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의 '그레고르'를위하여
[복음과상황 278호 커버스토리]
2013년 12월 30일 (월) 11:48:49 구미정 goscon@goscon.co.kr
▲ 세리 마태(렘브란트 작)와 카프카(1906년).《변신》의 그레고르처럼 이들도 직장과 사회 혹은 체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해가는 상황과 시름했다.
카프카의 퇴근길
새삼스럽게 카프카를 떠올린다. 체코(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프라하에서 유대인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나 ‘불후의 명작’을 여럿 남긴 그이를 떠올린다. 이처럼 위대한 그도 말년에는 히브리어를 배우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계획까지 세웠었다니, 꽤나 신산한 삶을 살았던 모양이다.
오후 2시 프라하를 어슬렁거리던 카프카의 퇴근길을 더듬어본다.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작가로 알려진 그가 프라하 어디께 위치한 노동자산재보험공사에서 성실한 직장인으로 복무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20대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법원에서 1년간 ‘인턴’생활을 하다가 노동자산재보험공사로 자리를 옮겨 14년 동안 일했다. 그러니까 폐결핵 때문에 ‘조기퇴직’을 할 때까지 그곳은 그의 유일한 ‘직장’이었다.
장남만 아니었어도,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었을지 모른다. 장차 히틀러의 검은 그림자가 들이닥칠 비운의 땅에서 유대인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았을지 모른다. 《변신》을 쓴 때가 1912년이니, 직장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네 해쯤 되었겠다. 작가로서 문학에 전념하고픈 열망과 씨름하며, 또 직장인으로서 직장과 사회 혹은 체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해가는 상황과 씨름하며 균형을 잡느라 비틀거리는 그의 모습 그대로가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였으리라. 하필이면 직장에서 그에게 할당된 일도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처리가 아니던가. 업무상 만난 노동자들의 모습 또한 수많은 그레고르들에 지나지 않았겠다.
레위-마태 혹은 그레고르
여기 또 한 사람의 그레고르가 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세리 마태다.(마 9:9-13) 또 다른 이름으로는 레위라 불린다.(막 2:13-17; 눅 5:27-32) 아마도 유대식 이름이 레위고, 헬라식 이름이 마태였지 싶다. 이 한 가지 정보만 갖고도 그가 산 시대의 불온성을 눈치 채기에 충분하다. 이름하여 ‘식민지’ 수탈 시대였다는 말이다.
해 아래 어떤 직업이 마냥 무시간적 추상일 수 있으랴. 그의 직업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세리, 곧 세무사라고 하면 요즘에는 꽤나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겠다. 영어는 기본, 재정학, 세법학, 회계학 등을 두루 섭렵하여 2차까지 시험을 통과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명함이니 스스로도 얼마나 자랑스럽겠나. 아, 물론 심심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국세청 비리’를 생각하면, 맥이 빠지기는 하지만.
한데 마태 시대의 세리는 ‘대놓고’ 죄인으로 몰렸다. 단순히 유대인에게 세금을 거두어 로마제국에게 갖다 바쳐서가 아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식민지에 대해 황제숭배 이외의 모든 것을 느슨하게 허용하는 이른바 관용정치를 펼쳤다. 이를테면 자치령에는 조세권이 있어서, 세금이 로마 황제의 국고로 들어가지 않고 식민지 군주의 금고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유대 땅 갈릴리 일대의 사람들은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에게 세금을 바쳐야 했다.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 지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인 게네사렛(갈릴리) 호숫가에 수도를 건설하고,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의 이름을 따서 ‘티베리아’(디베랴)라고 명명할 만큼 간사스런 인물이다. 아버지 ‘헤롯대왕’을 빼닮아 교활하고 잔인했던 그는 불법으로 형수를 취한 일로 세례 요한에게 비판을 받자, 가차 없이 참수형을 행하기도 했다. 예수가 ‘여우’라 부른 헤롯이 바로 그다.(눅 13:32)
그 시절 세금 징수는 국영이 아니라 민영으로 이루어졌단다. 세금 청부업자가 나라와 합의하여 연간 납부액을 정하는 식이다. 그 일정액을 초과하면 자기가 먹고, 모자라면 물어내야 했다. 요컨대 성과급 제도로 운영되었다는 말이다. 이리 되면, ‘유능한’ 세리는 어떻게든 남겨 먹기 위해 온갖 술수를 썼으리라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세리가 ‘도둑’이니 ‘사기꾼’이니 욕을 먹은 이유다.
