태준 (89, 3영상)

 

 

 

2017224

손원영 교수를 지지하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연합신학대학원 동문들

사제서품을 받는 후배들아

$
0
0



서품1-서품식1.jpg» 사제 서품식. 사진 박종식 기자


사제생활에 광야를 만날 때

-서품을 앞둔 후배 사제들에게-  

사랑하는 아우님들과 한 주간 참 행복했습니다주님께서 불러 세우신 사제직 준비의 마지막 여정에 함께 했다는 것이 너무나 큰 행운이고 축복입니다주님께 감사드립니다피정기간 함께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시다.

부르심에 응답하여 용감히 주님 제단에 나가는 여러분의 사제직에 주님의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고 여러분의 소명 서원이 일생을 통하여 주님 앞에 바쳐지는 삶이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시대의 초상

  인류 문화사에 오늘날처럼 기술문명이 정신세계를 지배하며 황금송아지를 경배하고 육신과 영혼의 건강성을 타락시키는 우상의 시대가 일찍이 없었습니다한국사회의 종교가 오늘날처럼 세인들의 비웃음과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천시되는 때가 일찍이 없었습니다.

종교의 존재이유를 상실하고 기업체나 사회단체 일원으로 전락해버린 타락의 시대에 사제직의 소명이 더욱 무겁게 느껴집니다그래도 알파요 오메가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하느님 나라 건설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새로운 일꾼들을 뽑아 추수밭으로 보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제는 누구인가?

  예수님께서는 열 두 사도를 뽑으셨는데 그 이유를 [당신 곁에 두시고 파견하시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케 하시고악령을 추방하는 권능을 주려고했다고 분명하게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사제는 주님의 장막을 지키며 오직 하느님과 함께 살고성체성사로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숭고한 소명에 응답했음을 잊지 마십시오  


[무소유의 사제

  사제는 무소유의 인간입니다이스라엘 열 두 지파 가운데 사제 집안인 레위 지파에게는 물려줄 유산이 없고 오로지 야훼 하느님 자신이 유산이라고 했습니다사제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 외에는 무소유의 삶이 운명입니다자발적 청빈을 자존심으로 여겨야 합니다  


[소비문화 시대의 사제

 현대사회의 악령은 과시욕과 비교행복을 부추기며 정보와 소비문화 마케팅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종교와 교육인간의 생노병사 모든 것을 상품적 가치로 평가하고 인간을 성과주의의 노예로 삼는 정말 악령이 판치는 시대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영성과 인간성

  사제의 손은 분향을 드려 인간의 탄원을 하느님께 전달하는 메신저입니다사제 자신이 기도로서 분향의 연기를 뿜어내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사제이기 이전에 먼저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이며 종교인이어야 함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겸손하고 예의범절과 사랑과 인정이 많은 사제가 되어주십시오사제이기 이전에 먼저 높은 도덕성과 정의감교양이 풍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선교의 핵심

  여러분은 모두 세계 각국에 복음선포의 일꾼으로 파견될 선교사제들입니다인정과 윤리예의염치는 실종되어버렸고 정신세계와 사회정의공동체는 가정공동체마저 해체되어버리고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신앙하면서 남북분단 70년의 갈등과 분쟁으로 살아가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나라를 조국으로 둔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사제로서 선교를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의 빈곤의 대륙에 파견될 여러분은 예수를 전하고 세례를 베풀겠지만그러나 잊어서는 안될 일이 그들에게 풍요와 부에 대한 로망을 거두어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경제 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다가 오늘의 천박한 자본주의에 빠져버린 대한민국을 절대로 닮지 말아야 한다고 간증해야 합니다.

가난할지라도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지인정을 나누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보배로운 일인지노동할 수 있고 아기를 출산할 수 있는 몸을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삶인지하느님 나라는 지상에서 그런 가치들이 지켜지고 공유되는 삶에 있다는 것을 선교해 주십시오이것은 살아있는 현실의 복음적 증거 입니다.


서품식2-.jpg» 사제 서품식. 사진 신소영 기자


[순명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입니다교회와 공동체의 건강성은 지체들의 건강성에 있습니다공동체에 대한 순명이 지체로서의 자기 몸을 살리고 공동체를 세웁니다한국외방선교회가 나를 만들고 내가 선교회를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서원

 지난 목요일 흰 눈이 펑펑 내리던 그날우리는 미리내 김대건 신부님 묘소를 참배갔습니다.  주님만을 사랑하겠다는 고백과 함께 사제의 서원을  봉헌했습니다그리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고백을 드렸고, 주님께서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시던 당부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께 드린 서원을 반석위에 새기고 날마다 부족함을 성찰하면서 새로운 제사를 바쳐드려야 합니다교우들을 위해 우리 손으로 바치는 미사를 나의 첫 미사처럼마지막 미사처럼단 한번 뿐인 미사처럼 성심으로 봉헌하여야 합니다  


[서원의 봉헌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받아먹어라이는 너희의 죄 사함을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다!” 하시고는 이튼 날 정말로 당신 몸을 십자가로 바치셨습니다성체성사는 상징이나 의미나 관념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산 사람을 하느님의 제단에 바친 어린양의 목숨 자체입니다사제는 그 자신이 세상의 죄를 위해 바치는 속죄의 어린양입니다.


[사제생활에서 광야를 만날 때

  사제 서품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서품을 축하하는 인사에서도 느낄 것입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요 머지않아 광야의 목마름이 나타날 것입니다목은 마르고 타는 갈증은 푸른 풀밭과 물터를 찾아 헤매는 목마른 사슴처럼 방황할 것입니다.

