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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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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진짜 헬조선 기행에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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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8.jpg» 지린성 화댄시 독립군양성학교 화성의숙터에서 심고(묵념)를 드리는 청년들


어둠에 땅에서  한줄기 

청년들독립군의 현장을 가다


선구자눈물 젖은 두만강의 그곳

독립운동 활발한 만큼  많이 흘린 


화성의숙 청산리대첩 윤동주 생가

민족종교 젊은이들이 찾아 나섰다


 처음엔 시큰둥하다가 점점 눈떴다

눈을 반짝이며 저마다 한마디씩


나라면 과연 그렇게   있었을까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독립군과 비교할  없이 편리한데


우리가 처한 삶에만 너무 매몰

 사소한 것에 짜증 냈던 내가 창피

조금이나마 희생할  있는 사람으로


-1.천지.jpg» 백두산 천지에 오른 만주 항일유적지 탐방단

 

천도교인들 만주 항일운동 탐방

여행은 쉬고 즐기기 위해 떠나는 것만은 아니다오히려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떠나기도 한다. ‘순례 자신을 연단시키기 위한 여정이다.

 유대인 청년들에겐 사막의 마사다 순례가 필수 코스다마사다는 서기 72 이스라엘이 로마제국에 맞선 최후의 항전지다. 434미터 사막 요새에서 로마군과 싸우다 ‘노예로 사느니자유인으로 죽자 960 전원이 자결한 곳이다 비극  유대인들은 2천년간 나라 잃고 세상을 부유했다전세계의 유대인 청년들은  비극의 땅을 찾아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자신을 바로 세운다.


 한국인에게 ‘마사다 가곡 ‘선구자 대중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 ‘광야에서 등장하는 만주벌판과 연해주 일대다일제강점기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땅을 찾은 선조들이 항일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펼친 곳이자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곳이다.

 민족종교 천도교인들이 지난달 24~28 45 동안 만주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탐방에 나섰다탐방단 24 가운데 단장과 인솔 교사 등을 제외한 16명이 고교생·대학생이었다.


-1윤동주생가에서.jpg» 만주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를 방문한 탐방단


들꽃 꺾어 바치고 독립군가 부르고

 탐방단이 처음 찾은 곳은 지린(길림)성의 오지였던 화뎬(화전) 어느 아파트 앞이었다. 1925 설립된 독립군 장교 양성 학교 화성의숙이 있던 터다화성의숙 초대 숙장은 상하이임시정부의 법무부장을 지낸 천도교인 최동오였다최동오는 3·1운동의 지도자인 천도교 3 교주 의암 손병희가 서울 우이동 봉황각에서 49 수도를 시킨  각기 고향으로 내려보내 만세운동을 준비하게  483 제자   명이다최동오는 고향 의주에서 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던  3·1운동을 주도해 옥고를 치르고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투쟁에 나섰다그는 곡식  톨이 귀하던 화성의숙의 사정을 고려해 10  아들(훗날 천도교 교령을 지낸 최덕신) 베이징에 있는 고아원에 맡기고독립군 후보생들 뒷바라지에 전념했다.


 탐방단은 이어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지로 향했다청산리 대첩은 1920 10 김좌진·나중소·이범석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 1600명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700명이 일제 5 사단 25천명과 싸워 1200여명을 사살하는 대승을 거둔 전투다김좌진홍범도를 비롯한 이들은 일제의 극심한 탄압으로 씨가 말라버리다시피  민족종교 대종교인들이었다중과부적의 열세로 며칠간 잠도 자지 못하고 곡기도 때우지 못한  싸워야 했던 100  선조들이  흘리던 곳에  청년들은 들꽃을 꺾어 작은 마음을 전했다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지에 가서도 나라를 위해 하나뿐인 생명을 내던진  청년들의 마음으로 독립군가를 불렀다.


-1들꽃헌화.jpg» 청산리대첩비에 헌화할 들꽃을 꺾어 모으고있는 청년들


백두산 천지 올라 광활한 벌판 보며

 버스로 이동할 때마다 임형진 경희대 교수는 독립군 같은 열정으로 항일운동을 소개했다그러나 청년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버스에만 오르면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속으로 빠져들었다그런데 청산리와 봉오동을 지나자 버스에서도 하나둘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구승모(20·부산 영산대1)씨는 “어린 나이에 어떻게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설  있었을까라고 자문했고박주형(24·경북대2)씨는 “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이라고 말했다김정훈(21·대구대1)씨는 “만약 나라면 과연 그렇게   있었을까란 생각이 맴돌았다 했다.


 이들은 박경리 소설 <토지> 무대이자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가 공부한 용정중학교와 생가를 찾았다불과 20대에 후쿠시마감옥에서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어 죽었던 비슷한 또래의 ‘동주와 몽규 청년들의 가슴으로 걸어 들어왔다당시 용정중동흥중명동학교 등의 졸업생들은 나라를 찾겠다는  꿈을 꾸며 자신을 던졌다명동촌의 윤동주 생가를 걷던 청년들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기를이란 시를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교과서에서 윤동주의 시를 읽은 고교생들의 눈도 반짝이기 시작했다성치호(17·부산 동천고1)군은 “대입과 취업에 대한 중압감에 짓눌리면서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린  같다 고개를 떨궜다김창훈(17·동천고2)군은 “어떻게 해서든 어려움에서 도피해 편하게 살려고만 생각한  아니었는지 돌아봤다 했고도한이(17·고양 서정고2)양은 “독립군들과 비교조차   없이 편리하게 사는데도 사소한 것에 짜증을 냈던 내가 창피해졌다 했다.


--1청산리군가.jpg--1화성의숙묵념.jpg--명동1.jpg--명동25.jpg--명동20.jpg--백두산7.jpg--봉오동3.jpg--여순11.jpg--여순19.jpg--여순20.jpg--용정11.jpg--일송정2.jpg



 그들은  안중근과 신채호와 이회영이 갇힌 다롄 뤼순감옥의 좁고  창살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전시실엔 일제가 독립군들을 잡아  채로 살껍질을 벗기고 작두로 목을 자른 사진이 걸려 있었다독립군의 승리는    화를 불러왔다청산리 전투 참패 이후 독립군을 지원한 한인촌 파괴에 나선 일제가 아이여자를 가리지 않고 수만명의 동포를 살육한 경신대참변 이야기를 들으며청년들은 진짜 ‘헬조선 몸부림치며 전에 없는 성찰을 시작했다취업준비생 정경재(19)씨는 “우리가 처한 삶에만 너무 매몰되다 보니 객관화해서 보는 눈을 잃었던  같다 말했다신명진(23·아주대3)씨는 “지금도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청년들이 좌절하고 있지만 그런 좌절 속에서도 불만에 그치지 않고고난을 헤쳐나가려 일어섰던 항일지사들의 모습이 나를 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말했다도우리(21·가톨릭대2)씨는 “투정보다는 행동에 나서고 싶다 했고도아라(20·인하대2)씨는 “나라를 위해 몸까지는  바치더라도 누군가를 위해 조금이나마 희생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했다.


 이들은 백두산 천지에 올라 독립군들이  달리던 광활한 만주벌판을 내려다보았다누렇던 청년들의 얼굴이 천지의 물빛을 담은  푸르러졌다허성우(17·서울 중앙고2)군은 “요즘의 우리들에게 제일 두려운 것이 실패인데독립지사들은 끊임없이 실패하면서도 다시 일어서 싸운 것을 보고 끝까지 해보는 근성을 길러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수줍게 고백했다.

 화뎬·용정·명동촌·다롄(중국)/·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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