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문명을 만든 진흙, 사람을 만든 진흙
지난번에 썼듯, 한국에서 고대 근동학은 아직 낯선 일이다. 그래서 몇 회에 걸쳐 ‘고대 근동 문명의 기초’에 대해 잠시 돌아보겠다. 우선 고대 근동 문명의 재료, 진흙이다.
문명의 재료
대략 기원전 33세기에 시작된 고대 근동 문명의 재료는 다양했다. 건물과 문서와 물건등을 만드는데 흙, 돌, 금속, 나무, 유리, 도기, 자기, 상아와 기타 뼈, 조개, 섬유, 가죽, 덩굴 등이 쓰였다.
사실 현대 문명의 재료도 이와 별반 다를 것 없다. 현대의 석유 화합물이나 반도체나 희토류도 결국 자연에서 채취한 것이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인류사 수천년의 간극을 보고 있노라면, 이른바 ‘발전’의 실체가 확연해진다. 인간은 이런 다양한 재료 가운데 어떤 것도 ‘창조’한 적이 없다(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다만 ‘가공’하는 방식을 바꿔왔을 뿐이다. 현대인은 훨씬 많은 에너지와 기술을 투입해서 대량으로 가공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진흙 관련 세 가지 직업
고대 근동에서 진흙은 가장 귀중한 재료였다. 고대 근동학의 대가인 폰 조덴(Von Soden)은, 진흙이 고대 근동 문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진흙은 벽돌과 점토판과 도자기의 재료였는데, 이 세 가지 ‘진흙 생산품’은 고대 근동 문명을 이루는 데 꼭 필요했다. 그리고 진흙을 다루는 사람들은 고대 근동 문명의 주역이었다. 필자는 진흙이 사람의 재료였다는 점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벽돌공이 지은 신전과 서기관
진흙을 다루는 첫째 직업인 서기관은 점토판을 다듬고 그 표면에 글을 쓰는 직업이다. 이들은 지식인의 조상이다. 사실상 이분들이 남긴 방대한 고대 근동 문헌 덕에 현대의 고대근동학이 가능하다. 이분들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둘째 직업인 벽돌공은 신전과 왕궁을 남겼다. 진흙은 강가에 풍부했다. 벽돌을 만들기 위해 대개 축축한 진흙과 잘게 썬 갈대를 섞어 비볐다. 때로 동물의 똥을 섞기도 한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네모난 틀에 빚으면 벽돌이 된다. 이따금 불에 구운 벽돌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뙤악볕 아래 말려도 충분히 단단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진흙 벽돌은 왕궁과 신전 등 대규모 건설현장에 쓰였다. 때때로 역청(아스팔트), 천연 왁스, 기타 혼합물 등을 표면에 발라 방수 효과를 내기도 했다.
<그림: 히타이트의 수도 핫투샤. 터키 관광청은 수천년전의 건물터 위에, 흙벽돌로 건물을 다시 짓고 있다.
벽돌만큼은 고대 근동의 방식대로 만들어 올리고 있다고 홍보한다. 주원준 2007>
벽돌공은 단순히 벽돌을 찍는 사람이 아니라 건축가의 조상이었다. 그들은 수학을 알았고 설계도를 익혔으며 대규모 노동력을 조직했다. 신에게 바치는 의례를 가장 거룩하고 극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효과를 고민했고, 군중의 동선과 신들의 현현을 계산했다. 그들이 신전을 짓는 기술은 고대 근동의 첨단 기술이었다. 약소국 고대 이스라엘도 이런 기술을 수입하였다.
신전 건축 기술의 수입은 고대 히브리어에 큰 자국을 남겼다. 히브리어로 신전을 ‘바이트’라고도 하고 ‘헤칼’이라고도 한다. 바이트는 그냥 ‘집’이란 뜻이다. 임금의 집(궁전), 신의 집(신전) 그리고 보통 가정집에도 쓰는 말이다. 하지만 헤칼은 신전이나 궁전을 가리키는 전문용어다. 그런데 헤칼은 외래어다. 고대 수메르어로 ‘큰 집’을 의미하는 ‘에갈’이 아카드어 ‘에칼루’로 계승되어 이스라엘에 전해진 말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에서 신전은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그 신전이라는 말이 수입품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말의 전파는 체험과 생각의 전파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이 말과 함께 신전의 어떤 요소를 받아들이고, 어떤 요소를 독창적으로 만들었던 것일까? 무너져버린 솔로몬의 성전(제1성전)에 대한 궁금증은 한이 없다.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의 일부임을 차차 드러낼 것이다. 또한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는 고대 근동 종교와 관련성 안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음도 알게 될 것이다.
옹기장이
폰 조덴에 따르면, 벽돌공과 서기관보다 더 오래된 점토 직업이 옹기장이(= 도공)이다. 고대 근동에서 이들이 생산하던 도기 또는 자기는 첨단 생산품이었다. 옹기장이는 다양한 재료가 불과 만나서 어떤 효과를 내는지 꿰뚫고 있는 화학자였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 그 표면에 그림과 문양과 글을 남기는 종합 예술가이기도 했다. 이들이 남긴 도기 또는 자기는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증거로서, 지금도 고고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고대의 도공이 빚은 그릇. 주원준. 산를우르파 2007>
대개 옹기장이는 사회적으로 낮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고대 근동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재밌는 우가릿어 문헌이 하나 있다(KTU 4.126). 이 문헌은 토판 앞면에 존경받는 귀족의 개인 이름이 여럿 등장하고, 뒷면에는 ‘낮은 직업’을 소집단으로 나누어 기록했다. 그런데 옹기장이는 앞면에 귀족의 이름 가운데 두 번이나 등장한다.
