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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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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평정은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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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차를 마시며 평정심을 지켜 나라를 구했다

 

명랑.jpg» 영화 <명랑>에서


 이순신은 덕수이씨 12대손이다. 아버지 이정은 네명의 아들을 두었다. 첫째는 희신.둘째는 요신. 세째는 순신. 넷째가 우신이다. 첫째 희신은 태호복희의 신하라는 뜻이다.둘째 요신은 요임금의 신하이다.셋째 순신은 순임금의 신하이고 넷째 우신은 우임금의 신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순신의 아버지 정은 자식들이 부귀영화를 탐하기 보다 덕을 베풀고 살기를 바랬을 것이다.

 

열선루-.jpg» 전남 보성에 있는 열선루

 

이순신1-.jpg


 이순신 장군의 부인은 상주방씨이다.그 당시 보성군수 방진이 이순신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무남독녀 딸을 주어 사위를 삼은 것이다. 난중일기 1594년 7월 17일자 기록에는 명나라 장수 파총 장홍유가 장군을 찾아왔다. 이순신은 접빈진다례 의식으로 차를 대접하였다. 그후 명나라의 장수들이 조선에 올때는 이순신 장군에게 차대접 받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그들이 가져온 귀한 선물중에는 차숫가락과 차항아리등이 있었다. 그처럼 귀한 다도구는 차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선물하지 않는 것이다.


 이순신은 전쟁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조상차례는 물론 조정의 역대제례등을 빼놓지 않고 모셨다.차례에 관한 예절을 중시하고 명나라 장수를 영접할때는 접빈진다례를 행하였다.이순신 장군이야 말로 진정한 다인으로 추앙하지 않을수 없다.
 다음은 난중일기의 기록이다. 갑오 1594년  7월 17일 맑음. 새벽에 포구에 나가 진을 쳤다.오전 10시쯤에  명나라 장수 파총 장홍유가 병호선 다섯척을 거느리고 들어왔다.나는 진다례의 자리를 접빈진다례로 베푼 다음 술잔을 서로 권하며 강개한 정을 나누었다. 

 

보성차밭-.jpg» 보성차밭

 이순신이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습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이 아직 죽지 않았으므로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쓴 곳이 바로 보성 열선루이다. 그는 왜군과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보성에서 8일간 머물렀다. 어디에도 군량미가 없었으나 다행히 보성 조성에 6백섬의 군량이 비축되어 있었기에 싸울 수 있었다.

 이순신은 위장과 장이 좋지 않아 복통으로 잠못 이루는 밤도 많았다.그때 마다 발효차와 고뿔차를 달여 마시며 복통을 치료하고 전투 준비를 할수 있었다.
 보성 대원사에서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이 보성에서 마신차를 지금도 법제하여 이순신 호국다례제에서 올리고 있다. 대원사는 보성녹차의 뿌리이며 보성차의 시배지이다. 서기 503년 백제 무녕왕 3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백제고찰인 대원사 극락전 주변에는 고차수가 자연상태로 자라고 있다.

 

대원사-.jpg» 전남 보성 대원사 경내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라.침착하게 태산처럼 무겁게 행동하라.”
 이순신장군께서 옥포해전을 앞두고, 죽음의 두려움에 떠는 전라 좌수군 병사들에게 내린 서릿발같은 말씀이다. 나무들은 보통 하늘로 자란만큼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다. 그런데 유독 차나무는 자기 키의 세배까지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다. 이순신은 차를 마시며 차나무처럼 자기 중심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평정심을 잃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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