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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만 밤 늦게 도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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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1편,  프랑크푸르트(201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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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맞이하는 첫번째날 아침입니다. 오늘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세계 100회 강연의 첫번째 강연이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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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은 배형옥 보살님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편안하게 잘 쉬었습니다. 배 보살님은 스님 일행이 프랑크푸르트에 오실 때마다 항상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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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스트하우스를 제공해 주신 배형옥 보살님 부부


오전 7시에 게스트하우스 1층에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8시부터 스텝 회의를 하였습니다. 스텝 회의에서는 이번 유럽 강연을 진행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함께 의논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모든 식사는 간단하게 하고, 출발은 새벽 일찍 하자” 하시며 큰 틀의 방향을 일러주셨고, 그래서 매일 매일 아침 일정은 3시30분 기상, 4시 천일결사 기도, 5시 20분 출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강연 준비를 도와준 분들에게 선물할 책과 염주를 어떻게 확보해서 갈지 등을 논의하고, 또한 스님께서 단식을 시작한 이후 목이 좋지 않으셔서 모든 일정에 소형 마이크를 항상 휴대하기로 했습니다.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는 유럽중동 지구장 김선희 보살님과 독일정토회의 송임덕 보살님과 각 법당 총무님들이 모여 유럽 지역 포교 방안에 대해 회의를 하셨습니다. 독일정토회 및 베를린 법당 이희정 총무님, 프랑크푸르트 정토법당 신재숙 총무님, 뒤셀도르프 정토법당 최순진 총무님이 각 법당별 운영 현황과 과제를 설명하고 개선 방안에 대해 스님께서 조언해 주셨습니다.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뒤셀도르프에도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이 운영되고 있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 도시마다 대략 10명 정도의 교민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장소를 임대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임대료가 발생하기 때문에 2주 분량의 수업을 한번에 진행하는 방식으로 월 2회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좀 무리가 있어 2년 과정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초기에는 이민 온 광부와 간호사 출신 교민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점점 세대 교체가 되어 갈 것” 이라며 포교할 때 고려해야 할 점들을 자세히 일러 주셨습니다.


11시에는 독일정토회 신도님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비빔밥을 만들어 오신 것을 감사히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는 프랑크푸르트 시내 구경을 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20분 거리에 시내 중심가가 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중앙은행과 독일 중앙은행이 소재한 유럽의 금융 중심지라고 합니다. 시내 중심에는 은행과 금융회사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습니다. 스님 일행은 높은 건물들 사이에 있는 괴테 하우스, 뢰머 광장,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을 차례대로 둘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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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하우스. 괴테가 창작 활동을 했다는 서재.


괴테하우스는 1749년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태어난 생가인데, 괴테가 사용한 책상을 비롯한 18세기의 주거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방마다 벽난로가 잘 만들어져 있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옆 건물에는 박물관이 개설되어 괴테와 동시대를 살았던 미술가들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여명이 밝아오는 풍경을 그린 그림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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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뢰머 광장.


구시가지의 대부분이 1944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사라졌는데 전쟁이 끝난 후 대대적인 재건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특히 뢰머 광장에 있는 시청 건물은 삼각형 지붕으로 연결된 점이 특이했고, 맞은편에 있는 유럽풍 건물 3채도 무척 이국적이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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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뢰머 광장 뒷편에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Dom)이 1944년 폭격에도 살아남아 빼족하게 솟은 첨탑과 함께 그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십자가에 못 밝힌 예수님의 동상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하셨습니다. 6500개의 파이프로 되어 있는 오르간은 그 웅장함에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조용히 대성당을 둘러본 후 마인강을 옆에 끼고 산책을 하며 흔들다리로 향했습니다. 흔들다리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유럽중앙은행과 대성당 등이 함께 보여 독일의 현재와 과거를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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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푸르트의 중심을 흐르는 마인 강을 가로지르는 흔들 다리.


