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명장면】호련(瑚璉)을 위하여
子貢問曰 賜也何如 子曰 女器也 曰 何器也 曰 瑚璉也
자공문왈 사야하여 자왈 여기야 왈 하기야 왈 호련야
자공이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선생님께서 “너는 그릇이다” 하셨다.
“어떤 그릇입니까?” 라고 다시 묻자, “호련이다” 라고 대답하셨다.
-‘공야장’편 3장
1. 6년동안 스승의 무덤을 지키다
증자(曾子)와 자사(子思)①의 학통을 이어받아 유가를 중흥시킨 맹자(孟子)는 조종 공자의 3년상이 끝나던 날의 풍경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옛날에 공자가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나서 제자들이 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갈 때 자공에게 들어가 읍하고 서로 마주 보며 곡하기를 목이 쉬도록 한 뒤에야 돌아갔다. 그리고 자공은 공자의 무덤에 돌아와 집을 짓고 혼자서 3년을 지낸 뒤에 돌아갔다. (昔者 孔子沒 三年之外 門人 治任將歸 入揖於子貢 相嚮而哭 皆失聲然後 歸. 子貢 反築室於場 獨居三年然後 歸) -<맹자> ‘등문공 상’편.
선생님이 열국을 주유하실 때 짐꾼으로 공문(孔門)에 들어왔던 나, 이생 또한 그날의 작별을 잊을 수 없다. 흰머리의 1세대 제자들은 어쩌면 살아서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이별을 나누느라 눈물바람이었다. 이들은 스승의 무덤에 술을 올린 뒤 이제 막 마흔다섯살에 접어든 후배 자공을 찾아가 감사의 예를 갖추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선배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자공은 여막(廬幕)에 앉아 탈상(脫喪)을 마무리하느라 분주한 젊은 후배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 공문의 미래는 저 후생(後生)들에게 달려 있겠지?’
이튿날 자공은 문도들의 여막을 걷고 그 자리에 집을 한채 짓기 시작했다. 곡부에는 위나라 사람 자공이 3년의 시묘살이를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이 곧 퍼졌다. 어느 날 벌초를 하러 간 차에 자공을 만난 나는 물었다.
“시묘를 다시 하는 까닭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자공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주지 않았다. 나도 더는 묻지 않았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르자 자공의 ‘독거 3년’에 대한 의문은 저절로 풀렸다. 자공은 단지 스승의 무덤을 지키려고 남은 것이 아니었다. 자공의 보이지 않는 재정 지원 속에 공문은 스승 공자가 한창 교육에 열중하던 때의 활기를 되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내 뇌리를 스치고 간 것은 언젠가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공과 나누었던 대화다.
공자는 자로(子路)가 죽은 뒤 부쩍 말을 잃고 있었다. 슬픔에 빠진 스승을 위로하기 위해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니 어리석은 저희들은 갈 바를 모르겠습니다.” 공자가 희미하게 웃으신 뒤 하늘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사야,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장하는데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양화’편 19장②
오늘 내가 죽간에 남길 이야기는 자공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다. 위나라 태생으로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공자보다 31살 아래다.
*자공시묘처. 공자의 무덤이 있는 중국 산동성 곡부(취푸)의 공자무덤 곁에 만들어놓은 자공의 여막.
자공은 죽어서도 수천년을 스승 곁에 있다.
2. 탁월한 이재가(理財家)
자공은 공자의 70여 제자 중에 가장 부자였다.
“자공은 사두마차를 타고 기마 행렬을 거느리며 비단을 폐백으로 들고 제후들을 찾아가므로 가는 곳마다 왕들이 몸소 뜰까지 내려와 대등한 예로 맞이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 정도는 훗날의 일이지만 공자 생전에도 자공은 부유하고 유능한 외교가로서 국제적인 명사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노나라와 조나라 사이에서 물자를 쌓아두기도 하고 팔기도 하여 재산을 모았다”고 전해지는 걸 보면 자공은 외교관이란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부를 쌓은 듯하다. 그가 이익을 남기는 방법은 주로 시세차익이었다. 이재(理財)의 요체는 모아들일 때와 풀 때, 살 때와 팔 때의 시리(時利)를 아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도 큰돈을 번 사람은 “시기를 보고 나아가는 데는 마치 사나운 짐승이나 새처럼 재빠르다”는 소리를 듣는 부류였다.
