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강의를 다니면서 7살의 어린이나 100살의 어르신이나 죽는 그 순간에는 모두 100%의 꽃을 만개하고 하늘로 떠난다고 이야기한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보다 서해에서 지는 노을이 훨씬 아름다고 오래 오래 산과 바다를 물들여 놓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도 인간이기에 젊은 친구들이나 어린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가슴이 아프고 마음안에서 진실된 기도가 나온다. ‘하느님, 제가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제 인생중에서 1~2년쯤 떼어서 저 아이에게 주세요’ 과부의 아들을 살려 주셨던 예수님께도 매달려 본다. ‘저 부모들에게 저 꼬맹이를 돌려 보내주세요’라고....
그날 밤 수녀원에 돌아와서 기도하면서 펑펑 울었다. 그 죽음이 안스러워서가 아니라 ‘성모 모성’ ‘어머니의 마음’을 살아내고자 수십년 노력했는 데 나는 아직도 ‘엄마’의 마음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그 아이의 엄마 마음이었다면 이렇게 기도했을 것이다. ‘저를 데려가시고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겨우 1~2년쯤의 생명을 가져가시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자녀를 떠나 보내는 부모 앞에서는 어떠한 위로도 할 수 없다. 그저 그들의 손을 잡아주거나 껴안아 주는 것이 전부이다. 때로는 ‘하느님 너무 밉죠?’라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참지 말고 실컷 우세요, 욕하세요’ 뇌종양으로 오랜 투병을 하다가 떠나간 8살 아이가 있었다. 빅뱅의 ‘하루’라는 노래를 좋아했고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고 엄마가 자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을 안타까와했던 착한 아이였다. 대형병원을 수시로 드나들던 그 아이가 모현으로 입원하던 날이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가서 그 아이를 맞이하던 의사 선생님이 나를 보면서 ‘며칠 안 남았는 데 큰 병원에 있게 하지 왜 입원을 받았냐?’라고 하실 때 난 이렇게 대답했다. ‘전 이 아이를 기계속에서가 아니라 엄마 품에서 죽게 하고 싶어요’ 참으로 궁색한 대답이었지만 정말 그랬다.
불필요한 기계장치가 그 아이에게서 사라지고 오직 엄마의 목소리와 친구들의 노래소리, 그리고 수녀들의 기도소리만이 남겨진 채 우리와 5일을 함께 하고 떠났다. 경련을 일으킬때마다 간호사들은 ‘어휴, 이 녀석 눈은 있어서 이쁜 누나 온 걸 알고 윙크하네’라고 하면서 엄마를 당황하지 않게 안심시켜주고 엄마가 충분히 아이를 끌어안고 쓰다듬으며 씻기고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아이를 떠나 보내고 엄마는 우리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 ‘제가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끝까지 해줄게 없으면서도 항암약이 전부일 줄 알고 이것이 최상인줄 알았어요. 어른들의 욕심으로 아이를 더 힘들에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큰 병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너무 바빠 때로는 차가워 보일때도 있어서 인간으로서 멀어졌는 데 이 곳 모현에서는 내 생각이 달라졌어요. 아이가 볼 수 없고 말 할 수 없었지만 너무 편안해 하는 것을 느낄수 있었고 ㅤ짧은 5일이지 모두에게 가장 행복했던 5일이라고 볼수 있어요. 아쉬웠다면 석달전에라도 와서 넓고 예쁜 꽃도 보고 정원도 거닐고 이야기도 나누고 더 사랑많이 받으면서 추억을 더 많이 만들었을텐데... 지금 제 곁에 없지만 이젠 고통없는 편안한 나라에서 우리 식구들을 지켜보고 있을거라는 마음에 하루 하루 잘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난 지금도 추모관에 가면 이 아이의 봉안소앞에서 빅뱅의 ‘하루 하루’라는 노래 가삿말을 흥얼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