시내 구경을 마친 후, 스님과 스텝들을 한달 동안 안전하게 이동시켜 줄 렌트카에 처음으로 탑승했습니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렌터카를 운전해서 유럽 전역을 돌아다닐 예정입니다. 렌트카 앞에서 유럽 강연 실무 총괄을 맡으신 김선희 유럽 지구장님과 이희정 독일정토회 총무님을 소개하는 영상 촬영을 하였습니다. 깨끗하게 반짝이는 렌트카가 한달 뒤에 어떻게 변해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유럽 강연을 사고 없이 안전하게 마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도해 봅니다. 


강연장으로 향하기 전, 교민 한 분이 운영하고 계신 식당을 방문했습니다. ‘미소 식당’ 이라는 간판을 걸고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 이종서 거사님이 직접 요리를 해서 스님 일행을 초청했습니다. 거사님은 직접 공항에 마중을 나가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신 분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나 또는 대한항공 직항으로 프랑크푸르트에 오기 때문에 저녁6시 무렵 도착하는데, 유독 스님만 밤10시가 넘어서 항상 도착하신다며 그 이유를 알고 크게 감동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비행기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쓰고자 항상 저가 항공을 이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스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선 꼭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 요청하셔서 오늘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오후6시30분부터는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위치한 Saalbau Gallus 라는 곳에서 세계 100회 강연의 첫번째 강연이 열렸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프랑크푸르트 법당 신도님들의 정성 가득한 준비로 총 170명의 교민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강연장 입구에서는 뜻밖에도 대전정토회 김태권 거사님이 포스터를 들고 비를 맞으며 길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상황을 물으니 독일로 출장을 왔는데 때마침 시간이 맞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며 활짝 웃으셨습니다. 비를 맞으며 서 있는 거사님을 보며 정토행자는 어디를 가든 주인이 되어 일하는구나 하는 감동이 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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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크푸르트에 출장 와서 강연장 앞에서 비를 맞으며 길안내를 하고 있는 김태권 거사님


강연에서는 총 5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집중이 잘 안 되어 고민이라는 분,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정 통제가 되지 않아 화를 잘 내게 되어 고민이라는 분, 정도를 가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묻는 분, 세월호 사고와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이유와 책임자 처벌 문제에 대해 묻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중 독일인 시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는 한 여성분의 질문에 대한 스님의 법문을 소개합니다.


“독일 남자와 결혼한지 7년 되었는데, 독일 분 시아버님이 이기적이고 독불장군처럼 자기 말만 하시는 분이예요. 시어머님이 신랑에 너무 집착해 신랑이 매주 시댁에 오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매주 가는 것이 힘들어 몇 번 가지 않았는데 삐치시는 것 같아요. 한국인과 너무 틀리니까, 독일인 시부모님을 모시시가 너무 힘듭니다. 5살 아들이 있는데 시댁에 가서 할아버지에게 좋은 것을 배우는 것이 없어 아들도 보내기가 싫습니다.”  


“엄마가 자기 자식을 보고 싶어하는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자식이 부모를 보고 싶어하는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그냥 놓아 두세요. 같은 가족이라도 관여할 일이 있고, 관여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시아버지는 원래 그런 사람으로 생긴 것이고, 시어머니는 그런 시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사신 분입니다. 독선적인 면도 있지만 돈을 잘 벌거나 다른 좋은 면이 있으니까 그 이유로 같이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왜 저런 인간과 같이 살까 하지만,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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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는 시어머니가 정성껏 키워준 좋은 아들을 공짜로 얻은 것이잖아요. 공짜로 얻었으면 그 대가를 지불하던지, 대가를 지불하기 싫으면 이혼을 하던지 그러면 되지요. 조선시대 같으면 이해가 되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문제가 될까요? 질문자도 아이 놓고 살아보았으니 엄마와 자식 관계가 보통 관계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잖아요. 엄격하게 말하면 엄마와 아들 사이의 자연스런 관계이지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인생이라 생각하고 놓아주세요. 질문자의 아이도 나중에 크면 여자친구가 생기는 순간부터 질문자와 멀어지는 게 좋겠어요? 그 때 일어나는 엄마로서의 서운함을 생각한다면 남편이 시어머니와 자주 연락하는 것을 나쁘게 보지 마세요.


