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지암이 자리한 두륜산 너머 장전리 마을에서 열리는 잔치에 초대 받았습니다. 귀촌한 어느 선남선녀가 연을 맺고 집들이를 겸하여 혼인식을 올리는는데 축사를 해달라고 내게 청을 넣었습니다. 3년전부터 일지암에 자주 오는 한쌍입니다. 나이가 좀 드신 신랑은 도시의 지인들과 마을 사람들을 모셨습니다. 사물놀이로 길을 열면서 잔치를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함께 하면서 익살스런 객담이 오가며 잔치는 흥겹고 정겨웠습니다. 선남선녀의 앞날을 위해 짧은 축사를 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부처님과 예수님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실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한밤중에 큰 병이 걸려 고통스럽게 몸부림칠 때, 부처님과 예수님이 당장 달려오겠습니까? 아무리 부르고 기도해도 두 분은 오시지 않습니다. 그럼 누가 병원으로 급히 모실까요? 바로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신통력으로 여러분을 병원으로 모시지 않습니다. 119구급대원이 모십니다. 또 부처님과 예수님은 아픈 여러분을 수술하지 못합니다. 의사가 여러분의 병을 고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사람은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십시오. 내 곁에 있는 배우자가 수호자이고 구원자입니다. 119구급대원이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길을 인도하는 보살)입니다. 의사가 약사여래부처님입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법문을 각색하여 축사를 했습니다. 두 분의 앞길이 가시밭길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기원하면 간절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날 혼인식이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서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하객 중에 어린이 한 분이 감나무에 올라가 잔치를 구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들 웃으며 흐뭇하게 바라봤습니다. 사실 이 친구가 수시로 나무와 담장을 오르는 일은 우리에게는 흔한 모습입니다. 일지암에 오면 높은 돌담을 장비도 없이 오릅니다. 나름 암벽 등반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최영홍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우리 땅끝 마을에서 영홍이는 여동생 유진이와 함께 유명 인물입니다. 큰 형 최영훈 군은 의젓합니다. 뭘로 유명하냐구요? 가수로 제법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영홍이와 유진이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납니다. 평소 못 말리는 개구쟁이지만 무대에 오르면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 영홍이는 노래가 끝나면 금새 온갖 장난에 여념이 없습니다. 여튼 영홍이는 해남 진도 등지에서 열리는 공연에 출연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합니다. 단지 어린이가 부르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높은 음악성으로 공감과 감동을 줍니다. 세월호의 아픔이 남아있는 팽목에도 출연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해원’이라는, 남도 음악 모임에서 공연을 했는데 500여명의 청중 앞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노래를 잘 불러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
영홍이 삼 남매는 해남으로 귀촌한 가족입니다.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고, 선생님이었던 아빠는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아빠는 작은 학교 살리기에도 열심입니다. 일지암 일도 잘 도와주십니다. 오늘도 마른 소나무를 잘라 찻상과 의자를 만들어 멋진 찻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푸른 신록의 생살이 돋아나는 두륜산을 감상하며 연못 옆에 마련한 야외 카페에서 이제 막 돋은 찻잎을 따서 싱그러운 차회를 즐겼습니다. 영홍이 가족들은 해남 살이가 매우 즐거운 것 같습니다. 특히 아이들 교육 환경에 매우 만족하는 듯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말을 잘 안들으면 아빠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 그러면 외할아버지 계시는 부산으로 이사 간다” 이런 협박에 아이들은 쥐 죽은 듯 꼬리를 내립니다.
세 아이는 참 명랑하고 정겹습니다. 그리고 나름 예의도 바르고 마음씀도 섬세합니다. 무엇보다도 몸이 부지런합니다. 몸 쓰는 일을 꺼려하지 않고 즐깁니다. 요즘 아이들 스마트폰에 열심하여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참 신통합니다. 작년 여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날은 제가 글을 통하여 몇 번 소개한, 틈틈 노동수행을 하는 ‘땅끝 차여사댁’ 밭에서 감자캐기 울력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워낙 밭이 넓고 수확량이 많아 열대엿 명이 모여 감자 캐기에 동참하였습니다. 햇볕은 따갑고 날은 후덥지근한 날이었습니다. 나와 함께 수시로 차여사댁 식객을 자처하는 여러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소릿꾼과 사물놀이꾼, 선생님들, 한 동네 사람들, 광주에서 온 사람들이 일손을 모았습니다. 영홍이 아빠와 삼 남매도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동네 할머니 애들을 보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매우 좋아하십니다. 애들이 일을 하러 밭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기특하고 신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로는 애들이 하면 얼마나 하겠어? 라는 생각이었겠지요. 그런데 웬걸, 일하는 품세가 제법입니다. 일은 대충하면서 장난치다가 한 두시간 지나면 슬그머니 빠지겠지 했는데, 뙤약볕 아래서 어른들과 진지하게, 진득하게 감자를 주워담습니다. 한 할머니가 감탄합니다. “오메, 오메, 저것들 좀 봐. 요새 애들 아니네. 요새 애들 아녀” 왜 그리 감탄하는지 슬쩍 곁눈으로 봤는데 그럴만 합니다.
