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일베 코드’
〈복음과상황〉295호 커버스토리
2015년 05월26일 〈복음과상황〉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
온라인 유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그 사이트에 접속해본 적 없는 이들도 대부분 알고 있을 정도로 일베는 대중에 빈번하게 노출되어 왔다. 그리고 어느덧 우리 사회 한 켠에 자리 잡았다. 일베 사용자들은 사회의 건전성을 해치는 ‘전라도 혐오’ ‘여성 혐오’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 혐오’ ‘반공주의’를 담론으로 삼아 일종의 유머 경쟁을 벌인다.
“당신은 ‘일베 코드’에서 자유로운가”
일베가 우리 사회 한 켠에 자리를 잡은 한 방식은 커뮤니티 이상의 의미를 띠는 형용사로 사용되는 것이다. 비상식적인 극우 정서나 과격성을 묘사할 때 흔히 ‘일베적’이라고 표현한다. 〈뉴스타파〉 최승호 PD는 MBC 뉴스데스크가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업 중 사망한 이광욱 잠수부 사건을 리포트 한 보도를 두고 “일베적 감수성으로 뉴스를 지휘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한 바 있다. 이 잠수부 사망 책임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 있다는 식의 해당 보도는 자사 기자들로부터도 ‘보도 참사’라는 진단을 받았었다.
이처럼 ‘일베적’이라는 표현은 어느덧 한국사회에서 통용되고 있으며, 일베는 2010년 개설 후 근 몇 년 사이 국내 최대 규모의 유머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동시접속자 수는 2만 명을 넘나들고, 가입자 수는 100만 명에 육박한다. 물론 일베는 온라인상의 방식을 선호한다. 현실 공간에서는 회원 스스로 그 소속임을 드러내기 꺼려하고, 내부에서도 스스로 ‘병신’을 자처하며, 그들 특유의 ‘병신문화’를 즐긴다.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 근처에서 일베 회원 등이 참여해 벌어진 폭식투쟁.
그런데 작년 9월, 일베가 세월호 유가족의 광화문 농성장 바로 옆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일은 그들이 현실에서도 집단 결집·행동할 가능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아닌가 한다. 일베는 ‘거리로 나온 넷우익’(인터넷+우익)인 일본 극우단체 ‘재특회’(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와 유사하다는 평을 얻기도 했다. (재특회는 한국과 중국에 적대감과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청년 중심의 일본 극우단체다.) 최근 일베가 공유하는 일종의 집단적 의식을 분석한 책 《일베의 사상》(오월의봄)이 출간된 일도 더 이상 일베를 개별 사이트의 일탈적 행위로만 여기고 무시할 수는 없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 아닐까. 이 책의 저자이자 블로그 ‘붉은서재’를 운영하는 청년 논객 박가분 씨는 몇 달간 일베 사이트에서 상주하며 그 프레임을 내재적으로 분석해보였다.
한국사회 속에서 조금씩 변하고 있는 일베의 양상을 다각도로 포착한 칼럼도 꽤 나오고 있다. 칼럼니스트 박권일 씨는 “당신은 ‘일베 코드’에서 자유로운가”(〈한겨레21〉 1058호 2015. 4. 27)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따르면, 일베 담론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일베 코드’의 본질적인 의식 구조는 대한민국 주류 사회 구성원의 의식구조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작년 4월의 세월호 참사 이후에 ‘일베 코드’가 한국사회 주류 구성원들의 중심에서 유통되고 재생산되는 점을 지적했다.“세월호 참사는 일베의 막장성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일베 코드’가 일베만의 코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세월호 때문에 경기가 나빠졌다는 ‘세월호 불황론’과 유가족 중에 정치적 선동꾼이 있다는 ‘불순한 유가족론’ 같은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유포한 것은 〈조선일보〉,〈동아일보〉, 종합편성채널 같은 언론과 보수 성향 중산층, 기득권층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순수한 유가족’이란 어떤 유가족일까. 납득할 수 없는 사고와 정부의 대응 미숙으로 자식이 목숨을 잃었는데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유가족이다. 일베는 그 서사를 받아서 특유의 패륜적 언어로 확대재생산하는 역할을 했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의 한국 극우파가 구사하는 절묘한 역할 분담이다. 한쪽이 후방에서 논리를 개발하면 다른 쪽은 자극적 언어를 통해 빠른 시간 안에 전파하는 것이다.”
일베와 한국교회
이쯤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세월호 불황론’과 ‘불순한 유가족론’을 유포하고, 심지어 막장 언사로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네트워크에 우리 사회 기득권의 한 축인 한국교회도 들어 있지 않은가. 유명 대형교회 목사들과 교계 인사들은 세월호 참사 후 (걱정스런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그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일베적 망언과 폭언을 공개적으로 쏟아 냈고, 여러 경로로 참사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다른 교인들과 일반 시민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았다. 그 서사를 이어받은 글이 교인들 사이에서 퍼졌고,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유통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는 시민들이 희생자를 애도하는 뜻에서 착용하는 노란 리본은 우상 숭배라는 말까지 공유됐다. 결국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에 이어 목사와 쓰레기를 합친 ‘목레기’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로 세월호 참사 이후에 한국교회 안의 일베적 요소가 폭로됐다.
실 한국교회는 세월호 참사가 아니어도 특유의 일베적 행동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개독교’란 호칭을 꽤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이를 테면 단군상 훼손(동상 혐오), 잊힐 만하면 또 발생하는 사찰 땅밟기 기도나 이슬람 혐오(타종교 혐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집단 협박 및 방해(성소수자 혐오) 같은 것들이다. 폐쇄적인 혐오 담론들이지만 한국교회 내부에서는 여전히 지배적이고, 매우 견고하기까지 하며, ‘하나님의 뜻’ ‘심판’ ‘은혜’와 같은 신앙적 언어와 결합되어 정당성을 확보할 뿐 아니라 당당히 전도 활동으로도 이어진다.
전병욱 목사를 비롯한 목사들의 성범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이나, 교회 세습을 합리화하는 과정에도 동일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이런 한국교회의 일베적 행태들은, 일베 담론이 그들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소비되다가 (최근 들어) 현실에서 집단 투쟁으로 발현된 맥락과 유사해 보인다. 그런데 실은 그 폐쇄적 담론을 신앙 언어와 엮어서 거리낌 없이 자주, 교회 밖으로 그대로 노출하는 일은, 어쩌면 일베 코드가 일으키는 사회적 물의보다도 더 폭력적인 모습으로 발생해왔는지도 모른다. 이러니 결국 “당신은 ‘일베 코드’에서 자유로운가”라는 물음이 향하는 곳은, 가장 먼저 한국교회여야 하지 않을까. ‘일베’와 ‘한국교회’라는, 도무지 공통점이 없을(없어야 할) 두 단어를 나란히 병치하여 살펴보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글은 ≪복음과 상황≫〈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279〉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