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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과 천국 불신자의 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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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의 통통통]


 


유병언-뉴시스-.jpg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유병언  사진 뉴시스



심판과 천국을 믿는지 그의 행실을 보라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씨가 작명했다는 세월호는 한자로 ‘세상 세(世)’와 ‘넘을 월(越)’자를 쓴다. ‘세월 잘 간다’는 ‘세월’(歲月)이 아니라 ‘세상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교리인 ‘속세(俗世)를 벗어나 구원 받는다’는 의미인 셈이다.

 

속세를 초월하면 무엇이 있을까. 그리스도교에선 천당을, 불교에선 극락이나 깨달음의 세계를 말한다. 종교는 천국과 피안으로 이끄는 이상향에 대한 희망 없이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직 그것뿐이라면 내세를 핑계로 현세적 삶을 저당 잡아 노예로 삼기 위한 사기술이 될 수 있다. 종교는 순리와 진리의 가르침을 베풀지만, 당근과 채찍이 필요한 이들에겐 심판을 무기로 현세계의 도덕과 책임을 다하지않을 수 없도록 이끈다. 그래서 이상향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인들의 면면을 잘 살펴보면 도덕과 책임을 내팽개친 욕망의 화신일수록 내세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헌신해 다음 생에서 큰 복을 보장 받으라는 것이다. 문제는 신자들에게 이 생에 미련을 갖지 말고 모든 것을 바치도록 강조하는 종교인일수록 자신은 돈과 명예, 권력에 광분한다는 점이다. ‘사이비 교주’로 지목받는 유병언씨 같은 유사 종교인이 아니라도 요즘 탐욕스런 비리가 드러났는데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몇몇 대형교회 목사들이 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알 만한 이들은 이미 눈치를 채고 말았다. 그런 성직자들이 만약 심판을 두려워하고, 내세의 복락을 믿는다면 저처럼 탐욕스럽게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성직자들이 실제로는 심판도 내세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의 행실이 입증해주고 있다는 것을.


 입으로는 탐진치를 넘어서 피안의 선에 들어선 것처럼 말하면서도 이권 앞에선 동화사에 경찰 3개 중대를 불러들여 천년고찰을 수치스럽게 하는 일도 마다않는 ‘이른바 고승’을 비롯한 승려들의 행실도 다르지 않다.


 물론 세상엔 그런 종교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천당 극락이 있다면 저런 분이 아니고 누가 가랴’ 할만한 분들이 있다. 비 맞는 이들과 함께 서서 비를 맞아주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어주며, 내세를 핑계로 노예화 하기 보다는 내세의 희망으로 용기를 주어 주체적 삶을 살아가도록 독려해주는 그런 분들 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고통도 기쁨도 피할 수 없다. 이를 함께 끌어안고 가는 것이 삶이다. 한 인간의 정신 건강도를 알아볼 수 있는 척도는 현실을 회피하느냐 직면하느냐에 있다. 사이비 종교인들은 신자들이 불의한 현실에 직면해 도전해갈만한 내면의 힘을 갖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현실 참여’를 회피하고, 강자와 시류에 의존하는 노예적 인간을 원할 뿐이다.


 유병언씨처럼 도망쳐서 이뤄지는 구원은 없다. 오대양 사건처럼 집단자살로 이뤄지는 구원은 더욱 있을 턱이 없다. 세월호와 함께 수장된 아이들을 망각해버리며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온 가슴으로 끌어안고 함께 살아내는 것 말고 구원의 길은 없다.


 내세는 사이비 성직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에 대한 헌신의 대가로 받는 상급일 수 없다. 옛 성인들은 내세를 알고 싶다면, ‘그가 현재 어떻게 사는가를 보라’고 했다. 아름다운 미래를 기약해주는 건 아름다운 현세적 삶이라는 것이다. 종교도 내세도 구원도 현세를 회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세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갈 힘을 주기 위함이다.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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