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수라상도부럽지않은아침식사
» 메이플 시럽 헛간을 짓는 메이플릿지 공동체마을 사람들
겨울내내꽁꽁얼었던대지가무언가새로운기운을맛본듯조금씩꿈틀거리기시작합니다. 제일먼저얼어붙은대지를박차고나오는놈은노란아코나이트꽃(노랑너도바람꽃) 입니다. 길을지나다하얗게 눈덮인대지를뚫고나와노란꽃망울을내민이꽃을보노라면그동안매서운겨울로지친마음이눈녹듯사르르녹아내마음도봄을기다리는설레임으로가득하게합니다. 아코나이트를바로뒤쫓아오는놈은스노우드롭
(설강화) 입니다. 눈송이가떨어지듯자그마한하얀꽃망울이난초같이기다란잎에매달린꽃으로청초하기그지없습니다. 그뒤론보라색의크로커스와키작은아이리스가 봄마중하고싶어 안달이난듯쫓아나옵니다.
» 노란 아코나이트
이쯤되면봄내음가득한부드러운흙을만지고싶어내손도근질근질해집니다. 이렇게봄을기다리는건저뿐만아닙니다. 지난가을화려했던단풍잎을모두떨어뜨리고벌거벗은채추운겨울을기다려온메이플나무도슬슬온몸을뒤틀기시작합니다. 요즈음같이밤에영하3-4로떨어지면메이플나무는지난겨울내내 뿌리에저장했던양분을온몸(체관)으로 빨아들이게됩니다. 그러다낮에햇살을듬뿍받아기온이영상으로올라가면수분과공기가팽창해수액을배출하려는힘이생기게됩니다. 이때메이플나무껍질에 구멍을내면 메이플수액이밖으로흐르게됩니다. 비가오거나 바람이 불고 흐린 날에는 나무 줄기 속의 밤과 낮 압력차이가 없어 수액이 나오지 않고, 기온이 영상으로 지속되면 더이상 흐르지 않아 사실 기온차가 가장 심한 1월에서 3월 사이에만 메이플 수액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메이플 시럽 나무에 쇠파이프 박기
이맘때가되면저희가족도공동체모든아이들도메이플시럽을만드느라바빠집니다. 지난해깨끗하게씻어말려놓았던양동이를꺼내수레에싣고메이플나무가가득한숲으로갑니다. 아빠들과형아들이수액이잘나오도록메이플나무에15도각도로구멍을내작은쇠파이프를꽂으면동생들은양동이를파이프위에걸어놓고눈이나비가들어가지않게뚜껑을덮습니다. 양동이를걸자마자수액이졸졸졸떨어지는소리가들리네요. 아침에일어나면아이들은지난밤기온이영하로떨어졌는지부터살피며낮에메이플숲으로달려가수액이얼마나모였는지들여다봅니다. 바로나온수액을그자리에서마시기도하는데아주시원하면서약간달달한맛이몸이상쾌해지는듯합니다. 어느정도수액이양동이를채우면큰드럼통을가져와수액을모읍니다. 이렇게모은수액을나무장작을태워
24시간졸이면메이플시럽이되는데40리터를끓이면
1리터의시럽이나옵니다.
얼마전우리메이플릿지학교에서는그동안사용했던메이플시럽만드는헛간이너무오래되고 낡아7-8학년을중심으로아이들이힘을합쳐새로운메이플시럽헛간을짓기로했습니다. 지난 7-8개월동안아이들은 숲에가서건물에쓰여질소나무와참나무를 잘라날라오고, 한아빠가잘라온나무를켜재목을만들어주면, 아이들은선생님과함께 올드패션방법으로기계를사용하지않고직접톱과망치와끌을사용해재목들을깎고다듬어홈을파건물에쓰여질목재를준비했습니다. 나무를다듬을때조금이라도오차가생기면나무와나무를연결할때애를먹기때문에여간정확도를필요로하는일이아닙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아이들의손은연장질에집중하면서도내내재잘거리며신나서일합니다. 주말에는아빠들도와서나무를다듬으며아이들과함께하는즐거음을만끽합니다.
