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픽사베이.산중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사회의 변화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중에는 온갖 사연으로 실의에 빠진 사람, 과도한 업무와 압박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삶의 활로를 찾고 자신을 살펴보기 위해 찾는다. 근자에는 직장의 정년을 마치고 여유를 즐기고자 오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그런데 이분들을 보고 있자면 여전히 생기가 넘친다. 본인들 처지에서는 은퇴하기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다. 차를 나누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앞으로 이삼십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건강한 신체와 더불어 수명이 늘어나는 시대에 생애주기별 인생설계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단풍이 곱게 물든 어느 가을날, 은퇴한 남성 한 분이 찾아왔다. <한겨레> 수행·치유 웹진 ‘휴심정’ 열렬 독자라는 이분은 얼굴에 화기가 넘쳤다. “제가 선생님을 보건대 오래 사실 상인데 이제 무엇을 하고 사실 예정이신가요.” 넌지시 던진 물음에 그분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왜냐하면 혼자서도 재미있게 살아갈 거리가 많기 때문이란다. 그게 무어냐고 물으니 단연 책 읽는 재미라고 말한다. 3천권 정도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책만 읽으면 근심이 사라지고 그저 재미있단다.
요즘 시대에 독서에 몰입한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워서 몹시 아끼는 좋은 차를 더 내놓았다. 책을 주제로 나누는 차담은 늘 즐겁다. 이분은 책을 읽으며 좋은 글귀에 밑줄을 긋고 그 글귀를 공책에 적어 옮기는데, 그 쌓인 분량이 천장을 몇번 오간다는 것이다. 놀랍고 고맙고 감동이었다. 그분의 독서법 열강은 더 이어졌다. 그렇게 옮겨놓은 글귀들을 틈틈이 읽어가며 그 뜻을 새삼 음미하다 보면 절로 생각이 열리고 마음이 깊어지는 경지를 느낀다고 한다. “선생님은 명상수행 아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독서하시면 그게 수행입니다.” 진심으로 덕담을 드렸다.
<금강경>에는 다음과 같이 독서수행을 권하고 있다. 수지·독송·서사·해설이 그것이다. 오늘날 이 매뉴얼을 적용하면 이렇다. 먼저 좋은 책을 고른다(수지). 그다음은 내용을 음미하며 소리 내어 읽는다(독송). 다음은 의미있고 감동적인 글귀를 종이에 정성스레 쓴다(서사). 그리고 자기의 사유와 성찰의 눈으로 내용을 해석하고 지인들과 대화한다(해설). 이렇게 하면 책이 밝히고 있는 뜻과 내 생각이 공감하게 된다. 생각이 열리고, 바뀌고, 새로워지는 경지에 이른다. 이른바 합일의 삼매가 다른 곳에 있지 않을 것이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많이 듣고 사유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라고 했다. 저장된 기억은 묻히지 않고 재생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어하고 조절한다. 독서는 남에게 보여주기보다 자기를 보는 수행법이다. 지독한 졸필인 나는 얼마 전부터 사경법을 하나 더 개발했다. 노트북 사경이다. 책을 읽고 중요한 구절을 아주 천천히 음미하며 화면에 옮긴다. 붓으로 사경하는 묘미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 또한 나름 경건한 21세기 독서법이고 사경수행이다.
법인스님(일지암 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