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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찬란함이 화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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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산 범어사 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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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펴낸 <대방광불화엄경 강설>(담앤북스 펴냄) 5권




8일 부산 금정산 범어사. 천년고찰의 벚꽃과 진달래, 개나리, 매화뿐 아니라 오가는 행인과 강아지까지 삼라만상이 빛난다.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 본 그 찬란한 세계다. 이곳이 바로 신라 의상대사가 ‘깨닫고 나면 사람과 세상이 어떻게 달라보이는지’를 보여주는, 화엄사상을 펼치기 위해 창건한 화엄10찰 중 하나다. 


 천년 고찰의 전각들 틈에 화엄전이 있다. 무비(71) 스님의 거처다. 무비 스님은 한국불교에서 선(禪·참선)·교(敎·학문)를 겸비한 대표적 인물이다. 스님들 대부분이 선이면 선, 교면 교, 하나만 취하는 데 반해 그는 효봉·전강·동산·춘성·성철 등 선사들 아래서 10여년 참선한 뒤 탄허, 관응, 운허, 각성, 지관 스님 아래서 학문을 연마했다. 유(儒·유학)불(佛·불교)선(仙·노장)에 통달했던 탄허 스님의 강맥을 잇고, 조계종 교육원장, 동국역경원장을 지냈다.


 그가 최근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1~5권을 펴냈다. 화엄경 총 80권에 달하는 불교계 최량의 경전으로, 옛날 목판으로는 지게로 딱 한 짐이었다는 방대한 분량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은 직후 21일간 최초로 설한 경전이다. 천태 지자대사의 경전 분류에 따르면  붓다는 화엄경을 대중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아함경-방등시 경전-반야부 경전-법화경 순으로 다시 설했다고 한다. 무비 스님이 그 화엄경 80권을 각 권별로 강의해 책으로 펴내는 방대한 작업을 개시한 것이다.


 그는 4년 전부터 부산 문수경전연구회와 신도회의 초청으로 화엄경을 강연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그 법음을 나누어듣기 위한 그의 인터넷사이트 ‘염화실’에 정회원만 1만9700명이다.


 그는  지난 2003년에 척추농양 제거 수술을 받다가 신경을 다쳐 하반신 마비가 왔다. 한때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 뒤 사람들은 “무비 스님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왜 달라졌으냐”고 물으니 “처사도 문턱 한 번 넘었다가 와 보라”며 껄껄 웃는다. ‘수술 도중 신경을 다친 의료사고니, 의사를 가만둬선 안 된다’는 주위의 분노에도 그는 “그런다고 마비된 다리가 낫나”라고 껄껄 웃으며 넘겼다. 그런 마음이 기적을 가져왔을까. 그는 불굴의 재활 노력으로 지금은 오히려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지팡이를 짚고 걸어다니기도 한다. 


 전날 범어사 앞 문수선원에서 4년째 매달 한차례씩 열린 ‘화엄경대법회’에서도 그는 자신의 장애를 잊은 채 설법에 몰두했다.  17품 초발심공덕품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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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앞 문수선원에서 2백여명의 스님들에게 <화엄경>을 강설하는 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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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산 범어사 전경




 “보살행으로 직행하는 사람에겐 힐링이니 비파사나니 참선이니 하고 앉아 있을 겨를이 없다. 바로 나아가는 것이다. 번뇌 같은 건 무시하고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실한 지혜다.“


 그는 “한국불교는 80~90%가 소승”이라며 그 자리에 모인 200여명의 스님들을 꾸짖었다. 대승불교라면서도 보살도를 펼쳐 자비심을 구현하는게 아니라 일신의 안일만 도모한다는 것이다. 그는 타이완의 ‘자제공덕회’ 설립자 증엄 스님을 예로 들며, “전세계 800여만명의 봉사자를 두고, 아이티 재난 때도 가장 먼저 달려가고 중생들을 구제하는 그런 보살도를 배워라”고 말했다.


 “도봉산 망월사 춘성 스님은 망월사역에서 한겨울 노숙인이 추워 떠는 것을 보고 자기 옷을 벗어 입혀줘버렸다. 보살은 ‘내 옷을 줘버리면 나는 어떻게 망월사까지 올라가지’하며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비행 앞에 물러서거나 겁내지 않는 것이 대승 보살이다.” 


 그는 “편견이 없는 것이 불교”라면서 “증엄 스님은 오지인들에게 기독교 교회도 2개나 지어줬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환희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설법을 마치고 절반이 마비된 다리를 끌고 오는 그에게 “몸은 어떠냐”고 물으니 “기저귀 차고 다녀. 보여줄까”라며 웃는다. 그의 셔츠엔 땀이 흥건하게 배어 있다. 한 비구니 스님이 “요즘 힘들었는데, 오늘 설법을 듣고 마음이 풀렸다”고 방까지 들어와 기어이 큰절 3배를 하고 돌아간다.


 그는 화엄전에서 화엄사상의 진수를 전해 준다. ‘사람이 곧 부처’라는 인불(人佛)사상이다.  그는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맹인이나 청각장애인도 모두가 완전한 부처라고 했다. 그런데 “왜 스님들은 인연만 소중히 여기고, 차별심을 보이기도 하는가”라고 물으니 “불교라고 다 불교가 아니고 제대로 불교인이 되는 이가 드물다”고 안타까워했다. ‘평생을 참선을 하고 불교공부를 했다면서도 이해관계에 얽매이면 내가 언제 참선을 했고, 언제 수행을 했냐 싶게 부귀 공명심으로 가득차 욕심만 챙기려드는 이들이 한둘이냐’는 것이다.


 그는 ‘가장 쉽게 찬란한 화엄세계를 보여달라’는 말에 “첫사랑을 해보았느냐”고 묻는다. 첫사랑으로 온 세상이 환희롭게 보일 때가 바로 그런 세계에 가깝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 “정신은 멀쩡한데 35년(석가가 대각한 나이)간 맹인으로 산 사람이 눈을 번쩍 떴을 때 세상이 어찌 보이겠는가”고 물었다. 무비 스님은 가장 마음에 새길 만한 화엄경 한 구절을 들려달라는 말에 ‘봉행불교상섭심’(奉行佛敎 常攝心)이란다. 


 “불교를 받들어 행하는 것은 자기 마음을 단속하는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자신에게 부당하게 흘러가도 거기에 끌려다니지 않고 휘둘리지 않게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부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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