드디어메이플시럽헛간을세우는상량식 날입니다. 아이들이 미리 잡석을 깔고 브릭을 놓아 터를 잡아 놓은 부지 위에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과 아빠들이 모여 그동안 정성들여 준비한 나무로 모두 힘을 합쳐 기둥을세우고 보를얹어뼈대를맞추었습니다. 연결된나무들은나사못을사용하지않고아이들이직접만든나무못으로고정시켰습니다.
이제는 서까래를 지지하는 도리를 얹을 차례입니다. 그동안나는밑에서보조만하다가 기둥위에올라가돕기시작했습니다. 어릴적엔제법나무를잘 타고나무위에오래있어도끄떡없고좋기만 했는데 한시간 반넘게높은곳에서일을 하다보니다른아빠들과함께일하는재미도있었지만몸이금방지쳐오는게 이제나이가들어가나 봅니다.
아침 7시쯤시작된상량식은놀랍게도 11시가될쯤에서까래까지끝내지붕을올리기시작했습니다. 12시엔온공동체사람들과주변의이웃들과친구들도초대에잔치를벌렸습니다. 학교선생님들과몇몇 남자아이들이 24시간돌아가며장작불을피워구운통돼지바베큐와아침부터여자아이들과몇몇자매들이분주하게만들어놓은마늘빵도브릭오븐에굽고, 사과에카라멜을입혀놓은꼬치와50-60년대골동품으로보이는사이다프레스에직접사과를넣어짜만든애플사이다등을먹으니지친몸에새힘이돋는것같습니다. 역시 잔치날에는음식이빠져서는안되겠죠.
이날초대되어온많은이들이그동안아이들의수고와땀이맺힌건물이올라가는것을보며감탄하고놀라워합니다. 그중이지역킹스턴고등학교교육감이신분이초대되어왔는데행사를지켜보며요즈음많은아이들이테크놀리지에잡혀있는데우리아이들이직접손으로수고하며함께일하는가치를아직도간직하고있음을부러워하며아이들을격려했습니다. 돈만있으면홈디퍼에가서다지어진헛간을사서지게차로실어올수도있겠지만아이들이손수땀흘려만든것과비교할수있나요. 우리아이들도그동안힘들게일해온것에열매를맺게되어뿌듯해합니다.
헛간이다지어지자아이들이디자인을해조각해만든멋진헛간간판도달고, 그동안우리가알고지내던아미쉬마을에서메이플수액을끓이는팬도새로구입했습니다. 새로운팬은사이즈가크고성능이좋아한꺼번에
800갤런의수액을빠른시간내에끓일수있습니다.
한국에살땐메이플시럽이뭔지도모르다가이곳에와서야처음으로맛보게되었는데그맛이장난아닙니다. 아무것도첨가하지않은100% 메이플수액을나무를때서졸인거라나무태운 스모크향도나면서질리지않는순한단맛이나는게한번맛본사람은두고두고그맛을잊지못합니다.
저희가8년전메이플릿지공동체에이사왔을때(Maple Ridge-공동체마을을둘러싸고있는산전체가메이플나무가덮여져있어메이플릿지라고부릅니다.) 옆집에사는네이슨이저희가족에게메이플시럽을함께만들자고제안해왔습니다. 그당시하빈이는초등학교
3학년, 유빈이는 4살로우리아이들도신나서참여했습니다. 네이슨은말을잘모는데말수레를가져와 드럼통에수액을모아집으로나를때유빈이와하빈이는말수레에올라타수액이넘치지않도록드럼통을꼭붙잡습니다. 다음에는젊은청년앤드류가트렉터뒤에짚단을놓아앉을자리를만들고드럼통을실어수액과아이들을나릅니다. 아이들은말타는재미와트랙터타는재미로더열심히이리저리뛰어다며메이플수액을모읍니다.
메이플시럽은북아메리카인디언들이 처음으로수액을채취해시럽을만들어사용하던것을유럽정착자들이받아들인것이유래라고합니다. 한인디안전설에따르면마나부시라는소녀가할아버지가메이플나무에구멍을뚫어메이플시럽을모은것을맛보고는메이플시럽을얻기위해남자들이할일이란나무에구멍뚫는것밖에없어남자들이점점게을러질거라염려되어양동이에물을받아메이플나무에올라가나무 한가운데부었습니다. 그이후로메이플시럽이희석되어
1-2%의당도만남게되어남자들이열심히일해야만시럽을얻을수있게되었다고합니다. 그래서인지메이플시럽을만드는일은많은힘과시간과공을들이는것이여간힘든일이아니지만아이들과함께하는일이니재미또한만만치않습니다.