특별히 일이 잘못되었을 때나 성과가 보이지 않을 때 입니다. 사제라는 정체성 혼돈과 시련의 먹구름이 걷히질 않고 위로와 힘이 되어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 텅 빈 신작로 길을 홀로 한없이 걸어가는 고독한 나그네처럼 느껴질 것입니다심지어는 하느님의 존재도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그런 때에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신 일도 사실은 나 처럼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하느님의 아들로 왔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에 처해졌다는 것입니다그렇지만 예수님께는 오로지 보내신 아버지의 뜻만이 전부였고 그래서 자아가 없었기에 실패하신 사명과 죽음의 책임까지도 하느님 아버지의 것이었습니다하느님께서 책임지신 일이 곧 부활입니다.

사제의 일은 자신의 일이 없고 모두 예수님의 일이어야 합니다내게 주어진 사제로서의 사명이 분명 주님께 대한 순명으로 받아들인 일이었다면 일이 잘못되어도 그 책임은 주님께서 친히 지실 몫 입니다그러므로 불평할 일이 있으면 사제직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주님께 불평하십시오  

모세는 하느님께 뽑힌 야훼의 사람이었습니다에집트 탈출에 성공하자 백성들과 함께 기뻐하며 풍악을 울려 찬양을 드렸습니다그런가 하면 사막의 갈증으로 목말라 하던 백성들의 항의를 받을 때에 야훼 하느님께 불평했습니다. “지금 뭐하십니까저들이 나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데요.” 야훼께서는 바위를 쳐 생수를 샘솟게 하여 해결하셨습니다모든 것이 순명으로 이루어집니다.  


[사제직의 완성

  사제생활에 넘어질 수 있지만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목숨 다하는 날까지 완주하십시오사제직의 성공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해 놓았느냐?가 아니라 목숨 다하는 순간까지 완주했느냐에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과는 없었지만 십자가까지 완주하셨고 김대건 신부님도 사제생활 1년 밖에 못하셨지만 순교까지 완주하셨습니다젊은 청춘 새 사제 여러분도 요절을 하건 백발의 노사제로 죽건 굵고 짧게 살건 가늘고 길게 살건 모두 주님의 사제로서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여러분 사랑합니다아멘.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사오리.

당신 백성 앞에 구원의 잔 받들고서 야훼의 이름을 부르리라.”

시편 116 -

지적만족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이 수행목적

$
0
0
스티븐 시걸
티베트 라마승의 환생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액션스타
알랭 베르디에  |  yayavara@yahoo.com

시걸1시걸.jpg
▲ 예불하고 있는 스티븐 시걸. 어린 시절부터 동양철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17세 되던 해 일본에서 거주하며 선불교 명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티베트불교에 깊이 빠져들며 선불교와 티베트불교 그리고 침술에도 상당한 지식을 얻었다.

스티븐 시걸(Steven Seagal, 1951~)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액션 배우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타임 투 킬’ ‘언더시즈’ ‘패트리어트’ 등의 히트작을 비롯해 최근 ‘앱솔루션’ ‘퍼펙트 웨폰’ 등에까지 출연하면서 그는 ‘할리우드 최고의 싸움꾼’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연기뿐 아니라 영화 제작자 혹은 감독, 기타리스트, 무술 지도자, 보안관 등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동양무술 심취해 일본행
선불교·티베트 불교 공부
귀국한 뒤 무술학교 운영
배우로 등극 후 스타반열

1997년 티베트 닝마파의 
페노르 린포체에 의해 
17세기 팔율사원 라마승 
‘충드라그’ 환생자 지명

티베트 어린이지원 사업 
생명 단체 등에서 활동
부처님 가르침 실천하는
이 시대 진정한 ‘영웅’

액션 영화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현란한 액션동작, 그리고 다양한 무술 실력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다는 데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의 숨겨진 진정한 매력은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있다. 특히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와 자선활동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 그의 따스한 인간적 면모도 살필 수 있다. 그럴 때면 그는 영화 속에서의 험악한 격투 장면과는 반대되는 매력을 발산한다.

시걸2리카.jpg
▲ 프랑스 출신 마튜 리카 스님과 함께 한 스티븐 시걸.


언젠가부터 할리우드나 해외 연예가에서 불교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불자라고 말하는 연예인들이 늘고 있다. 달라이라마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종종 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나 방황했던 지난날을 부처님의 말씀으로 극복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 등을 보면 그들의 삶에 있어 불교라는 종교가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다소 험상궂게(?) 생긴 할리우드 최고 액션스타 스티븐 시걸이 티베트불교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위대한 티베트 라마승의 환생자인 ‘툴쿠(Tulku)’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1997년 2월, 스티븐 시걸의 스승이자 티베트에서 가장 오래된 종파인 닝마(Nyigma)파의 최고 스승인 페노르 린포체(Penor Rinpoche)는 17세기 티베트 동부 팔율(Palyul) 사원의 도제였던 충드라그 도제(Chungdrag Dodge)의 환생자로 스티븐 시걸을 지목했다. 사실 당시 이 같은 지명에 대해 티베트불교계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스티븐 시걸이 미국의 CIA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루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가 출연하는 영화마다 보여주었던 거친 액션과 폭력적인 모습 등이 수행자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가르쳐왔던 페노르 린포체는 스티븐 시걸에게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큰 장점과 잠재력을 확인하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시걸3시걸.jpg
▲ 태국 사원에 방문해 예불하고 있는 스티븐 시걸.


사실 스티븐 시걸이 툴쿠로 지명된 것에 대한 논란은 액션스타에 대한 많은 편견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스티븐 시걸이 갖고 있었던 불교에 대한 열정과 진심을 접하고 나서부터는 그가 왜 툴쿠로 선택될 수 있었는지가 쉽게 이해된다. 

액션스타인 동시에 티베트 충드라그 도제인 스티븐 시걸은 티베트 동부에 게곤 곰파(Gegon Gompa)라는 작은 사원을 세웠다. 비록 지금은 승려들이 거주하고 있진 않지만 이 사원에는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보유한 불화들이 다수 소장돼 있어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게곤 곰파 사원이 이렇게 훌륭한 불화들을 소장할 수 있었던 데는 불화에 대한 스티븐 시걸의 열정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불화를 동서남북으로 찾으러 다녔고, 수집된 불화들을 모두 게곤 곰파 사원에 봉안했다. 실제로 스티븐 시걸은 8세기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에 의해 숨겨졌던 보물들과 그의 가르침을 담은 서적들을 발굴하기도 했다고 한다. 페노르 린포체에 의해 툴쿠로 임명된 후 스티븐 시걸은 인도의 다람살라를 방문해서 불교교리에 관한 강연을 열기도 하였다. 