진흙 전쟁
이처럼 중요한 자원이기에 진흙을 두고 전쟁을 벌였다. 석유를 두고 대규모 전쟁을 벌리는 현대인처럼, 고대 근동인들은 질좋은 진흙을 두고 싸웠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수메르어 판본에는 「길가메쉬와 악카의 전쟁 이야기」가 있다. 기원전 2600년경을 배경으로, 소중한 자원인 진흙을 두고 전쟁을 벌리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길가메쉬는 남부 우르크의 왕이었고 그의 조카 악카는 북부 키쉬의 왕이었다. 우르크의 점토 채굴장은 당시 가장 잘 알려진 곳이었다. 악카는 우르크의 점토를 가져다 흙벽돌을 만들어 신전을 재건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삼촌 길가메쉬에게 점토를 캘 수 있게 허가해 달라고 전령을 보냈다. 자원획득을 명분으로 내건 선전포고였다. 길가메쉬는 우르크의 원로를 모아 회의를 연다. 현대의 ‘자원 안보 회의’ 못지 않다.
“점토 채굴장을 끝내려고
나라의 점토 채굴장을 끝내 버리려고
나라의 연소한 점토 채굴장을 끝내 버리려고
점토 채굴장을 파려고 줄자로 끝내 버리려고(합니다)
우리가 키쉬 집안에 굴복하지 맙시다.
무기를 들고 싸웁시다”(조철수 역)
‘연소한’ 점토 채굴장이란, 개발한지 얼마 되지 않는, 그래서 점토 매장량이 많은 곳이다. 줄자로 측정해서 모두 파내버린다는 뜻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자원을 채굴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파버리면 채굴장은 끝이 난다. 길가메쉬는 침략자 키쉬에 굴복하지 말고 모두 나가 싸우자고 원로들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원로들은 겁이 많았다. 싸우지 말고 굴복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길가메쉬는 이번에는 우르크의 젊은이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나가 싸우자고 설득한다. 그러자 젊은이들은 그에게 화답했다. 나가 싸우자고 호응했다. 길가메쉬는 “심장이 즐거웠고 간이 밝았다.” 마음이 즐거웠고 속이 후련했다는 뜻이다. 전쟁의 결과 길가메쉬는 승리했다. 그는 침략자이자 조카인 악카를 살려주는 관용까지 보여줌으로써 승리를 완성한다.
질좋은 진흙을 탈취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자원을 지키기 위해 온 도시의 장로들과 젊은이들이 격론을 벌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 이 작품은, 당시 점토가 그만큼 중요한 자원이었음을 알려준다. 또한 이 이야기에서 도시국가 우르크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도 볼 수 있다. 임금이 원로들과 젊은이들을 차례로 설득하는 모습은, 현대의 양원제를 연상케 한다. 임금은 두 회의를 차례로 방문한 목적은 진흙이라는 귀한 자원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진흙으로 빚은 사람
진흙은 또한 사람의 재료였다. 구약성경의 창세기 2장에서 하느님은 사람을 만드시는데, 그 방법이 옹기장이의 것과 비슷하다. 마치 옹기장이가 작품을 만들듯, 하느님은 ‘진흙을 빚으셨다’. 사실 고대 근동 문명에서 진흙의 무게감을 인식한다면, 사실 그당시 사람을 만들 재료는 진흙만한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메르의 수메르의 <엔키와 닌마흐> 신화에서도, <아트람하시스> 신화에서도, 그리고 훨씬 후대의 신바빌론 제국의 <에누마 엘리쉬> 창조 설화에서도 사람은 모두 진흙으로 빚어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조금 특별했다. 사람은 한 편으로 진흙 덩어리지이만, 다른 한편으로는 만물의 영장이지 않은가.
이 이야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은 그저 진흙 덩어리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신화들은, 사람을 만들 때 진흙에 신의 피나 침을 넣어 빚었다고 전한다. 구약성경의 창세기에서는 코에 신의 숨을 불어 넣었다고 전한다. 비록 우리 몸은 진흙이지만, 우리 몸을 흐르는 피나 숨결은 신에게서 온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은 공통적으로 ‘신의 노동’의 결과이다. 노동의 소외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훨씬 이전이다. 노동의 결과물에 일하는 자의 피땀과 숨결이 스민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이야기들에서 신들은 인간을 만든 다음 모두들 기뻐하였다(물론 그 이유는 모두 달랐다). 진흙으로 만든 인간은 신의 자부심이었고 신의 희망이었다.
사람은 신전이자 토판
창세기의 하느님이 사람을 만드신 방법은 매우 소박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런 해석을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봤듯이 고대 근동 세계에서 옹기장이는 낮은 직업도 아니었고, 그 방법은 나름 선진적인 것이었다.
진흙을 얕보면 안된다. 사람을 빚은 재료는 이 문명의 재료였다. 사람의 재료인 진흙은 신을 모시는 신전의 재료이자 글을 담는 토판의 재료였다. 진흙으로 만든 집에 거룩함을 모시고, 진흙으로 만든 판에 신의 말씀을 남긴다는 점에서, 사람은 신전이자 토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진흙으로 만들었다는 말씀에는 이런 의미가 들어 있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다.
다음 시간에는 고대 근동 종교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를 하나 더 살펴보겠다.
참고문헌:
주원준 <구약성경와 신들 - 고대 근동 신화와 고대 이스라엘의 영성> 2012.
조철수 <수메르 신화> 2003.
W. von Soden, Einf?hrung in die Altorientalistik,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