“낙양 땅에 거만(巨萬)의 부를 모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시세차익 얻는 방법은 하도 절묘하여 마치 자연의 이치에 몸을 맡긴 듯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배우고 싶어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임기응변하는 지혜가 없는 사람, 결단할 용기가 부족한 사람, 주고받는 인(仁)을 모르는 사람,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배우고 싶다고 애걸해도 나는 가르쳐 줄 마음이 없다.” 어쩌면 자공은 내공이 깊은 거상으로부터 따로 상술을 배웠는지 모른다.
자공은 본래 빈한한 사족 출신이었다. 가난했던 그의 아버지는 자공의 총명에 모든 것을 걸었다. 아들의 입신출세를 통해 집안을 일으켜보고자 하였다. 자공의 부모는 주변의 살 만한 친척이나 세력가를 찾아다니며 온갖 비굴한 아첨을 하며 자공의 학비를 얻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교만한 졸부에게 큰 수모를 당했는지, 자공의 아버지는 어린 자공을 앉혀놓고 다짐을 시켰다.
“너는 이 아비처럼 가난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조상 제사도 지낼 능력이 없고, 가족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지 못하며, 옷을 차려입고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하면서 이를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비할 데 없이 부끄러운 사람이다. 그럴 만한 철학도 없이 오랫동안 가난을 면치 못하면서도 입으로는 인의(仁義)를 떠벌리는 자는 더욱 부끄러운 자다. 대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할 것 같으면 장사를 하여 가난만은 꼭 면하거라.” -이상 <사기> ‘화식열전’을 인용하여 구성③
3. 인자(仁者)와 소봉(素封)
자공이 공문에 들어온 것은 공자가 50대에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가 활약할 때였다. 청년 자공은 훗날 후배 자장이 그랬던 것처럼 “벼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學干祿 -‘위정’편 18장) 공자를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총명한 자공은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언변이 뛰어나고 행동이 민첩한데다 배우려는 의지도 높아 스승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자긍심이 지나칠 때도 있어서 공자는 평소 자공을 엄격하게 대할 때가 많았다. 어느 연찬에서 자공이 “나는 남이 나에게 가하기를 원치 않는 일을 나도 남에게 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 일갈했다. “사야, 아직 너는 그런 경지가 아니다.”(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공야장’편 11장④)
자공이 돈을 벌러 공문을 잠시 떠나기 전에 공자를 찾아뵈었다.
“선생님, 저는 가난하여 부모님이 수모를 겪는 것을 숱하게 보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힘써 부를 이뤄 먼저 부모를 봉양하고 다음에 널리 재물을 풀어 빈자들을 구제한다면 인(仁)하지 않겠습니까?”
“사야, 그것이 어찌 인을 행하는 것일 뿐이겠느냐? 반드시 성인이리라. 요순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무릇 인자(仁者)는 자신이 서고자 함에 남도 서게 하며, 자신이 통달하고자 함에 남도 통달하게 하는 것이다. 네가 비록 아직 배움이 부족하다 하나 너 자신의 바람에서 시작하여 널리 어려운 이를 구제하는 길을 찾아서 나아간다면 어찌 인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라고 하겠느냐?”(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有聖乎 堯舜 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옹야’편 28장⑤)
자공이 길을 떠나기 전에 한 동무에게 털어놓은 포부가 한때 공문의 제자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관직이 높아 봉록을 받은 바 없고, 작위에 봉해져 식읍(食邑·귀족이나 공신에게 하사되는 토지 등 재산)을 가진 바도 없는 평민이면서 제후와 같은 삶을 사는 자를 일컬어 소봉(素封⑥·<사기>‘화식열전’)이라고 한다지? 선생님과 같은 인자(仁者)에 미치지 못할 바엔 소봉이 되는 것은 어떨까? 인자가 세상을 대동(大同⑦)으로 이끌고자 할 때 괜찮은 소봉이 한 사람이라도 더 있다면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4.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공자도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여 부자가 된 자공의 이재를 평가해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회(回·안연)는 도(道)에 가까웠으나 가난했다. 사는 천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화를 늘렸다. 그의 예측은 곧잘 들어맞았다.”(子曰 回也 其庶乎 屢空. 賜 不受命 而貨殖焉 億則屢中. -‘선진’편 18장⑧) 스승을 무한 존경한 자공은 공문의 일원으로서 품격을 의식했다. 그는 자주 재물을 풀어 빈민을 구제하였는데, 포로로 잡혀간 노나라 백성을 송환할 때 막대한 몸값을 나라 대신에 지불한 일(유향, <설원>)이 가장 유명했다.
그러나 자공의 부(富)는 질시도 불러왔다.
