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들이 죽은 수행을 한다고 꼬집은 오현스님
28일은 조계종 100여개 선방에서 2천여명의 선승들이 3개월간 두문불출하고 참선만하는 하안거를 마치는 날이다. 이날 설악산과 동해가 마주한 강원도 속초 신흥사에서 불교의 조종을 경고하는 죽비소리가 울린다. 신흥사, 백담사, 건봉사, 낙산사 등 강원도 동부권 선방들에서 수행 정진한 승려들 수백명이 운집한 가운데다. 하안거 해제법문을 할 이는 설악권 본말사의 정신적 지주인 신흥사 조실 오현(83) 스님이다. 그는 만해상과 만해축전, <불교평론> 등을 처음 만들어 불교와 세속의 소통을 이룬 선구자다. 그는 지난 3개월간 방문을 봉쇄하고 하루한끼 식사만 제공받는 백담사 무문관에서 수행 정진했다. 신흥사가 미리 배포한 법문에서 오현 스님은 3개월간 앉아 정진한 선승들을 격려하기 보다는 매를 들었다. 그의 해제법문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시작해 소록도에서 봉사한 두 외국인 수녀의 얘기로 맺었다. 선(禪)과 화두가 얼마나 위대한가로 시종일관한 선가의 기존 법문들과는 천양지차였다. |
*오현 스님
“종교인의 생명은 화두다. 선사들은 서로 안부를 물을 때 화두가 성성하냐, 화두가 깨어 있느냐고 묻는다.”
오현 스님이 화두의 중요성으로 서두를 꺼낼 때만 해도, 그렇고 그런 화두찬양론이려니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서 활동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갈 때 세월호 유족의 눈물 어린 고통의 ‘순례 십자가’를 비행기에 실었다. 한국에서도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고,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네 차례나 세월호 유족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희망을 잃지 말라며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겼다. 지난 3월 로마에서 한국 천주교 주교단을 만난 자리에서 첫 물음도 ‘세월호 문제’였다고 한다. 사실상 세월호가 교황의 방한 내내 화두였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화두는 살아있는 오늘의 문제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데 지난 결제(3개월 전 하안거 첫날) 때 우리 스님들의 화두는 무엇인가. 무(無)자 화두인가, 본래면목(본래의 모습)인가. ‘뜰앞의 잣나무’인가. 굳이 알 필요가 없다. 이 모두 천년 전 중국 선사들의 산중문답이니까 말이다.”
그는 “화두에는 활구(活句·살아있는 말)가 있고 사구(死句·죽은 말)이 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의 화두는 살아있는 현재의 문제이고, 우리 선승들의 화두는 천년 전 중국 선승들의 도담이어서, 시간적으로 천년의 차이가 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평생 참선만 하며 존경받던 어느 노 스님은 어린 시절의 제게 ‘화두 들고 참선공부하다가 죽어라’고 당부했다.
그 때는 ‘예’하고 대답했지만 그게 말이 되는가. 참선해 빨리 깨달아 그 깨달음의 삶을 살아야지 참선만 하다가 죽으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 노 스님은 고대 중국 선승들의 화두에 중독된 것이 분명하다. 마약중독자가 중독된 줄 모르는 것처럼 화두 중독자도 자기가 중독된 줄 모르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는 깨달은 선승들은 많은데 깨달음의 삶을 사는 선승은 만나기 어렵다고 한다”며 “선원이나 토굴에서 참선만하며 심산유곡에서 차담과 도화를 즐기며 고담준론과 선문답으로 지내며 무소유의 살을 살았다고 해서 깨달음의 삶을 산 것이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두를 타파하면 부처가 된다고 하는데 부처가 왜 존재하느냐”고 물었다.
“중생이 있기 때문이다. 불심의 근원은 중생심이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필요 없다. 환자가 없으면 의사가 필요 없는 것과 같다.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병을 치료해야 한다. 부처는 중생과 고통을 같이 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족들과 고통을 같이 하듯이 말이다. ” 그러면서 그는 “우리 선승들의 화두도 우리 시대의 아픔들이 화두가 되어야 한다”며 “천여년 전 중국 신선주의자들, 산중 늙은이들이 살며 뱉어놓은 사구를 들고 살아야 하느냐”고 질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기 혁신이 없는 교황청은 병든 육체와 같다고 비평하고 일반 성직자는 정신적 영적 동맥경화에 걸렸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바티칸 관리들의 위선적인 이중생활과 권력에 대한 탐욕을 실존적인 정신분열증이라고 비판하고 권력에 눈 먼 성직자들은 영적 치매에 걸렸다고 분노했다는데, 이 분의 파격적인 발언을 그냥 남의 교단 일로만 들을 일이냐. 이 발언을 통해 우리들 자신을 냉엄하게 둘러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현 스님은 한센인들이 사는 소록도에서 평생 헌신하다가 나이가 들자 남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며 올 때 가지고 온 가방 그대로 말없이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두 수녀의 얘기를 들려주며 “이렇듯 종적을 남기지 않고 사는 삶이 깨달음의 삶”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처의 삶을 살지 않고 부처가 되겠다고 죽을 때까지 화두를 붙들고 살며, 그래가지고 부처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고, 자기 혼자 부처가 되어서 무엇하느냐”고 꾸짖으며 죽은 불교가 아닌 산 불교를 주창했다.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