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과 불신지옥
‘인분 교수’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건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피해자는 왜 참고 견뎠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해당 교수는 제자의 미래를 위해 훈육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일고의 가치도 없고, 피해자 역시 교수의 감시와 보복이 두려워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경쟁과 승자독식이 구조화하면서 갑은 사적 욕망을 위해 타자를 짓밟는 것을 당연시하고, 을은 이것을 받아들여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의식이 내재화되었다.
젊은이들은 이런 세태를 ‘헬조선’ 또는 지옥불 반도라고 부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심화하는 청년실업, 최저 수준의 출산율,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상징화되는 부조리한 현실은 맨정신으로 견디기 어렵다. 그들은 좁디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공부와 스펙 쌓기에 매달려야 하는 자신들을 한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3포 세대’라 불렀다. 그리고 지금은 3포에 취업과 주택을 더해 5포 세대, 인간관계와 희망을 잃은 7포 세대, 더 나아가 건강과 학업까지 포기한 9포 세대, 다포 세대라 부르고 있다.
*영화 <콘스탄틴> 속 지옥의 모습.
청년실업률이 10%에 이르고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이 되어야 하는 나라다. 우선 살고 봐야 한다. 극단적 능력주의와 물신화가 판치는 헬조선에서는 최소한 윤리도 내팽개치고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이 판치고 있다. 무능력은 폭력을 통해서라도 교정해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떠한 굴욕이라도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옥불 반도에서 종교는 어떤 구실을 하고 있을까? 그 답은 한국 천주교 수장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면서 거리로 나선 사제단 신부들을 향해 “지금은 반정부 활동보다 대중의 현실적인 필요에 그들의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기존 방법론을 고집한다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날 것”이라고 했다. 원론적이지만 자신이 믿은 예수가 주변부 인생을 위해 살다가 죽은 존재임을 망각하고 권력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주류 종교의 수장마저 수준 이하의 발언을 할 지경이면 다른 종교의 사정은 불 보듯 뻔하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이 있지만 한국 사회 자체가 극도의 불신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도피적인 사이비 종교나 반문화적인 근본주의가 판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주류 종교는 노동문제나 동성애 같은 인권적 의제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거나 공격적인 반면 기득권의 이익과 부조리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서울 강남 일대에 들어선 수천억원짜리 교회들이 어떻게 지어졌겠는가?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는 일반적인 악인들뿐만 아니라 탐욕스런 성직자들도 많이 등장한다. 그중에는 클레멘스 5세를 비롯한 교황도 여럿 있다. 아마도 현세를 지옥처럼 만든 책임은 부조리한 현실권력뿐만 아니라 종교인들에게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종교가 물신에 굴복한 사회에서 붓다나 예수가 들어설 틈은 없다. 오로지 불신지옥만 있을 뿐이다.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