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 경례 유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사람들. 영화 <국제시장> 중에서
1949년 3월, 파주 봉일천초등학교 학생 36명이 퇴학을 당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대원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어떤 형상에도 절하지 말라는 십계명 제2계명을 지키려고 경례하지 않았다. 2003년, 대원교회는 그 믿음을 기려 이런 글귀를 담아 ‘십계명 신앙비’를 세웠다. “역사는 소중합니다. 믿음을 지켜온 역사는 더욱 소중합니다.”
세월이 흘러 1972년 6월, 광양 진월중앙초등학교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오사교회 학생 50여명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다 퇴학을 당한 것이다. 일제 때 신사참배와 마찬가지로 국기에 대한 경례도 우상숭배라는 목사의 설교를 따라 아이들은 경례하지 않았다. 경찰까지 출동하여 아이들을 심문했고, 그럴수록 가냘픈 종아리는 피멍으로 물들어갔다.
당시 배후로 지목된 교사는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다. “날 잡아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들더라고. 사형당해도 얼른 사형됐으면 싶었어. 구속되기 사흘 전에 엄마한테 밥해주면서 그랬지. 만약 내가 죽어도 천당 갈 테니까 걱정 말라고.” 퇴학생 중 한 명으로 지금은 부산에서 기독교서점을 운영하는 김 집사는 그때를 고통스럽지만 의미 있었던 시간으로 추억한다. “그 일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나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세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해 12월 유신헌법이 제정되었고, 개신교 학생이 자발적으로 국기 경례를 거부하는 사건은 계속되었다. 1973년 9월, 김해여자고등학교 학생들도 국기 경례를 거부했다. 이들은 선교단체 학생신앙운동(SFC·Student For Christ) 활동을 하던 학생들이었고, 결국 6명이 제적당했다. 당시 유일한 고3으로 현재는 용인에 있는 교회 담임목사의 아내가 된 류 사모는 당시를 담담히 회고한다. “전혀 칭송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배운 대로 했을 뿐입니다.”
같은 해, 제천 남천교회 학생들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아 학교에서 문제가 됐다. 국기 경례를 하지 말라고 선동했다는 혐의로 담임목사가 체포되었다가 두 달 정도 조사를 받고 풀려났을 때, 그의 몸은 온통 피멍으로 얼룩져 있었다.
최근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교내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 실시를 포함하는 대대적인 태극기 달기 캠페인을 추진하려고 한다. 세상이 1970년대 유신독재로 회귀하는 것 같다. 어릴 적 날마다 가던 길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 불쾌한 기분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위의 국기 경례 거부 사건들은 모두 보수적인 개신교회에서 발생했다. 보수 교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그대로 삶에 실천하는 급진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그 신앙에 따라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은 삶, 그래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 집에는 새 학기를 맞아 부산한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있다. 이러다 어쩌면 얘들이 퇴학당할지도 모른다는 궁상맞은 상상을 한다. 세상과 불화하는 삶이 그때는 힘들지만 결국엔 진정한 행복을 향한 유익한 자산이 됨을 알기에 굳이 피할 생각은 없다.
남오성(일산은혜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