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너무 미안해
2014.1.16 <당당뉴스> 박평일BPARK7@COX.NET
신년 초 잡상들
1
새벽부터 겨울비가 내린다.
내 건강 상태처럼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어제 하루 종일 굶은 탓인지, 뱃가죽이 허리에 붙어 있는 기분이다. 냉장고 문을 열고 밥솥에서 식은 밥 몇 덩이를 꺼내 접시 위에 올려 놓고 마이크로웨브 로 덥혔다. 아무런 냄새가 나질 않는다.
독감으로 코 기능을 상실했나 보다.
그래도 나의 위대한 혀는 안녕하시겠지.
평소에 즐기는 구운 스시 김으로 밥을 말아 참기름이 동동 떠있는 간장에 찍어 김치와 함께 입안에 넣었다.
맛이 쓰다. 혀까지 밤새 안녕치 못한 모양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음식을 씹는다고 했거늘, 예나 지금이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은 변함없는 진리다.
작은 냄비에 밥을 끓여 목구멍에 훌훌 털어 넣었다.
받았다는 전갈이 뱃속으로부터 힘없이 들려온다.
지독한 독감이다.
늦가을에 독감 예방주사까지 미리 맞아두었는데.
인간들이 지독한 신종 예방약을 발견해 내면
더 지독한 신종 바이러스로 맞서는 것이 자연인가 보다.
미 대륙을 맹타하고 간 기록적인 추위에 당일
혼자서 산행을 한 내 무식한 만용 탓일까?
아니면 해를 넘기며 며칠 사이에 더 늙어 허약해진 탓일까?
강건한 어머니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몇 년이고
감기나 잔병 따위는 모르고 살아온 강철 사나이가
바로 내가 아닌가. 아닐 것이다,
"일어날 것은 반듯이 일어나고 만다."는 우주의 섭리 탓일 것일 것이다.
2
숟가락을 놓고 돌섬 K목사에게 신년 인사차 전화를 했다.
"그간 별고 없으시지요? "
"그럼요, 해암은 감기 다 나았어요?"허스키 목소리만 듣고도
금방 내 건강 상태를 알아보는 신통한 진단 술이다.
"며칠간 앓아누워 있으니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곱니다. 세상만사가 헛되다는 생각뿐입니다."
"건강해도 헛되게 느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이 14일이면 벌써 일 년이 다 지나갔네요."
아침 약속이 있다고 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벌써 일 년이 다 지나갔다 고?
하기야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요즘같이 초스피드 인터넷 시대에는 시작이 끝이라는 억지를 써도 무리한 주장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니까.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조금이라도 몸이 불편하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별별 상상을 다 하게 된다. 뭐니 뭐니 해도 죽음이 그 두려움의 첫 번째 대상이다.
공자는 제자들의 죽음에 대한 질문에
"나는 삶도 잘 모르는 사람인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고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맞는 말일 것이다. 죽음은 죽은 후에 연구해도 때가 늦지 않다.
인간은 태어나면 한 번은 ‘반드시 죽는다.’는 명백한 사실만 알고 있으면
족하리라. 어차피 죽음은 살아서는 풀 수 없는 신비이다.
마침 P 선배가 가톨릭 황창연 신부의 특강 "아침마당 목요특강 -사람을 살리는 말씨"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연초에 나의 지난 삶을 관조해 보는데 필요한 시의적절한 내용들이었다.
황태연 신부는 강원도 평창에서 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으로 시무하고 계시는 분이다.
그 생태 마을에는 많은 암 말기 환자들이 물리적 자연치료를 위해서 기거하고 있다고 한다.
신부 자신도 암 환자였다고 하니 마음이 오죽 서로 통했겠는가?
그 환자들 가운데 죽음을 목전에 둔 여자 환자 대부분은 ‘자기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후회 한다고 한다.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서 평생 입고 싶은 옷, 먹고 싶은 음식을 한 번도 마음껏 즐기지 못한 한국 어머니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서 왠지 마음이 울컥했다. 이제 죽음을 코앞에 둔 그녀들은 자신들의 지난 삶을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후회의 삶들을 무수히 직접 지켜본 황 신부는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이 날 때마다 이렇게 대처한다고 한다.
'너 갈비가 먹고 싶니? 하고 자신에게 물은 후,
"그래 내가 실컷 사줄게!"하고 자신을 대접한다고 한다.
다소 농담이 섞인 이야기지만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어찌 주부들뿐이겠는가?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 사람들은 평생 자기 자신을 너무 돌보지 않고 살아간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어찌
남을 사랑하고 존경할 수가 있고,
자신이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찌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는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야 말로
삶에 대한 우리들의 위대한 스승들이다.
3.
스위스 계 미국 정신 의학자이자 죽음에 대한 연구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 고 엘리자베스 퀘블러 로스는
평생 죽음을 직전에 둔 수백 명 이상의 환자들과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연구했다.
그녀의 베스트셀러 '인생 수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수없이 많은 임종의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뉘우칩니다.
난 한 번도 내 꿈을 추구해 본 적이 없어'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본적이 없어.'
'난 돈의 노예였어.'하고 말입니다.
'사무실에 남아서 좀 더 늦게까지 일할걸 그랬어.'라거나
'돈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훨씬 행복했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그리고 임종 전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라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충고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바로 지금 하라’고.
삶도 죽음처럼 신비이기는 마찬가지다. 그 어느 누구도 완벽한 정답을 줄 수가 없다.
한 일본의 선사는 "불을 만지면 화상을 입고, 비가 내리면 땅이 젖는다."는 간단한 지혜정도면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한다.
95세 한 독거노인이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결혼해 본 적이 없는 독신이었다. 그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지인들이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느냐고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노인은 "결혼을 내가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나는 완벽한 여자 배우자감을 찾아 평생 헤맸는데
아직까지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시면 그 동안 완벽한 여성을 단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딱 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여성도 완벽한 남성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고 대답했다. 삶에는 이토록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니딘 스테이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음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그리고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더 우둔해지리라.
가능한 한 매사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