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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은 봄날엔 김교신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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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우리나라 젊은층의 절반이 ‘5포 세대’라고 한다. 2030세대들의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에서 ‘집 마련’과 ‘인간관계’마저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세대 졸업식장엔 ‘연대 나오면 모하냐, 백순데’라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요즘은 이른바 명문대와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과 지방의 의대까지 상류층으로 가는 통로는 부모의 힘이 뒷받침된 범털의 자녀들이 끼리끼리 차지해 개털들이 감히 넘보기 어렵다고 한다. 어쩌다 개천에서 이른바 ‘스카이대’에까지 튀어 올라도 범털과 개털이 다는 날개의 크기는 천양지차다.


 부와 빈곤의 대물림이 극대화하면서 ‘끼리끼리 온실’과는 다른 한데에 방치된 청년들은 봄마중마저 포기한다. 그들에겐 어느 시구대로 ‘개 같은 봄날’이다.


 한 고승은 ‘봄을 찾아 온 산을 헤매다 지쳐 돌아오니 내 집 마당에 봄꽃 향기가 가득하네’라고 노래했지만, 이들에겐 내 집에만 봄이 오지 않는 것이다.


 과거는 다 아름다웠다고 추억되곤 한다. 하지만 개털들에겐 아버지 때도, 그 아버지 때도,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도 내 집엔 봄이 오지 않았다. 실은 어렵지 않은 시절이 없었다. 일제와 6·25와 군부독재 시절을 이야기하면,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처럼 또 지겨운 고릿적 얘긴가’라는 힐난도 따르지만, 빈부의 대물림처럼 역사도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니라 늘 내 삶과 직결된 현재다. 그러니 얼음이 풀리는, 그 놀라운 날을 세상이 가져다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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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신촌캠퍼스 졸업식에 내걸린 펼침막.  사진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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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13일 밸런타인데이를 하루 앞두고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홍대입구역 앞에서 진보신당이 연 ‘삼포세대에게 연애를 허하라’ 행사에 참석한 연인들이 키스 플래시몹을 하고 있다. 이 행사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마련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그래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인데 봄 같지 않은 봄)이 회자할 이때쯤이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김교신(1901~45)이다. 그가 3·1절 때면 기릴 만한 독립운동가이거나 병든 노동자들을 돕다 죽은 헌신적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대세에 순응하지 않은 채 ‘생각의 쿠데타’를 거듭하고,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을 퍼뜨린 ‘희망 고문’의 원조였기 때문이다.


 김교신은 ‘조선인들은 게을러터져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낼 수 없다’고 한 일제의 무력화 세뇌 교육이 아니어도 무력해지기에 너무도 충분한 조건을 지녔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잃은 그는 대를 속히 잇게 하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11살에 혼인해 8남매를 두었다. 역사·지리교사였던 그가 새벽 3~4시면 일어나 무려 1천여평이나 되는 밭작물을 가꾼 것은 취미생활이 아니라 그 많은 가솔을 돌보기 위함이었다.


 김교신은 <성서조선>을 손수 쓰고 배포할 만큼 열성적인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제의 자학사관이나 서양 선교사들의 조선 비하에 맞서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사상이야말로 동양의 정수’라고 가르쳤다.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민족혼을 세계에 떨친 손기정이 달리며 시종일관 떠올린 것도 양정고 스승 김교신의 격려였다. 빈한한 살림임에도 세상 정세를 알기 위해 <런던 타임스>를 구독한 것도 남다른 면이다. 


특히 별난 것은 역발상의 지도 독법이다. 일제는 한반도를 ‘대륙에 붙은 밥풀’이라고 모욕했지만, 김교신은 세계지도를 거꾸로 걸어놓고는 “한반도는 오대양 육대주로 나아가는 항구”라며 “물러나 숨으면 더욱 불안하지만, 나아가기엔 이만한 데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교신은 1942년 <성서조선>에 봄이 되어도 깨어나지 못한 채 죽은 개구리를 애도한 ‘조와’(弔蛙)를 썼다. 김교신이 ‘잠자는 조선 젊은이들을 깨우는 악질’로 일본인 검사한테 찍혀 1년간 옥살이를 하게 한 명문이다.


 주저앉아 비탄하고 포기만 하는 자는 애도받을 수는 있지만 봄날을 누릴 수는 없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김교신처럼 발상을 전환하고, 대안을 찾으며,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 손수 봄 마당을 일군 자만이 봄의 찬미를 받을 수 있다. 다음달이면 김교신이 해방을 불과 넉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난 지 70돌이다. 6일은 그가 조선인으로 비유한 개구리가 얼음을 뚫고 나온다는 경칩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봄이 오는게 아니다. 당신 내면의 얼음장을 먼저 녹여야 따뜻한 봄날이 온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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