감자 캐기는, 먼저 삼태기에 담아 다 채워지면 큰 마대자루에 넣고 트럭에 싣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들은 무거운 마대 자루에 옮겨 싣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애들은 자기들 삼태기에 감자를 담으면서도 틈틈 곁눈으로 할머니들의 삼태기를 살핍니다. 할머니들의 삼태기에 감자가 다 채워지면 재빠르게 마대 자루에 넣습니다. 애고~ 신통방통 보살 마하살! 이러니 얼마나 애들이 오지고 귀엽겠습니까? 요새 애들이 아니라는 말이 딱!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다가도 애들은 애들입니다. 이렇게 분위기 화기애애 잘 나가다가 돌발사태가 생겼습니다. 영홍이 동생 유진이가 서럽게 훌쩍입니다. 공개하기는 좀 그렇지만 사실 초등 2학년 유진이는 울음 공주입니다. 재미있게 놀며 웃다가도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급 울음입니다.(유진이 취미는 오빠들 괴롭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유진이는 울다가 웃다가의 간격이 매우 짧습니다. 여튼 한여름 감자밭에서 유진이가 왜 울었냐고요, 그놈의 ‘돈’때문이었습니다. 애들이 일하는 게 이뻐서 할머님 한 분이 만원을 영홍이에게 주고 유진이에게도 주려했는데, 아뿔싸! 할머니 주머니에 돈이 없네요... “오메, 어쩐다냐. 돈이 없네, 아가야, 미안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입을 삐죽삐죽하던 유진이가 급기야 서럽게 훌쩍입니다. 모두들 어쩔줄 모르고 곁에 있는 영홍이는 못내 난처한 표정입니다. 그래도 수입은 지출할 수 없는 법, 영홍이는 꿋꿋하게 돈을 지켰습니다.
힘겹게, 즐겁게 일을 하다가 마침내 밭일의 최고 재미, 새참입니다. 수려한 두륜산과 훤히 트인 들판을 바라보며 맛나게 수박과 막걸리를 먹으며 정담을 나눕니다. 그 때 어김없이 영홍이가 본업의 기질을 발휘합니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바위에 올라가 맘껏 목청을 뽑으며 노래합니다. 매미들이 설 자리를 잃을까 은근 걱정입니다만, 여튼 이 아이의 노래는 피로를 확 풀어줍니다. 영홍이는 높은 곳만 있으면 올라가고 시키지 않아도 흥이 나면 노래합니다. 이만한 복이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일하고 노래하니 별유천지가 한가한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갑니다. 서로가 손을 모은 덕분에 그 큰 감자밭이 말끔합니다. 마무리하는데 동네 할머니 한 분이 감탄합니다.“ 워따! 저 놈 보게, 하는 짓이 영판 속이 꽉 여문 놈이네” 왜 그런가 하니 첫째 아이 영훈이가 큰 밭을 두루 살피면서 감자 이삭을 줍는 것이었습니다. 나무 신통방통 보살 마하살!
그 날 우리 모두는 품삯으로 푸짐한 감자한 포대씩을 받았습니다. 저녁에 영홍이 아빠가 사진 몇 장을 보내왔습니다. 그 날 품삯으로 받은 감자를 쪄서 가족들이 맛나게 먹는 모습입니다. 아! 애들에게 이 감자 맛은 얼마나 맛있었을까요. 굳이 ‘한 티끌에 삼라만상 우주가 담겨있다’라는, 화엄경의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을 설명하지 않아도 애들은 그 이치를 몸으로 깨달았을 듯 합니다. 아! 일미(一微)를 일미(一味)로 바꾸면 훨씬 실감나겠습니다(니들이 이 감자 맛을 알아?).
영홍이 삼 남매는 제 앞에서 거리낌이 없습니다. 몸짓도 말도 서슴없습니다.그래서 제가 은근 기분이 좋습니다. 앞에서 혼인 잔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날 저는 영홍이에게 한 방 먹었습니다. 잔치기 끝나고 다들 모여서 땅끝 차여사님이 마련한 남도 음식을 마당에서 뷔페식으로 먹었습니다.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는데 영홍이가 “고기도 많은데”라고, 말하며 저를 살핍니다. 나물과 함게 부침개 몇 종류를 담았습니다. 그 때 영홍이가 큰소리로 외칩니다. “야! 스님이 살생했다” 햄과 굴 부침개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이 놈은 그렇게 말하고 아주 재미있어 합니다. 제가 아주 만만한가 봅니다. 저를 놀리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입니다. 요즘은 워낙 깔끔한 환경을 좋아하는지라 많은 사람들이 벌레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런데 영홍이 남매들은 벌레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감자를 캐다보면 지렁이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애들은 지렁이를 보면 손에 올려놓고 쓰다듬고 만지며 같이 놉니다. 마치 제인구달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 합니다. 이런 아이들 곁에 또 신통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엄마와 아빠입니다. 아이들이 나를 놀리고 몸 장난 걸어오면 대개의 부모들은 말립니다. “스님한테 그런면 안돼‘ 하면서요. 나무나 담벽을 타고 오르면 위험하다고 못 하게 합니다. 그런데 애들의 부모님은 그저 지켜봅니다. 내가 찻상 앞에서 차를 내려고 하면 애들이 서로 ”내가 팽주할꺼야“하고 내 자리를 밀어냅니다. 팽주(烹主)은 차를 우리는 역할을 말합니다. 엄숙한 찻자리에서 떠들며 재미나게 차를 우려도 엄마아빠는 말리지 않습니다. 저는 평범 속에 비범을 봅니다. 그저 지켜 보는 일, 뭐든지 생명의 약동을 지켜보는 일, 이런 모습이 참 교육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간섭을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잔소리를 배려라고 생각하고, 거리낌없는 몸짓을 위험하고 버릇 없다고 생각하는, 이런 생각이야 말로 착각일 것입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은 넘치면 내뿜는 기운찬 약동입니다. 대개 이런 생명의 약동은 변방의 삶터에서 원활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다만 이렇게만 커가기를 바랍니다. 함께하는 어른들이 다만 그렇게 그윽한 눈길로 지켜보기를 바랍니다. 삶의 신비와 기적은 멀리에, 별스럽게, 있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나저나 앞으로 영홍이 눈길 무서워서 어찌 사나? “야! 스님이 살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