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流를 탐하지 말라
“고향에서 배척받은 예수님(루가 4.24~30)”
예수님이 고향의 회당에서 배척받으셨다는 문제를 생각해 봅니다. 출중한 지혜를 깨우치고 돌아온 고향 사람 예수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마치 죽이려는 듯이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고사를 인용하면서 자신들에 대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이방인들보다 못하다는 비유로 자존심을 푹 찔러 헤집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인용했는데도 그렇게 흥분한 모습을 통해서 그들의 숨은 생각을 보게 합니다. 자신들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거, 야훼의 선민의식, 출신성에 대한 우월감, 이민족에 대한 차별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데, 요즘말로는 상류사회 주류의식이지요.
서울 명문대학 명문학과에 입학한 1학년들 사이에 희한한 모양새가 있다 합니다. 글쎄 강남의 아이들이 지방출신들에 대해 (저희들끼리 말할 때) ‘촌년’이라 부르면서 같이 안 놀려 한다고 그러네요(직접 들은 것임). 허참, 같잖은 것들! 비뚜러진 自意識이 너무 불쌍합니다.
*영화 <넘버3>
주류, 엘리트, 소수 정예 특권의식... 물론 그들은 부와 권력을 대물림 받고 거의가 병역도 면제받을 것이고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 라이센스를 얻고 상류 5%의 특권적 계급으로 살아갈 것은 90% 이상 확실시 됩니다. 능력도 스펙도 월등합니다. 설사 능력이 안 된다고 해도 우리사회 주류가 되는 것 또한 거의 확실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제 20대 초반의 열정과 순도 100%의 청춘들인데 그러면 못쓰지!
모든 인간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존엄한 존재로서 인격적 주류이며 동시에 자연과 세계 앞에 비주류입니다. ‘넘버3’이지요. 다만 주류행세를 하고 싶은 것일 뿐입니다. 한국 사회 주류라면 국제사회에서도 주류일까요? 우물 안의 개구리가 학이 걸어 다니는 논바닥에 나가서도 주류일까? 한국은 정치 경제적, 삶의 질에서 비주류 축에도 끼어주지 않는 3류 국가입니다.
주류행세는 하고 싶은데 국제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니 골목대장이라도 하고 싶어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나 탈북자 다문화 가족을 비주류로 무시하고 혐오합니다. 남한이 주류고 북한은 비주류 괴뢰국가로 생각합니다. 북한은 남한에 대해 미 제국주의 식민지라 생각하며 비주류로 여깁니다. 그러함에도 우리에게 강남, 서울대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요.
삼성 현대, 조중동, 김&장, 서울대, 검찰, 경상도 사투리... 이것들이 우리 사회 주류를 자처합니다. 그러나 부와 권력과 이념과 친미 친일의 보수 지휘봉을 쥐고 정치 경제와 법을 장기판처럼 여기고 있을 뿐 허구의 깡통 의식일 뿐입니다. 왜 깡통인가? 그들에게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과 ‘필요한 것’이 둘 다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영혼과 人情!
무엇이 주류이고 비주류일까? 나는 집에서는 주류지만 직장에선 비주류고 사회에선 주류지만 국가 자원에서 비주류고 그렇게 세계로 나가면 너나 나나 모두가 주류이면서 동시에 비주류로 ‘넘버 3’에 불과하다는 것을 각성해야 합니다. 서로를 자기 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존재 자체가 불확실해 지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21세기 시대에 班常 嫡庶 신분 골품제가 등장하고 있는 현실이 슬픕니다.
“너 요셉의 아들 예수 이놈! 우리가 야훼의 선민으로 주류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인데 감히 우리가 이방인보다도 못하다구?”
“그래 당신들 잘 났소. 그렇지만 예루살렘에 가 봐요. 갈릴래아 촌놈들에 불과할걸요. 많이 웃기십니다!” * (2014. 3. 24).
명문대 출신은 간판으로 인정받고 지방대 출신은 실력으로 인정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