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의 노예가 되지 말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인류에게 정신적 혁명을 불러일으킨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의 기간을 기축시대라고 불렀다. 이 시기와 맞물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공자 같은 철인들 외에 종교적으로는 붓다와 예수(기원 전후)가 나타났다.
기축시대는 농업혁명 이후 잉여생산물을 둘러싸고 무자비한 약탈과 폭력, 인간에 의한 인간의 예속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연의 힘이나 희생제의, 기존 관습으로는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다.
이때를 전후해 등장한 현인들은 대부분 성직 계급 출신이 아니었다. 붓다는 무사 계급에서, 예수는 로마제국 치하 팔레스타인 북부 목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통치 계급을 위해 신화와 교리를 만들고, 백성의 고혈로 제사를 지내면서 권세를 누리던 성직 계급에 맞서 그 당시로는 혁신적인 종교를 창시했다.
붓다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가르침의 범위에 왕족과 귀족, 평민은 물론 천민 계급까지 포함시켰다. 붓다는 이를 비판하는 브라만들에게 “그 누구도 브라만이나 천민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 브라만도 될 수 있고, 천민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수 역시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 같은 종교인들의 위선을 비판하면서 어부나 농민, 떠돌이들을 제자로 삼았다. 붓다는 열반에 들기 전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너 자신과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깨달음과 구원은 어느 누구에 의한 것도 아닌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이 같은 궁극적인 가르침에도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일반 신자들은 성직자만이 깨달음과 구원을 줄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물론 성직 계급은 제사나 예배를 통해 민중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는 등 종교의 기초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성직 계급에 대한 지나친 우상화와 물질적 지원은 오히려 그들을 타락시키고 에고를 강화시켜 각성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오늘날 많은 성직자들은 고대와 마찬가지로 신도들의 무지와 몰상식에 기대며 바벨탑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교회 건축이나 불상 조성, 화려한 예배의식, 특정 지역의 성역화 등을 통해 막대한 헌금을 거둬들이고 있다. 영적 가면을 쓴 채 물질에 현혹된 이들의 타락상은 입이 아플 정도가 되었고, 아예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지경까지 왔다. 그만큼 기축시대에 버금가는 혁명적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고대제국을 대체한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에 의해 약탈과 폭력이 자행되고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체제를 강화하는 낡아빠진 제도종교와 성직자들에게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어 깨달음과 구원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미 유영모, 함석헌, 이현필 같은 인물은 성직자가 아님에도 오히려 그들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올랐고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종교의 모습을 제시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럼에도 궁구하지 않으면 여전히 내세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는 사이비 종교인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그렇듯이 종교도 다중이 깨어 있어야 한다.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