‘공자의 제자라는 자가 속되게 돈이나 만지고. 그러면서 입으로는 인의를 말하다니. 치부(致富)와 인(仁)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니(爲富不仁矣 爲仁不富矣-<맹자> ‘등문공 상’편) 자공은 위선자에 불과하다.’
위나라에 극자성이라는 대부가 있었다. 그 역시 자공을 위선적인 인물이라고 보았다.
“군자는 오직 질(質)이니, 문(文)을 어디에 쓰겠는가?” 군자는 바탕(자질)이 훌륭하면 그만이지 겉으로 꾸미는 일이 무엇이 중요하냐며 출세한 자공의 위의(威儀)를 깎아내린 것이다. 극자성의 말을 전해들은 자공은 지인들에게 자신을 변호했다. “부자(극자성)가 무얼 말하고 싶은지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선생님께서도 문질빈빈(文質彬彬 -‘옹야’편 16장)이라 하셨습니다.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에 털이 없다면, 개나 양의 털 없는 가죽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棘子成曰 君子 質而已矣 何以文爲. 子貢曰 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곽(革+郭) 猶犬羊之곽. -‘안연’편 8장⑨)
자공은 이처럼 능변으로 자신을 방어해 냈지만, 질시에 사로잡힌 동문들의 비판과 폄훼는 그의 가슴을 쓰라리게 했다. 어느 날 자공은 인물평 좋아하기로 자신과 쌍벽을 이루는 스승 공자와 함께 여러 정치인들의 됨됨이에 대해 논평하다가 문득 진정한 선인(善人)에 대해 물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대한 스승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한 고을 사람이 다 좋다고 하면 좋은 사람입니까?” “꼭 그렇지는 않겠지.” “다 싫어하는 사람이면 어떻습니까?” “역시 그렇다고 할 수 없겠지. 그 고을의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그 고을의 악한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만 못하다.”(子貢 問曰鄕人 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 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자로’편 24장⑩)
자공은 스승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렇지. 내 속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역시 선생님이로구나.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너무 안달하지 말자. 좋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나쁜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시지 않은가?’
위안이 필요할 때 공자는 자공의 진정한 위안처였다. 내친 김에 아예 대놓고 물었다.
“가난했을 때는 아첨하지 않았고, 부자가 되어서는 교만하지 않았으니 (저 자공도)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이지요? ”
“괜찮다마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지 않겠느냐?”
자공의 얼굴에 잠깐 실망의 빛이 도는가 싶더니 순간 도를 깨우친 사람처럼 눈빛을 반짝이며 외쳤다.
“<시경>에 이르기를 ‘잘라놓은(切) 듯하며, 다시 그것을 간(磋) 듯하며, 쪼아놓은(琢) 듯하며, 다시 그걸 간(磨) 듯하다’고 하더니 지금 선생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신 거군요!”
공자 역시 반짝이는 눈빛으로 화답했다.
“사야! 네가 이제 더불어 시를 논할 수준까지 되었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주니 올 것을 아니 말이다.”(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학이’편 15장⑪)
아첨도 교만도 없는 경지라 하더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면 빈부의 의식조차 초월하는 도의 경지가 열림을 두 사람은 이심전심(以心傳心)했던 것이리라. 공자와 자공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공문 최고의 교육 파트너였다.
*만인궁장. 공묘 입구 성문에는 `만인궁장'이라는 자공의 말을 현판으로 쓰고 있다.
만인궁장은 `공자의 덕은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궁전의 담장과 같다'는 뜻이다.
<논어>자장편 23장에 나온다.
5. 가을볕에 말린 것처럼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려보자. 문인들이 자공에게 읍하고 자공이 3년을 더 스승의 무덤을 지켰다는 사실은 당시 자공이 공자의 상례를 주도하였고, 공자학당의 기반을 중수(重修)했음을 시사한다. 재정을 지원했고, 선배들로 하여금 위계를 세우도록 했고, 후배들에게는 학문을 격려했다. 자공 자신은 언제나 배후의 그림자였다. 자공이 진실로 원한 것은 스승의 도가 만세에 전해지는 것이었다. 언젠가 자공이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인의를 말하기엔 부족한 사람이다. 정치임을 내세워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서로 어긋나는 말을 일삼았다. 부를 쌓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원망을 외면했다. 군자의 과오는 일식과 월식 같아서 천하에 숨길 곳이 없다.(子貢曰 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 -‘자장’편 21장⑫) 선생님의 도는 진심으로 선생님의 도를 따르고 실천하고자 한 자가 전해야 한다.”
