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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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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서 1박2일 나를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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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공장 독방



하룻밤만이라도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없이 나만의 독방에서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꼭 사찰의 무문관이나 가톨릭 봉쇄수도원을 들어갈 수 없는 일반인들도 1박2일 동안 이런 체험을 해볼 수 있게 됐다. (사)행복공장의 ‘릴레이 성찰’을 통해서다. 행복공장은 오는 5일부터 5월말까지 12주동안 매주말 토~일요일 1박2일간 강원도 홍천수련원에서 20시간을 독방에서 온전히 자신만을 마주하는 성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입소해 일요일 오전 11시에 퇴소하는 일정이다. 


매번 20여명씩이 참여한다. 이미 영화배우 박중훈, 임순례 영화감독, 노종면 전와이티엔 앵커,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대표, 호인수 신부, 금강 스님,  김은녕 목사 등이 1.5평 독방 입소를 예약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행복공장의 권용석 이사장(54)·노지향 상임이사(56) 부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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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향, 권용석 부부


부부가 성찰릴레이를 생각해낸 것은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리더들의 잇따른 실족을 보면서다. 

“자기 스스로 독방에 들어가 성찰했다면, 실제 감옥에 갈일은 줄어들텐데요.”


권이사장이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성찰해보자고 하니, 탄핵에 힘을 모아야할 때 왜 시선을 내부로 돌리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나라가 이 지경이 되고도 이를 극복하는데 힘을 모으기보다는 막말과 가시 돋힌 말, 분노만을 내뱉고, 야당 안에서도 조차 ‘나는 옳고 너는 다 그르다’는 진영 논리만이 팽배해 정권이 바뀌어도 사회의 갈등으로 계속 힘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번이라도 고요하게 머물러 자신의 미움과 분노 상대방의 마음을 함께 들여다봄으로써 상대방 얘기를 잘 듣고 좀 더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부인 노지향씨는 체험의 의미를 더 섬세하게 덧붙였다. 그는 “수련원 독방엔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작은방에 홀로 머물지 못하기 때문이다’는 파스칼의 글귀가 붙어있다”면서 “‘지금까지 네가 잘못했으니 하룻동안 감옥에 들어가 반성을 해보라’는 게 아니라 쉼과 건강, 경청을 통해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하루의 고요를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에서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다른 참가자들에게 피해를 주지않은 선에서 산책을 허락키로 한 것도 ‘성찰’이 벌이 아니라 선물로 다가서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다만 성찰을 위해 휴대폰이나 책을 갖고 들어가는 것은 금한다. 너무 피곤한 사람은 잠을 자거나 멍때리기를 해도 좋고, 명상이나 절을 할 수도 있다. 또 독방에 비치된 행복공장의 워크북에 따라 자기 인생그래프를 그려보거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불행했던 순간을 떠올려보거나, 1년 밖에 못산다면 하고 싶은 일을 적어보거나, 80살이라고 가정하고 지금의 내게 보내는 편지를 써볼 수도 있다. 이번 성찰 프로젝트 첫회 숙식비는 권이사장이 근무하는 법무법인대륙아주에서 지원한다. 이후엔 참가자들이 다음주 참가자들을 위해 5만원씩 기부해주어 성찰 기회를 주도록 권하고 있다. 


권이사장은 검사 출신 변호사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검사를 했다. 그는 지난 2013년 전재산을 털다시피해 28개의 독방이 있는 홍천수련원을 지었다. 왜 그랬을까.


그는 공안기획 검사시절엔 오전9시부터 오후 7시까지는 공안기획 업무를 하고, 저녁엔 형사사건을 처리했다고 한다. 월 300건의 형사사건을 맡아 늘 새벽1시에 퇴근했다는 것이다. 매주 100시간씩 근무한 일량과 스트레스로 술 담배도 달고 살았다고 한다. 
“급기야 급성 위궤양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검사를 그만두지도 술담배를 끊지 도 못하면서 몸이 망가지니, 제일 그리운게 교도소 독방 감옥이었다. 아프고 지치면 자기 굴에 들어가 스스로 치유하는 동물들처럼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는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하면서 그때 먹은 생각을 행복공장 수련원으로 구체화했다. 


부인 노씨는 연극인이다. ‘연극공간 해’ 대표인 해씨는 즉흥연극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연극의 선구자로 꼽힌다. 하던 일도 줄이고 내적 수도에 더 집중하고싶었던 노씨는 일을 벌이는 걸 처음엔 내켜하지않았다. 그러나 행복공장을 통해 소년원에 가서 치유연극도 하고, 홍천수련원에 오는 이들과도 즉흥연극을 통해 오랜 상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일에 남편보다 더 재미를 붙이고 있다. 음악을 공부하는 외아들도 연극과 수련원 프로그램 스텝으로 참여하고 있다. 온식구가 동참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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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연극 등 부부의 활동 모습


권이사장은 검사시절 혹사 때문인지 3년전 갑상선암 통보를 받았다. 첫수술 뒤 예후가 안좋아 작년까지 2번 수술을 더 받았다. 그 뒤 그는 “할일을 미루기보다는 ‘오늘’을 더 중시하게 됐다”고 했다. 또 과도한 책임감 때문에 남한테만 잘하려고만 했는데, 올해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보자’를 모토로 자기 삶을 챙기는데 좀더 집중해보기로 하자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노씨도 “내가 좀 냉정한 성격인데, 남편이 아픈 이후 안쓰러운 마음에 밤에 들어와 고스톱을 치자고 하면, 피곤하더라도 안자고 함께 ‘맞고’고 친다”며 웃었다. 부부가 자신들부터 성찰한 결과다. 행복공장 (02)60841016, www.happyto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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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공장 시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발길을 멈춰야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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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의 히말라야 트레킹기


1.히말라야에서는 누구나 별이 된다

2.분노와 애욕의 벼랑 끝에 서다

3.사람 한명이 천하절경보다 낫다

4.설산의 화려한 나신보다 반가운 선물


5.발길을 멈춰야 보이는 것들


쿰정4-.jpg» 3천미터대 아름다운 마을 쿰정의 아이 




통증이 만성이 되면 오직 통증을 벗어날 생각밖에 안 든다. 그러나 내가 어디를 가든 통증은 나를 놓치는 법이 없다. 그럴 때는 피하기보다는 또 하나의 통증을 가해주는 것도 때론 대안이 된다. 평소 통증에 시달리던 몸을 산소가 희박한 고산으로 데려간 것은 ‘설상가상’이었다. 그런데 물 밖에 나온 올챙이처럼 숨을 헐떡이는 동안엔 숨쉬는 게 힘든 때문인지 등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고산증은 고통이기보다는 희망이고 희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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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내가 고산 트레킹을 너무 희망적으로만 말한 걸까. 쿰부히말라야를 내려와 카트만두대학에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파견 교수로 있는 임종인 전 의원과 며칠을 보내며 고산 트레킹을 권했다. “고산 트레킹 무경험자도 가능할까”라고 묻는 그에게 “팔십 먹은 할머니도 하더라. 걱정할 거 하나 없다”고 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얼마 뒤 문자가 왔다. “당신 얘기만 듣고 안나푸르나 라운드를 하다가 준비부족으로 생고생을 겪었다”고 했다. ‘포터와 갔는데도 4천~5천대에선 힘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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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만약 나처럼 포터도 없이 갔으면 어쩔 뻔했으랴. 그러니 20~30대 젊은이라면 모를까 가급적 가이드와 포터와 함께 가는 게 좋다. 가이드와 포터 둘 다 고용해도 하루 40~60달러면 된다. 내 경우 별나게 자유인 기질이 강해 훠이훠이 홀로 다니길 좋아하지만 말이다.

 고산증은 폭탄주 20잔을 원샷으로 마시고 밤새 방바닥을 기었던 초년 기자 시절 고통의 재생이랄까. 그러니 도전은 하되, 무리는 금물이다.

 히말라야에 가보면 애초 생각과 달리 마음이 급해진다. 남이 가는 정상은 가야겠고, 부담은 되니, 숙제를 빨리 마치고 하산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평생 쫓기듯 해온 숙제를 히말라야에 와서까지 해야 한다면 미친 짓이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히말라야에 왔는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휴심할 때라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 눈을 피해 절벽 위로만 다니는 산양들과 20분 넘게 어울려 놀았고, 야크 떼와 놀멍쉬멍 갔다. 하산 때 3천 고지쯤 내려오면 그동안 땀에 찌든 몸도 가려워져 하산할 마음이 더 급해진다. 이때가 바로 큰마음 먹고 한 박자 쉬어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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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정의 모습과 아이들



 3천미터대에서 하산을 멈추고 쿰중이란 곳으로 들어갔다. 설산과 바위로 둘러싸인 3천 고지에 그런 평야와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니. 3일의 꿈이 다디단 곳이었다. 선경은 산 넘고 물 건너가 아니라, 바로 쉼표 뒤에 있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아름답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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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것답고 제값을 하면 아름답다



꽃과나비1.jpg


으레 입에 붙어 쓰는 말인데도 ‘이게 어떻게 생겨났고, 이런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일까?’하고 어원을 따져보는 내 버릇은 아마도 아주 오래된 듯싶다. 공연한 질문으로 할머니, 어머니를 어지간히 성가시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니까. 우물가에 버려진 푸성귀를 헤집는 오리들을 가리키며 “자덜은 꽤엑 꽤엑 허는디 왜 오리라고 헌대요? 꿩은 꾸엉 꾸엉 허고 웅께 꿩이라고 허잖여요”라거나, 다디단 오디를 한입 가득 밀어 넣으며 “어메, 겁나게 다네 잉! 오지게 단게 오디게라고 허까요?”라고 묻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내게 퉁 반, 이뻐 죽겠다는 눈흘김 반을 섞어 피식 웃으시며 말했었다. “쪼깐 것이 머시 그리 궁금헌 게 많다냐? 걍 오리는 오리고 오디는 오디겄지이~!” 마지막 음절을 그리 높고 길게 늘여 빼는 건 더 이상 시답잖은 질문을 사절하겠다는 경고지만 그 약발은 졸지에 떨어지고 만다. 이 나이 들어 지금도 그런 식의 호기심이 발동한다는 것은 재앙일까 아니면 축복일까?