그리고 시아버지는 자기 집에서 자기가 살던 습관대로 살고 있는 건데, 왜 질문자가 갑자기 들어가서 그것을 시비 삼을까요? 그게 싫으면 시댁에 안 가면 되지요. 그런데 살다 보면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고, 싫어서 안가는 것이 더 손해겠다 싶으면 싫어도 가면 됩니다.


아들을 시댁에 안 보내려고 하는 것도 질문자 마음대로 하면 안됩니다. 아들은 질문자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남편의 아들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편이 보내지 말자 해서 부부가 합의를 해서 안보내면 괜찮은데, 권리의 절반이 남편에게 있기 때문에 질문자가 의견은 낼 수 있지만 남편이 보내자고 하면 보내야 합니다. 아이 문제는 질문자에게 절반의 권리만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월권 행위를 하려고 하는 겁니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하고 삽니까.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있고,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것도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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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의 못된 성질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지 시아버지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가 시아버지한테 욕을 한마디 배우는 것이 나쁜 영향이 아니고, 그런 시아버지를 용인하지 못하는 엄마의 성질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원래 친구들과 놀면서 욕도 배우고 금새 잊어버리고 그렇게 크는 것입니다. 큰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나이 칠십이 넘은 독일 할아버지의 성질을 고칠 수 있습니까? 질문자에게는 독일 할아버지의 성질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시아버지를 엄마가 창피하게 여기면 자녀는 엄마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런 시아버지를 나쁘다고 여기면 아이들은 나쁜 할아버지의 손자가 되니까 자긍심이 없어집니다. 시아버지는 성격이 그럴 뿐이지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나와 가치관이 다를 뿐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내 아이가 나쁜 할아버지의 손자이길 원합니까?


그런 시부모님 밑에서 자란 자신의 남편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겨진다면, 남편의 부모님도 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남편과 시부모님의 관계가 그것을 증명해 주는 겁니다. 시어머니도 그런 시아버지의 안 좋은 면을 보면서도 같이 사는 겁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내 마음에 들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질문자가 집에서 너무 편안하게 자라서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인 시아버지도 내 마음에 들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독일 사람인 시아버지가 내 마음에 들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시부모님은 질문자가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좀 유별난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가볍게 받아들이면서 저런 시부모님 밑에서 어떻게 저런 괜찮은 남편이 나왔을까 한번 연구를 해보세요. 연구를 해보면 재미있어요. 엄마의 지나친 스트레스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결정적으로 정신적 장애를 가져다 줍니다.


질문자는 지금 본인이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하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즉문즉설 동영상 1만개를 봐도 실제 삶은 해결이 안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을 고치는 게 아니고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이도 좋아집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보세요. 그래야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모두 좋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교민들과의 즉문즉설은 3시간 동안이나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목이 편찮으심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참석한 교민들도 낯선 이국 땅에서 소중한 강연을 들을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며 기뻐했습니다. 매일 유튜브로만 즉문즉설을 보다가 스님을 가까이서 처음 뵙는다는 분도 많았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한분 한분에게 책 사인을 해주셨고, 이어서 오늘 프랑크푸르트 강연을 준비하기까지 수고한 봉사자들의 소감 나누기도 함께 듣고 격려와 감사의 인사와 함께 염주를 하나씩 선물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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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장을 나오니 비가 많이 쏟아졌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정토회 신도님들의 환송을 뒤로하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밤11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하여 4시에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5시에 스위스 베른으로 출발합니다. 스위스에서 만나게 될 풍경과 사람들이 기대됩니다. 내일도 생생한 사진과 영상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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