자공에게 스승은 대체 불가능한 지존이었다.
“선생님은 해와 달 같은 분이시다. 무슨 말로 폄훼한들 그것이 해와 달에게 어떤 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선생님께 미치지 못함은 마치 사다리로 하늘을 오르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仲尼 日月也 無得而踰焉 人雖欲自絶 其何傷於日月乎 多見其不知量也. 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 -‘자장’편 24, 25장⑬)
훗날 일부 제자들이 용모가 공자와 비슷한 유약(有若·공자보다 36살 아래로 <논어>에 유자(有子)로 등장한다)을 공문의 2대 교주로 추대하려 하였을 때 이를 끝까지 거부하여 무산시킨 사람이 증참(曾參·증자)이었다. 증참은 공문의 막내 세대로서 제자들 중에 가장 둔재라는 평을 들은 사람이다. 지둔한 그가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물리치고 공자의 학통을 수호·계승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 이생은 그 원천을 자공에게서 찾는다. 증자의 우직한 굳셈은 ‘대선배’ 자공의 스승의 대한 지극한 존경에 그 뿌리를 대고 있었을 것이다. 증자의 학통을 이은 맹자는 어쩌면 이런 정황을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맹자가 자공의 ‘시묘 6년’의 경위를 전하면서 증자가 공자의 도를 지켜낸 일화를 곁들여 기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후일에 자하, 자장, 자유가 유약이 성인을 닮았다고 해서 공자를 섬기던 것같이 그를 섬기려 하였고 증자에게도 이를 강요하자 증자가 말했다. “불가하오. 공자의 덕은 강물에 빨고 가을볕에 바랜 것 같이 희고 희어서 더 보탤 수가 없는 것이외다.”(他日 子夏子張子游以有若似聖人 欲以所事孔子 事之 彊曾子 曾子曰 不可 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호(白+高)호乎不可尙已 )-<맹자> ‘등문공 상’편.
어디선가 많이 들은 듯한 비유법이 아닌가? 맹자가 전한 증자의 말에서 나는 더욱 더 자공의 그림자를 느낀곤 한다.
6. 폭리(幅利)와 폭리(暴利)
사마천은 “대체로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자공이 공자를 모시며 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공은 자신의 부와 명성을 활용하여 스승을 지극히 받들었고, 스승이 죽은 뒤에는 공문의 위대한 후원자가 되었다. 그러나 부와 명예를 붙들고 있을수록 정작 그가 원했던 군자의 이름은 그로부터 멀어져갔다.
위나라 재상이 된 자공이 어느 날 원헌이 사는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옛 친구의 집을 찾아 들어갔다. 원헌은 공자가 죽은 뒤 술지게미나 쌀겨조차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오랜만에 원헌의 얼굴을 본 자공은 깜짝 놀랐다. “자네 어디 병든 게 아닌가?” 원헌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형,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병들었다고 합니다. 난 가난하지만 병든 것은 아니라오.” 자공은 원헌의 말에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친구를 걱정한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원헌이 야속하기도 했다. 잠시 머물다 원헌의 집을 나온 자공은 죽을 때까지 이날의 일을 가슴 아프게 여겼다고 한다. -<사기> ‘중니제자열전’, <장자> 잡편
자공의 말년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증참이 증자로 높여지고, 자사가 할아버지 공자의 곁에 나란히 묻히는 동안 자공의 이름은 가을볕에 바래고 흐려진 흔적처럼 잊혀졌다. 누군가는 말했다. “증자가 공자의 계승자가 되는 순간 자공의 역할도 끝난 겁니다. 학문의 정통성엔 돈냄새가 필요 없지요.” 또 누군가는 말했다. “증자는 만각(晩覺)하였기에 공자의 도를 준칙정론(準則定論)할 수 있었지만, 자공은 지나치게 출중하여 벼슬살이를 오래하는 바람에 증자처럼 자신의 제자를 양성하지 못한 탓”(최술, <수사고신여록>)이라고. 어느 쪽이 맞는 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길 뿐이다.
자공은 공자가 죽은 뒤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에서 살다가 제나라에서 죽었다. 어쩌면 그의 말년은 고향에서 배척받은 사람에게서 풍기는 쓸쓸함이 짙게 드리워 있었을지 모른다.
여보게 이생, 자네는 폭리(幅利)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무릇 부란 옷감에 폭이 정해진 것과 같아야 한다네.(夫富 如布帛之有幅焉 -<좌전>노양공 28년⑭) 사람은 누구나 부유하길 원하므로 정덕(正德)으로 그 욕망을 제한해야 하는데 이를 일러 폭리(幅利)를 지킨다고 하지. 나는 폭리(幅利)로 폭리(暴利)를 물리친 부자로 기록되고 싶었다네.