1951년 미국 미시건주에서 태어난 스티븐 시걸은 7살이 되던 해 가라테와 같은 동양의 무술과 격투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합기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합기도를 배우며 무술뿐만 아니라 동양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 때문에 그는 17세 되던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했다. 

시걸4페노르.jpg
▲ 닝마파의 최고 스승인 페노르 린포체(가운데)는 1997년 스티븐 시걸을 17세기 티베트 동부 팔율 사원의 도제였던 충드라그 도제의 환생자로 지목했다.


일본에서 삶을 시작한 스티븐 시걸은 그곳에서 불교에 심취했고 스님들로부터 선수행을 배우기 시작했다. 선과 부처님의 말씀을 함께 공부한 그는 일본 전역의 사원들을 차례로 방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생에서 정신적인 훈련과 육체적 훈련을 함께 하는 것이 자아 발전에 큰 도움을 준다고 믿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일상에서 무술과 명상을 함께하길 게을리 하지 않았고 아침저녁으로 두 시간씩 명상과 수행을 거르지 않았다. 

선불교에 심취했던 그는 어느 날 티베트불교에 관한 서적을 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티베트불교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침술을 공부해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티베트 라마승들이 아플 때면 침을 놓아주기도 했다. 티베트불교에 심취한 그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티베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티베트 승려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쌓아갔다. 그리고 합기도 명인의 자격을 취득한 그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그는 선불교와 티베트불교, 그리고 침술에도 상당한 지식을 얻었다. 

스티븐 시걸은 1987년 캘리포니아 주에 자신이 직접 무술학교를 설립하고 합기도를 비롯한 동양 무술과 격투기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곳에서 무술을 배우던 다수의 수강생들은 할리우드에서 명망 높은 영화 제작자들이었다. 그가 영화계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시 수강생 중 한명이었던 마이크 오비츠(Mike Ovitz)는 193cm에 달하는 큰 키와 건장한 몸매 그리고 화려한 이목구비와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춘 스티븐 시걸을 눈 여겨봤고, 그를 액션영화에 캐스팅했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경력은 수많은 액션 영화 등을 거듭해가며 그를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액션 스타로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할리우드에서 출연료가 가장 높은 연기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시골5페노르.jpg
▲ 페노르 린포체는 스티븐 시걸에게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큰 장점과 잠재력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가 환생자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내가 티베트 툴쿠인지 아닌지를 자주 묻는다. 그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우리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보다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세상을 더욱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고통 받는 자들이 있다면 그 고통을 함께 하고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노력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부처님께선 인류 모두를 품어 안으셨고, 나는 부처님 말씀을 통해 세상의 많은 이들의 마음에 따스함과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스티븐 시걸의 첫 스승이었던 디르고 키엔체 린포체(Dirgo Khyentse Rin poche)는 금강승 탄트라 불교라고도 불리는 바즈라야나(Vajrayana) 종파의 스님이었는데, 1987년부터 1991년까지 닝마 종파를 이끄는 대표가 되었다. 

스티븐 시걸은 스승에게서 “젊었을 때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 자신만의 지적 욕망과 영적인 완벽함을 이루기 위한 것이지 이러한 부처님 말씀에 대한 공부와 실천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편의와 이익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이런 착각을 극도의 무지함이라고 간주하고 그 때 이후 언제나 자신의 불교 활동은 자신만의 지적인 만족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행복과 편안함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낸다고 한다. 

현재 스티븐 시걸은 티베트의 가난하고 아픈 아이들을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동물을 인도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PETA)’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멤버로도 유명한 그는 모피 코트를 제작하기 위한 모피 거래를 막는 데 앞장서고 있다. 동시에 미국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인디언들의 빼앗긴 권리들을 찾는 데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가 등장하는 액션영화들 속에서 그의 모습을 보면 그는 언제나 힘없는 사람 편에 서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하는 히어로로 등장한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실제 모습일지도 모른다. 티베트 툴쿠라는 존칭을 뒤로 감춘 그는 세계 곳곳에서 부처님 말씀대로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손을 내밀고, 마음이 아픈 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일 지도 모르겠다.  

알랭 베르디에 저널리스트 yayavara@yahoo.com

<법보신문>(http://www.beopbo.com/)에 실린 글입니다.

오래된 관계에 대한 강박

$
0
0


한국에서는 관계를 오래 맺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친구는 오래 묵힐수록 좋다는 말이 있지만 오래 묵힐수록 독이 되는 관계도 있다. 도중에 분명히 썩어가는데 과감히 잘라내지 못했을 때이다.


소개팅을 해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최소 세 번은 만나봐야 한다고 하질 않나, 연애를 해도 계절을 한 번씩 겪어야 한다며 1년은 사귀어야 헤프지 않게 연애했다고 간주하질 않나, 어렸을 적 혹은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관계를 성인이 되어서도 잘 관리하면 인간성이 좋은 것처럼 생각한다.


왜 한 번 만나봐도 괴로운 사람을 두 번씩이나 더 만나서 스스로를 고문해야 하며, 왜 3개월 미만으로 끝나버린 연애에 대해선 죄책감을 느껴야 하며, 왜 공통의 관심사도 없는 옛날 친구들과의 모임에 억지로 나가야 할까.


이 모든 것은 강박이다.


