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날, 잠들기 전 소망을 기원하자
2008년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섶다리에서 바라본 보름달. 김봉규 선임 기자 bong9@hani.co.kr
[휴심정] 한가위와 정월 보름달
14일이 정월대보름이다. 우리 조상들은 정월 대보름날 밤 둥근달을 향해 소원을 빌고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여기엔 미신이라고 볼 수 없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양(陽)의 기운을 상징하는 태양과는 달리 달은 음(陰)의 기운인 끌어당기는 수렴의 힘과 함께 응집력이 뛰어나다. 바닷가에서 일어나는 조수 간만의 차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태양과 달로 상징되는 음양이라는 두 행성의 힘을 바탕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1년 사계절이 형성되고 밤과 낮이 번갈아가며 만물을 양육하고 있다. 서양이 태양을 보다 중요시했다면 동양은 달을 보다 흠모했다. 그래서 묵객들의 시어 역시 달이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특히 모든 사물들은 안으로 내실을 다지는 겨울철을 겪어야 봄(spring)을 맞아 스프링처럼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정월 보름달은 음기가 가득 차 있지만 양기가 커지기 시작하는 봄의 전령이다. 그래서 일년의 시작을 알리는 정월 보름달은 희망의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하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자신은 물론 가족의 무탈과 소망을 글로 써서 달집에 매달아 한 해의 꿈을 기원했다. 반면, 겨울의 전령 음력 팔월 보름달은 음의 기운대로 진입을 알리는 것이다. 따라서 희망보다는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는 반성과 함께 향수와 회한에 빠져들게 한다.
달을 보며 지은 시 두 편을 살펴보자. 먼저 정월 달을 가슴에 안으며 읊조린 이황의 <도산 달밤의 매화> 중 4연이다. “늦게 피는 매화의 참뜻을 내 아노니 추위 타는 나를 위해 일부러 맞춤일세. 어여뿔사! 이 밤 사이 내 병이 낫는다면 밤새도록 보름달과 함께 나를 보고 있으련만…”으로 보름달을 바라보며 치병을 위한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이에 비해 가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조린 율곡 이이의 <화석정>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저물어가니 묵객의 생각 끝없이 일어나는구나. 멀리 보이는 저 물빛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을 받아 붉구나. 산은 외로운 보름달을 토해 내고 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었구나.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울음소리는 석양의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로 외로움과 처량한 신세를 반추하고 있다.
겨울의 전령 음력 팔월 보름달은
음의 기운대로 진입을 알려
향수와 회한에 빠져들게 한다
봄의 전령 정월 보름달은
희망의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해
꿈을 기도하기에 가장 좋은 날이다
음기로 가득한 정월 보름날의 기운을 밝고 생명력 가득한 양기로 전환하기 위해선 불기운을 이용했다. 그래서 정월대보름엔 유난히 불과 관련한 놀이가 많다. 대나무로 틀을 잡고 짚으로 풍성한 달집을 만들어 동산 위로 달이 떠오르면 불을 붙이는 달집태우기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이웃 마을이나 아니면 동네 사람끼리 편을 나누어 벌이는 횃불싸움, 논두렁과 밭두렁을 태우며 풍년을 기원하는 쥐불놀이, 아이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건강을 빌며 나이만큼 불 위를 뛰어넘는 잰부닥불 피우기 등이 있다.
설날이 가족 중심의 모임이라면 정월 보름날은 마을공동체의 단결과 번영을 위한 축제였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참가하는 놀이, 즉 동네 사람들이 농악대를 조직하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땅의 신인 지신에게 안녕을 기원하는 지신밟기, 온 마을 사람들이 편을 갈라 한 해의 풍년을 점치는 줄다리기, 줄다리기의 머리에 고를 만들어 상대편의 고를 눌러 땅에 닿게 하여 승부를 가르는 고싸움놀이, 동서로 편을 갈라 상대방의 동채를 땅에 닿게 하는 차전놀이, 이웃 마을 사람들과 하천을 사이에 두거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돌을 던지며 싸우는 돌싸움놀이, 한 해 동안 다릿병을 앓지 않기 위해 다리밟기(답교·踏橋)놀이를 하는 등 고장마다 다양한 놀이를 행해왔다.
건강·장수를 위한 음식도 다채롭다. 호두나 땅콩 등을 깨물어 먹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한다는 부럼, 다섯가지 기운을 북돋기 위해 오곡(찹쌀, 차조, 붉은팥, 찰수수, 검은콩)으로 밥을 지어 먹는 오곡밥, 보름날 아침에 술 한잔을 마시면 즐거운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귀밝이술, 온갖 묵은 나물로 만든 상원채 등을 먹어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망을 언제 기원하는 것이 좋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름날 밤 잠들기 전에 하는 기도가 가장 효과적이다. 특히 건강을 회복하는 데도 이 시간대를 잘 활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즉 우리 몸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대뇌와 뇌간의 역할을 이용하여 ‘잠에 마법을 건다’면 놀라운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낮 동안 무수한 정보에 노출되는 대뇌는 불필요한 정보까지 뇌간에 전달하여 우리 몸을 피곤하게 하는 반면, 수면 시간에는 대뇌의 의식 작용이 쉬고 뇌간만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신체의 각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대뇌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의식 작용이 수면 시간에 뇌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떠한 정보를 입력하느냐에 따라 잠의 질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잠들기 전에 입력한 정보는 잠자는 시간 내내 유지된다. 즉 마지막으로 뇌간에 입력된 정보는 그대로 기상 때까지 유지되고, 뇌간은 그대로 명령을 수행한다. 그런 이유로 다른 어느 때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몸에 훨씬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보통 사람은 기상과 함께 하루 일과를 계획하지만, 계획이 끝나면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가 다양한 생각과 번민에 노출되는 사이 입력한 정보는 금방 지워져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아침기도보다는 저녁, 그것도 보름날 밤 잠자리에서 하는 기도가 훨씬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건강관리는 물론 다른 염원도 마찬가지다. 혹시 간절히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평소 소원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보름날 밤에 시간을 내어 경건하고 집중된 상태에서 자신만의 긍정적인 입면(入眠) 의식을 거행해보자. 간단한 방법이지만 놀라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으로 꾸미는 자신만의 희망적인 ‘꿈’은 몸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최상용 인문기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