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제1회선시포럼이 열린 대흥사 경내에서 월남사 주지 법화 스님과 일지암 암주 법인 스님, 황지우 시인(왼족부터)
‘개구리 한마리 풍덩’과 같은 간결한 일본의 하이쿠는 동아시아 정신의 응결체로 서구의 격찬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 하이쿠에 영향을 미친 원조인 우리나라의 선시(禪詩)는 진흙밭이 묻혀 있었다. 20일 땅끝인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진흙에 묻힌 진주를 꺼냈다. ‘제1회 한국선시문학포럼’에서였다. 대흥사는 ‘80년 전에는 내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라는 선시를 남긴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지는 곳이다. 이미 서산의 시에까지 영향을 미친 고려말 선승 진각혜심(1178~1234)은 대흥사 말사인 월출산 월남사에서 선풍을 휘날리며 수많은 선시를 남겼다. 또한 조선조말엔 대흥사 일지암을 중심으로 다성 초의선사와 강진에 유배온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등이 교유해 남도의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곳이다. 마음에 스파크를 일으켜 전율케하는 선시를 통해 새로운 르네상스를 꿈꾸는 이들을 포럼 현장에서 만났다.
» 제1회선시문학포럼에서 발표 중인 학담스님
남도 르네상스의 매개체로 ’선시’가 떠오른 것은 일지암 암주 법인 스님과 황지우 시인의 만남에서 의해서였다. 해남이 고향인 황 시인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거쳐 교수직을 정년 퇴직한 지난해 8월부터 낙향을 준비하면서 일지암에서 방한칸을 빌려 묵었다. 5권의 시집을 냈으나 20년 동안 시를 쓰지못했던 그는 일지암에서 다시 시안이 열려 24개의 시를 탈고했다. 애초 <게눈속에 핀 연꽃>과 <나는 너다>처럼 선시풍의 시를 썼던 황시인은 일지암에서 진각혜심과 소요태능의 선시를 읽고 감전된 듯했다고 했다. 특히 진각혜심의 시로 후에 서산에 의해 인용되었던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붉게 타오르는 화로에 한 점 눈이로다) 대목에서였다. 이에 법인스님과 차담을 나누며 ‘선시’를 되살려보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이번 선시포럼의 제목이 ‘마음의 피뢰침’. 이기적 욕망만이 지배해 벼락 맞아 마땅한 세상에 선시로 피뢰침을 꼿아보자는 것이다.
» 진각혜심선사가 주석하며 선풍을 휘날리며 선시를 남긴 전남 강진 월출산 월남사
이 일대야말로 선시 1번지가 되기에 적격이었다. 더구나 법인 스님이 7년 전 일지암 암주로 온 뒤부터 일지암을 중심으로 르네상스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조계종 승려들의 교육을 하는 교육원 교육부장과 실상사 화림원 원장을 지내고 불교를 넘어 넓게 사귀어온 그는 종교와 나이는 넘어 어울린 초의-다산-추사의 교류장을 되살리기엔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그는 참여연대 공동대표답게 민초들의 아픔을 멀리한채 산사에서 음풍농월만 하는 것을 비판하며 농사철이면 들판에 내려가 농민들이 감자를 캐거나 김장배추를 뽑는 현장에 울력을 자청해 비지땀을 흘렸다. 그리고 매달 농민들과 함께 일지암이나 들판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음악회를 열어 지역민들과 어울렸다. 얼마전엔 울력 품삵 대신 농민이 보내준 몇통의 김장김치를 서울에서 성매매여성들과 그 자녀들과 살아가는 자립지지공동체 김미령 대표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는 “진각혜심의 선시 가운데도 민초들의 아픔과 애민을 노래한 게 4편이 전해진다”며 르네상스를 지역의 민초들과 함께 꽃피울 의지를 내보였다.
» 19일 전남 강진 월출산 월남사와 백운동별서 등을 둘러보고 해남 대흥사에 돌아와 법인 스님과 함께 차담을 나누고 있는 문인들
특히 진각혜심의 월남사엔 법인스님의 제자벌인 법화 스님이 자리잡고 여민동락하면서, 그곳을 선시의 본가로 만들어보겠다고 나서고있다. 월남사가 있는 월남마을은 월출산의 기암괴석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인데 보물 3층석탑이 있어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시발점이 된 곳이기도 하다. 더구나 인근엔 호남의 3대정원의 하나인 백운동별서와 다산초당, 무위사 등 옛선인들이 교유하던 장소와 차밭이 어우러져있다.
이번 포럼에 참석한 문인들도 전날 도착해 이곳들을 둘러보고 빼어난 정신세계와 경치의 조화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포럼엔 선교를 넘나들며 대작을 내놓았던 학담 스님과 박규리·김명인·최승호·차창룡(등명스님)·고영섭·이은봉시인, 하응백·권희철 문학평론가, 차차석 불교철학자 등이 참석해 선시 야단법석을 펼쳤다.
진각혜심과 동향인 화순에 혜심원이란 절을 세우기도 했던 학담 스님은 “진각선사는 세계의 실상에 대한 참된 자기물음을 갖게 해 간화선의 사구화를 벗어나게 했다”고 말했다. 사찰에 10년간 머물며 시를 써 ‘공양주시인’으로 불렸던 박규리 시인은 “선시를 이해하는 관건은 ‘시의 이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이해’에 있다”고 밝혔다. 선시를 김명인 시인은 ‘정신계의 섬광’으로 표현했다. 진각혜심의 선시에 대해서 최승호 시인은 ‘벌거벗은 허공’으로, 차창룡시인은 “복잡함의 단순화’로 설명했다.
법인 스님은 “깨달음의 시구로 이 시대 마음의 장벽을 걷어내는 선시포럼과 축제를 월남사를 중심으로 매년 2차례 가량 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