암튼 오늘은 유치원 꼬맹이들도 알 법한 영어 단어 ‘ugly’로 한나절을 꼬박 보냈다. 문득 이게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영어 어원사전에 따르면 ‘무서움, 두려움’을 뜻하는 노르웨이 옛말 ‘ug’에 영어 ‘like’(~와 같은, ~하는 경향이 있는)를 붙여 ‘ug-like’ ‘무서운, 혐오스러운’이 되고 다시 ‘ug-ly’, ‘추한, 험악한’ 등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좀 어수선한데, 줄이면 미운 것은 두려움, 공포심과 연결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사실 그 단순한 영어 단어를 따져보게 된 것은 오래전에 타계하신 은사님의 강의를 회상하면서였다.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아름답다는 게 뭔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달가운 느낌을 주는 것이 아름다운가? 예쁜 형색이나 고운 소리를 아름답다고도 하지만 고운 마음씨, 갸륵하고 칭찬해 마지않을 행위 또한 아름답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이 말은 그렇게 바깥 대상이나 내면의 심성에도, 즉 안팎에 다 쓰이는 거지. 예전에 조지훈 시인이 그러더라고. ‘아름-답다의 아름이 실은 공(公)의 반대인 사(私)를 뜻하는 우리말인데, 아름답다는 건, 그러니까, 그것이 그것답다는 뜻’이라고. 말하자면 꽃이 꽃다울 때, 나비가 나비다울 때 아름답다는 거야.”


지금 와서 조지훈 시인의 온 저작을 훑어 정확한 출처와 그다음 설명을 확인할 생각은 없다. 당연히 꽃다움, 나비다움, 인간다움에서 꽃, 나비,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으로 이어져 머리가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본질? 그러나 더 이상 미학 강의 없이도 우리네 개돼지는 이미 알고 있다. 때와 자리를 어기거나 가리지 않고, 제값을 못 하면 추하고, 혐오스럽고, 무섭다. 누군가 똥이 똥답고, 독사가 독사다운 것도 아름답다고 우겨대도 틀린 건 아니다. 딴은 그렇겠지. 하지만 그럴 때 직관에 능한 우리 어머니 같은 분들은 정말 사납게 눈을 흘기며 외치시겠지. “으이그, 저 모지리, 꼴값허고 자빠졌네!” 


재연 스님(선운사 불학승가대학원장)



독촉과 압박에 넘어가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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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촉과 압박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따라야 할 행동지침이 있다.

심리 조종자에게 답변을 주기 전에 24시간은 당신 혼자 생각해보라. 여기에 결정을 바꿀 수 있는 최종 기한을 6시간 더 둔다. 심리 조종자는 항상 최후의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갑자기 요구를 들이밀고 지금 당장 답을 달라고 조른다. 자기는 그런 식으로 상대를 말도 안 되게 압박하면서 상대가 거절을 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이 압박에 넘어가지 말고 자기 페이스에 맞게 대답을 해야 한다.


"그래, 네가 뭘 요구하는지는 충분히 알았어. 그럼 나도 생각해보고 내일쯤 전화할게."… "다이어리를 보고 일정을 확인해야 해. 어쨌든 웬만하면 내가 같이 가줄게."라든가 "그날은 누구한테 허락을 받아야 해서, 내가 혹시 시간을 뺄 수 있으면 꼭 해줄게."라든가.


시간을 버는 것이 핵심이다. 냉정하게 검토하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 받지 않고 결정을 내리고, 어떤 식으로 거절을 할 것인가 대비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다가 좀 더 자신감이 붙으면 가차 없이, 확실하게 거절하는 연습을 하라.

"좀 더 일찍 얘기를 했어야지!"라고 오히려 핀잔을 주는 것이다.


함정 질문에 조심하라. 당신의 심리 조종자가 은근하게 "이번 주말에 뭐해?"라고 물어보면 절대로 "아무 일정 없는데.""특별한 약속은 없는데."라고 대답하지 말라. 상대는 그 시간을 자기가 차지하려고 할 것이다. 늘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는 습관을 들여라. "아직은 잘 모르겠어. 몇 가지 생각해둔 일이 있는데 지금 정확하게 말하긴 좀 그래. 그런데 왜 물어?"


<굿바이 심리조종자-내 인생 꼬이게 만드는 그 사람 대처법>(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이세진 옮김, 부키) 중에서

 

전라도할매 마리안느와 마가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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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느와 마가렛> 영화와 책 동시에 나와

마가렛(왼쪽)과 마리안느.jpg» 마가렛(왼쪽)과 마리안느

 한센인촌인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한 오스트리아의 두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삶이 다큐멘터리 영화와 책으로 동시에 만들어졌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오스르리아의 가톨릭수도회의 파견으로 1960년대 소록도에 들어가 일제 잔재로 한센인들에게 반말과 구타가 당연시되던 곳에서 한센인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함께 식사하며, 치료해주는 등 성자적 삶을 살았다. 이들은 각각 43년과 39년씩 봉사하고 지난 2005년 마리안느 수녀가 대장암에 걸리자 ‘현지인들에게 짐이 되고싶지않다’며, 고국오스트리아로 떠났다.
 두 간호사들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자신들을 ‘전라도 할매’라고 칭했다. 그들은 가톨릭 수도사는 아니었지만, 가톨릭 신자로서 성자처럼 봉사를 했기에  ‘수녀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교구장·김희중 대주교)와 고흥군(군수·박병종), (사)마리안마가렛(이사장·김연준 신부)은 6일 오후3시 서울 잠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5층에서 영화시사회를 연다. 
 또 <소록도의 마리안네와 마가렛>을 펴낸 저자 성기영과의 대화 시간이 이어진다. (061)884-0815.

하느님의 일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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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집회를 그저 바라만 보시는 하느님

                                              

주말마다 서울시청 광장에 수많은 노인들이 모여 대통령을 탄핵하지 말라 외치고 있습니다. 제 처는 티브이 화면을 가득 메운 태극기 물결을 보면서 분노하고, 걱정하고, 절망합니다,


‘왜 저 말도 안 되는 주장에 태극기가 동원되느냐, 태극기는 온 나라 사람들의 태극기인데’하면서 분노합니다. ‘저런 일이 반복되면 태극기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일반화되는 거 아니냐’면서 걱정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모자라서 자신과 남들을 고통으로 몰아가는 저런 사람들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야하는 현실에 절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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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집회 모습. 사진/한겨레 김태형 기자


나는 이렇게 처를 위로합니다. ‘저 장면이야말로 소위 보수 세력들의 실상을 일반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깨우쳐주는 훌륭한 학습과정이니 잘된 일이야. 저 노인네들이 저러면 저럴수록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세력들은 점점 쪼그라드는거야.’ 저 장면이 반복되는 한, 반 토막도 안 되게 떨어진 집권여당 지지율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할 거고 야당 지지율이 50퍼센트를 향해가는 추세가 계속될 겁니다.


우리 어머니는 저런 멍청한 노인네들이 있게 만든 하느님을 원망하지만, 나는 요즘 돌아가는 일들을 보면서 하느님은 일일이 세상사에 간섭하는 ‘일하는 하느님’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새록새록 듭니다.
노자는 이를 ‘道常無爲 而無不爲 (도상무위 이무불위)’라 했습니다. 道(도)는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하지 않는 일도 없다는 뜻이니, ‘도’를 ‘하느님’으로 바꾸어, 하느님은 하시는 일없이 모든 일을 이루신다고 새겨도 무방합니다.


사실 ‘도’ 또는 ‘전체’를 향해‘하느님’이라 이름 붙이면 하느님도 또 하나의 ‘존재’에 불과한 듯 여겨지기 십상입니다. 그 결과로 하느님을 사람처럼 기뻐하고 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면서 세상사를 일일이 챙기는 분으로 생각하고, 이분 비위를 맞춰가며 제 소원 들어 달라고 졸라대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구약의 유대인들은 하느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꼭 필요하면 ‘야훼’라는 이름 대신 ‘ㅇㅎ’하는 식으로 자음만 썼습니다. 노자도 도덕경 첫머리에서 도를 도라 이름 부르면 영원한 도가 아니라 하셨지요. 그러면서도 노자 자신도 어쩔 수없이 도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이처럼 ‘ㅇㅎ’께서는 아무 일도 않으심으로 모든 일을 이루시니, 당신께서  판단능력 부족하고 제 잇속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저 노인들이 태극기 흔드는 걸 그냥 놔두는 식으로 만사에 일일이 개입하시는 건 아닙니다.


얼마 전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들 숫자가 900명에 다가섰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염수정 추기경께서는 이를 두고 ‘놀라운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내리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일은 아닙니다. 신부되겠단 이들을 점점 찾아보기 어려운, 쇠퇴하는 유럽 교회는 그러면 하느님이 은총을 거두어 가셨다는 말이 되니 그렇습니다. 기왕이면 우리 교회고 유럽 교회고 모두에게 은총을 내려주시는 게 더 좋지 않겠는가, 저 불쌍한 노인들이 퍼뜩 정신을 차려 잘못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게 자신들에게도 득이 된다는 걸 깨닫게 하시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놀라운 하느님 은총이 우리에게 내리셨다는 표현이 자칫 하느님의 활동을 인간의 그것과 비슷한 양 오해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좋은 일 말고 궂은 일에 대해서도 그 분의 은총이라 표현해야 합니다. 내가 아픈 것도, 내가 죽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도, 이 세상에 못되거나 어리석은 이들이 득실대는 것도 다 그 분의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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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라보면, 내가 잘 되게 해 달라고 ‘ㅇㅎ’께 기도하는 건 당신을 우리 같은 ‘사람’으로 전락시키는 불경죄에 해당합니다. 기도란 곧 ‘바람’인데, 중세 독일의 신비주의 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대리주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저 노인들이 바보같이, 혹은 아집 때문에 증오에 차서 태극기를 흔들고 다녀도 하느님은 아무 일도 않으시고 그저 두고 보시지만, 그걸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들이 정나미가 떨어져 보수정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방식으로 그 일을 처리하시니 ‘無爲 而無不爲’입니다.