마태의 경우는 가버나움 세관에 소속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고고학의 발견에 의하면, 갈릴리 호숫가 북서쪽에 위치한 이 연안도시는 국제 무역도로가 관통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국경을 통과하는 상품들에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세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미루어, 예수의 주요 활동무대 중 하나였던 가버나움이 제법 활발한 상업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그 자리는 모든 세리들의 ‘로망’, 그야말로 세관 중에서도 노른자위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처음에는 돈 버는 재미에 취했을 테다. 도둑으로 몰려도 좋고 사기꾼이라 불려도 괜찮다, 개 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자, 뭐 그런 자세로 복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방인과 접촉하고 이방 물건을 만져야 하는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그의 유대적 정체성은 심각한 상처를 입어야 했다. ‘죄인’은 도둑이나 사기꾼과 질적으로 다른 말이다. 유대인에게 목숨과도 같은 율법을 어긴다는 것은, 그리하여 ‘의인’의 반열에 들지 못한다는
것은 생지옥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부름과 따름
“예수께서 …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마 9:9, 새번역)
세상에, 제자가 되는 일이 이렇게 ‘심플’(simple)해도 되나. 나에게도 이따금 스스로 제자를 ‘참칭’하는 학생들이 있다. 내 수업을 한 학기 들었을 뿐인데 감히(!) 스스로 제자라고 하면서 졸졸 따르면, 혹시 밥 사달라는 뜻 아닌가 하면서 괜스레 ‘저의’를 의심하게 된다. 적어도 내 제자라면 내가 학교 안팎에서 행한 모든 강의를 쫓아다니며 듣고, 내가 쓴 글 전부를 찾아 읽고, 내가 미처 말하지 않은 것까지 헤아려 알아듣고… 뭐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기대치가 한도 끝도 없이 높아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런 심리의 밑바닥에는 사실상 ‘아무나’ 자기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뒤집어 말하면 자기가 엄청 잘난 인간이라는 교만 말이다. 한데 예수는 전혀 ‘밀당’(밀고 당기기)이 없다. 제자를 ‘엄선’하기는커녕 ‘아무나’ 부른다. 이렇게 자기를 낮추기로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예수만한 스승이 없으렷다. 동양의 현자라는 공자도 하다못해 ‘육포’라도 가지고 와야 제자로 받아들여주었다지 않은가.
순서로 치면, 제자가 되고 싶은 쪽에서 먼저 스승을 찾아가 예를 갖추고 공을 들여 자기를 받아들여달라고 청해야 맞겠다. 그러나 예수는 이런 상식을 뒤집는다. ‘아무나’도 석연치 않은 판에 상대방의 의견 따위를 묻는 법 없이 ‘나를 따르라’고 일방적으로 명령한다. 명령은 순종과 한 쌍을 이루는 단어다. 순종은 명령의 필요조건이다. 일방적인 명령일수록 ‘무조건’ 순종이 기대된다. 따지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다. 마태도 예외가 아니다. 그보다 앞서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도 일방적인 명령과 무조건 순종의 공식이 적용되었듯이 마태의 경우도 그랬다. 그는 예수로부터 일방적인 호출을 당했고,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나 예수를 따라갔다.
기이한 것은 이 대목이다. ‘부름’과 ‘따름’ 사이가 이렇게 심플해도 되냔 말이다. ‘부름’이 ‘아무나’에게 열려있는 것이야 은혜의 풍성함을 상징한다 치자. 하지만 ‘따름’은 그렇게 수월한 일이 아니다. 특히 마태의 경우 그것은 막대한 소득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경험상 이런 종류의 결단은 죽기보다 어렵다. 도둑놈 소리를 듣고 사기꾼 소리를 듣더라도 그 자리를 꿰차고 있었던 건 순전히 ‘돈의 힘’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돈이 주는 보상만큼 가장 큰 위로가 또 있던가. 아무리 힘든 일도, 아무리 수치스럽고 모멸스런 일도, 돈만 준다면 다 참아낼 수 있는 게 인간이다. 돈의 관성만큼 벗어나기 어려운 중력의 법칙도 없다.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는 말에 홀려 따라간 게 우리다. 명색이 교회 장로가 드러내놓고 ‘경제대통령’을 표방해도 천박하다거나 부끄럽다는 느낌 대신에 박수치며 장단 맞춘 게 우리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예수의 말씀은 일찌감치 성경책에서 지워버린 채 빵만 준다면 아무리 독재를 해도 눈을 감은 게 우리고, 그런 독재자를 ‘반인반신’(半人半神)이라 부르는 우상숭배가 버젓이 일어나도 못 본 체 하는 게 우리다. 돈의 관성이라는 중력의 법칙은 그렇게 우리를 매순간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이런 모습이 결코 인간일 리 없다. 돈과 가치 사이에서 적어도 가치를 선택할 줄 알아야 인간이다. 가치를 접어둔 채 무조건 돈만 따르면 괴물이 된다. 어느 날 아침 문득 눈을 뜨고 보니 자기가 흉측한 벌레로 변해있더라는 그레고르의 ‘자각’이 그런 것 아니었을까. 인간은 결코 기계로, 도구로, 자본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사실, 그러니까 인간이 구원받을 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다시 말해 인간으로 실존하는 데 있다는 근본적인 진실의 발견 아니었을까.
