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모습에서 주님의 향기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고 후회된다. 지난 929일 동안 성경 한자 한자를 써보았다. 너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또 너를 위한 기도의 시간으로….”
높은뜻푸른교회에 다니는 동부증권 고원종 사장의 성경 필사본 첫 장에 적힌 편지다. 고 사장은 유학 중 방황하는 딸을 위해 성경을 남김없이 적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성경 필사본을 물려받은 바 있다. 그것이 신앙의 굳은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는 “너무 지쳐서 기도조차 나오지 않는다면 성경을 펴고 묵묵히 써나가는 방법을 조심스레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또 92살인 전주동신교회 윤여선 권사는 70살에 시작한 성경 필사를 20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오고 있다. 그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2~3시간, 점심 식사 후 잠시 휴식을 취한 뒤 1시간, 저녁 먹고 밤 9시부터 12시까지 필사를 한다. 볼펜을 잡고도 덜덜 떨릴 나이에 그는 “필사할 때만큼 놀라운 정신력과 집중력이 솟는다”고 한다. 성경 필사는 그에게 몸과 마음의 건강 비결이다. 윤 권사가 만든 잠언서 병풍, 신구약을 통째로 담은 두루마리, 신구약 5권의 책 등은 덤이다.
90살의 정봉옥 장로는 23년 전 붓글씨로 필사를 하기 시작해 직접 붓글씨로 성경 말씀을 쓴 액자를 매주 한 신자에게 선물하고 있다.
이런 갖가지 사연을 담은 성경 필사본들이 서울 목동 기독교방송(CBS) 사옥 7층에서 전시되고 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다.
이번 전시회엔 인천선린교회가 제공한 세계 최대 성경전서를 비롯해 전 교인이 참여한 필사 성경, 희귀한 두루마리 필사본, 12폭 잠언 병풍 필사본, 두루마리 화장지에 쓴 필사본 등 350여점이다. 이 필사본 옆엔 필사를 하기까지 간증이 함께 전시돼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기독교방송은 대한성서공회와 함께 사해사본이나 고어성경, 대륙별 언어 성경 등 희귀 성경 코너도 마련했다. 또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파피루스에 성경 구절을 직접 쓰고 그림으로 장식하는 ‘파피루스 체험코너’도 운영한다.이밖에 하루 한번씩 필사자의 간증을 듣는 시간, 성경 가훈 써주기, 성경 필사 재료 제공 코너 등이 준비돼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