*곡부 대성전.곡부 공묘의 대성전 앞에서 열리고 있는 제례의 모습이다.
7. 호련을 위하여
일찍이 공자는 자공을 일러 그릇이라고 했다. 군자는 불기(君子不器;군자는 그릇처럼 제한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위정’편 12장⑮)라, 자공의 치부(致富)는 군자가 되기엔 부족한 무엇이었으나 타인의 부족함을 채우기엔 넉넉했다. 그런 그릇이 되라는 스승의 격려는 군자의 꿈을 이루지 못한 자의 비애이자 영광이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릇이어선 안 된다.”(君子不器)
“저는 어떻습니까?”
“너는 그릇이다.”
“…어떤 그릇입니까?”
“호련(瑚璉)이다.”⑮
당시에 호(瑚)와 련(璉)은 제사에서 쓰이는 그릇 중에 가장 크고 아름다운 그릇이었다.
<원문 보기> *<논어명장면>은 소설 형식을 취하다 보니 글쓴 이의 상상력이 불가피하게 개입되었다.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논어를 새롭게 해석해보자는 글쓴 이의 취지를 살리면서 동시에 독자들의 주체적이고 다양한 해석을 돕기 위해 원문을 글 말미에 소개한다. 소설 이상의 깊이 있는 논어읽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014년 11월호 연재부터 <논어> 원문보기 한글 번역본을 교체한다. 새로 선택한 번역본은 <논어정의>(이재호 정해,솔)와 <한글세대가 본 논어>(배병삼 주석, 문학동네)이다. 표기는 이(논어정의)와 배(한글세대가 본 논어)로 한다. 교체 이유는 전적으로 좋은 번역본을 좀 더 많이 소개하고픈 개인적 바람 때문이다. 두 권을 고른 것도 오로지 필자 임의의 선택이다. 이재호(94)는 원로사학자이며, 배병삼(55)은 현직 교수이다. 2012년 첫 연재부터 2년동안 부족한 글쓴이를 안내해 준 <논어집주>(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편)와 <안티쿠스 클래식6-논어>(한필훈 옮김)두 번역본에 감사를 드린다. 이밖에 다른 번역본을 인용할 때는 별도로 출처를 밝힐 것이다. 영문 L은 영역본 표시이다. 한문보다 영어가 더 익숙한 분들의 논어 이해를 추가하였다. 영역 논어는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 중국명 理雅各)본을 사용하였다. 필자의 지우 이택용 박사가 본인이 제작한 프린트 책자를 선물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감사드린다. ***<논어>는 편명만 표시하고, 그 외의 문헌은 책명을 밝혔다.
① 자사(子思·BC 483? ~ BC 402?) 공자의 손자로 이름은 이름 급(伋)이며 자사는 자(字)이다. 유교 4서의 하나인 <중용>(中庸)의 저자로 전한다. 증자 (曾子)로부터 배워 공자의 학통을 이었다. 맹자는 자사 학파의 문하이다.
②양화편 19장 子曰 予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공이 말하였다. “스승님께서 만일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면, 저희들은 어떻게 도덕을 기술하겠습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춘하추동의 사시가 운행하며, 대자연의 운행에 따라 만물이 생장하고 있으니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나, 말하지 않으련다. 자공이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면, 저희는 무엇을 전할 수 있으리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하느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사철을 움직이고, 만물을 낳아도 하느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L-The Master said, "I would prefer not speaking." Tsze-kung said, "If you, Master, do not speak, what shall we, your disciples, have to record?" The Master said, "Does Heaven speak? The four seasons pursue their courses, and all things are continually being produced, but does Heaven say anything?"
③<사기> ‘화식열전’(김원중 옮김) <사기> 열전 중의 하나. 춘추말기에서 한나라 초기까지 상공업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화(貨)는 재화, 식(殖)은 증식을 뜻하므로, 화식열전은 재산을 늘이는 방법을 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당시 상공업의 실상을 엿볼수 있는 기록인 동시에 재산이 없어 보석금을 내지 못해 궁형을 당한 사마천의 한(恨)을 느껴볼 수 있기도 하다. 자공 집안에 대한 이야기는 글쓴이의 상상력이 가미되었다.
