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는 ‘철학자’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또한 수학자, 종교 지도자, 8음계를 창안한 음악가, 코스모스(우주)라는 단어의 창시자, 천문학자, 과학자이기도 한 그는 서양 지식과 지혜의 근원을 이룬 천재다.
그러나 놀라운 업적이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었다. 그는 놀라운 노력가이자 지식 탐험가였다.
피타고라스(기원전 570?~496?)가 해외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부친 덕으로 보인다.
페니키아 출신인 부친 므네사르코스는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에게 해 등지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한 상인이었다고 한다. 알파벳의 원조가 페니키아어였을 만큼 남다른 문명을 가진 세계에서 태어나 지중해 일대를 누볐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피타고라스도 애당초 사모스가 세상의 전부라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늘날 레바논, 시리아에 해당되는 지중해 동쪽 연안의 페니키아는 이집트의 영향권 아래서 벗어나 해상무역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였다.
*사모스 섬의 풍경
피타고라스가 사모스를 떠난 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 소아시아 연안의 밀레투스로 간 피타고라스는 아낙시만드로스와 탈레스를 만났다. 철학자들은 하나같이 피타고라스를 좋아했는데,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탈레스는 피타고라스의 재능을 인정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을 전수해 주었다. 피타고라스는 그에게 논증수학을 배웠다.
피타고라스의 남다른 점은 당대 최고의 철학자였던 탈레스의 수제자가 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식과 진리를 향한 그의 구도 여정은 밀레투스, 페니키아, 키르멜산, 이집트, 바빌론 등으로 이어졌다. 그가 유학한 지점들은 놀라울 정도로 방대했다. 그는 가는 곳곳마다에서 성직자로부터 종교적 비전을 전수받고 지식을 배웠다.
이집트에 머문 지 23년째 되던 해에 페르시아의 캄비세스가 이집트를 정복하자, 그는 페르시아 군인에게 체포돼 바빌론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사제인 마기들의 눈에 띄어 능력을 인정받고, 그들과 더불어 공부했다.
당시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의 다신 문화와 엄격한 신분제도에 도전하려는 조로아스터의 영향을 받은 개혁운동이 일어난 지 1백 년 정도 된 시기였다.
그는 바빌로니아인들과 교류하고 조로아스터교와 숫자, 과학, 천문학, 예언 등의 지식을 터득했다. 바빌론에서 12년을 보낸 후엔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분이 된 고향 사모스 섬으로 돌아왔다. 열여덟 살에 떠나 무려 쉰여섯 살이 될 때까지 지중해와 아시아 일대에서 종교와 폭넓은 학문의 세계를 섭렵하고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피타고라스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뿐 아니라 인도를 경유해 중국까지 돌아보고 귀국했다는 주장도 있다.
“외국을 여행할 때는 고향을 돌아보지 마라.”
이것이 피타고라스의 방식이었다. 나도 10여년전 각 종교의 30여가지가 넘는 수행 수도 치유 기도 명상법 등을 섭렵하면서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어떤 곳이든 아무런 선입견과 편견 없이 그곳의 열렬한 신앙인의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었다. 판단은 들어갈 때가 아니라 나올 때 해도 늦지 않으므로.
피타고라스의 이런 배움의 열정이 ‘수학’을 낳았다. 애초 `수학(mathematics)`은 ‘배움’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마테마(mathema)’에서 유래한 것이다. 배움엔 끝이 없다. 아테네의 입법자 솔론은 66살의 나이로 지도자에서 은퇴한 뒤 이집트로 떠나 역사와 사상을 공부하고 다시 키프로스로 향한다. 그는 떠나면서 “나는 늙어 가면서도 항상 공부한다”는 말을 남겼다. 유레카(깨달았다!)`라는 말의 발원자인 위대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B.C 287~212)는 훗날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모스 출신의 코논에게서 수학을 배웠다. 사모스에서 살았던 코논이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 없다.
*사모스섬 항구에 있는 피타고라스 동상
피타고라스를 `사숙`한 플라톤도 치열한 탐구의 여정이 있었다. 그는 소크라테스 사후 방랑기에 마가라에서 피타고라스학파의 유클리드 기하학을 공부한데 이어 이집트의 카이로와 헤리오폴리스에서 연금술적 비전을 배우고, 페르시아에서 마기아 조로아스터의 비밀의식을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기 플라톤이 인도에 다녀왔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다.
플라톤은 마흔 살이 되자 남부 이탈리아의 타렌툼으로 가서 피타고라스학파로부터 의 계승자였던 아키타스의 제자가 되어 국가 운영학, 수학, 형이상학 등을 배우고 아테네로 돌아간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플라톤이 이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소크라테스가 ‘사법 살인’을 당하자 비탄과 정치 혐오감 속에서 아테네를 떠나 방랑한 시기를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부른다. 서양철학의 아버지란 칭호도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남모르는 치열한 탐구 여정에서 나온 셈이다.
<그리스인생학교>(조현 지음, 휴) '15장, 천재 지식인들의 섬, 사모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