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제식 침묵기도 이끄는 한국인 신한열 수사
4월2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한신교회 예배당에서 테제송이 울려퍼졌다. 불 꺼진 예배당 바닥에 앉은 40여명이 고요하게 부르는 찬송이 메아리가 되어 다시 내면에 울려퍼졌다. 역동적인 개신교의 예배와는 사뭇 다른 예배 현장이었다.
이 교회 목사이자 예수영성대학 학장으로 지난해 프랑스 테제공동체를 방문한 이윤재 목사의 초청에 응한 신한열(51) 수사가 예배를 이끌었다. 신 수사는 “앞에 천을 걸어놓은 것도 촛불을 켜놓은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그냥 따뜻한 느낌을 주기 위함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졸리면 자도 좋다”고도 했다.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 예배는 어떤 형식이나 의례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단순하고 고요했다.
“밤마다 당신 그리는 이 마음. 이 간절함 도와주소서.”
촛불만이 밝혀진 방에서 간절한 가사만큼이나 간절한 화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거나 관상하는 것처럼 내면에 스며들었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의 인도로 목청껏 소리 높여 부르는 성가나 통성기도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기도였다.
오직 노래로만 한 테제식 기도를 마친 뒤 한 목회자는 “테제송이 너무 좋다”면서 신 수사에게 “더 불러달라”고 졸랐다. 또 한 목회자는 “한국 개신교의 예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신 수사는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영성생활에서도 진보나 성장 발전보다는 쉼과 평화가 보완되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테제공동체는 개신교 개혁교회 출신인 로제 슈츠(1915~2005)가 1940년 스위스에서 동프랑스의 작은 마을 테제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기독교 초종파’(에큐메니칼)공동체다. 1970년대 이후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권위를 유지해온 정부와 아버지, 교회에 대한 반감이 커진 젊은이들을 맞이해 그들의 하소연을 경청하며 ‘참여와 관상기도’로 이끌어 연간 10만명이 찾아드는 유럽 젊은이들의 메카가 되었다.
100명가량의 수사 가운데는 가톨릭과 개신교 출신이 섞여있으며, 테제공동체를 찾는 이들도 개신교·가톨릭·정교회·성공회·비기독교·무신론자 등 다양하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테제의 로제수사에게 한국 가톨릭의 기도생활을 심화시켜달라고 부탁함에 따라 1980년대부터 서울에 수사가 파견됐다.
1988년 테제공동체를 방문했다 테제공동체에 헌신한 유일한 한국인 서원자인 신 수사는 근래 들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가톨릭보다 오히려 개신교 쪽에서 테제식 예배 요청이 많아 놀라고 있다. 한신대 서울신대 한남대 등에선 오래전에 부름을 받았고, 이번에도 한국에 들어온 이후 한 달 동안 장신대, 한일장신대, 호남신학대, 횃불트리니티대학 등에서 설교하거나 예배를 인도했다.
테제공동체에서 25년째 다양한 국적 다양한 종파의 수사, 방문자들과 함께하면서 일치와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한 신 수사는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신뢰할 때 다양성이 신심을 해치는 게 아니라 더욱 풍성하게 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