④공야장편 11장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이-자공이 말하기를 “저는 남이 나에게 업신여기고 싶지 않는 일을, 저도 남에게 업신여김을 행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하니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야, 이 일은 네가 미칠 바가 아닌 것이다.” 배-자공이 말하였다. 남이 저를 업신여기는 걸 바라지 않듯, 저 또한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자 합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얘야, 네가 미칠 바가 아니니라. L-Tsze-kung said, "What I do not wish men to do to me, I also wish not to do to men." The Master said, "Ts’ze, you have not attained to that."
⑤ 옹야’편 28장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有聖乎 堯舜 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이-자공이 말하였다. “만일 백성들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인하다고 일컬을 수 있겠습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에만 그치겠느냐? 반드시 성인의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옛 성군이신) 요제와 순제께서도 그 일은 오히려 어렵게 여기셨다. 대체로 인한 사람은 자신이 입신하려 하면, 다른 사람도 입신하도록 하고, 자신이 통달하려 한다면 다른 사람도 통달하도록 한다. 가까운 데에서 비유를 취해 실천한다면, 인을 행하는 방법이라 일컬을 수 있다.” 배-자공이 여쭈었다. 만일 널리 백성들에게 베풀고 능숙하게 무리를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인이라 이를 수 있을는지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어찌 인이기만 하랴, 반드시 성(聖)이라 해야겠지! 요순도 그걸(못해) 병통으로 여기셨는걸. 대저 인이란 제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제가 알고 싶으면 남도 깨우쳐 주는 것이지. 주변에서 능숙히 비유를 취할 수 있다면, 인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게야. L-Tsze-kung said, "Suppose the case of a man extensively conferring benefits on the people, and able to assist all, what would you say of him? Might he be called perfectly virtuous?" The Master said, "Why speak only of virtue in connexion with him? Must he not have the qualities of a sage? Even Yao and Shun were still solicitous about this. Now the man of perfect virtue, wishing to be established himself, seeks also to establish others; wishing to be enlarged himself, he seeks also to enlarge others. To be able to judge of others by what is nigh in ourselves;- this may be called the art of virtue."
⑥소봉(素封) 천자(天子)로부터 받은 봉토(封土)는 없으나 재산이 많아 제후와 비할만한 큰 부자.(<한국고전용어사전>) 같은 방식으로 왕에 비할만한 사람을 소왕(素王)이라 한다. 후세에 공자가 소왕으로 추앙되었다.
⑦대동(大同) <예기> ‘예운’편에 공자의 말로 등장하는 유가 최고의 이상사회. 그러나 근래에는 대동 사상이 유가가 노자 사상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유가로 흡수한 사상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청나라 말기 유학자 강유위 등의 공양학파가 중국 고유의 체계적인 이상 사회이론으로 재조명하였다.
⑧선진편 18장 子曰 回也 其庶乎 屢空. 賜 不受命 而貨殖焉 億則屢中 이-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안회는 (학문은) 도에 가까우나 (생활은) 자주 끼니를 굶는 편이다. 사는 명운을 받지 않고서도 재물을 늘렸으며, 억측하면 (그 말이) 자주 맞는 편이다.” 배-선생님 말씀하시다. 회는 거의 다 된 사람인데, 쌀독은 자주 비었더니. 자공은 전업으로 삼지 않았어도 재산을 잘 길렀고, 억측하여도 자주 적중하더니라. L-The Master said, "There is Hui! He has nearly attained to perfect virtue. He is often in want. Ts‘ze does not acquiesce in the appointments of Heaven, and his goods are increased by him. Yet his judgments are often correct."
⑨안연편 8장 棘子成曰 君子 質而已矣 何以文爲. 子貢曰 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곽(革+郭) 猶犬羊之곽 이-극자성이 말하였다. “군자는 바탕(實質)만 튼튼하면 그만인데, 무엇때문에 무늬(文華)로 꾸미려고 하는가?” (이 말을 듣고) 자공이 말하였다. “애석하구나. 당신이 군자에 대해 말한 것은 (너무 빨라서) 달리는 사마(駟馬)도 당신의 혓바닥(말)을 따라 잡을 수가 없도다. 무늬도 바탕과 같으며, 바탕도 무늬와 같으니, 범과 표범의 털을 뽑은 가죽은 개와 양의 털을 뽑은 가죽과 같은 것이다.” 배-극자성이 말했다. 군자는 바탕만으로 족해. 문채 따위를 얻다 쓴단 말이야? 자공이 말하였다. 아깝구나, 그 양반의 ‘군자론’이여! 네 필의 말이 끄는 마차도 혀를 따르지는 못하는 법. 문채는 바탕과 같고 바탕은 문채와 같나니. 호랑이와 표범의 속가죽은 개나 양의 속가죽과 다르지 않을 터. L-Chi Tsze-ch‘ang said, "In a superior man it is only the substantial qualities which are wanted;- why should we seek for ornamental accomplishments?" Tsze-kung said, ’Alas! Your words, sir, show you to be a superior man, but four horses cannot overtake the tongue. Ornament is as substance; substance is as ornament. The hide of a tiger or a leopard stripped of its hair, is like the hide of a dog or a goat stripped of its hair."
