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가장 큰 기쁨으로 몰아넣는 것이 몰두다. 2,200년 전 동양의 순자는 이를 '막신일호(莫神一好)'라고 했다. 즉, '한 가지 일에 몰두해 크게 성취하는 것보다 더 신명나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무엇엔가 미쳐 정신을 못 차리면 정말 미친 것이지만, 지속적으로 몰입하면 마니아가 되고, 고수가 된다. 모든 일의 성패는 얼마나 그 일에 열정적인가에 달려 있다.
만약 내가 원치 않은 일을 하게 됐다고 불만스러워하고만 있다는 건 무엇보다 자신에게 못할 짓이다. 가치를 찾으면 기뻐지고, 기쁘게 하다 보면 정말 원했던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무엇이나 먹을 수 있고,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내가 '종교전문기자'란 길을 간 것도 30대 후반이다. 자기의 장점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했다고, 자기 분야에서 일찍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애태울 필요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눈치나 보며 나다워지는 것을 막는 것은 세간의 획일화된 사고의 틀이다. 그런 사고가 고대 그리스라고 없었을리 없다.
*자발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았던 디오게네스
당시 흔히 말해 '잘 나가던'사람들이 두부 찌꺼기를 먹고 있던 디오게네스에게 말했다.
"왕의 말을 듣기만 했더라도 이 따위 형편없는 걸 먹고 살지 않아도 되련만......"
이 말에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이런 것도 맛있게 먹을 줄만 알면, 그렇게 꼬리를 흔들어가며 간과 쓸개를 다 내놓지 않아도 되련만......"
지혜는 부(富)를 더욱 아름답게 해주고, 가난조차도 부드럽고 여유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직업이나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자가 가장 잘 사는 사람이다. 부자이면서도 겸손하게 나눌 줄 알고, 빈자이면서도 자기비하 없이 마음의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자 말이다.
한때 유명 종교인이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해 널리 회자된 적이 있다. 선승 고우 스님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말한다.
"무엇이 되더라도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요즘은 무엇이 되든 불행한 이들이 늘고 있다. 특성도 개성도 열망도 다 제치고 남의 눈높이를 따라간 결과다. 자신의 열망을 무시한 채 세상의 기준을 좇아 성적순에 따라서 직업을 선택하다보면 경제적으로는 풍족해지더라도, 행복해질 수 없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정작 자기 일을 감옥살이처럼 느낀 채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학자를 뜻하는 '스콜라(scholar)'는 그리스어의 '여유(skhole)'에 어원을 두고 있다. 여유를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과 달리 고대 철학자들이 한가롭게 거닐었던 곳으로 향한다.
투어버스는 아고라에 내린다. 어원이 '모이다'란 뜻의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중심에 있는 광장을 말한다. 그리스인이 민회와 재판, 상업, 사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했던 곳이다. 도시국가에서 신전과 주요 관공서가 있는 아크로폴리스가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라면, 아고라는 일상적인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민 생활의 중심지다.
*아테네의 아고라
디오게네스처럼 단순한 삶을 이어가려고 한 스토아학파들이 주로 토론하던 곳이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 제논의 스승은 크라테스다. 그는 전 재산을 시민에게 나눠주고 거지수도사로 금욕적 삶을 살았다. 넉넉한 집의 딸이던 그의 제자 히파르키아는 그를 연모해 자기와 결혼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했다. 여자 부모의 간청으로 크라테스는 거지 전대를 풀어 앞에 던져 놓고 "이게 내 전 재산이니 다시 고려하라"고 했다. 하지만 히파르키아는 집을 나와 자신도 거지 옷을 걸치고 크라테스와 살았다.
*에픽테토스
둘은 남의 이목 같은 건 상관치 않고 서로에게 성실하고 애정 넘친 삶을 살았다. 스토아학파를 이은 에펙테토스는 남들의 행복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살라고 당부한다.
"그럴듯한 직함과 학위, 명예와 부, 멋진 외모와 유려한 말투, 명품과 매력적인 행동에 우리는 얼마나 쉽게 현혹되는가.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들과 공적인 인물들, 정치 지도자들과 부자들,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행복할거라고 지레짐작하지 말라. 남들과 견주어 자신의 성취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폄하하며 좌절하고 슬퍼하지 말라. 지금 그대 안에 있는, 최상의 자아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 보려는 갈망을 이제는 멈춰라. 그것만큼은 네 뜻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스인생학교>(조현 지음, 휴) '9장 인생철학교실, 아테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