자연과학의 인과율이나 불가의 연기 (緣起)법칙이 바로 당신이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일의 방식입니다.
<주역> 계사전에서는 그걸 이렇게 표현합니다. “一陰一陽之爲道(일음일양지위도)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는 걸 일컬어 도라 한다.” 도, 하느님은 전지전능한 힘으로 모든 걸 陽(양)으로만, 모든 걸 선(善)으로만 휘몰아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도 비로소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 식민지배와 유대 왕족, 종교지도자 집단의 억압에 묶여있던 당시 암울한 상황을 두고서도 ‘때가 다 찼다. 하느님 나라가 바로 가까이 있다.’고 하셨고, 하느님 나라는 조그만 겨자씨 같다고도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란 모든 게 다 선(善)으로 완성된 상태가 아닌 건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아들이라는 예수님도 전지전능의 힘으로 악인들을 응징하거나 모조리 착한 사람으로 바꾸어 버리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고 그저 사랑을 가르치다가 결국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있슴과 없슴’을 넘어선 도(道), 전체이신 하느님은 우리 같은 ‘인격’도 아니고, 사람들처럼 의도를 일으켜 이를 행함으로써 만사에 일일이 개입하는 분도 아닙니다.
법정에서 탄핵을 기각시켜달라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저 흰 눈썹 변호사의 청을 들어 주실 리 만무하고, 태극기 노인들이 난리치는 세상을 그대로 두고 보시는 당신을 원망하는 우리 어머니 한숨에도 그저 빙긋 웃고 넘어가실 겁니다.


無爲 而無不爲 (무위 이무불위).
당신의 그 긴 호흡을 감당하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고, 당신의 그 기묘한 이치를 이해하기엔 우리 욕심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음과 양, 선과 악을 다 품어 안는 당신의 사랑을, 그저 할 수 있는데 까지 흉내 내어 볼 뿐인 것입니다.     


 이 글은 <공동선 2017. 3·4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공부를 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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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무어냐고 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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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987년 민주화 운동 30주년을 맞습니다. 작년에 발생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사태 이후 한국사회의 물줄기가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촛불을 밝힌 시민의 참여와 연대의 힘은 역사의 퇴행을 막고 국민의 주권을 회복시키고 있습니다. ‘피플 파워, 시민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진실을 덮을 수 없다는 진리를 시민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연일 드러나는 국정 책임자의 부조를 보면서 민초들이 한숨 쉬며 묻습니다. “많이 배우고 가질 만큼 가진 사람들이 왜 저러냐?” 김기춘, 조윤선, 우병우, 안종범, 류철균, 최경희, 이재용…. 정말 그렇습니다. 이들은 좋은 가문 출신이고 최고의 학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상식 이하의 몹쓸 짓을 저질렀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 되지 않습니다.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삼 실감합니다. 대통령의 정신세계와 교양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 국정을 책임진 학자와 지식인들이 배웠다는 ‘공부’가 과연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들은 왜 그 많은 공부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도 처음부터 이렇게 거짓되고 못된 짓을 하려고 작심하고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그들은 비록 많이 배웠지만 ‘잘 못 배운’ 것은 분명합니다.


이 시점에서, 시민은 반면교사의 입장에서 ‘공부’의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정명(正名)을 생각합니다. 개념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겠느냐는 제자의 물음에 “반드시 개념을 바로 잡겠다(必也正名乎)”고 하였습니다.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말이 바로 서야 지향점이 왜곡되거나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같은 용어를 놓고도 저마다 각기 다르게 이해하고 해석합니다. 오천년 역사에서 고학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우리 자신과 자녀들이 많이 배웠으나 잘 못 배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공부’의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내가 이러려고 죽어라고 공부했나?”라는, 자괴심을 갖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중국 고전에는 공부에 대한 공부에 대한 개념과 목적을 곳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한 대목을 살펴보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옛날에 공부하던 사람들은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서 배웠는데, 요즘에 공부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배우는구나” 『논어』,「헌문」

자공이 물었다. “평생 실천할 만한 말 한마디가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서(恕)가 아닐까?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거라” 『논어』,「위령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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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근거해보면 공부란, 사물과 세상살이의 모습을 살피고 이치를 궁구하여 마음을 바로 하고 연민과 사랑을 나누는 일입니다. 요약하자면 정신과 행실의 성장이고 성숙이 공부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명문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 고시와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 취업하기 위해 하는 공부가 있을 뿐입니다. 오죽하면 “너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맨 날 책만 보느냐”라는, 오는 부모의 말이 생겨나겠습니까?


곳곳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세상을 호도하는 교묘한 ‘기술자’가 많은 세상입니다. 도덕과 윤리가 바로 서고, 참된 앎을 밝히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편을 개척하는 일이 공부이고 공부하는 사람이 나아갈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시 공자의 말씀 한마디를 더합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남을 좋아할 수도 있고, 남을 미워할 수도 있다.”        

 

 


나 홀로 책만 파는 ET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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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유형 - 첫 번째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


핵심동기: 지식
자신의 시각 : 탐구, 수집, 객관적
타인의 시각 : 관찰, 인색, 냉정



5유형은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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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유형은 지적 탐구자입니다. 호기심과 탐구욕이 강하지요. 5유형을 만화로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머리는 크고 목이 가는 ‘ET’의 모습이지요. 이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지적인 만족입니다. 5유형은 그냥 알고 싶은 순수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관심을 가진 것에 대해서만 질문이 많습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사물을 자세히 탐구하는 데 흥미를 느끼지요.


5유형은 천문학, 동물계, 식물계, 광물계 등 내면의 세계까지 모든 세계가 어떻게, 어떤 원리로 움직여지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항상 무언가를 추구하고 질문을 던지고 주의 깊게 들어가지요.


5유형은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것에 집착합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의견과 학설을 자기 나름대로 검증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호기심과 창의적으로 깊이 탐구하여 독창적인 업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사례 1>러시아 수학자인 그리고리 페렐만 :
        - 100년 난제 ‘푸앵카레 추측’을 풀었다. 2006년 필즈상 수상자로 결정됐으나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됐다.


5유형은 문제의 핵심을 파고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론, 자료 조사, 분석 정보를 통합하여 비본질적인 요소를 가려내고 중요한 것만을 취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제3자의 눈으로 객관화시킵니다.


사례 2> 5유형 회사원이라면 :
        - 회의에서 이야기할 내용과 소요될 시간을 미리 생각하여 준비한다.
        - 회의에 참석하면 맨 뒤에 앉아 상황을 관찰하고 끝날 무렵에 한 마디로 요약 정리하여 말한다(관찰자의 입장).



5유형에게 지식이란 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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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유형은 모든 것을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 큽니다. 이들에게 세상은 넓고 알아야 할 것은 많은 데 비해 자신은 너무 작다고 생각합니다. 5유형에게 책이란 앎이며 지식입니다. 책이란 도구는 직접 체험할 수 없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을 할 수 있고, 작은 에너지로 지식 탐구로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관계에서도 지적인 것을 만족시키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취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충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천착을 거듭합니다.


사례 3>수십 년 된 신문 스크랩 : 아파트 양쪽 베란다에 수두룩 쌓여 있다.
     4>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한 노트, 책, 레코드 등을 수집 한다.
      5>오래된 전공 논문들 및 서적 : 여러 외장하드에 꾸준히 저장 한다.



5유형은 혼자만의 공간을 아주 필요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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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유형은 얻은 정보과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만의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이들이 선호하는 곳은 서재, 구석진 다락방, 창고 등 남들 눈에 띄지 않고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지요. 자기만의 공간을 설정하고 그 경계선 안에 허락 없이 들어오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5유형 대부분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많은 사람과 어울리면 쉽게 피곤해 하는 타입입니다.


사례 6>결혼해서도 독방 선호


사례 7>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5유형의 남편 : 
         - 서재나 자신의 공간에 가서 잠깐이라도 쉬길 원한다. 그리고 난 다음 밥을 먹는다. 


5유형은 감정 기복에 큰 변화 없이, 조용하고 소극적인 편이지요. 앞에 나서기보다 변두리에 머뭅니다. 




느긋함 찾으러 한양도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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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길, 바쁨 속에서 느긋함을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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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길 창의문~숙정문 구간


오전 10시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 입구에서 모이기로 했다. 목적지 입구의 건널목에는 A군이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길 옆으로 커피숍이 있고 그 뒤편 언덕 위에는 만두집 간판도 보인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부록에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다는 식당을 따로 모아놓은 ‘빕 구르망’에도 이름을 올렸다.    


성문의 현판글씨는 창의문(彰義門)이다. 그런데 대부분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부른다. 딱딱한 그리고 조선의 이데올로기인 의(義)자가 들어간 규격적인 이름은 별로 인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성문 위에서 보랏빛까지 머금은 아름다운 저녁노을(紫霞)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았던 자리인지라 모두가 자하문으로 불렀다. 생각은 또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해인사 일주문의 ‘홍하문(紅霞門)’편액도 떠오른다. 작은 세로글씨를 숨기듯이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붙여 놓았다. 아름다운 붉은 노을빛(紅霞)을 감상하는 명당임을 알리는 가이드 노릇까지 맡겼다. 유가와 불가의 표면적인 엄격함 뒤로 항상 이런 감성적 언어가 같이 했다. 예(禮위계질서)가 있으면 악(樂함께 즐김)도 있고 긴(緊팽팽함)이 있으면 완(緩느슨함)도 함께 있어야 사람사는 곳인 까닭이다. 