⑩자로편 24장 子貢 問曰鄕人 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 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이-자공이 물었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저를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옳지 못한 일이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저를 미워하면 어떻습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그것도 옳지 못한 일이다. 고을 사람들 중 착한 사람은 나를 좋아하고, 착하지 못한 사람은 나를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 배-자공이 여쭈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충분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이 다 싫어하면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충분하지않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선한 자가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자가 싫어함만 못하느니. L-Tsze-kung asked, saying, "What do you say of a man who is loved by all the people of his neighborhood?" The Master replied, "We may not for that accord our approval of him.""And what do you say of him who is hated by all the people of his neighborhood?" The Master said, "We may not for that conclude that he is bad. It is better than either of these cases that the good in the neighborhood love him, and the bad hate him."
⑪학이편 15장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이-자공이 말하였다. “가난하여도 (부유한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으며, 부유하여도 (가난한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이나, 가난하여도 (정도를) 즐겨 지키고 부유하여도 예의 행하기를 좋아하는 것만 못한 편이다.” 자공이 말하였다. “<시경>에 ‘칼로 자른 듯이 하고 줄칼로 쓸 듯이 하며, 정으로 쪼은 듯이 하고 쇠로 간 듯이 한다’ 하였으니, 그 시는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입니까.”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사야말로 함께 <시경>을 해석해 말할 만하구나. 지나간 것을 알려주었더니 닥쳐올 것까지 아는구나.” 배- 자공이 말하였다. 가난하지만 알랑대지 않고, 넉넉하지만 뽐내지 않는 건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쁘진 않지. (하지만) 가난해도 즐기고, 넉넉해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지. 자공이 말했다. 시에 “자르고 쓸고 쪼고 갈듯이 한다”더니 그게 이 말씀이로군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녀석! 이제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지난 걸 퉁겨주니깐 올 걸 알아채는구먼. L-Tsze-kung said, "What do you pronounce concerning the poor man who yet does not flatter, and the rich man who is not proud?" The Master replied, "They will do; but they are not equal to him, who, though poor, is yet cheerful, and to him, who, though rich, loves the rules of propriety." Tsze-kung replied, "It is said in the Book of Poetry, ‘As you cut and then file, as you carve and then polish.’- The meaning is the same, I apprehend, as that which you have just expressed." The Master said, "With one like Ts’ze, I can begin to talk about the odes. I told him one point, and he knew its proper sequence."
⑫자장편 21장 子貢曰 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 過也 人皆見之 更也 人皆仰之 이- 자공이 말하였다. “군자의 과실은 일시과 월식과 같기 때문에, 과실을 범할 적에는 사람들이 모두 이를 볼 수가 있고, 과실을 고칠 적에는 사람들이 모두 이를 우러러 보게 된다.” 배-자공이 말하였다. 군자의 허물은 마치 일식이나 월식과 같을 진저. 허물을 저지르면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허물을) 고치면 또 사람들이 다 우러러 보나니. L-Tsze-kung said, "The faults of the superior man are like the eclipses of the sun and moon. He has his faults, and all men see them; he changes again, and all men look up to him."
