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과 함께하는 시대의 목탁 소리 퍼질까
지난달 27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자성과 쇄신 결사’ 3돌 기념법회에서 새로운 불교관과 실천관을 담은 발원문을 낭독하는 스님과 불자들.
사진 조계종 총무원 제공
[종교의 창] 조계종 ‘자성과 쇄신’ 3돌
“중생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겨/ 한 생명 빠짐없이 평화와 행복의 길로 이끌었던/ 붓다의 고귀한 삶과 정신을 따라/ 저희들 또한 지금 여기서 거룩한 붓다로 살겠습니다// 붓다처럼 자연과 사람을/ 고귀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붓다처럼 자연과 사람을 평등하고 정의롭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
‘행동하겠습니다’란 끝말이 아홉번이나 이어지는 이 기도는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 발원문’이다. 조계종은 ‘자성과 쇄신 결사 운동’을 시작한 지 3년 만인 최근 이 발원문을 내놨다.
이 기도문엔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결사본부) 자문위원단 내 의식개혁소위에 참여한 고우 스님(원로의원), 무비 스님(전 교육원장), 지안 스님(전 승가대학원장), 혜남 스님(통도사 율주), 성우 스님(불교텔레비전 이사장), 현응 스님(교육원장)과 도법 스님이 3차례 만나 장시간 토론한 끝에 합의한 불교관과 실천관이 담겨 있다.
이들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중도(中道)로 보았을 때 ‘사람은 중생이 아니라 본래 부처’라는 ‘본래부처론’을 불교관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생명이 둘이 아니기에 한몸으로 여겨 돕는다’는 ‘동체대비행’을 불교적 실천관으로 정했다.
본래 붓다임을 알아 붓다로 살고
중생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행동하는 종교’로 대전환 나서
내달부터 ‘화쟁 코리아 100일 순례’
현지인들과 아픔과 희망을 공유
이렇게 정해진 이 발원문은 수행의 종교에서 삶의 종교로, 관념의 종교에서 실천의 종교로, 은둔의 종교에서 대중 속의 종교로, 관념의 종교에서 행동하는 종교로, 홀로 가는 종교에서 함께하는 종교로의 ‘대전환’을 담고 있다. 과연 총무원장 연임에 성공해 새로운 4년의 시간을 번 자승 스님과, 그로부터 이 운동의 선봉장으로 위임받은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장’ 도법 스님이 대중들과 함께 불교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관심사다.
‘자성과 쇄신 결사 운동’은 2011년 신년기자회견에서 자승 스님이 선언한 이래 불교계 시민운동의 대부 격인 도법 스님을 추진본부장으로 영입해 전권을 위임해 탄력을 받았으나, 첫 작품인 종교평화선언이 내부 반발로 무산된 데 이어 2012년 5월 백양사 도박사건으로 종단 전체가 난타를 당하며 큰 위기를 맞았다.
지난달 27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거행된 결사 3돌 기념법회에서 도법 스님은 “지난 3년은 뜻은 좋아도 뜻을 실현할 실력과 역량은 턱없이 부족함을 실감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러나 “결사 3년의 성과는 ‘붓다로 살자’는 옥동자를 탄생시킨 것”이라며 “지난 3년이 황무지를 개간하고 씨 뿌리는 세월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새싹을 거목으로 가꾸어 내는 막중한 일의 시작인 셈”이라고 ‘시작은 지금부터’임을 강조했다.
이어 자승 스님은 “처음 결사를 제안할 당시엔 형식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닌지, 그 지속성 여부에 대해 일부의 우려와 불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깊은 관심과 염려 속에서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제주도 해군기지 등 사회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을 다해왔다. 나아가 노동위원회를 설립하고 해고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초청해 무차대회를 개최했다”며 변화의 흐름을 소개했다. 그는 “이제는 교구와 사찰, 그리고 스님과 신도가 주인이 되어 정진해 지역과 계층별 특성에 맞게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붓다로 살자’는 발원을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이제 실천할 때’임을 역설했다.
조계종은 결사본부가 정한 불교관과 실천관을 담은 ‘붓다로 살자’란 주제의 책자를 발간해 전 사찰과 포교당에 배포해 조계종 전체 4부대중(비구, 비구니, 남녀 신자)이 의식개혁 교육 자료로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가톨릭의 현실참여론을 담은 사회교리서 같은 교본이 불교계에도 생기는 셈이다.
조계종은 3월부터는 구체적 실천운동의 일환으로 ‘화쟁 코리아 100일 순례’를 시작한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부산·경남 등 14개 광역단체별로 1~2주씩 순례한다. 순례단은 역사적으로 아픔이 있는 곳이나 현재 갈등을 겪고 있는 곳, 희망을 만들었던 장소 등을 순례하며 현지인들이 자발적으로 결사운동의 주체적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먹고 걸으며 토론하며 아픔과 희망을 공유한다는 계획이다.
조계종은 지난해부터 원로의장 밀운 스님이 위원장을 맡은 종단쇄신위원회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청규(淸規·청정한 규칙)를 제정하고, 2011년 무산된 이후 많은 토의를 거쳐 다듬은 종교평화선언도 올해 안에 발표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현 집행부의 결사 추진에 비판적이었던 우희종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의장(서울대 교수)은 “결사본부는 지금까지 실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좋은 말만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교 내부의 개혁은 계파간 이해관계가 얽혀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에 현 집행부가 정치적으로 풀기 어려운 사회 국가적 문제에 더 집중하는 게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교계의 변화 모색에 엔지오 쪽에선 환영의 뜻을 보이고 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불교가 저잣거리로 나선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불교계의 공감이 확대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아픔과 분열과 갈등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해줄 것”이라며 “이로 인해 불교계에 대한 시민사회의 기대도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