동시에 세명도 모이기 어렵다는 20대가 10여명 모였다. 교통환승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미리 보낸 마지막 인물까지 도착했다. 덕분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도록 설계한다는 공학적 의도가 가미된 딱딱한 나무의자가 대부분인 커피숍에서 덤으로 젊은이들의 상큼한 수다를 듣는 기쁨을 쏠쏠하게 누렸다. 시험공부에 취업준비에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 사이에 또 짬을 내서‘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알기 위해’알바를 해야 한다면서 미간을 찌푸린다. ‘인류보존을 위해’데이트도 해야 한다면서 멋쩍게 웃기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이들과 함께 나들이 목적지를 한양도성으로 정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가깝기 때문이다. 모두 시간이 없어서 멀리 못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시간 답사 후 점심먹고 2시쯤 헤어지는 스케줄로 짰다.


서울성곽은 오백년 동안 자기 몫을 충실히 다했다. 한양을 지켜준 울타리였다. 이 정도의 높이와 시설로 수도를 방어할 수 있는 그런 시절도 있었다니. 호랑이 담배먹던 때도 아니고 불과 일백여년 전까지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성곽은 그대로 변함없는데 무기가 창칼에서 총과 대포로 바뀌면서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이 변해버린다면 나 역시 바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산성도 군사용에서 관광용으로 완전히 용도가 바뀌었다.


옛사람들은 약 20km인 한양도성 전체를 봄 여름이면 무리를 지어 성을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했다고 유본예(1777~1842)는『한경지략』에서 기록했다. 이른 아침 첫걸음을 떼면 해질 무렵 출발지로 되돌아왔던 순성(巡城)길이다. 그 때도 살벌한 군사적 목적 외에 훈훈한 관광용을 겸했던 것이다. 산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요즘 바다도 그렇다. 군항인 동시에 크루즈선 정박을 겸하는 그런 항구는 더 친밀감을 줄 것 같다. 지방에 있는 공항들도 군용과 민간용을 겸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다용도일 때 공간의 효율성이 더욱 높아지는 까닭이다.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경사면이 좀 가파르긴 했지만 잘 닦여진 길도 “바빠서” 운동량이 부족한 탓인지 모두가 힘들어 한다. 산성따라 줄을 지어 걷는 이들은 대부분 등산복으로 무장한 중년층이었다. 익숙한 자세로 날렵한 걸음이다. 우리 팀이 제일 젊은 것 같은데 쉼터마다 쉬어야 했다. 이마에 땀을 훔치며 말바위에 도착한 후 삼청공원 방향으로 내려왔다. “바쁘다”는 B가 식당에 앉자마자 점심을 후다닥 먹고는 알바때문에 먼저 가야한다며 자리를 뜬다. 두 번째 답사일정은 동대문 근처 낙산공원에서 말바위 쪽으로 오는 한 시간짜리 길을 선택했다. 이런 식이라면 12번은 와야 성곽길을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야말로 슬로우시티가 되는 것이다. 올가을의 취업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그룹스터디에 참여하느라 “바빠서” 두 번째 답사는 참석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C의 말도 얼마 전에 듣게 되었다.


그들도 여러가지 일로 바쁘지만 필자도 하는 일 없이 바쁜 사람이다. 게다가 우리가 서로 이해관계로 엮인 사이도 아니다. 그러하니 답사의 지속성도 쉽지는 않겠다. 그래도 인생선배로서 “바쁨” 못지않게 “휴(休쉼)”의 중요성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발동한다. 묘안을 짰다. 오프라인이 어려우면 온라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다. 그래서 통으로 묶어 이른 바 ‘밴드’를 만들었다. 언제나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세대이니 만큼 사이버공간을 이용하여 대면하는 것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옆에서 조언했기 때문이다. 조언자는 밴드관리까지 맡겠다고 나선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밴드 형식을 갖추어도 채울 내용은 더 문제다. 먹방처럼 부암동의 만두가 맛있다는 잡담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모두를 묶을만한 공동관심사를 발굴해야 한다. 병역의무를 마친 예비역까지 있으니 나이편차도 있고 성별은 말할 것도 없고 전공도 다르고 출신지역도 각각이다. 궁리 끝에 보편적 공감대로써 ‘여행’을 설정했다. 여행을 싫어하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문득 ‘여행’보다는 ‘답사’라는 단어가 더 좋아 보여 밴드이름을 “답사만리”라고 붙였다. 여행과 관련된 짧은 글을 퍼날랐다. 읽기만 하고 “조금 바빠서” 조용히 흔적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덜 바빠서” 더러 댓글도 붙는다. 댓글에 또 댓글을 또 달며 추임새를 넣어주며 머리를 식히는 ‘휴(休쉼)파’도 생겼다.


이래저래 젊은이들이 바쁘다. 바쁘니까 또 아프다.‘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위로해도 그 순간 뿐이다. 힐링을 위해 명상수행센터를 찾고 템플스테이와 함께 참선을 해도 잠시 그 때 뿐이다. 제자리로 돌아오면 또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녹록치 않는 현실이 “아프게” 또 “바쁘게”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돈 없어도 고급 리조트 삶을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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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돈 없이 최고급리조트에서 살아보기


1.왜 공동체인가 

 

 타이 아속

2.가장 ‘핫한 남자’ 포티락을 만나다

3.이윤을 포기하고 부자가 된 사람들

4.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다


인도 오로빌
5.자기로 살면 누구나 천재가 된다


미국 브루더호프
7.공부보다 청소와 요리에 더 열심인 아이
8.뒷담화 말고 앞에서 솔직하게 얘기하라


일본 애즈원
9.인간과 사회 탐구, 제로에서 시작한다
10. 아무도 명령 하지않는 일터에서 일하다


일본 야마기시
11.못난이도 잘난이도 함께 살아가는 곳 



  욕망을 놓고 비워보라. 천국이 여기다
  미국 부르더호프공동체 우드크레스트에서   
  딸과 함께 일하고 놀며 보낸 17일 


  3~4분거리 일터에서 오후5시면 퇴근
  가족들과 이웃 초대해 바베큐파티
  주말이면 마을 호수에서 수영하고, 캠핑
  비움으로 풍요롭고 여유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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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기 전에는 내 제자가 아니다’고? 예수만큼 짓궂은 분도 없다. 한푼 두푼 벌어보자고 죽자 살자 용을 쓰는데, 소유를 모두 버리라니.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다’는 석가도 짓궂기는 마찬가지다. 먹을 거 안 먹고 쓸 거 안 쓰고 모은 게 내 것이 아니면, 누구 거란 말인가. 그런데도 그들은 무소유와 무아집이 천국과 극락에 가는 길이라고 한다. 이걸 액면 그대로 믿고 따르는 이들이 지상에 몇이나 될까? 더구나 욕망의 제국인 미국에서 말이다.


뉴욕 존에프케네디공항에 도착하니 한밤중이다. 우드크레스트까지는 3시간 거리다. 긴 터널 같은 어둠이 이어진다. 광대한 이 땅 어딘가에 빛이 있긴 한 걸까. ‘이런 오밤중에 도착하는 결례를 범하다니’, ‘모두 잠들어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으로 어둠이 더욱 짙어진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다행히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그가 어둠 속에서 반갑게 손을 내밀어준다. 우드크레스트에 머문 17일간 시종일관 불편함이 없도록 뒷바라지를 해준 호스트 글렌이다.


우드크레스트 여행은 때마침 방학을 맞은 초등학교 6학년 딸이 함께했다. 글렌이 2층으로 안내한다. 현지인 두 가족과 함께 사용하는 2층의 게스트하우스엔 나와 딸이 쓸 방 2개와 식당이 딸려 있다. 식당엔 과일과 과자가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다. 탐스럽고 먹음직스럽다. 무엇보다 게스트에게까지 무소유와 비움을 강요하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날이 밝았다. 우드크레스트가 시야에 들어온다. 푸른 하늘 아래 골프장처럼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시원하다. 잔디 깔린 언덕 위로 하얀 집들이 서 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들이다. 디즈니랜드나 에버랜드, 서울랜드처럼 상업용 세트가 아니다.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다. 네댓 가족씩이 함께 살아가는 집들, 집 크기를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가족 수다.


초원 위에서 가족들은 다른 가족들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연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공놀이를 한다. 맨발로 뛰어다니다가 다람쥐처럼 나무 위에 올라간다. 어느 어른도 말리지 않는다.
분명 우드크레스트는 첫걸음인데도 기시감이 든다. 익숙한 장면이다. 그렇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마을이나 <웰컴 투 동막골>에서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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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다음날 아침부터 초대가 이어진다. 호스트인 글렌과 아델 부부의 가족이 첫번째다. 그들에겐 한살 아들 숀이 있다. 그들의 집은 소박하다. 입고 있는 옷은 더욱 소박하다. 그런데도 바깥세상에서 본 어느 누구보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마치 바닷물을 들이켤 때처럼 마실수록 갈증이 커지는, 그런 바깥사람들의 갈증과 갈망이 없어 보인다.


브루더호프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은 일하고, 주말 토·일요일은 쉰다. 하지만 그들의 배려와 사랑은 주말에도 쉬는 법이 없다.
주말이 되자 글렌과 아델은 산책을 제안한다. 우드크레스트는 30여만평은 돼 며칠 만에 둘러볼 규모가 아니다. 게스트하우스 뒤쪽으로 돌아가자 왼쪽엔 그네와 아이들 놀이터가 있다. 아니 그곳만이 아니라 사방이 놀이터다. 오른쪽엔 특급호텔에나 있을 법한 풀장이 있다. 아이들 전용이다.


언덕을 오르자 동물농장이다. 노새와 조랑말뿐 아니라 승마용 말도 있다. 웃는 듯한 입모양새를 지닌 돼지들과 총천연색의 새들이 한우리에서 놀고 있다. 젖소와 양들은 언덕 위를 자유롭게 오간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다가와 이 동물들과 어울린다. 가끔은 노새와 조랑말을 타고 동네를 한바퀴씩 돈다. 노새와 조랑말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런 산책을 즐기는 듯 표정이 낫낫하다.


