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는 가장 완벽한 순간
*사진 박미향 기자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지만, 입사할 때부터 끝을 정해두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평생 몸 바쳐 다니기로 마음먹는 사람은 요즘은 더더욱 없다. 모두가 마음속 어딘가에서 끝을 준비하고, 가장 적절한 시기를 남몰래 타진한다. 그런데, 그 순간은 과연 언제일까? 그런 순간이 있기는 할까?
난생 처음으로 회사원이 된 뒤 이런 얘길 많이 들었다. 주로 소주에 잔을 채워주며 건네는 말들. “일단 어디든 들어가면 한 2년은 눈 딱 감고 다녀야 해.” “이력서에서 2년도 못 채우고 회사를 옮겼다고 써 있어봐. 얘는 뭐 문제가 있나 의심한다고.” “처음엔 다 힘들지. 고거 힘들다고, 어디서 연봉 좀 올려준다고 덜컥 옮겨버리는 애들 꼭 있는데, 거기서는 뭐 오래 있을 거 같아? 또 옮겨야 해.” “1년? 에이, 너무 짧지. 3년? 에이, 그건 좀 길지.” 그래서 생각했다. 아, 어쨌든 2년은 다녀야 하는구나. 그 전에 회사를 옮기면 죽도 밥도 안 되겠구나. 그 후 약 1년 반 뒤 회사를 옮겼다. 죽이 됐는지, 밥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새 직장에서 오래 잘 다녔다. 술자리에서 통상적으로 통용되는 가상의 이직 데드라인 ‘2년’을 채우지 않은 죄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열심히 일했다. 첫번째 직장에서도 물론 그랬지만, 두번째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력이 짧아서 생길 수 있는 오해나 불신을 없애기 위해 더 애쓰기도 했다. 노력한 결과로 얻은 평가는 이랬다. ‘마지막까지 여기에서 버틸 것 같은 사람 1위.’ 내부든 외부든, 나를 아는 사람 대부분 동의했다. ‘모두가 나가도 그는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칭찬이라 믿었다. 열심히 애쓴 결과라 여겼다. 그리고 한때는 진짜 그러면 어떻게 될까, 공상에 젖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모두의 기대를 저버렸다. 5년 반 만에 두번째 회사를 나왔다. 오히려 내가 입사한 뒤로부터 팀 내 가장 첫번째 퇴사자가 되었다.
처음 회사를 그만둔 20대 후반, 고민은 많았지만 확신은 빨랐다. 하지만 이번엔 30대 중반, 고민은 더 많고 확신도 더뎠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럴싸한 핑계를 찾았다. 이른바 ‘회사를 그만두는 가장 완벽한 순간’이다.
다니던 직장을 쭉, 아주 평생 다니고 싶다면 ‘회사를 그만두는 가장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면 된다. 왜냐면 그런 순간은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완벽히 마무리한 다음에, 적어도 해가 바뀌기 전에, 지금은 좀 그러니까 차장님 출장 다녀오신 다음에, 차장님이 부장님 되기 전에, 돈을 좀더 모은 다음에, 그래도 아무리 오래 다녀도 4년을 채우기 전에…. 온갖 ‘다음’과 ‘전’ 사이에, 과연 절묘한 순간이 있을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현명함을 과시하기 위해 그 흔한 말을 한번 비꼰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은 거야.” 꽤 맞는 말이다. 본인이 늦었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빨라도 그건 정말 늦은 거니까. 하지만 애써 현명함을 과시하지 않는 진짜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말이 결정을 미루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쯤은 알 것이다. 결정을 보류하는 건 현명도 신중도 아니다. 비로소 마음이 결정에 다다른 순간이야말로 진짜 완벽한 순간이다.
박태일 프리랜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