<태도에 관하여>(임경선 지음, 한겨레출판) 중에서

 

서툰 채식주의자

$
0
0




서툰 채식주의자


홍승희/ 예술가

한겨레 오피니언면 <2030 잠금해제 >


채식줄임.jpg


“그럼 뭘 먹고 살아요?” “치킨도 삼겹살도 못 먹어요? 어쩜.”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요.” “채식주의자 처음 봐요. 멋있어요.”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하면 대개 돌아오는 반응이다. 궁금하다. 고기를 안 먹는 게 어려운 일일까. 나는 채식이 쉬워서 한다. 고기를 안 먹으면 되니까. 채식은 대단한 일도, 유별난 것도 아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한 끼 이상은 고기를 먹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허기진 마음과 몸을 달래려고 순대국밥에 들어간 돼지의 내장을 먹었다. 사람들과 도란도란 모여서 닭 뼈를 뜯고 돼지 살점을 굽던 추억은 얼마나 많은지. 목에 달라붙는 텁텁한 고기 기름은 술로 소독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삼겹살과 소주, 치킨과 맥주로 심심하고 힘겨운 밤을 버텨왔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육식 사회에서 고기를 거부하기 힘든 순간도 많다. 해산물도 먹지 않으려고 했지만 가끔 구운 연어를 먹기도 하고, 사람들과 함께 들어간 고깃집에서 고깃국을 마시기도 했다. 고기 대신 밀가루를 많이 먹게 되어서 채식주의자라기보다 채소 먹는 밀가루중독자다. 요즘은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밀가루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다. 고구마, 양배추, 미역을 삶아 먹거나 카레수프에 채소를 넣어 먹는다. 여러가지 채소로 신기한 야채국을 만들기도 한다. 주변 지인들도 나처럼 서툰 채식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주문한 콩고기(콩으로 만든 고기)를 안주로 바나나막걸리를 만들어 마신다. 콩고기는 맛있고 값도 특별히 비싸지 않다. 고기가 없어도 즐겁고 배부르다. 아니, 고기가 없으니 가볍고 담백하다.


고기를 안 먹는 내게 어떤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야 기운 나고 영양보충이 되지”라고 건강을 염려해주거나 “식물도 고통받는데 식물은 왜 먹어?”라고 논박한다. “채식을 한다고 세상이 변하는 건 아니야”라고 진단해주기도 한다. 고기를 안 먹는 게 별나고 무모한 일이라고 설득하려는 열정이 대단하다. 내가 특이한 게 아니다. 비인간 동물이 고기가 되는 과정을 보면 누구나 (실패로 끝날지언정) 채식을 결심하지 않을까. 공장식 축산과 육류 소비의 진실을 담은 글과 영상도 많다. 한번쯤 관련 영상을 보라고 추천해주면 대부분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한다. “저 그런 거 일부러 안 봐요. 고기를 못 먹게 되니까요!”


육식이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지구에 민폐를 끼치는 인간이다. 지구나 다른 동물이 어찌되든 나는 밥맛을 망치기 싫으니까 아무것도 안 볼 거라고 말하는 명랑한 목소리가 서늘하게 느껴진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단지 이 세상에 역병과 희생자가 존재하며, 우리는 힘닿는 한 역병과 힘을 합치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는 점입니다”라고 카뮈는 썼다. 인간에게 조류독감, 구제역, 광우병 ‘역병’은 뉴스지만, 비인간 동물에게 역병은 일상이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이 아우슈비츠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종에 속한 나는 유혹을 느낀다. 인간과 한 패거리가 되어 죽은 그들의 몸을 뜯어먹어도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으니까.


나는 내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비겁하고 잔혹하기 쉬운 인간동물인지 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폭력에 힘을 보태지 않으려고 고기를 안 먹는다. 서툴러도 나는 채식주의자이고 싶다. 조금이라도 내 존재가 덜 가해할 수 있도록.



비 그리고 아픈 손가락

$
0
0


비 그리고 아픈 손가락 


<법보신문> 한명철/농부 


원래는 오늘이 콘크리트 타설하는 날이었습니다. 새벽에 현장에 갔더니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의아했습니다. 보통은 타설 인부 열 두엇 명에 콘크리트 펌프카가 위치를 잡고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더군요. 뭔가 현장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침조회를 들어보니 건물 보 거푸집이 설계도면과 차이 나게 짜진 것이더군요. 타설은 취소되었고 철근공들의 항의가 거셌습니다.


서둘러 내려가 거푸집을 지탱하던 서포트와 지지대를 치워야 했습니다. 그래야 보 거푸집을 뜯고 다시 붙일 수 있거든요. 얼마 지나지 않아 눈발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춥고 바람이 심상치 않은 날씨였습니다. 이윽고 눈은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고 현장은 점점 젖어들었습니다. 콘크리트 타설을 하려고 상판을 덮어버려 작업장 안은 어두웠습니다. 건물 높이가 높은데다가 조명을 켜도 그림자가 져서 잘 안보이는 상황에서 바삐 움직여야 했습니다.


고친 보 거푸집을 다시 설치하고 서포트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단단하게 고정하려다가 제 왼손 검지를 망치로 때려버렸습니다. 서포트에 묻은 빗물과 녹을 방지하려고 칠해 놓은 기름이 장갑에 잔뜩 묻어 있었던 것이었죠. 손이 차가운 상태에서 망치에 맞은 손가락은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그것 자체입니다.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저를 부르는 사람들과 자재들과 일들로 인해 왼손검지의 아픔은 그저 끄어억! 비명 한마디를 외치는 것으로 나에게서조차도 위로받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일은 촉박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잊고 있었던 기억이 번쩍였습니다.

 

아픈손가락2.jpg


저는 자취시절이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 3때까지 신문배달을 했었습니다. 학업 이전에 생존하려면 돈이 필요했으니까요. 학교를 다니면서 새벽에 할 수 있는 일은 1998년 당시에는 신문배달 뿐이었습니다. 우유배달은 학생을 받아주지 않거든요. 새벽 5시에 자전거를 끌고 보급소에 가서 세 종류의 신문을 받아옵니다. 자전거에 달 수 있는 바구니가 최대 3개뿐이니까요. 