동물농장 주위엔 텃밭농장이 있고, 그 사이로 숲 산책로가 이어진다. 톱밥을 깔아놓아 길이 융단처럼 부드럽다. 길에 삐져나온 나뭇잎 사이로 손가락보다 작은 도마뱀들이 고개를 내민다. 글렌은 그 도마뱀을 숀의 손 위에 올려주면서 감촉을 느끼도록 한다. 숀도 매끄럽고 화려한 도마뱀을 볼 때마다 다시 만지고 싶어한다. 여러 갈래로 이어진 숲길은 자연 그대로다. 언덕을 지나면 평지가 나오고, 지루하다 싶으면 다시 굴곡진 길이 나타난다. 이 숲에서 때론 야생 곰과 사슴이 나타난다고 한다. 길섶 공터엔 캠프장과 바비큐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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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에서 직선거리로 300m쯤 지나면 숲이 끝난다. 평평한 잔디밭 아래 호수다. 호수 전면엔 아이들이 놀기에 적당한 얕은 수심의 수영장이 있다. 자디잔 모래 백사장까지 깔려 있다. 아이들이 첨벙첨벙 물장난을 하는 개와 함께 공놀이를 하면서 연신 함지박처럼 입을 벌려 웃는다.
그 수영장 둘레로 수심이 깊은 호수 가운데까지 나무 갑판이 연결돼 있다. 특급리조트 수영장 시설 못지않다. 호수 안쪽은 어른과 청소년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갈고닦은 실력이 만만치 않다. 공중돌기를 하며 다이빙을 하는 폼이 영락없는 물 찬 제비들이다. 다른 갑판에선 낚시를 하는 이들도 있다. 근처 잔디밭과 숲 사이 캠핑장에서 어느 가족은 마시멜로를 굽고, 다른 가족은 얼음상자에 담아 온 햄 소시지와 고기를 구워 먹는다. 나도 주말에 초대받은 가족들과 이곳에서 수영을 하고는 그렇게 캠핑장에서 미니 파티를 함께 한 게 여러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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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더호프 사람들은 아침과 저녁 식사는 가족 단위로 먹는다. 음식은 마을 가운데 공동식당 아래 창고에서 얼마든지 가져다 먹을 수 있다. 그곳은 곡류와 빵, 야채, 과일, 고기, 우유, 계란 등 거의 없는 게 없다.
개인은 일체 사유재산이 없고, 가진 것이 없다. 그래서 공동체는 부유하고 넉넉하고, 풍요롭다. 방문자에게도 어떤 체류비를 받지 않는다. 다만 그들과 노동하고, 일상을 함께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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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구성원들은 공동창고에서 음식물을 가져다가 조리를 해 먹는다. 며칠 뒤부터 나와 딸도 음식물을 가져다 아침을 해 먹는 게 자연스런 일상이 됐다. 밤이면 가족들끼리 파티를 자주 한다. 주말이면 거의 예외 없이 이웃 가족을 초청해 바비큐 파티를 하거나, 캠핑을 간다. 어느 주말에 또래 친구들과 함께 캠핑을 간 딸이 다음날 이른 아침 돌아와선 수다를 떤다. 어젯밤 야생 곰을 보았다는 것이다.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는데, 뭔가 뒤에서 킁킁대는 소리가 나서 누군가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뒤돌아보니 곰이었다는 것이다. “곰을 보고 모두 뒷걸음을 쳐 이층집으로 올라갔다”며 “조금만 늦었으면, 다시 아빠를 못 볼 뻔했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이곳에선 다반사인지, 좀더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도 없다. 언젠가는 맨발에 가시가 찔린 아이가 아프다며 울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얼른 신발을 신기고 다시는 맨발로 내보내지 않을 법한데, 그 아이의 엄마는 가시를 빼주고는 ‘이제 괜찮다’며 다시 맨발로 가게 한다. 호들갑스럽지도 유별나지도 않게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 특별해 보인다.


낮 12시엔 모든 공동체원이 공동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 서빙하는 이들은 미리 식사를 하고 음식을 나른다. 매일 바뀌는 메뉴가 호텔 음식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 돼지고기 메뉴가 적지 않지만, ‘돼지고기 알레르기’인 내겐 소고기나 닭고기 같은 다른 메뉴가 배달된다. 너무도 특별한 배려가 황송할 정도다.

먼 산과 가까운 숲, 잔디가 한눈에 들어오는 야외식당의 조망은 그만이다. 식사 전에 일체 악기 없이 부르는 찬송은 외관의 자연과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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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엔 잔디밭에 식탁을 옮겨 더욱 특별한 만찬을 한다. 식탁엔 늘 가족 단위로 앉는다. 무대에선 오케스트라가 연주된다.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은 모두 낮에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다. 노을과 함께 평화롭게 어울리는 형제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오케스트라의 화음 속에 어떤 임재가 느껴진다.
이곳에서 관심과 배려를 벗어날 길은 없다. 초대가 잦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 7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공장에서 함께 일하기 때문에 아침 초대는 없지만, 저녁 초대는 적지 않다. 이웃과의 친교는 의례가 아니라 이들의 중요한 일상이다.

공장이나 공동식당 등 일터가 집에서 도보로 3~4분 이내 거리에 있기에 출퇴근을 위해 빼앗기는 시간도 없다. 일하는 시간 외엔 온전히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셈이다.


내 옆방에 사는 하이너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변호사인 존의 가족은 부인과 세 아이, 큰 셰퍼드다. 부인 리나는 치과의사다. 이 마을에서 변호사나 의사라 해도 따로 돈을 벌 일도 없고, 특별 대우도 없다. ‘바깥세상이라면 고액 연봉을 받을 텐데, 왜 아무것도 받지 않고 여기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물었다.
“여기서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그는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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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9개의 브루더호프 마을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된 영국의 다벨 브루더호프에 이미 세번이나 가봤다. 하지만 당일 또는 1박2일 방문이어서 그들 속에 들어가 삶을 경험해보기엔 너무 시간이 짧았다.

브루더호프는 서로가 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에 다른 마을에 거주하더라도 살아가는 모습과 일과는 거의 같다. 하지만 다벨이 무소유 기독교공동체로서의 영적인 느낌이 강했다면, 우드크레스트는 훨씬 밝고 활기차게 느껴진다. 드넓고 멋진 자연경관에, 유럽보다는 더 개방적인 미국식 분위기가 가미된 듯했다.


더구나 대부분의 공동체가 드높은 이상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자립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비해 브루더호프가 이처럼 풍요를 구가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브루더호프는 플레이싱스란 어린이와 장애인용 목재 장난감과 페이서라는 장애인용 전동휠체어를 고급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런 고급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공장근로자 누구도 월급이 없다. 이 모든 풍요가 자신을 비운 무소유와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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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더호프를 가장 많이 찾는 외국인은 단연 한국인들이라고 한다. 이들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싶어 열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동체 삶에 선뜻 동참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누군가가 물었다.

 ‘브루더호프 사람들의 천국이 자기 비움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한국인들은 1층부터 10층까지 욕망을 켜켜이 쌓고, 그 위 11층에 천국까지 얹고 싶은 것은 아니냐’고.


뉴욕(미국)/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요리를 통해 자유로워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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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요리.
요리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요리를 못하더라도 위축되지 않는다. 널리 알려져있는 조리법을 굳이 따르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대로 만든다. 재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한다. 요리를 위해 재료를 사지 않고, 있는 재료에 맞춰 요리를 한다. 만들기 시작할 때 생각한 요리와, 완성된 요리가 다른 경우가 있다. 음식을 잘 먹는 편이다.


창의요리의 정의를 만들자면 이런 내용일 듯하다. 연기자이자 미술작가, 작곡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구혜선. 그는 '신혼일기'라는 방송에 출연 중인데, 그가 방송 중 보여준 여러 요리에 '창의요리'라는 이름이 달렸다. 일에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고, 생각하거나 사고하는 방식도 자유로워 보이는 그답게 창의요리를 가능케하는 것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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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요리 중인 구혜선. tvN <신혼일기> 중에서


양파, 양배추, 마요네즈, 케찹, 딸기잼 등을 겹겹이 어수선하게 쌓아올린 샌드위치. 만든 그와 그의 남편에 따르면 엄청 맛있다고. 팥죽을 만들려고 졸이던 팥에 설탕을 섞어 빵에 발라먹은 팥빵. 고기대신 스팸을 굽고, 녹색 고추가 아닌 빨간고추를 쌈장에 찍어먹는 쌈밥. 냉장고에 있는 야채와 다른 재료를 모두 꺼내놓고 영감이 이끄는 대로 잘라 볶아 한중일 3국의 맛을 담은 덮밥. 무가 많으면 무로 무밥, 무국, 무볶음 등 무 일색으로 차린 대담한 한상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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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선의 창의요리들.


그의 요리들을 보며 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요리도 저렇게 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이제까지 나에게 요리란 조리법대로 하는 것이었다. 물론 간장 한 큰술, 고추장 두 큰술 등의 세세한 양까지 따르지는 않지만 고춧가루와 간장을 섞어 양념을 만드는 요리인지,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 만드는 요리인지 등은 정해진 조리법을 따르는 편이다. 내 취향에 맞는 요리책 4~5권을 구비하고 있는데, 책을 보고 만들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서 나온 조리법을 따르기도 한다.


요즘 한창 쑥이 나오고 있는데 쑥을 이용한 요리를 검색하면 대부분 쑥된장국와 쑥버무리, 쑥튀김이 나온다. 요리책과 인터넷 검색에서 모두. 쑥된장국도 해먹고, 쑥버무리까지 해먹었다. 튀김은 번거로워서 하지 않으므로 패스. 버무리만 해도 쉬운 요리는 아닌데, 쑥으로 할 요리가 별로 없어서 굳이 해서 먹었다.(불린 쌀을 방앗간 가서 가루로 빻아와야 했다)
두 종류의 요리는 해먹고 나면 딱히 더 해먹을 방법이 없어서, 남은 쑥은 누렇게 시들어가기 일쑤였는데 '창의요리'를 접하고 난 후 생각에 물꼬가 트였다. 그렇다! 꼭 알려진 방법대로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계란 푼 것에 쑥와 양송이버섯을 잘라 넣어 쑥스크램블을 해먹었고, 쑥과 청양고추를 넣어 쑥전을 해먹었다. 맛도 만족스러웠고 재료를 묵히지 않아 뿌듯했다.


