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을 둘러 맨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AP 뉴시스
교황으로 선출된 지난해 3월 말 로마 교외에 있는 카살델마르모 소년원의
부속 교회에서 세족식을 거행하면서 소년원생들의 발을 씻어준 뒤
입맞춤하는프란치스코 교황. 이 소년원생 상당수는 집시와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등 소외자들이다. 사진 AP 뉴시스
오는 8월14일(4박5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확정되면서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떤 분인지’를 탐구하는 노력이 가시화하고 있다. 가톨릭은 지역별 국가적으로 책임과 의무가 나뉜 구조인 데 반해 여전히 교황 1인 중심의 일사불란한 단일지도체제를 갖고 있다. 또 ‘순명’이 주요 덕목이어서, 교황의 속내는 주교와 사제들의 사목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궁이 아닌 공동숙소에서 사는 등 탈권위적인 삶을 실천하고, 노숙인·장애인·이방인 등을 품으려 노력하며, 세계의 경제적 불
평등 구조를 비판해 ‘권위적인’ 전임 요한 바오로 2세나 베네딕토 16세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진보적 발언을 두고 ‘공산주의자’란 우쪽의 비판에서부터, 아르헨티나 독재 시절의 침묵을 들어 ‘정치적인 인물’이란 좌쪽의 비판까
지 다양한 관점이 있는 상태다.
현 교황은 우선 △그가 태어나 살아온 아르헨티나의 상황과 그의 삶 △발언과 행동 △첫 권고문 ‘복음의 기쁨’ 내용 등 3가지로 알아볼 수 있다. 교
황에 대한 다층적 분석이 지난 15일 오후 2~6시 서울 신촌 서강대 다산관에서 시도됐다.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와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공동 주최한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1돌 기념 심포지
엄’에서였다. 이날 행사엔 통상 심포지엄의 참석자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1천여명 이상의 수도자·사제·평신도가 모여 옆 강의실까지 가득 메워 스
크린으로 보며 큰 관심을 표출했다. 이 심포지엄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자 교황방한준비위원장인 강우일 주교 등이 발제자로 나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교황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가톨릭 내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이었다.
심포지엄엔 강 주교 외에도 교황이 속한 수도회인 예수회 소속 박상훈 신부,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박동호(서울 신정동성당 주임) 신부, 인터넷 매체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한상봉 주간 등 4명이 발제자로 나와 ‘프란치스코 스타일’을 넘어선 ‘진짜 프란치스코’를 전했다. 강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종(교황)에 대한 관심이 너무 과열돼 교종께서도 부담스러워하는 듯하다”며 “매스컴이 하는 대로 신화화하거나 우상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권했다.
고국 아르헨티나의 상황
강 주교는 19세기 후반 이후 좌익 급진세력과 우익 군부세력이 엎치락뒤치락 쿠데타와 혁명을 주고받으며 권력쟁탈전을 벌인 뒤 1976~83년 군사정권 지배기의 이른바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에 대해 설명했다. 군사정권은 이 기간 1만3천~3만명에 이르는 정치인, 교수, 교사, 학생, 좌파 작가, 노조원, 게릴라들을 살해했고, 게릴라들은 6천명의 군인과 정권옹호자들을 살해하면서 시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때 독재정권에 의해 수많은 고문이 자행됐고, 어떤 이들은 항공기에 실어 하늘에서 산 채로 대서양에 던져졌다. 강 주교는 이를 “제주 4·3의 비극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강 주교는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란 책 내용을 빌려 “당시 베르골리오(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 신부는 정부와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제들의 안전을 지켜야 했다”며 “베르골리오는 무기를 들고 투쟁에 나선 사제들을 향해 ‘사제들은 게릴라나 혁명가가 될 수는 없다’며 자제를 촉구했다”고 소개했다. 또 한쪽으로는 5개월간 수감된 할릭스 형제 신부들을 위해 정부에 로비를 한 내용도 소개했다. 교회 안에 쫓기는 사람을 피신시키고, 한번은 자신과 모습이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쫓기는 것을 보고 자신의 신분증을 주어 외국으로의 탈출을 돕기도 했다는 것이다.
발언과 행동
베르골리오는 2012년엔 아르헨티나 주교들과 함께 “우리는 모든 사람의 고통을 공유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더 우리의 실수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지원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베르골리오는 이에 앞서 1975년엔 로마에서 있었던 예수회 32차 총회에 아르헨티나 예수회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해 공동으로 발표한 문서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기준으로 삼아 이 시대의 중대한 관심사에 계속 참여할 것입니다. 특히 신앙에 대한 갈등이나 정의에 대한 투쟁에는 반드시 앞장설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박상훈 신부는 ‘교회를 야전병원’으로 칭한 교황의 교회론과 “당신이 그 환자를 치료하고, 상처를 치료해주세요. 바로 그 바닥부터 출발해야 합니다”라고 말한 교황의 사목론을 소개했다.
‘복음의 기쁨’의 진의
박동호 신부는 “교황이 ‘길거리로 나가라’고 했는데도, 구체적인 생활환경(경제, 정치, 사회, 문화, 법, 제도 등)에 대해 사제가 강론을 하면 ‘쓸
데없이 세상일에 간섭한다’, ‘듣기에 불편하다’, ‘교회를 분열시킨다’고 말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복음의 기쁨’ 권고가 이를 걱정하던 대로
자발적으로 현실을 외면함으로써 무난한 강론을 해 교회가 서서히 활력을 잃은 방관자가 된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고 밝혔다. 한상봉 주간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는 교황의 권고를 “인간의 불행에 휘말리기 두려워 개인적 피신처를 찾지 말고, 도와주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울어주라”(권고
269~270)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설명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