아침 7시 반 정도까지는 어떻게든 배달을 마쳐야 됩니다. 그래야 중학생이던 동생의 점심 도시락을 싸주고 저도 학교 갈 시간을 확보할 수 있거든요. 그러려면 처음 소장님께서 배달할 집과 상가들을 알려주실 때 정신 바짝 차려서 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 배달하거나 빼먹는 경우를 줄여야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까요. 그 다음엔 최대한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배달해야 합니다. 자전거를 탄 채로 손목스냅을 이용하여 신문을 정확히 던져 문이나 샷따 밑으로 쏙 들어가게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새벽에 빗소리가 들리면요...... 하아~~~~저는 미칩니다. 신문이 젖지 않도록 비닐을 씌워서 배달해야 하거든요. 문제는 싸는 데만 시간이 드는 게 아닙니다. 신문을 말아 비닐을 씌우니까 뭉뚝해져서 던질 수 없으므로 일일이 자전거에서 내려 배달해야 하거든요. 이런 날은 평소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몸도 너무 힘듭니다. 우비를 입었던 몸이 땀으로 흠뻑 젖으니까요. 자취집에 와서 우비를 벗으면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납니다. 그런 날은 아침에 등교를 하여 책상에 앉는 것까지가 하루의 1차 목표가 됩니다.


아침밥은 늘 굶는데다가 너무 피곤해서 오전 수업시간엔 정말 잠을 잡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느라 못들은 수업내용을 밤에 공부하다보면 자정을 넘기게 되지요. 그렇게 피곤은 다시 새벽으로 대물림됩니다. 그러던 고3 1학기말 즈음, 장마로 연일 비가오자 새벽에 일어나질 못해버렸습니다. 피곤이 겹치고 겹치다보니 알람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더군요. 다음엔 안 그래야지 하고 다시 각오를 하였으나 이번엔 늦잠을 자버렸습니다. 부리나케 움직이고 서둘러 신문을 돌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미끄러져 자전거를 탄 채로 넘어졌습니다.


아아아~~~~~여름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제멋대로 뒤엉켜 나뒹구는 신문들이 길 위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내 몸의 아픔보다 저것들을 다시 자전거에 담아 일을 마쳐야 집에 가서 동생 도시락을 싸고, 학교에 가야하는 하루를 산다는 사실이 잔인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하는지 울분이 올라와 눈물을 꺼억꺼억 가슴으로 삼키는 동안, 다친 나의 왼쪽에서 유독 왼손 검지가 너무 쓰리고 아팠습니다. 손톱이 벌어져 빗물이 들어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신문을 주워 담기 위해, 배달을 마치기 위해 왼손 검지는 나에게서조차 위로받지 못한 채 지나쳐 버렸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여름 장마를 끝으로 신문배달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겨울을 나게 자취집 연탄만은 꼬옥 마련해주시라고........) 

 

아픈손가락1.jpg


참 이상한 것은 그 후로도 유독 왼손 검지가 다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칼과 낫에 베인 것은 부지기수이며 핸드 그라인더에 다치고, 망치에 맞아 멍들고, 뜨거운 것에 데고, 차 문짝에 끼여 손톱이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왼손 검지가 아픕니다. 이번엔 아픈 왼손 검지를 위해 오후일은 접고 집에 왔습니다. 따뜻한 물로 샤와를 하고 잠시 눕습니다. 그리고 왼손 검지만을 아끼며 떠올리며 글을 씁니다. 이제야 왼손 검지를 위로합니다. 나의 오른손이 한 일이니 용서를 바란다고.


여전히 창문 너머로 낙숫물 소리가 들립니다. 비가 내리는 중이지요. 문득 비오는 오늘 당신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이천십칠년 이월 스물 두쨋날, 비내리는 오후 한명철 쓰다-

 
 *이 글은 불교포커스에 실린 것입니다.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77142




혜민스님 책 영문판 돌풍

$
0
0

혜민스님 영미판 출간 베스트셀로


혜민책 미국-.jpg혜민책 영국-.jpg


국내 장기베스트셀러로 300만부가 팔린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세계 최대출판그룹 ‘펭귄’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영국판이 출간된 23일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27일 현재 종합베스트셀러 5위에 랭크돼 있다. 또 미국판은 판매 2주만에 3만부를 돌파했다. 이 책은 이미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등 26개국에서 판권 계약이 왼료됐다. 영문판 번역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번역한 김지영씨가 맡았다.

 혜민 스님은 펭귄출판사의 초청으로 미국 언론사 및 독자와의 만남을 2주간 갖고 최근 귀국한데 이어 3월에는 영국을 방문해 <비비시>를 비롯한 매스컴과 인터뷰와 강연이 예정돼 있다.  


“고해 중생 도울 수 있다면  천생 만생인들 아깝겠나”

$
0
0
한국불교 대표적 선승 봉암사 적명 스님

“불법대로만 살자”며
성철·청담 스님 등 결사한 지 70돌

그 절, 조실 자리도 존칭도 거부
그냥 선승을 일컫는 ‘수좌’로

왜 대중들을 멀리하느냐는 우문에
“법력 없는 게 문제지 어디 있든…”

깨달았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엔
“확인할 길도, 의미도 없다”면서도

“지혜는 행동으로 표현되고
인품도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

돈오돈수-돈오점수 깨달음 논쟁
‘은사’뻘인 성철 스님과 대비

“막 금광에서 캐낸 금도 금이지만
단련하고 또 단련해서 순금 되는 것”