요리에 답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엇이든 해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요리하는 것이 더욱 즐거워졌다. '이번엔 어떻게 요리해먹을까나'하는 재미가 쏠쏠했고, 나를 한겹 둘러싸고 있던 고정관념이 해체된 것 같은 해방감마저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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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들. 크렌베리를 넣은 쑥버무리와 쑥스크램블, 쑥전.


요리를 좋아하는 편인 나같은 사람도 이럴 정도지만, 내 주변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요리에 대한 고정관념은 더 심한 듯 하다. 그들은 대부분 요리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다. 요리에 자신이 없어 레시피대로 따라했는데 그런데도 맛이 없으니 '해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아예 겁을 먹는다.


요리포기자들의 공통점은 요리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다.

요리에 전혀 관심도 없고 할 줄도 모르고, 해도 정말 맛이 없게 되는 한 친구는 요리를 무슨 '법칙'처럼 생각한다. "나는 콩나물을 아삭하게 못 삶아. 내가 하면 안익거나 뭉개져. 나는 레시피대로 해도 국이 간이 안맞아. 내가 하면 뭐든지 안돼."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삶은 콩나물의 아삭함의 정도에는 최상의 상태에 해당하는 어떤 정확한 수치가 있고, 국의 간을 맞추는 데에도 소금 1술, 멸치액젓 1.5술식으로 고정된 어떤 황금비율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런 '정답'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음식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음식에는 그러한 정답이라는 것이 없다. 기른 환경에 따라 콩나물 조직의 단단함 정도가 매일 다르고, 간장과 멸치액젓도 기본 재료의 질과 만든 환경 등에 따라 농도나 맛이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만드는 방법에 정답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요리를 하다보면 사실 그런 규칙은 하나의 참고 항목에 그칠 뿐, 실제로는 만드는 상황에 맞게 융통성있게 할 수밖에 없는 열린 과정이다. 정답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감에 따라 한발씩 나아가야 하는 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창의요리는 친환경적인 장점 또한 갖고 있다. 있는 재료를 어떻게 써먹을까를 생각하므로, 재료가 남아 버려지는 경우가 적다. 특정 요리를 하기 위해 재료를 사게 되면 여러가지를 아무래도 많이 사게 된다. 이 요리를 하기 위해선 레시피에 나온 이 재료가 필요하므로 이런이런 재료와 향신료 등을 사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요리 한번 하자고 산 향신료나 부재료를 한번쓰고 팽개쳐두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베트남쌀국수 해먹는다고 산 피쉬소스나 중국요리 한다고 산 두반장 같은 것들. 이탈리아 요리한다고 산 허브종류도 그렇다.


있는 재료를 알뜰히 쓰는 창의요리는 먹는 것을 중요시하는 식욕중심주의가 보이지 않아 좋다. 있는 것에 맞추겠다,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고 이것저것 사들이지 않는다는 태도 말이다.


'냉장고 파먹기'라는 말도 생겼지만, 별 거 없는 것같아도 잘 뒤져보면 냉장고에는 사다 놓은 재료들이 은근히 많다. 새로 무언가를 사서 채우기 전에 일단 냉장고를 파먹으며 창의요리를 해보자. 아마 적어도 1~2주일치는 거뜬히 나올지도 모른다. 식품 구입비도절약하고, 요리를 통해 창의성도 발휘하고, 환경도 보호하고. 생각만 해도 즐겁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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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모든 것이요. 


어떤 사도가 이 무상성을 산다는 표지는 무엇일까요? 

많이 있지만 두 가지만 강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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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가난입니다.

복음 선포는 가난의 길로 가야만 합니다. 
이 가난을 증언하는 거예요. 

나는 부유하지 않으며 나의 부는 오직 내가 받은 선물, 곧 하느님 뿐입니다. 
이 무상성, 이것이 우리의 부입니다! 

이 가난이 조직가, 사업가 등이 되는 데서 우리를 구해 줍니다. 
교회의 일들을 해 나가야 하지요. 

그 중 어떤 것들은 좀 복잡해요. 


하지만 투자자의 마음이나 사업가의 마음으로가 아니라 가난의 마음으로 해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는 NGO가 아닙니다.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며, 바로 이 무상성에서 태어납니다. 
받고 선포된 무상성.  가난은 이 무상성의 표지들 중 하나입니다.


다른 표지는 찬미의 능력입니다.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 진리는 만남입니다. 분도출판사.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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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손님들이 식사 후 문을 나서면서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하면 참 좋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배 부르게 먹는 것은 참 좋습니다.

조석거리(아침 저녁 먹을거리)가 떨어진 할머니께서 어렵게 어렵게 찾아오셔서 도와달라고 합니다.


세상 변화 기회를 놓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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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극시대 끝내고 상생 시대 열때다”

 정신문화연구원장 지낸 한국유학계 거장

 류승국이 가장 그리워한 인물

 

주역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한 

조선 말 김일부의 정역 보고 

 

한글학자에서 철학으로 행로 선회

계룡산 들어가 3년간 공부 몰두

 

한때 대학 총장도 했지만 

관직도 저술도 관심 없이 연구만 

 

“강자가 약자 억압, 차별의 시대에서 

천하가 한가족이 되는 대동세계로”

 

민족종교들이 잘못 이용해

폐쇄적 민족주의로 폄훼되기도

 

자식들 종교도 간섭하지 않아

유학-기독교신학-불교학 제각각



이동준-이동준1.jpg» 학산 이정호의 장남 이동준 성균관대 명예교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앞두고 ‘탄핵 반대’를 외치는 이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이들이 흔든 태극기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박정희 정권 때 정부의 초대로 일본의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대표단이 방문했을 때다. 북녘의 인공기와는 다른,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을 보고 대표단이 태극기의 의미를 물었다. 그러나 정부부처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고령의 최고 석학들만 모인 학술원에 문의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한국철학자 류승국(1923~2011)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류승국은 “우주 만유의 근원이 태극이고, 우주의 중심이 나의 중심이요, 나의 주체가 즉 남의 주체이므로 남의 인권도 내 인권처럼 존중해야 한다는 원리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로 인해 불과 50대 초반의 류승국이 학술원 회원으로 추대됐고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냈다.

 류승국은 젊은 시절부터 기독교 영성가 유영모와 교유했고, 성철 스님과는 3개월간 함께 참선하기도 했다. 그가 타계하기 1년 전에 인터뷰를 했다. 그에게 “누가 가장 그리운가”라고 묻자 그는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다 두고 학산 이정호(1913~2004)라고 답했다.

 학산은 세인에겐 생소한 이름이다. 그가 광화문광장에 서 있는 성군 세종대왕과 성웅 이순신이 탐구했던 역(易) 연구에 진력해 구시대의 봉건질서를 파하고, 상생의 새 시대를 열어젖힐 희망의 ‘역’을 주창했다는 것은 더욱 알려져 있지 않다.

 

 훈민정음의 음양오행 원리 드러내

 ‘역’(역경 혹은 주역)은 공자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읽었다는 동양고전의 으뜸이다. 23전 전승의 전과를 올린 이순신이 아침마다 친 것이 바로 그 주역 점이었다. 또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원리가 바로 ‘역’의 음양오행에 따른 것이라는 게 1940년대에야 발견된 해례본에 나온다. 이를 명확히 세상에 드러낸 인물이 바로 학산이다.

 그의 노작을 하나로 묶은 <학산 이정호 전집>(아세아문화사 펴냄)이 출간됐다. 무려 13권이다. 지난 5~6년 이 작업에 매달려온 이동준(80)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성균관대 교수와 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 소장 등을 지낸 그는 학산의 4남매 중 장남이다. 그는 학산과 류승국의 제자이기도 하다. 학산을 보낼 때는 류승국이 장례위원장을, 류승국을 보낼 때는 이 교수가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경기도 과천시 주택가에 있는 집으로 그를 찾았다. 학산 부부가 생을 마친 곳이기도 하다.

 학산은 <정역>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왔다. 정역은 동양사상의 뿌리인 주나라 역인 주역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한 김일부(본명 김항·1826~1898)에 의해 제시된 새 시대의 역이다. 

 한글학자(국어국문학)였던 학산은 해방 전후 김일부의 정역을 보고는 30살 무렵 자신의 행로를 철학으로 선회했다. 청주고보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제대 법문학부에서 공부한 학산은 일제에 의해 조선어 학습이 금지될 때까지 조선어 선생을 하고, 해방 뒤엔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 가르쳤다. 

 “해방이 되자 일석 이희승 선생께서 3번이나 찾아와 서울대에 국문학과를 함께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때 호응했다면 서울대 교수로, 국문학자로 존경받으며 일생을 편히 살았을 텐데….”


학산전집-학산 전집.jpg» 최근 출간된 <학산 이정호 전집>


이동준학산공자-.jpg» 별명이 '공자'인 이동준 교수. 뒤에 부친 학산 이정호 사진과 공사 사진이 함께 걸려있다. 학산 이정호도 생전에 별명이 '공자'였다



 

 서울대 교수로 편히 살았을 기회도

 이 교수는 모든 것을 버리고, 굳이 험로를 택한 부친을 회고했다. 학산은 동양철학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1944~46년엔 경성제대 의학부에서 인체 해부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홀연히 계룡산 중턱 외딴집에서  들어가 김일부의 조카 덕당 김홍현에게 정역을 전수받고, 3년간 연구에 몰두했다. 전공을 바꾸어 학문에 매진하느라 집 한 칸이 없던 그가 충남대 교수로 간 것도 4남매와 함께 머물 관사가 제공되어서였다. 그 이후에도 계룡산 국사봉 아래 김일부가 도를 닦던 향적산방를 마련해놓고, 수업이 없을 때는 주로 그곳에서 연구하며 제자를 가르쳤다.

 “4·19혁명 뒤 3년간 민선 충남대 총장직을 지내긴 했지만, 평생 관직에도, 저술에도 관심 없이 연구만 하신 분이다.”

