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여행 중에
원철 스님은 책을 좋아한다. 스스로 ‘문자중독증’이라고 했다. 스님에게 책 한권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류시화 시인이 일본 하이쿠 시를 모아 해설을 붙인 책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2014)를 이야기했다.
<스스로를 달빛 삼다>. ‘불교계의 글쟁이’ 원철 스님이 최근 펴낸 여섯번째 산문집이다. 2008년 나온 첫 산문집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는 4만권가량 팔렸다. 다른 책들도 2만~3만권 정도 나갔다.
“종교의 틀에 갇히지 않은 보편적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중학교 2학년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쓰려고 하지요.” 스님의 책이 많은 독자들과 만나는 이유일 것이다. 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스님을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스님은 글에서 일상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속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행과 예술, 책 그리고 커피와 베트남 국수를 사랑하는 스님의 기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서울 북촌마을의 “열린 대문 사이로 살림집의 드러난 속살도 슬쩍 훔쳐”본다. 일본 오사카의 번화가를 오래 걸은 뒤 시간이 남아 커피숍을 찾기도 한다. 야생화 전용 갤러리를 표방하는 대구의 ‘야소’가 들어앉은 멋진 건축물을 상상하며 가야산에서 일부러 찾아가기도 한다. ‘미쉐린(미슐랭) 별’이 부럽지 않은 동네 월남국수집을 찾아갈 수 있는 인연을 꿈꾸기도 한다. 월정사나 해인사 같은 고찰도 그의 글에선 멋진 ‘달빛 기행’의 무대가 된다.
10년새 6번째 산문집 ‘불교계 글쟁이’
‘중2생 맞춘 쉬운 글쓰기’ 인기 비결
“종교틀 갇히지 않은 보편적 이야기”
1986년 출가뒤 10년간 경전읽기 몰두
2007년 불교 사이트 ‘달마넷’ 글쓰기 시작
“늘어나는 ‘바깥 종교인’ 포용이 과제”
1986년 해인사에서 출가했으니 올해가 절집 생활 31년째다. 실상사, 은해사 등에서 수행하다 7년가량 서울 생활을 했고, 몸이 아파 4년쯤 산사에 머물다 재작년 말 다시 서울로 왔다.
“출가 뒤 10년 동안 한문 경전만 봤어요. 그렇게 공부하니 처음 보는 한문도 겁이 안 났어요. 한문 경전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게 개인적으로는 큰 즐거움이었어요.” 3년에 걸쳐 송나라 때 선승 전기모음집인 <선림승보전>(상·하권, 1999)을 역주하기도 했다. 그 뒤엔 한문 경전을 어떻게 밖으로
“예쁘게 전달할 수 있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한문으로만 이야기하면 불교가 불교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해요.” 2007년 불교 사이트 ‘달마넷’에 글을 쓴 게 첫걸음이었다. “글쓰기 능력이 잠재되어 있더라고요. (웃음) 공감 있게 쓰기 위해 보편적 주제를 찾아요.” 글에 여행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젊었을 땐 여행을 낭비나 소비라고 여겼죠. 원효 스님도 당나라 여행을 포기했잖아요.” 글솜씨가 인정을 받으면서 여기저기서 원고 청탁이 쏟아졌다. “스님들의 생활 리듬이 단조로워요. 몇번 쓰다 보면 동어반복이 되지요. 여행은 좋은 글감입니다.”
스님에게 불교의 두 축은 연기(緣起)와 중도(中道)다. “연기의 관점에서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조건의 모임입니다. 얼음은 조건에 따라 물이 되기도 하고 수증기도 됩니다. 연기를 인정하면 차별을 인정할 수가 없어요. 다문화나 상대를 배려하지요. 중도는 ‘시방3세’(시방은 8방·상하, 3세는 과거·현재·미래)의 측면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죠. 전체를 다 보려는 생각입니다.” 연기와 중도의 사유 속에선 합의와 토론이 가능하다고 했다. “20대 때 불교 경전을 보면서 ‘모든 것은 정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크게 다가왔어요. ‘악이 51, 선이 49’면 남들 눈에는 악으로만 보이죠. 하지만 49의 선도 같이 봐야 합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엔 사물의 다양성에 눈길을 주는 내용이 많다. 서울 부암동 창의문이 한 예다. “현판 글씨는 유교의 엄격한 이데올로기를 뜻하는 창의문이지만 사람들은 ‘저녁노을’을 뜻하는 자하문이라고 부릅니다. 해인사 일주문에도 ‘붉은 노을’을 뜻하는 홍하문 편액이 있어요. 유가, 불가의 표면적 엄격함 뒤에도 이런 감성적 언어가 있죠.”
스님에게 서울은 어떤 곳일까. “도시는 변화무쌍합니다. (인간사의) 다양한 측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중도 사상에 대한 해석학적 안목을 키워줍니다. 도시에 나오면 보고 듣는 게 많아 글도 잘 써집니다.” 이런 말도 했다. “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려면 언어로 사람들에게 종교적 진리를 전달해야 합니다.”
스님이 책임을 맡고 있는 포교연구실은 “한정된 자원과 인재를 가지고 가장 효과적으로 법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2015년 인구조사부터 비종교인 수가 종교인을 앞섰어요. 제도권 종교인은 줄고 대신 교회나 성당을 다니지 않으면서 스스로 불교나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바깥 종교인’들은 늘고 있어요.” 포교도 이런 변화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각자의 공간에서 수행하는 분들에게 충분한 수행 지침과 방법을 제공해야 합니다.”
스님은 ‘책 마니아’다. 수입의 절반은 책을 사는 데 쓴다. 가야산 토굴에 장서들이 쌓여 있다. 가장 아끼는 책은 물론 경전이다. “젊었을 땐 <화엄경>을 좋아했어요. 화엄경엔 없는 얘기가 없어요. 고도의 지적 유희를 느낄 수 있어 심리적 만족감이 컸어요.” 40대 이후엔 한시에 흠뻑 빠졌다. 언젠가 한시를 이 시대의 시선으로 들여다볼 책도 쓸 생각이다.
“불교 한시는 4행입니다. 우리 시조는 3행, 일본 하이쿠는 한 줄이죠. 한마디 안에 너무 많은 의미가 있어요. 섬광 같은 언어죠. 긴말을 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한시 한 수를 들려달라고 청했다.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고/ 달빛이 못물을 꿰뚫어도 흔적 하나 남지 않네.’(중국 남송의 야부 스님 작품)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