적명스님2-.jpg

희양산 봉암사는 경북 문경 가은읍 원북리 깊고 깊은 산골에 있다. 신라시대부터 수행처가 되지 않았으면 양산박 같은 도적의 소굴이 되었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기가 세다는 곳이다. 해방 뒤 1947년 성철, 청담, 자운, 월산, 혜암, 성수, 법전 스님 등이 ‘불법대로만 살자’는 수행정진의 맹약 모임체인 ‘결사’를 한 곳이다. 조계종이 선을 종지로 삼도록 한 핵심 사찰인 셈이다. 따라서 봉암사는 조계종 유일한 종립특별수도원으로 지정돼 연중 산문을 폐쇄하고 1백여명의 선승들이 참선하며, ‘부처님 오신날’ 하루만 일반인들에게 개방된다.  올해는 ‘결사 70돌’이다.
 봉암사처럼 선승들이 모인 선방을 이끄는 정신적 스승을 ‘조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봉암사엔 조실이 없다. ‘도’란 종정이니 방장이니 조실이니 하는 그런 허명에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인가. 9년 전 봉암사 선승들이 적명 스님을 조실로 모셨지만, ‘나는 그럴 위치에 있지 않다’며 자리도 존칭도 거부했다. 그래서 그는 사실상 조실 구실을 하고 있지만, 그냥 선승을 일컫는 ‘수좌’로 불린다.
 그 ‘수좌’ 적명스님(78)을 만났다. 적명 스님은 세속적 명리를 거부한채 평생 토굴과 암자에서 수행정진해온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승 중 한명으로 꼽힌다. 적명 스님이 일간지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적명스님3-.jpg

 “법문하는 중 그리 많은데 나까지…”
 적명 스님에게 먼저 ‘왜 조실에도 안 오르고, 대중들을 멀리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지 여기서도 법문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중 포교하고 법문하는 중이 그리 많은데 나까지 나설 게 있느냐”고 답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컴퓨터와 모바일로) 천리만리 밖에서도 다 들을 수 있으니, 나가고 나가지 않는 게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법력이 없어 문제지 법력만 있으면 어디 가 있든 무슨 대수겠느냐는 것이다.
 그가 ‘말과 행’을 언급했으니,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말로는 스승으로부터 견성(깨달음)을 인가받았다고도 하는 이들도 집착과 욕심에서 자유롭지 않고 행동으로 본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무엇을 보고 깨달았는지 여부를 알 수가 있겠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는 “알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본인도 입증이 어려운데, 타인이 어떻게 겉모습을 보고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답답할 세인들에 대한 방편법문을 잊지 않았다.
 “지견이나 지혜는 행동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인품도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적명스님4-.jpg

 그러나 그는 “진정한 깨달음을 성취했는지, 거기에 몇 밀리가 부족한지는 확인할 길도 없고, 의미도 없다”고 말했다. 그런 ‘깨달음 논쟁’을 고타마 붓다가 ‘쓸데없는 논쟁’으로 치부한 희론쯤으로 내친 것이다. 이 점에서 ‘돈오돈수(한번 깨달으면 더 이상 닦을 필요가 없음)-돈오점수(깨달은 후에 더 닦아가야 함)’라는 깨달음(돈-점) 논쟁으로 일세를 풍미한 성철 스님과 그는 대비된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선가에서 ‘은사’뻘인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가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성철 스님도 돈오점수를 부인한 건 아니다. 보조 스님도 돈오돈수도 인정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드문 경우로 상근기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불경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화엄경>에 나오는 ‘십신, 십주, 십행, 십회양, 십지, 등각, 묘각 등’의 단계를 가리키며, “막 금광에서 캐낸 금도 금인 것은 맞지만, 이를 단련하고 또 단련해서 순금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교적으로 보면 금을 캐는 것(깨달음)보다 제련하는 데 더 많은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승들-.jpg» 동안거를 마친 봉암사의 선승들.

 화두 수행이 최선의 길’ 소신
 그는 오래전 토굴에 머물 때 프랑스 비구니가 와서 ‘그렇게 수행만 하는 것은 인생 허비 아니냐’고 물었을 때 한 “왜 길고 큰 살림을 금생(이번 생)의 살림으로만 한정하느냐”고 답했다며 내용을 들려주었다.
 “성불해서 중생을 도울 지혜만 갖출 수 있게 된다면 천생 만생을 들이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다. 그때도 애타게 기다리는 고해 중생들이 있을 것이다. 남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다면 무엇이 아깝겠느냐.”
 그는 산중에만 은거하면서도 세계적인 명상지도자인 아잔 브람이 봉암사에 와 청한 대담에 응할 만큼 ‘열린 선승’이다. 그런데도 ‘간화(화두)선’ 수행이 최선의 길이라는 소신이 확고하다. 이는 자신의 수행 체험에서 기인한다.
 제주 출신인 그는 20살에 ‘천진도인’으로 알려진 우화 스님에게 전남 나주 다보사로 출가했다. 그는 20대 초반 한 수행승의 지도로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며 관(觀)하는 수행을 했다. 훗날 대승경전인 <능엄경>에서 ‘수행 과정에 나타나는 마장들’이 당시 관수행 때의 체험과 너무나 유사해 놀랐다고 한다. 그는 “관수행을 통해 천상 천하 극락 지옥을 모두 생시보다 더 생생하게 보고, 굉장한 희열감에 사로잡힌 체험의 자부심 때문에 범어사 동산 스님이나 통도사 경봉 스님 등 선지식들이 ‘그런 수행은 돌아가는 길이니, 화두선을 해야 한다’고 해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25살 때 토굴에서 정진할 당시 다 낡은 <법화경>과 보조국사의 <절요>가 손에 들어왔다.
 “몇 권은 사라지고 조각조각 남은 <법화경>을 눈물 흘리며 감동으로 읽었다. <절요>는 앞뒤 몇 장도 떨어져 나갔는데 모두 한자인데 토도 안 달리고 띄어쓰기도 안 돼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배운 한문 실력으로 옥편을 찾아가며 3번을 읽었더니, 어느 정도 뜻이 들어왔다. 그 마지막에 ‘수행을 하려면 모름지기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는 글을 보고, ‘무(無)자’ 화두를 들기 시작했다.”

적명스님과 조현-.jpg» 적명스님과 조현기자.