지난 8년간형제들과함께메이플시럽을만들면서많은것을배우게되었습니다. 메이플수액채취시즌초기에만들어진시럽은위스키처럼색이연합니다. 시간이지나면서메이플시럽색은점점진한갈색으로변하게됩니다. 색이연할수록최상급으로치게되는데연한색의메이플시럽은시럽향은덜하지만깔끔한맛으로 메이플시럽메니아들은주로시즌초기에만든연한색의메이플시럽을찾게됩니다. 반면 시간이갈수록색이진한갈색으로변하면서메이플시럽맛은더강하게됩니다. 저는개인적으로연한색을좋아하고제아내는진한맛나는다크한것을좋아합니다.
한번은공동체에서각자만든메이플시럽을가져와대회를열었는데심사하시는이안과폴 할아버지께서 돋보기를가져와살펴보시더니위스키빛깔의 연한메이플시럽을보고는“누가주방세제를가져왔나요?”, 색이진한메이플시럽을보고는“누가간장을갖다놨나요?”하며장난기있게말해온공동체가한바탕웃었습니다.
밖에서메이플수액을끓이다보면마지막을잘지켜봐야하는데이때잠깐이라도한눈을팔게되면메이플시럽이타버리게됩니다. 작년에초보총각선생님이학교에서만들던메이플시럽을 8갤런이나태워버린일이있는데그선생님이여름에약혼을하자형제들이약혼을축하하는연회에서 메이플시럽태운일을패러디해두고두고놀렸습니다.
가족들이만드는메이플시럽은마지막
1-2시간은장작불에서꺼내집에서끓이게됩니다. 그래야태우지않고안전하게만들수있습니다. 제가화씨
216도정도까지메이플시럽을끓이다집으로가져오면아내는베개입에수액을부어 잔여물을걸러다시끓입니다. 이때는특별히독일분이신다비드할아버지께서전수해주신방법으로우유를약간넣어같이끓이면우유가엉키면서 모든더러운것들을잡아내시럽을더맑게합니다. 더러워진우유를걸러내다시끓여
221도-222도까지다시끓입니다. (기압에따라온도가달라집니다.) 이렇게해깨끗한메이플시럽이만들어져유리병에담아부엌에놓으면옆집에사는애니가학교선생님인남편 어니에게
‘박가족시럽은아주맑은데우리것은새까맣다’고핀잔을줍니다. 그러면어니는내게와나는평생메이플시럽을만들었는데도색깔이이렇게어두침침한데 당신부인은불과몇년밖에안만들었는데 이렇게색이맑을수가있냐며비법을물어보면 아내가와서어니한데“내가보기엔병에조선간장을넣은것같은데요”하며어니를놀리면서 며느리도 안
가르쳐 준다는 다비드 할아버지 비법을 알려줍니다. 그이후론애니도남편의메이플시럽색에아주만족해합니다. ^^
» 디 지은 메이플 시럽 헛간
이곳에선 메이플시럽을주로팬케잌이나와플에부어먹습니다. 단것을별로좋아하지않는저희가족은일년에어쩌다한번씩먹게되어주로아는지인들이나이웃에게나누어주는재미로만들었습니다. 그러다얼마전메이플시럽이당뇨예방과암을예방하는데블루베리나브로콜리보다높게작용한다는보고서를읽게되어그이후론 제아침식탁엔 아내가공동체에서키운젖소에서나온신선한우유로만든요거트에메이플시럽을한두스푼넣어먹고있습니다. 그릭요거트같은맛에 스모크향이나면서순한단맛이찰떡궁합인게이젠임금님의수라상도부럽지않은아침식사가되었네요. 언제든지메이플릿지저희집에놀러오세요. 갓구운바삭바삭한와플에홈메이드요거트와메이플시럽을살짝얹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