⑬자장편 24, 25장 叔孫武叔 毁仲尼 子貢曰 無以爲也 仲尼 不可毁也. 他人之賢者 丘陵也 猶可踰也 仲尼 日月也 無得而踰焉 人雖欲自絶 其何傷於日月乎 多見其不知量也.(24장) 이-숙손무숙이 중니를 헐뜯으니 자공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 짓을 하지 마십시오. 중니는 헐뜯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어질다는 것은 언덕만한 것이므로 그래도 넘을 수가 있지만, 중니는 해와 달과 같은 분이므로 넘을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인연을 끊으려고 하더라도, 그들이 해와 달에게 무슨 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자기의 역량(분수)을 알지 못함을 보일 뿐입니다.” 배-숙손무숙이 공자를 헐뜯었다. 자공이 말하였다. 아서라! 공자는 헐뜯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지성이 언덕이어서 넘나들 수 있다면, 공자는 해나 달이어서 넘나들 수가 없다. 사람들이 제아무리 끊어내려고 한들, 해와 달을 어찌 흠집내리오? 제 깜냥조차 헤아리지 못함을 널리 드러내는 꼴이지! L-Shu-sun Wu-shu having spoken revilingly of Chung-ni, Tsze-kung said, "It is of no use doing so. Chung-ni cannot be reviled. The talents and virtue of other men are hillocks and mounds which may be stepped over. Chung-ni is the sun or moon, which it is not possible to step over. Although a man may wish to cut himself off from the sage, what harm can he do to the sun or moon? He only shows that he does not know his own capacity." 陳子禽 謂子貢曰 子爲恭也 仲尼豈賢於子乎. 子貢曰 君子一言 以爲知 一言 以爲不知 言不可不愼也. 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 夫子之得邦家者 所謂立之斯立 道之斯行 綏之斯來 動之斯和 其生也榮 其死也哀 如之何其可及也(25장) 이-진자금이 자공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가 (스승에게)공손해서 그렇지, 중니께서 어찌 그대보다 낫겠는가” 하니 자공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군자는 한마디 말에 지식인이 될 수도 있고, 한마디 말에 무지인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을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스승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은 마치 하늘을 사다리를 밟고 올라갈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승께서 나라에 지위를 얻게 되신다면, 이른바 백성들을 살게 하면 이에 살게 되고, 인도하면 이에 따르게 되고, 편안하게 해주면 이에 따르게 되고, 부추겨 용기가 생기게 하면 이에 화목하게 되어, 그가 살아계시면 백성들이 영광스럽게 여기고, 그가 돌아가시면 백성들이 슬퍼할 것이니 어떻게 그를 따라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배-진자금이 자공을 두고 말하였다. 그대는 펄쩍 뛰겠지만, 중니가 어디 당신만큼이야 지혜롭겠소? 자공이 말하였다. 군자란 한마디 말에 앎과 무지가 갈리는 법. 말은 삼가지 않을 수 없네. 우리 선생님께 닿을 수 없음은, 마치 하늘을 사다리로 오를 수 없는 것과 같다네. 우리 선생님이 나라를 얻으셨다면, ‘세우려 하니 스스로 서고, 이끌려 하니 스스로 행하고, 편안케 하니 스스로 몰려들며, 움직이게 하니 스스로 조화를 이룬다’는 말과 같았으리라. 그이, 살아서는 영예로웠으며, 그이, 죽음에 모두 슬퍼하였다. 어떻게 그 경지에 닿을 수 있을꼬! L-Ch‘an Tsze-ch’in, addressing Tsze-kung, said, "You are too modest. How can Chung-ni be said to be superior to you?" Tsze-kung said to him, "For one word a man is often deemed to be wise, and for one word he is often deemed to be foolish. We ought to be careful indeed in what we say. Our Master cannot be attained to, just in the same way as the heavens cannot be gone up to by the steps of a stair. Were our Master in the position of the ruler of a State or the chief of a Family, we should find verified the description which has been given of a sage’s rule:- he would plant the people, and forthwith they would be established; he would lead them on, and forthwith they would follow him; he would make them happy, and forthwith multitudes would resort to his dominions; he would stimulate them, and forthwith they would be harmonious. While he lived, he would be glorious. When he died, he would be bitterly lamented. How is it possible for him to be attained to?"
⑭폭리(幅利) <좌전>노양공 28년조에 나오는 안자의 말이다. 제나라에서 난리가 평정된 후 논공행상이 있을 때 안연이 식읍을 사절하자 다른 공신이 그 이유를 물었다. 안연은 절제되지 않은 재물욕은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화의 근원이 된다면서 “모든 재화는 비단의 폭처럼 그 (재화가 생겨난 도리에) 맞는 이익의 범위가 있다(夫富 如布帛之有幅焉)고 말한다.
⑮공야장편 3장 子貢問曰 賜也何如 子曰 女器也 曰 何器也 曰 瑚璉也 이-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쓸모가 있는 기구이니라.” “무슨 기구입니까?” 라고 하니, “종묘에 쓰는 제기인 호와 련이니라” 하셨다. 배-자공이 여쭈었다. 저는 어떤 사람인지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너는 그릇이니라. 어떤 그릇인지요? 말씀하시다. ‘제기 그릇’이니라. L-Tsze-kung asked, "What do you say of me, Ts’ze? The Master said, "You are a utensil.""What utensil?""A gemmed sacrificial uten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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