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화문 광장에서 필자 조현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화단에서 푹 꺼진 인도로 내려서는 길은 위험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뒷사람이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녀 다치지않도록 일일이 “조심하라”고 말하고, 손을 잡아주었다. 이런 릴레이를 본 한 초등학생 딸이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사람들이 왜 이렇게 착해” 광화문은 대중 속에 묻히면, 폭력적이 되기쉽다는 일반적인 ‘대중 심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광장이었다. 전대미문의 인파의 밀물이기에 온갖 혼탁이 쓸려올법했다. 그러나 한명 한명이 혼란을 삼키는 정화조가 되어 유쾨한 공기를 토해냈다. 야권후보들의 발언도 허용하지않고, 누구의 사욕도 끼어들 여지를 주지않았다. 희안한 광장이었다.
광장에서 지난 1월 별세한 신영복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는 감옥에서 나온 이후 일체 정치 얘기를 하지않았다. 문제는 ‘성향’이 아니라 ‘성품’이라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른바 운동권의 숱한 이들을 겪고 처신을 지켜보며 취한 태도였다. 그러던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전 정치 얘기를 꺼냈다. “간디의 비폭력저항운동 을 보면, 그 자신이 대단한 전략가였든지 그 뒤에 뛰어난 전략가가 있었던 것 같다”는 것이었다. 영국 식민지가 된지 백년이 훨씬 지나면서, 인도에서 밥술께나 먹는 이들은 대다수가 영국의 지배와 직간접적인 이해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에, 그런 정도의 ‘혁명’이 아니고는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민심과 어우러지지못하고 자기들의 세계에 갇힌 ‘운동권’에 대한 변화의 갈망으로도 보였다.
» 지난 1월 별세한 신영복 선생님. 사진 강재훈 기자
그런데 어떤 전략가나 누구의 훈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심의 도도한 흐름이 그런 변화를, 그가 그리던 품성을 보인 것이다. ‘우주의 기운이 모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까 싶은 일을 가능하게 한 박근혜와 최순실이 고마워질 정도였다. 지금 신 선생님께서 이토록 품격있는 시민들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쑥스러워하듯 웃으시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신영복은 점잖았지만, 신화와 싸워왔다. 현대사에서 불꽃처럼 피었다가 갑자기 사라진 것은 모두 신화가 되었다. 4.19가 그랬고, 5.18과 6.10도 그랬다. 박정희도 노무현도 갑자기 죽어 신화가 되었다. 신화는 신화이지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민심은 신화가 아닌 현실을 만들었다. 아니 현실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은 신화 속에서 꿈꾸지않았다. 아니 꿈만 꾸지않아야 한다. 생생하게 깨어있었다. 아니 늘 깨어있어야 한다. 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오늘’, 거기나 저기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서 말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