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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스님, 사유를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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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스님 /사진 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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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 대륜산 일지암 풍경



법인 스님은 오십대중반이지만 여전히 출가하던 소년의 미소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무골호인만은 아니다. 그는 길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 길이 되는 선구자다. 그는 2000년 해남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오늘날 템플스테이에 해당하는 ‘새벽숲길’이라는 프로그램을 불교계 최초로 열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에 이어 지난 2009년부터 4년 동안 조계종 교육부장을 맡은 그는 지혜와 자비 두가지 수레축 가운데 지혜(깨달음)만을 중시하고, 자비를 도외시해 좌초하기 쉬운 승가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승가교육개혁을 이끌었다. 이 때 우리 사회의 고뇌하는 청년들을 위한 ‘청년출가학교’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고, 또 2년전 ‘차(茶)의 성자’인 초의선사가 머문 해남 일지암에 내려가서는 ‘청년암자학교’를 통해 인근 군부대의 ‘관심 사병’을 비롯해 방황하는 청년들과 함께 밥짓고 청소하고 어울리며 그들의 고뇌와 아픔을 보듬어주고 있다.


 그가 일지암에 머문동안 인근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그는 도반들과 달려가 떡국을 쑤어 나눠주기도했다. 그는 “직접 3천명에게 배식을 해보니, ‘그 동안 왜 그렇게 생각에 힘을 주고 살았을까. 밥을 나눠주고 함께 밥을 함께 먹으니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절로 하심이 되고, 분별심이 없어지는 것을’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예수께서 왜 그렇게 밥상에서 교제를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는지 새삼 깨달았다”고도 했다. 중국 한문고전을 외워서 내는 앵무새의 깨달음이 아니라 사유와 감성으로 살려낸 그만의 깨달음이 느껴진다.


 그가 이번에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불광출판사 펴냄)이란 책을 냈다. 사회의 전통과 시스템에 갇혀 자신의 생각을 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 ‘생각을 회복하자’는 기치를 내건 책이다.  구태의연하고 식상해져버린 ‘깨달음’ 담론의 감옥에서 해탈한  그를 9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스님을 출가자라고 해서 세간을 떠난다고 하는데, 그걸 사람들을 등지고 사는 것으로 아는 이들이 있다. 불교는 그게 아니다. 잘못된 가치관과 삶의 행태를 떠나자는 것이지, 세상과 사람들에게 무관심하자는 게 아니다. 무소유, 검소, 청빈에만 머무는 것이 불교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그것은 수행자의 기본이지 수행자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일체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하는게 붓다가 선언한, 수행자의 궁극적인 목표다. 따라서 출가자는 세상을 품고 수행해가야 한다.”


 그는 문사수(聞思修)를 중시한다. 문사수는 먼저 듣고, 이것이 합리적인지를 사유하고, 그 뒤 실천하는 불교 수행의 3단계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나의 말도 의심하고 헤아려 보라’고 했다. 사유하며, 생각하며 살라는 것이다. 유태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과거를 조사해 보았더니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왜 엄청난 짓을 저질렀을까. 바로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조직의 명령을 성실하게 따랐을 뿐이지만, ‘사유하지 않은 죄’를 범한 것이다. 지금 우리 일상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사고의 물구나무서기를 권한다. 다양하게 생각하고, 낯설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세뇌 당한 관습적 사고와 태도를 내던지고 열린 눈으로 세상을 크게 보라는 것이다.


 이런 냉철한 사유와 이성, 합리적 사고가 없다면, 아름다운 풍경조차 종교를 망치고, 명상도 환각제일 뿐이라는게 그의 지적이다.  


 “어설픈 위로는 개인을 나약하게 만들고 탐욕과 독점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는  사회구조에 면죄부를 준다. 그러므로 아프다고, 괴롭다고 말하는 이들은  위로받기 전에 냉엄하게 스스로의 문제를 진단해 보는 게 좋다. 진정한 힐링은 나를 내  삶의 주체로 세우고 독창적으로 살아갈 때 가능하다.”


 그의 말은 방황하고 상처 많은 이들에게 냉정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가 삶에서까지 그렇게 까칠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일지암을 찾은 청년들과 손수 아궁이에서 고구마나 감자를 구어먹고, 도토리묵을 만들고 함께 청소를 한다. 함께 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소년들과 함께 부모 흉도 본다. 그러면 더할 나위 없이 궁합이 맞아 친해지곤한다. 법인 스님을 믿고 자기 아들을 일지암에 맡긴 부모가 보면 놀랄일이지만, 며칠 뒤 환하게 밝아진 아이의 모습을 보면 이를 시비할 수는 없다.


 일지암엔 식사를 준비해주는 공양주가 없다. 그래서 일지암에 온 주부들은 먼저 “내일 아침은 무엇으로 준비할까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그는 “그냥 주무시라”고 답하고, 아침이면 손수 흰죽을 쑤어 내놓는다. 독신수행자지만 집을 떠나서나마 부엌에 들어가고싶지않은 주부의 마음을 어느 남편보다 더 깊게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주부들은 그를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한다.


 그 뿐이 아니다. 일지암의 차의 성지인데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 안달이 난 여성들을 위해선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만 얻어먹는게 아니라 더치커피도 마실 수 있다”며 손수 만든 더치커피를 내놓는다.


  그 법인 스님이 지난 6일엔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았다. 깊은 사유와 이심전심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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