마태에게 예수의 부름은 ‘눈뜸’과 다른 말이 아니었으리라. 감은 눈을 뜨고 보니, 비로소 하늘이 열린다. 중력의 법칙 말고 다른 법칙이 보인다. 그 법칙은 시몬느 베이유가 말한 대로 ‘은총의 법칙’이다. 시몬느 베이유에 따르면, 인간이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날 길은 오직 하나, 은총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중력은 우리를 땅으로 떨어뜨리지만, 은총은 우리를 하늘로 날아오르게 한다.
오후 2시, 일과 꿈의 문지방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마태의 예를 통해 ‘제자-되기’란 무릇 세속의 직업생활을 단박에 접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있을까봐 걱정스럽다. 개신교 목회자들마저 자신들을 하도 ‘성직자’라고 부르니까, 중세의 성직제도를 깨치고 나온 것이 개신교라는 사실을 자꾸만 잊어버리게 된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알짬은 뭐니 뭐니 해도 성직 개념의 민주화다. 세속의 일터에서 일하되, 보냄 받았다는 ‘소명’을 가지고 일하면,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생각이 이른바 만인사제설이다. 다른 말로, ‘성속일여’(聖俗一如)의 세계관이라고나 할까.
빵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이가 소명감을 가지고 일할 때, 그것을 사먹는 이에게 해로운 물질을 넣을 리 없다. 왜냐하면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자매를 섬기기 위해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곡식이나 야채, 과일, 또는 고기를 파는 이도 그렇다. 저울을 속이거나 등급을 속이는 짓 따위를 할 수가 없다. 이웃집 식구가 먹을 건데 어떻게 음식을 갖고 장난을 치겠는가. 나아가 생산자 역시 자기가 키우는 곡식이나 야채, 과일, 또는 짐승에다가 나쁜 짓을 행할 리 없다. 어떻게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탐스럽기도 한’ 먹거리를 생산해서 돈만 많이 벌려고 별 짓을 다하는 것은 하늘을 속이는 죄이거니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악이기 때문이다. 하여 6년간 땅에서 소출을 냈으면 7년째에는 그 땅을 쉬게 하라는 구약의 안식년 법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이를 보면 성서의 경제관은 인간의 탐욕을 뒷받침하는 무제약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과 땅에 대한 철저한 책임주의라 하겠다.
다시 오후 2시의 카프카를 상상해본다. 그의 퇴근 시간은 대체로 늘 오후 2시였다고 한다. 팔자가 좋아서가 아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작가의 운명을 지고 태어난 사람치고 팔자 좋은 경우란 드물다. 팔자라기보다는 그냥 사는 거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어떤 강박 때문에 이를 악물고 살아내는 거다. 그러니까 오후 2시는 직업인과 작가로 동시에 살기 위한 그의 타협이었던 셈이다.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은 데서 나는 그의 비범함을 본다. 그는 일과 꿈 둘 다를 성실하게 붙들었다. 비단 돈 때문이었다면, 그래서 인간이기를 저당 잡힌 채 돈의 노예로만 살아야 하는 자리였다면, 그도 마태처럼 당장에 때려치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직업은 보람과 의미를 담보했다. 일하다 다친 노동자를 위해 산재보험처리를 돕는 일이었으니, 기껏 법을 공부해서 악용하거나 군림하는 이들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물론 때에 따라서는 보험액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었겠다. 하지만 그런 경험조차 그에게는 소설의 자양분으로 선용되었다. 카프카의 걸작 중 하나인 《소송》같은 단편은 법조계 안에서 오랫동안 관찰자로 지낸 경험이 없었다면, 그런 깊이를 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까닭은 그만큼 그의 실존이 누구보다 치열했기 때문이 아닐까. 보통 사람들은 꿈을 접고 일에 매진한다. 꿈은 나중에 돈을 번 다음에 차츰 이루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보통보다 못한 사람들은 꿈을 사치라 여기며, 일벌레로 살아간다. 꿈을 좇는 사람들을 비현실적인 몽상가라 조롱하면서. 한데 카프카는 용케도 일과 꿈을 병행했다. 이게 가장 어려운 거다. 사실상 과감히 일을 접고 꿈을 선택하는 경우란 대부분 결단의 문제라기보다는 생계의 문제이기 쉽다. 생계가 뒷받침되지도 않는데 꿈을 좇으라는 것은 이상주의자들이 저지르기 쉬운 관념론적 횡포인 경우가 많다.
