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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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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저 좀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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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저 좀 봐 주세요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주인공 청소년들 가슴에는 대부분 아픈 가정사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나이에 인생의 산전수전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이 글은 유혹과 열정, 막무가내 용기로 살았던 자신들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면서 그것을 통해 같은 청소년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을 전하는 또래 멘토들의 이야기입니다.   


키 157센티. 몸무게 43kg. 현재 나이는 17세. 성별 남자. 이름 이민율인 나는 동갑 아이들에 비해 작고 왜소하다. 또 여성스러움이 짙은 나의 성격은 예민하고 섬세하다. 매듭 팔지 만들기를 좋아하고 옷을 입어도 매치가 잘 되도록 색깔에 신경을 써서 입는다. 그리고 이런 말 하면 ‘남자 새끼가...’라면서 비웃을지 모르나 평상시 내가 좋아하고 즐겨하는 것은 여동생과 쇼핑하는 거다. 애지는 사랑스런 나의 동생이며 아빠와의 관계에서는 질투 대상이기도 하다. 


나는 평상시 사소한 것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여동생과 나는 아빠랑 카톡을 하는데 내가 하면 아빠의 답장은 단 한 문장, 한 마디로 끝이다. 그런데 동생이 하면 아빠 댓글이 계속 이어졌다. 왜 그걸 알았냐면 내가 동생 애지에게 핸드폰을 달라하여 아빠한테 온 글을 확인한 적이 있다. 동생친구가 보낸 글을 읽는 척하면서 아빠가 동생에게 어떤 글을 보냈나 훔쳤봤다. 아빠는 전화도 여동생이 하면 자상하게 말해준다. 그런데 내가 하면 또 무슨 사고 쳤냐? 하는 식이다. 학교에서 아빠에게 전화 오는 경우가 많다보니까 내 전화를 받으면 아빠는 ‘왜 전화했어, 바쁜데’하면서 끊는다. 내 말은 안 들어주고 동생 말만 들어주니까 나로서는 질투도 나고 그런다. 물론 나는 남자고 또 아빠 하는 일이 전기일이라 이해는 가지만 말이다. 


언젠가 아빠한테 들은 얘기가 있다. 아빠 회사 동료가 일을 하면서 전화를 받다 그만 감전이 되어 고층 건물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을 때 난 우리 아빠한테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 거실로 나와 눈물을 닦았다. 
그 후 어느 날 밤이었다. 내가 아빠한테 전화를 했는데 웬일인지 받지 않았다. 보통 때 같으면 무뚝뚝하나 몇 마디라도 해 주었는데……. 난 혹시 아빠한테 사고가 났을까봐서 정말 1초마다 계속 카톡 보내고 문자를 보내곤 했다. 한 참 후에야 아빠가 아닌 낯선 어른이 받았다. 그분이 말하길 아빠가 길에서 쓰러졌다는 것이다. 사고로 그런 게 아니라 회식자리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랬다고 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 아빠가 죽었으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그러면서도 아주 가끔이지만 내가 정말 아빠 자식인가? 하면서 아빠가 멀리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는 서울 서대문에서 살다 고모네가 사는 이천으로 이사를 갔다. 고모집 쪽에 좋은 조건으로 아빠 일이 생겨서 간 것이다. 그때도 어른들은 동생한테만 관심이 쏠렸다. 아마 동생보다 세 살 많은 나는 혼자 할 수 있다 믿고 그런 것 같았다. 아빠도 조금씩은 나를 도와주나 동생을 더 챙겼다. 난 그때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새로 옮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였다. 나는 숨기지 않고 담임선생님께 먼저 말하고 아빠한테 도움을 청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체격이 아이들보다 작고 힘이 없었던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나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하는 데 어떻게 해야 돼요?
소파에 앉아 있던 아빠는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인 후 화가 난 듯 담배 연기를 소리내어 밖으로 내뱉더니  
“힘이 없더라도 부딪쳐. 만약 물건을 들더라고 네가 먼저 들고 말이야. 맞부딪쳐봐”라고 했다. 며칠 후에는 담임선생님이 아빠한테 민율이가 요즘 힘들다고. 옆에서 도와주시라는 전화를 했단다. 집에 오신 아빠가 물었다. 
“너, 누구한테 맞냐?” 

“네”

그러나 아빠 말은 똑같았다. 가서 애들이랑 부딪치라고. 처음에는 아빠 말대로 그렇게 했다가 아이들에게 몇 대 맞고선 그 생각이 없어졌다. 그 후에도 아빠는 학교에서 연락이 오면 너 왜 애들한테 맞고 싸돌아다니냐는 식이었다. 만약 동생이 그랬다면 절대 그렇지 않았을 거다. 아빠는 동생에게 그래, 하면서 선생님한테 말해 줄게 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난 아빠가 왜 나를 그렇게만 대해주지? 왜 날 무시하지? 동생이랑 내가 다를 게 뭐지? 나도 같은 배에서 태어났는데?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아, 내가 아빠 자식이 아닌가? 크게 의심이 갔다. 그래서 아빠가 날 무시하는 구나. 아빠 자식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점점 계속하다가 아, 진짜 아빠는 나한테 관심이 전혀 없구나 하고 결론을 내렸다.

