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형제자매들끼리 사랑 좀 하면 안되나요?
2013.8.2 [한겨레 토요판/연애] 교회 연애
▶ 교회에서의 연애는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만 환영받습니다. 두 사람이 반드시 ‘성숙’한 상태여야 합니다. 목사님이 쓴 <청년 목사의 주례사>를 보면 24살은 넘어야 한다고 하네요. 상대는 크리스천이어야 하죠. 아, 물론 ‘이성간의 연애’여야만 하고요. ‘혼전 순결’도 필수입니다. ‘훌륭한 크리스천’이라면 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겠지만, 꼭 길 잃은 어린양 한 마리가 있지 않던가요?
성경 속 인물인 야곱은 사촌 여동생인 라헬에게 반해 무려 14년을 외삼촌 집에서 무보수로 일했다. 순수한 사랑이었다. 다윗은 우리야 장군의 아내 밧세바에게 반해 장군을 전쟁터로 내보내 죽게 만들었다. 밧세바를 아내로 얻었지만 그 대가로 둘 사이의 첫아이를 잃어야 했다. 눈먼 사랑이었다. 성경 속의 수많은 위인들도 한번쯤은 지독한 사랑앓이 속에 좌충우돌하는데,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오죽할까.
김유진(가명·26)씨는 모태 신앙인이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처음 걸었을 순간도, 처음 말을 했을 순간도, 처음 학교에 갔던 순간도 교회와 공유했다. 가족들도 모두 교회에 다녔기에 교회 사람들은 명절 때 보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들이었다.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았지만, 반대로 때가 되면 “공부는 잘하냐”, “학교는 어디로 가냐” 따위의 질문도 불쑥불쑥 들어야 했다. 유진씨의 첫 연애도 그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학생부에 있던 학생과 연애를 시작했다. 유진씨가 먼저 더 좋아했고, 수능 공부하느라 힘들고 외로운 부분이 채워지면서 만족감도 느꼈다. ‘보는 눈’이 많아 비밀로 시작한 연애는 눈치 빠른 대학교 멘토 언니에게 딱 걸렸다. “너 쟤랑 사귀지?” 감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더니…. 유진씨는 “아니다”라고 잡아떼지 않았다. 거짓말은 나쁜 거라고 교회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 뒤로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교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 귀에까지 들어갔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유진씨가 설교시간이나 교회 선생님, 집사님에게 많이 들었던 말은 “연애를 조심해라”였기 때문이다. 꼭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해야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순결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공개연애를 한 건 아니었지만, 반응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남자친구는 교회에 다니긴 했지만 교회 경력이 길진 않았다. 사람들의 눈엔 신앙이 깊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고등학생이라는 점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교회 어른들의 눈에는 ‘아직 어린’ 미성숙한 10대의 연애는 ‘실수하기 딱 좋은’ 불장난이었다. 공동체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냥 모른 척해 줘도 좋을 사생활이 공공연하게 공론화됐다. “유진이는 정말 믿음이 깊네. 이쁘다”고 칭찬해주던 어른들이 이젠 만나기만 하면 훈계를 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더니…. 죄를 지은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1년을 버텼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목사님과 사모님이 유진씨를 따로 불렀다. “둘이 깊은 관계가 됐으니, 넌 그 사람하고 꼭 결혼해야 한다. 다른 사람하고 결혼하면 하나님께 죄짓는 거야. 지금 나랑 약속하자.” 이제 겨우 성인이 된, 19살의 유진씨가 감당하기엔 결혼은 너무 크고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목사님이 하는 말이기에, 유진씨는 마치 하나님이 하는 말처럼 들렸다. 머리로는 ‘그게 말이 돼?’라고 생각했지만, 성경 말씀처럼 따라야만 하는 말처럼 와닿았다. 따르자니 앞이 캄캄하고, 따르지 않자니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는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이제 결혼도 못하니 내 인생은 끝났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몇 개월을 집 밖에 나가질 못했다. 결국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더니…
고3때 교회 친구 사귄 뒤
죄인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어른들 잔소리 시달리다
새로 옮긴 교회 대학부에선
‘대학교 고학년 이후 연애’
‘조장-조원 연애 금지’ 등
세세한 규칙이 많았지만
연애는 번번이 일어나고…
유진씨는 교회는 떠났지만 하나님을 떠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잘해주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교회를 떠난 순간 남이 됐다. ‘어디 좋은 교회 없느냐’ 물어볼 사람이 없어 그는 이번주는 이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다음주는 또 다른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 ‘교회 투어’를 다녔다. 6개월 만에 말씀이 좋은 새 교회를 찾아 등록했다.
새 교회 대학부에 간 뒤로 조 모임에서 종종 ‘연애 공부’를 했다. ‘자매는 대학교 3학년, 형제는 4학년부터 연애를 하는 게 좋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조장급 이상에게 털어놓으라’, ‘조장에게 조원은 사역의 대상이지 작업의 대상이 아니므로 양자의 연애를 금지한다’, ‘헤어지고 6개월간은 연애하면 안 된다’ 등등. 이전 교회에서 ‘아예 만나지 말라’거나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에 비하면 엄격한 규율은 아니었다. 또 젊은 남녀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대학부의 질서를 위해서라도 나름의 규칙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과 이별은 빈번했지만.
유진씨가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당장 연애할 마음이 없던 탓도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3년 넘게 남자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연애=죄’의 경험이 있었기에 사랑은 두렵게만 다가왔다. 그런 ‘죄’를 지은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이 걸려 그를 만났다. 그는 ‘교회 오빠’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타 같은 악기 하나 정도는 멋지게 다룰 줄 알고, 찬양도 잘하고, 성령이 충만해지면 약간의 ‘자아도취’ 끼도 있는 ‘교회 오빠’ 타입은 아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한 사람이었지만, 성실하면서도 남몰래 다른 사람을 잘 챙겨주는 이였다. 두 사람의 연애는 예전처럼 미성숙할 때도 아니었고, 신앙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기에 교회 안에서 잘 정착할 수 있었다. 그 평화는 두 사람의 이별로 끝났다. 두 사람을 모두 다 아는 공동체 속에선 상대를 정리할 수는 없었다. 또 그곳을 떠나야 했다.
교회 밖의 사람은 절대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진씨의 이상형 1순위는 더 이상 크리스천이 아니다. 신앙보다 중요한 건 상대방의 인격이다. 성실함, 신뢰감, 책임감, 착함 등의 단어가 언제나 크리스천과 동의어는 아니었다. 교회 안에도 별별 사람이 다 있지 않던가? 이젠 그냥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