‘6일’이 필요하다
일은 꿈의 피상성과 추상성을 구체화해주고, 꿈은 일의 목적과 가치를 분명히 해준다. 그 둘 사이를 오가며 창조적 긴장감을 안고 외줄타기를 한 데서 카프카의 예술이 나왔다고 나는 믿는다. 예술작품은 여가시간에, 노동 이외의 남겨진 날에 하는 것이라는 이원론적 생각이 나는 마뜩찮다. 일상과 예술은 둘이 아니다. 생활인과 예술가도 반대말이어서는 안 된다. 진부한 일상생활을 예술로 만들려는 지난한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가 인간일 수 있다고 믿기에 나는 심보선의 시에 밑줄을 긋는다.
나에게는 6일이 필요하다
안식일을 제외한 나머지 나날이 필요하다
물론 너의 손이 필요하다
너의 손바닥은 신비의 작은 놀이터이니까
미래의 조각난 부분을 채워 넣을
머나먼 거리가 필요하다
- 심보선, 〈필요한 것들〉중에서
시인은 안식일의 여가보다 6일간의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예술의 자리가 일상임을 분명히 한다. 사실상 인간은 안식일의 활동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다. 아니 안식일에나 하는 이른바 종교활동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영적 교만이자 착각일 테다. 그보다는 안식일을 뺀 나머지 6일들이 중요하다. 그 일상의 나날들을 무엇으로 채웠느냐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확증될 것이다. 시인은 그 시간을 “인간이 신에게서 빌려온 유일한 단어”인 ‘사랑’으로 채우자고 노래한다. 그래서 시인에게는 예술의 적요한 고독보다 “너의 손”이 더 중요하다. 다친/추락하는 너의 손을 잡는 나의 행위가 바로 사랑이다. 다친/추락하는 너의 손을 놓지 않는 한, 나도 함께 다칠 것이고 함께 추락할 테지만, 인간이 새로 태어날 길은 이 사랑밖에 없단다. 이러한 손-잡음을 시인은 ‘선행’이 아닌 ‘동행’이라 부른다. “선행과 상관없는 동행”, 그런 것을 언제까지고 반복하고 싶은 욕구야말로 “신비의 작은 놀이터”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의 특권이다.
요컨대 일에서 놀이정신을 회복하자는 거다. 흔히 일과 놀이는 반대라고 생각하는 데 우리의 불행이 있지 않나 싶다. 저마다 돈을 벌어 실컷 놀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논다. 이런 식의 분열은 일을 고역으로, 놀이를 수단으로 만든다. 열심히 일해도 기쁨이 없고, 아무리 놀아도 즐겁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나님은 6일간 일하시면서 하루도 기쁘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노동과 놀이가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에덴 안에 있던 아담도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맡겨진 일이 있었다. 하나님의 동산을 돌보는 일이다. 에덴이 낙원인 까닭은 노동이 면제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서도 노동과 놀이가 합일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둘의 분열은 실낙원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다. 인간의 타락이란 노동을 놀이에서 분리시켜 돈과 짝을 이루게 된 내력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돈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그냥 세관에 앉아있지는 말자는 얘기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다, 먹고 사느라 어쩔 수 없다, 그런 핑계는 예수의 부름에 임하는 바른 응답이 아니다. 일단 돈과 노동 사이의 비판적 거리두기부터 실험해볼 일이다. 노동의 이유가 달라지면 노동의 내용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건 그렇고, 국가마저 기업의 하수인이 된 시대, 지성인의 산실이라는 대학조차도 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한 시대에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오로지 대학의 정규직교수 자리만 바라보며 기약 없는 ‘희망고문’으로 매일매일 시들어 가는가. 어차피 ‘잉여’에 불과하다고 자조하는 청춘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무책임한 수사를 남발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나에게도 카프카의 오후 2시가 있는가. 아, 그리스도인-되기는 영원한 숙제구나.
구미정
다양한 인문학적 글쓰기와 강연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기독교여성학자이자 목사. 이화여대 철학과와 같은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졸업했으며 기독교윤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숭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저서로 《생태여성주의와 기독교윤리》 《한 글자로 신학하기》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성경 속 세상을 바꾼 여인들》 등이 있다.
*이 글은 복음과상황(goscon.co.kr)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