 학산의 삶을 뒤바꾼 정역은 김일부가 18년의 구도 끝에 깨달음을 얻고 내놓은 새로운 역이다. 공자가 이상적인 나라로 여긴 ‘주나라’의 역인 주역이 선천시대의 지도였다면, 후천시대의 지도를 새로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감히 공자도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해설에 그칠 만큼 성군 복희와 문왕이 그린 지도 격인 ‘괘도’를 바꾼 데 대한 기존 유학계의 반발이 컸다. 이에 대해 류승국은 “그렇지, 성인은 중국땅에서만 나는 법이니까”라며, ‘학문적 사대주의’를 힐난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50여년 동안 연구한 ‘김일부의 정역’ 연구에 매진한 부친 학산의 논리를 요약했다.

 “후천시대는 자연, 인간,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시기다. 따라서 천지가 변화해 이전투구와 상극의 갈등시대가 끝나는 개벽으로 상생의 시대가 온다고 했다. 그러므로 대인과 군자가 되는 인간혁명과 사회개혁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강자가 약자를, 남성이 여성을, 강국이 약소국을 억압하는 ‘억음존양’(抑陰尊陽·음을 억압하고 양을 높임)의 차별시대가 ‘조양율음’(調陽律陰·음과 양이 조율)의 화합시대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나라와 나라가 대결하고 민족과 민족이 투쟁하는 선천(구시대)에서 천하가 한 가족이 되는 대동세계로 변모한다. 상하질서를 강조하는 봉건시대가 평등의 소통시대로 바뀐다는 것이다. 또한 정역팔괘도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간방이 중심으로 변화되면서, 가을결실기가 도래함에 따라 우리나라가 이런 세상 변화의 주역을 담당하게 된다고 한다. 

 

류승국-.jpg


 송곳니든 어금니든 각자 제 몫을”

 이런 정역의 논리를 민족종교들이 활용하면서 ‘폐쇄적 민족주의’로 폄하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학산은 김일부가 어떤 종교도 창시한 적이 없었다고 했고, 자신도 폐쇄적 민족주의를 타파하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학산은 자식들의 종교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교수는 유학을 공부했지만 여동생은 기독교 신학을 했고, 남동생은 불교학도가 됐다. 이 교수 자신도 자식이 혼인을 두고도 주역 점을 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이 교수는 학산과 류승국의 뒤에 서는 겸양으로 일관하지만, 그도 공자 선양작업의 일환으로 만든 중국인민대학 공자연구원의 국제학술회의 거의 매년 초청받아 치사와 축사를 하는 유학계의 국제적 원로다. 그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 맹자의 ‘인자위능이대사소’(仁者爲能以大事小)의 고사를 들어 “오직 인자만이 대국으로서 소국을 잘 도와줄 수 있다”며 “공자와 맹자를 따른다면 대국의 힘만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조를 보더라도 시대의 전환기에 해야 할 일을 해내지 못하면 패망에 이르는 것”이라며 “어금니든 송곳니든 앞니든 각자가 제 몫을 해내 희망의 시대를 열 것”을 당부했다. 세상 변화에 다 때가 있으므로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학산 이정호 전집> 출판기념회는 25일 오후 3~7시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 6층 첨단강의실에서 열린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무릎 꿇은 지도자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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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브란트수상.jpg» 유대인들의 희생지역에서 무릎 꿇고 독일 나치의 잘못을 비는 빌리브란트 총리 사진 <연합뉴스>


독일에 살면서 가장 긍금하고 관심있던 일은, 인류를 대상으로 세계 역사상 전대미문의 잔혹한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어엿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법치국가가 될 수 있었나 하는 것이 었습니다. 작금에 한국의 국민들이 뜨겁게 요구하는 적폐청산, 그릇된 과거를 제대로 잡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노력,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들은 물론 종교, 문화, 교육, 사회 전반에 걸쳐 그들은 노력했고, 지금도 그릇된 과거를 청산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숱한 노력 중에서도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상기되고 시간이 흐를 수록 더 그 가치를 존중받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970년의 일이었으니 당시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제게 이 소식이 와 닿았는지, 유신으로 치닫는 당시의 한국에 보도가 되기는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사진만 봐도 목이 울컥할 정도로 감동을 주는 사건입니다. 


   1970년 12월, 당시 서독의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는 종전 25년 후 폴란드를 방문한 첫 총리로서, 1943년에 있었던 유대인 게토 (격리지역)의 항쟁과 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탑에 헌화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떨궜습니다! 동행했던 모든 사람들은 너무나 놀라고 당황해서 쥐죽은 듯 침묵했습니다. 한 나라의 총리가 스스로 무릎을 꿇다니요?  보도진도 놀랐지만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독일 국민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고 합니다. 굴욕적이며, 과장된 처사라고 비난하는 쪽이 반, 옳았다고 한 쪽이 반이었습니다. 빌리 브란트는 바로 이 방문을 통해 동유럽과의 화해의 길을 열 수 있게됐고, 다음 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을 순간적으로 행동에 올겼던 것이라고 후에 회고했습니다. 그 자신은 오히려 나치독일의 억압을 받았지만, 용서를 빌지 못하는, 빌고 싶어도 빌 수 없는 독일국민을 대표해서 무릎을 꿇었답니다.


이승연 그림-.jpg» 이승연 화백의 그림


 빌리 브란트 총리의 행동은 물의를 일으킨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독일국민 스스로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아주었다고 평가됩니다. 국민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독일인임이 창피했던 국민들에게, 과거를 인정하고 책임지고 용서를 청함으로서 오히려 당당한 미래가 가능하다는 용기를 준겁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은 엄청난 용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용기는 그만큼의 에너지를 실어 새로운 관계,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게 합니다. 진정한 '한강의 기적'은 그 때에 꽃을 피우고 아주 실한 열매를 맺으리라고 믿습니다. 


갈등하는 것은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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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약속 장소 하나 정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미혹에 흔들리면 좀처럼 결정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저도 우유부단하게 "어디가 좋을까?"라고 고민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15분 정도 지나가 버리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수많은 생각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어떤 선택이 보다 이득인지 계산하고 싶어 하는 욕망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생각을 되풀이하면 정신과 시간을 소모하여 피곤해진다는 것입니다. 즉 어느 쪽이 이득인지 갈등하는 것 자체가 마음의 손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상기하면 좋은 것은 망설임 끝에 내린 하나의 선택이 결정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유리한 쪽'을 선택하더라도 실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작은 이득을 추구하기 위해 보잘것없는 욕망에 마음이 흐트러진 한심한 자신'을 깨닫고 '득(得)'이 아니어도 좋으니 빠르게 결정을 합시다.


<마음을 지키는 108가지 지혜- 하지 않는 연습>(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고영자 옮김, 마로니에북스) 중에서

 


이렇게 늙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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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늙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꼭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단정한 차림새도 그중 하나입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라는 이유로 늘 운동복 차림인 사람이 있습니다. 아예 그 옷이 잠옷을 대신하기도 하고 가까운 편의점에 갈 때는 외출복으로 삼기도 하지요.


여기에 한 가지 더, 나이를 먹고서도 꼭 가졌으면 하는 것은 ‘유머 감각’입니다. 유머는 그 자리를 온화하고 밝게 합니다. 인간관계의 윤활류도 되지요. 대화 속에 유머를 섞으려면 머리가 유연해야만 합니다. 그때그때의 정보에도 밝아야 하고 젊은 감성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

나이든 사람의 유머에는 보다 특별한 효과가 있습니다. 자칫 나이 때문에 상대방이 경직되거나 만남 자체가 딱딱해질 수 있지만 그럴때 자연스럽게 유머를 던진다면 굳었던 분위기가 사르르 녹겠지요.


<불필요한 것과 헤어지기-걱정거리의 90퍼센트를 없애는 46가지 마음 정리법>

(마스노 슌묘 지음/장은주 옮김/웅진지식인하우스) 중에서


명성교회, 변칙세습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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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아들에 ‘변칙세습’ 추진


김삼환목사.jpg

*김삼환 목사

 

교단의 ‘세습금지’ 허점 이용해
아들 김하나 목사 교회와 합병
19일 교인투표 통과땐 ‘세습’ 확정


기독단체 “교회 사유화 말라” 촉구
명성교회쪽 “성도들이 원해” 주장


서울 강동구 명일동 명성교회가 담임목사 변칙세습을 추진하고 있다. 명성교회는 재적교인 10만명, 출석교인 5만명 정도로 우리나라 최대 교단인 장로교통합교단에서도 교인수가 가장 많은 초대형교회다.


명성교회는 지난 11일 임시당회(임시당회장 유경종 목사)를 열어 새노래명성교회와 합병을 결의했다. 명성교회는 김삼환 목사(72)가 1980년 개척했고, 명성교회에서 5㎞가량 떨어진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새노래명성교회는 3년 전 김 목사의 지원으로 건립돼 그의 아들 김하나 목사(44)가 담임으로 있다.


명성교회 담임목사 청빙위원회는 지난 2015년말 정년 은퇴한 김삼환 목사 후임으로 그의 아들 김하나 목사를 청빙키로 했다. 이 청빙안을 두고 청빙위원회에서 18명가운데 15명이 찬성, 3명이 반대했다. 그러나 세습을 금지한 통합교단법상 김삼환 목사의 아들을 곧바로 담임으로 청빙할 수 없자, 교회 합병 방식을 택해 같은날 표결했다. 장로회 통합총회는 지난 2015년 정기총회에서 배우자 직계비속 등에게 교회를 세습할 수 없게 규정했지만 교회간 합병과 같은 세칙은 마련하지 않았다. 교회 합병안은 목사·부목사·장로들이 참석한 공동의회에서 84명 가운데 찬성 67표, 반대 12표, 무효 5표로 통과됐다.