 “100년 뒤 그리워할 대통령 뽑아야”
 그는 “이미 깨달음의 길에 들어섰다면, 물속에 떨어진 돌과 같이 끊임없이 한곳을 향해 갈 것이기 때문에, 깨달음에 목맬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선승들에게 ‘봉암사에 3년만 살면 이마에 수좌라는 도장을 찍어주마’라고 말하곤 했다. 10분, 20분이라도 화두 일념이 순일해지는 체험을 하게 되면, 그 뒤부터는 어느 곳을 가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결코 향상하는 일로매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표현이다.
 그는 “수행의 궁극은 일체 중생과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 욕망이 줄면 타인과 만생명과도 하나가 되어 행복해진다”며 “그런데 내 자식 가족에겐 그러면서 문 밖만 나가면 왜 그렇지 못하냐”고 물었다.
 그는 “바깥세상을 차단한 채 수행에만 집중하는 것이 중생의 고통에 무관심하라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깨달은 이는 세상을 영화처럼 여기기에 자유롭지만, 중생의 고통에도 그래선 안된다. 가령 타인이 악몽 속에서 강도를 만나 칼에 찔리고 죽어가며 고통에 신음할 때 ‘저건 현실이 아니다’고 내버려둬야하느냐. 빨리 깨워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지않겠는가. 부처님도 중생의 고통은 환(헛것)일뿐이라고 하지않고 평생 구제하며 살지않았느냐”
 그는 현재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중생이 무지한 것은 탐욕이 행복의 길이라고 믿는 것”이라며 “행복이란 욕심을 줄여 남을 돕고 배려하고 존중할 때 스며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선에 대해 “눈앞에것만 집착하면 잘 볼 수 없으므로 10년뒤 100년뒤를 생각하며 그때 그리워할만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봉암사1-.jpg» 희양산 아래 봉암사 전경.
 
 보기 따라 바위산-흙산, 그래도 희양산
 그의 방을 나서니 희양산이 우뚝하다. 장날 괴산 사람들과 가은 사람들이 희양산의 생김새를 놓고 바위산이니 흙산이니 하고 다툰다는 그 산이다. 희양산은 가은에서 보면 바위산이지만 괴산에서 보면 영락없는 흙산이다. 관점도 시비도 여럿이지만 근본은 하나다.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때 7세기 지증 대사가 창건했다. 봉암산문을 나서니 적명 스님이 들려준 지증 대사의 선어가 귓전을 울린다.
 산문을 나서지 않던 지증 대사는 왕이 수차례나 청하자 도성에 갔으나 하룻밤만을 머물고 돌아와버렸다. 그 밤 도성의 호수에 비친 달을 보며 대사는 단 한마디만으로 이심전심의 무차별 경계를 내보였다.
 “시즉시 여무언(是卽是 餘無言: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문경/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나의 인간관계 정리규칙

$
0
0


나이가 들수록 가만히 있어도 삶의 무게는 무거워지니 가급적 많은 것들을 단순화시키고 깃털처럼 가볍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방식에 여분의 군더더기가 없을수록 자유롭다. 특히 그중에도 인간관계가 자유로워야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맨 먼저 할 일은 '나는 누구로부터 사랑받고 싶은가, 나는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를 가려내는 일인 것 같다. 자칫 편협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것으로 '내가 있어야 할 장소'나 '내가 가지고 가야 할 인간관계'를 우선적으로 챙긴다. 밀물과 썰물을 거쳐 여전히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지금의 '내 사람들'인 것이다.


<태도에 관하여>(임경선 지음, 한겨레출판) 중에서

 

이웃종교 배려한 죄로 파면된 손원영교수

$
0
0

손원영교수-.jpg


선승들이 겨울집중참선 동안거를 끝낸 강원도 인제 백담사에 최근 갔을 때다. 밖에서 자물쇠를 잠그고 3개월간 두문불출한채 수행하고 나온 한산사 주지 월암 스님과 일지암 주지 법인 스님과 만남에서 다종교가 화제로 올랐다. 이들은 “타이완 자재공덕회 성엄 스님은 자연재해로 파괴된 교회와 성당과 이슬람사원까지 지어줬다”며 “그런 자비가 종교의 본모습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이 말한 본모습을 보이며 화답한 이가 개신교에도 있었다. 서울기독대학 손원영 교수(51)다. 그는 지난해 1월 한 개신교도가 경북 김천 개운사 법당에 들어가 불상 등을 훼손한 것으로 알려지자,  에스엔에스에 대신 ‘사과의 글’을 게재하고, 개운사 돕기 모금운동을 벌였다. 그런데 최근 서울기독대학 이사회는 이것이 우상숭배 행위라며 손 교수를 파면했다.

 27일 만난 손 교수는 의외로 표정이 멀쩡하다. 파면은 해임보다 큰벌이다. 파면되면 연금액이 절반으로 줄고, 5년동안은 타대학에서도 교수로 임용될 수 없다.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 한국교회에 하시고 싶은 일이 계시는 모양”이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가 파면된 뒤 에스엔에스에서 학교측 조치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연세대 신학과 동문들 230여명이 파면철회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낸 것도 위로가 됐음직 하다. 지금까지 신학교에서 해직사태가 적지않았지만 연대 동문들이 대거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들은 원로 목사와 신학자들까지 함께한 성명에서 “기독교인에 의한 이웃의 피해를 원상회복시키려 한 손 교수의 행위는 오히려 타종교를 존중하고 성숙한 신앙을 지향하는 기독교인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그 배타성으로 인한 세간의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한 행위로서 오히려 칭찬받을 만하다”고  손 교수를 옹호했다. 손 교수도 “모처럼만에 착한 일 한번 했는데…”라고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개운사 주지스님이 올린 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제 전공이 기독교교육, 종교교육이에요. 기독교는 늘 사랑과 평화의 종교라고 가르치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절이 1억 이상이나 재산피해도 보았다고 하고, 비구니 스님이 정신치료까지 받았다고 하니, 위로하고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

 그래서 에스엔에스를 통해 모금을 했는데, 100여명이 십시일반해 267만원이 걷혔다. 그런데 개운사 주지가 비구스님으로 바뀌고 무슨 내부사정이 있었는지, 절쪽에서 “마음만 받겠다”며 “돈은 종교평화를 위해 쓰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모금한 돈은 종교간 대화를 지향하는 레페스포럼에 기부했다. 레페스포럼은 이 기부로 기독교인 6명과 이웃종교인 6명이 함께모여 가톨릭 시튼수도원에서 1박2일간 밤샘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내용은 곧 책으로 출간된다. 

 이웃종교에 대한 배타성에 대한 우려는 그의 현장 목회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그는 1999년 서울기독대학에 부임한 바로 그해 학교 내에 대학교회를 개척해 다른 목사와 함께 공동목회를 했다.

 “실제 교회를 개척해보면 새 신자 한명 모시기가 굉장히 힘들다. 다니던 교인들마저 교회 이미지가 안좋아지면 떠나는 판국이다. 떠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교회가 이웃종교에 대해 너무 배타적이고, 폭력적이고, 언행이 불일치한데 대해 실망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랑과 평화의 종교다운 실천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했다. 개운사 돕기도 그런 취지에서 한 것이다.”

 그런데도 학교 이사회는 신학토론회 한 번 없이 경고나 감봉도 아닌 최고 중벌인 파면조치를 내린 것일까. 연세대 신학과 동문회가 “학문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의 헌법적 가치는 국민의 존엄한 기본권”이라며 “더구나 만약 손 교수의 학문적 태도가 서울기독대학교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면 그가 지난 23년간 교수직을 수행하며 교무연구처장, 신학전문대학원장, 교수협의회 회장 등의 보직을 맡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만하다.

 파면의 표면적인 이유는 개운사건이지만 내막은 따로 있다는 게 손 교수의 생각이다. 지난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서울기독대학은 이(E) 등급을 맞아 퇴출 대상이 되자, 80년 역사상 최초로 교직원들과 동문들까지 나서 ‘총장 사퇴’를 요구하고, 70%의 학생들이 자퇴서를 쓰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때 학생들 편에선 교수대표와 교무처장 등이 모두 사실상 ‘해임’됐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 총장의 주도로 사들인 학교부지가 각종 규제로 묶여 사용이 어렵게 돼 교육부가 환수 조치하라고 한 50억원이 환수가 안된게 퇴출학교 지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는데, 손 교수는 그 건으로 총장과 갈등을 빚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서울기독대학에서는 손 교수가 파면된 것 말고도 1명은 해임되고, 4명은 재임용이 거부됐다고 한다. 손 교수는 이런 조치들이 학내 사태에서 총장에 밉보인 결과라고 보고 있다.  

  손 교수는 “앞으로 복직을 위한 지난한 소송이 기다리고 있지만, 종교개혁 500돌인 올해 한국기독교가 본질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대학 재단인 ‘그리스도교회협의회’가 예수정신으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을 주창하며 출범했는데, 자신의 시련이 환원운동의 조그만 초석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는 또 “대학 후배이기도 한 대학생 아들이 아빠가 누구보다 자랑스럽다고 말해줘 용기가 난다”며 다시 한번 웃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아이들도 죽음을 안다

$
0
0



엄마나 아빠를 잃은 아이

안다, 다만 모른 척할 뿐


슬픈아이1.jpg


내가 속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는 1965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최초로 호스피스의 개념을 도입하고 강릉의 갈바리의원과 포천의 모현센터의원, 서울에 있는 모현가정호스피스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을 돕고 있다. 죽음은 죽는 자의 것만이 아니라 남겨진 자들이 평생 안고 가야 할 슬픔과 고통이기에 1990년부터는 사별가족 돌봄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배우자와 사별을 한 이들의 모임인 ‘샘터’,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의 모임 ‘피에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모임인 ‘옹달샘’도 있다. 그런데 요즘 가장 관심이 가는 게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의 슬픔이다.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아빠를 잃은 아이들에게 모든 어른들은 그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충격을 받는다고, 크면 모든 걸 이해하게 된다고,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금방 잊을 거라고, 아빠는 급하게 외국 지사 발령을 받아서 떠났다고 말한다.


초등학생인 그 아이들은 정말 그것을 모를까? 1년 반이 지난 뒤 ‘옹달샘’을 통해 아이들의 사별·상실·슬픔을 다루었을 때 그 아이는 ‘다 알고 있었어요. 나도 아빠가 어디에 묻혔는지 알고 싶고 실컷 울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아이는 엄마를 위해 계속 모르는 척 연극을 해야 했기에 한번 실컷 울어 보지도 못한 것이다.


어느 가족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 2년 동안 아무도 아이에게 엄마의 사망을 알리지 않았다. 아빠에게 물어보면 어두운 얼굴로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쾅 닫아버리고, 할머니에게 물어보면 그저 울기만 했다. 고등학생 누나에게 물어보면 누나는 성질을 내면서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6살짜리 그 아이는 ‘아, 엄마에 대한 것을 물어보면 안 되는구나’라고 스스로 포기하면서 자랐다. 어른들은 우리 아이가 모든 것을 다 잊고 잘 자란다고 믿고 있었다. ‘옹달샘’에서 이 아이는 검은 바다를 그린 후에 ‘아기 공룡이 바다에 빠져 있어요. 엄마 공룡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도와줄 거예요’라며 찰흙으로 큰 칼 하나를 만들고는 ‘누가 엄마를 잡으러 오면 이 칼로 찔러 죽일 거예요’라고 하면서 울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살려내라는 것이 아니고 ‘엄마 아빠 나도 아파요. 나도 슬퍼요. 나도 알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죽음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기억을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새엄마, 새아빠, 비싼 장난감, 맛난 것, 과한 용돈, 무제한의 게임을 제공하면서 사별의 기억을 억지로 잊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손영순 까리따스 수녀(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Viewing all 3077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