명성교회는 오는 19일 공동의회를 열어 교인들에게 새나라명성교회와 합병에 대한 의견을 묻는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이 안이 통과되면 김하나 목사가 명성교회 당회장을 맡게 된다. 김삼환 목사는 현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부흥집회에 가있어, 공동의회가 자발적으로 이 안을 추진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칙적인 부자세습’에 대해 개신교계의 비판이 거세다. 지금까지 충현교회 광림교회 금란교회 임마누엘교회 등 대형교회의 목사세습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온 교회개혁실천연대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14일 각각 기자회견과 성명을 통해 “교회를 사유화하지 말라”며 세습중단을 촉구했다. 명성교회와 같은 교단이자 교회 세습반대운동을 해온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도 페이스북을 통해 “제왕적 목회를 하던 김삼환 목사가 (교회를) 남 주기 싫었을 것”이라며 “교단 총회장까지 지낸 분이 총회 결의를 무시하고 꼼수로 세습을 강행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삼환 목사와 김하나 목사는 지금까지 수차례 세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표명했었다. 김하나 목사는 2013년 장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열린 종교개혁 토론회에서도 ‘세습하지 않는 것은 시대적 요구’라고 발언했다. 당시 토론을 함께한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는 “중세교회가 타락한 것은 성직의 세습과 매매 때문인데 종교개혁 500돌을 맞은 올해 한국교회가 말기적 교회의 모습을 보여야 되겠느냐”며 “김하나 목사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할 때”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명성교회의 한 장로는 “명성교회는 국가기관이나 공공재단이 아니라 성도들의 것이므로 성도들이 담임을 결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김삼환 목사와 김하나 목사 본인들은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장로와 성도들이 우리의 필요에 의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봄이다. 일하며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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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누리-.jpg» 강원도 홍천 밝은누리에서 남녀노소 어우러져 벌이는 잔치. 사진 밝은누리 제공



봄이 오면 씨앗 나눔 잔치가 열린다. 올해 하늘땅살이(농사)를 위해 지난 해 정성껏 갈무리 한 토박이 씨앗을 서로 나눈다. 씨앗 담긴 편지 주고받기도 한다. 어느 땅 누구 품에서 자란 생명인지 새겨둔다. 씨앗에 깃든 하늘 땅 사람 모든 정성을 나누는 생명살림 잔치다.


작은 씨앗이 봄기운 오른 마을을 설레게 하고, 배움터들을 깨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마을초등학교, 생동중학교, 삼일학림이 열린다. 새싹 움트듯 마을 곳곳 배움이 움튼다. 마을 이모삼촌들이 선생님 되고, 마을 곳곳이 배움터 되어 온 마을이 자란다. 씨앗 한 톨에 온 생명 정성이 담기듯 한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데 온 마을이 함께 한다. 생명이 움트고 자라는 때를 따라 잔치가 이어진다. 설날이면 함께 모여 새 삶을 위해 기도하고 조용히 경전 읽으며 논다. 눈 덮인 겨울 흙에 봄기운 자라듯, 고요함 속에 힘차게 꿈틀거리는 설 잔치다. ‘밝은누리는 그렇게 새해를 연다


지난 정월대보름 혼인잔치가 열렸다. 혼인을 앞두면 잔치 준비하는 모둠을 꾸린다. 앞서 혼인한 사람이 나서고, 원하는 몇 사람과 신랑신부가 함께 한다. 잔치에 필요한 모든 걸 얘기하고 준비한다. 신랑신부가 바라는 것, 지난 잔치 좋았던 점,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고 뛰어드는 사람들 열정이 어우러져 신명나는 마을잔치를 만든다. 때마다 새롭다. 마을밥상에서 먹을거리 준비하고, 마을학교와 서원, 어린이집 등 모이기 좋은 마을 곳곳에서 잔치밥상 나눈다. 돌이 되면 떡 나누고 마을밥상이나 찻집에 모여 축하한다. 마을 이모삼촌들이 공연하고 정성껏 만든 선물 나눈다. 동짓날 팥죽 쑤어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나누며 논다


이사도 잔치가 된다. 힘 모아 청소하고 짐 옮기며 같이 먹고 논다. 집 지을 때도 잔치는 이어진다. 일손이 많이 드는 흙일에는 함께 흙벽 치며 논다. 살림터, 배움터, 일터, 마을 곳곳이 잔치마당이 된다. 돈 주고 사는 잔치가 아니다. 정성 모아 만드는 마을잔치다


노동과 쉼이 나뉘고 상품화 되면, 돈 없이는 쉬지도 놀지도 못한다. 휴일마다 꽉 막힌 고속도로, 놀고 와서 시달리는 월요병. 피곤하지만, 떠나고 본다. 탈출하고 싶은 삶이다. 그조차 자기 욕망이 아니다. 자본이 조장한 욕망이다. 일하든 놀든 자기를 잃는다. 돈에 더 짓눌리고, 쉬어도 피곤하고 공허하다. 길과 집이 만나는 곳에 마당이 있다. 마을마당에서 너와 나는 우리 되어 논다. 다른 어느 곳이 아니라, 일과 쉼, 살림과 놀이가 어우러지는 마당에서 잔치를 벌인다. 쉼과 놀이로 치장된 상품을 구매하느라 허덕이지 않고, 삶터 안마당에서 어울려 놀며 새로움을 만들어 간다면, 이미 복 받은 삶이다


함께 잘 노는 것은 활력을 주고, 생명을 살린다. 역사 마당에서 벌이는 참된 혁명은 일과 쉼, 살림과 놀이가 하나 되어 잔치로 사는 삶이다. 촛불은 분노를 아름다운 놀이로 꽃피운 한판 잔치다.

관찰만 하지 말고 직접 뛰어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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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유형 -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 
           두 번 째 
 

5유형에니어그램도형.jpg

핵심동기 : 지식
자신의 시각 : 탐구, 수집, 객관적
타인의 시각 : 관찰, 인색, 냉정



5유형은 누구와도 전념하는 관계를 갖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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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유형은 자신의 이상 세계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누구와도 전념하는 인간관계를 잘 갖지 않습니다. 비즈니스 영역 틀안에서 관계를 맺지요. 이들은 사적인 얘기로 다가오는 경우를 매우 당황스러워 합니다.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5유형 자신도 개인적 고민, 가족사 등 사적인 얘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사생활 공개를 꺼리는 5유형은 관념적이고 지적인 수준에서 친구를 사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두 명의 친구로 충분하며, 주제 없이 수다만 떠는 만남을 싫어합니다. 따분하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례 1>반상회, 동창회, 학부모 모임 등 불출석


이들은 인간관계를 최대한 복잡하게 얽히지 않으려고 합니다. 관계에서 상대와 단절을 해도 별로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정을 유지하고 지속하기가 어렵지요. 하지만 5유형의 속마음은 타인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한 데서 오는 공허감과 외톨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지나칠 때 관계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자신은 우월하고 이성적이라 생각하나,
타인에게는 차갑고 고립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요.


5유형은 삶과 관계에서 관찰자의 위치를 선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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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유형은 인간관계에서 거리를 두는 관찰자의 위치를 선호합니다. 거리두기가 습관화 되어 있지요. 이러한 것을 ‘감정적 후퇴’라고 하는데 객관적 사고에 방해가 될까봐 거리를 두는 후퇴지요. 5유형은 감정에 흔들리면 판단력과 사고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감정까지도 가슴이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서 합니다.


5유형처럼 4유형도 ‘거리두기’가 있습니다. 5유형과 4유형의 <거리두기>의 차이점은 이렇습니다. 4유형이 감정을 깊이 느끼기 위한 것이라면, 5유형은 이성적 판단을 위해서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거리두기입니다.


5유형은 상대방을 알고 싶으면서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습니다. 주로 들어 주는 편이지요. 편견 없이 편안하게 수용하지만 상대방의 감정까지 고려하지는 않습니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신체적 접촉도 방해 요소이기 때문에 싫어합니다.


사례 2> 연인 관계라면? :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도 살짝 떨어져 앉는다.
           친구 사이 : 5유형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러 온 친구가 공감대 형성이 느껴지지 않아

                          괜히 만났다는 후회와 상처를 받고 돌아간다.


이들은 그룹 안에서도 견해가 다르거나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고 생각되면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 하지요. 스스로 움츠리거나 단체로부터 이탈합니다.


바라보기.jpg
5유형은 인생의 여러 상황에서도 중심에 있기 보다는 사태에 끼어들지 않고 주시합니다. 이들은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치거나 해결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5유형은 행동을 취하기 전에 사고를 통해 정의되고 확인되어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지나칠 때 관계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자신은 통찰력과 자제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타인에게는 소극적인 사람, 인생의 방관자로 비춰집니다.


한마디 코너:
머릿속에서 사고만 하는 것은 노!
삶도 관계도 아는 것, 깨달은 것, 논리만으로는 아주 부족합니다.
직접 참여하여 경험해야지만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예뻐야 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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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 라셰즈. 얼핏 아기자기한 빵집을 연상케 하는 달콤한 이름을 가진 이 공동묘지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나는 도무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서울과 그 어느 한구석도 닮지 않은 도시가 파리지만, 공동묘지의 풍경은 다름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여긴, 죽는 순간까지 예뻐야 하는 거야?"이 말이 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망자의 삶이 누려온 색깔과 남겨진 자들의 망자에 대한 애틋함을 저마다의 미감을 담아 반영해야 하는 것이 이 나라 묘지의 사명인 듯, 온 힘을 다해 망자의 살아생전 모습을, 그의 개성과 남달랐던 삶을 담아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같은 무덤은 하나도 없다. 그들의 삶이 모두 달랐던 것처럼. 어떤 무덤은 익살맞고, 어떤 무덤은 정갈하며, 어떤 무덤은 심지어 포스트모던하다. 무덤을 꾸미는 것은 산자들의 몫이고, 사람이 죽고 무덤이 만들어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지극히 짧건만 죽은 자들의 개성과 미감을 담고 있는 묘지들이 자아내는 경이는, 그 어떤 세상의 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프랑스라는 사회의 인류학적인 미감을 드러내주는 가장 풍요롭고 흥미진진한 박물관이었다. 그것은 흡사 죽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 같았다.


<당신에게, 파리>(목수정 지음, 꿈의지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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