왕따.jpg

*중학생이 만든 ‘왕따’ 영화 ‘궁극의 카메라폰’ 중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그리곤 난 사고를 쳤다. ‘아빠 저 좀 봐 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일을 저질렀다. 그런데 아빠가 나를 못 챙긴 이유가 이천 집에서 아빠회사까지 출퇴근 왕복이 8시간이 넘었다. 그래서 아빠는 회사에서 잡아준 숙소에서 지내다가 집에는 2주에 한 번씩, 바쁘면 한 달에 한 번밖에 못 올 때도 있었다. 그게 나랑 동생한테는 영향이 컸다. 사고를 쳐서 조사를 받을 때 경찰아저씨가 물었다. 아빠랑 지내는 시간은 있느냐고. 아니요, 아빠가 한 두 번밖에 못 오셔서 얘기 할 시간이 없어요. 경찰아저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컴퓨터 자판만 쳤다. 아, 내가 안타깝게 보이나? 나는 속으로 그랬다. 여동생과 나는 할머니랑 살았다. 할머니가 입원해 있을 때는 나랑 동생이 밥을 해 먹었다. 내가 밥을 하면 다섯 번할 때 한 번 제대로 되고 네 번은 죽이 되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빠랑 가장 즐거웠을 때는? 중1. 여름방학 때 둘째 고모가 계시는 부산에 갔을 때다. 아침부터 우리는 모두 해운대 바닷가에 가서 아빠랑 사진 찍고 모래사장에 가족 이름 다 쓰고, 물놀이 하고 아빠랑 맛있는 거 먹었던 게 가족 여행으로 제일 기억이 남은 추억이다. 몇 년이 지났으나 지금도 생각난다.


난 중2 때 첫 사고를 쳤는데 동생하고 같이 했다. 낮이었다. 핸드폰 매장에서 전시용 핸드폰을 충전시켜서 게임을 하고 놀다가 동생에게 우리 가지고 가서 팔까? 했더니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유심칩이 꽂힌 것을 생각 못하고 전시용 핸드폰으로 우리집에 전화를 했다. 그게 실수였다. 매장 주인이 우리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연락이 왔으며 아빠한테도 연락이 가서 급히 올라와 80만원을 배상하고 해결해 주었다. 그날 밤 아빠는 나무 막대기 겉을 검정테이프로 둘둘 말았다. 그걸로 나와 동생은 엎드려 뻗친 상태에서 엉덩이를 맞았다. 나는 50대. 동생은 10대. 피멍까지 들었다. 아빠가 화를 내며 물었다.


“너 왜 나한테 뭐가 불만이냐. 너 내 자식 맞아?”
그 말에 나는 폭발했다. 
“아빠가 나한테 뭐해 준 게 있어요?”
나는 큰 소리로 덧붙었다. 
“아빠는 내 말은 안 들어주고 동생 말만 믿잖아요. 난 자식이 아니에요? 주워왔어요?”

결국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의심을 하면서도 그게 사실일까 두려워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 했던 내 출생에 대한 의심을 스스로 묻고 말았다. 그런데 아빠는 내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시선을 내가 입고 있던 할머니가 사준 청바지에 두다가 나를 쳐다보다가를 반복했다. 할머니는 아빠와는 달리 동생보다 나를 더 챙겨주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아빠가 너는 할머니가 옆에서 도와주지만 동생은 그러지 못하지 않느냐. 왜 아빠한테 많은 걸 바라느냐, 이런 말을 아빠가 하고 있다는 걸 난 느낌으로 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할머니한테 사랑 받고, 동생은 아빠한테 사랑을 받고 있는데 동생 사랑까지 내가 빼앗으려고 했다는 것을. 허공만 쳐다보고 있던 아빠가 말했다. 
“가서 씻고 자라.”
방에 들어와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아빠에게 큰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 아팠다. 그런데 아빠가 나를 불렀다. 
“민율아. 잠깐 나와 봐라.”
내 이름을 부르는 아빠 목소리가 가늘게 떨고 있었다.     
“어떠냐. 아프냐?”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비상약 박스에서 약을 꺼내어 아픈 부분을 발라주었다. 
“아빠도 너 때리는 거 마음 아프니까 사고 치지 말아라.”
나는 대답 대신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나, 진짜 육교 밑에서 주워왔어요?”
아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없이 웃으시며   
“민율아, 넌 내 자식이야, 아빠가 화가 나서 한 말이야. 믿지 마.”

나는 아빠가 들리지 않도록 숨을 한 번 길게 쉬었다. 아, 난 아빠 자식이구나 하고 안심했다. 다음날 학교 갈 때 나는 방석을 가지고 다녔다.
2주일이 흘렀다. 집에 오신 아빠와 우리는 고기를 구워먹었다. 그날 밤 아빠는 처음으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시며 너희들 곁에 엄마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다른 얘들은 엄마가 있고 하는데 ……아빠가 너희한테 못해 준 게 많으나 너희한테 신경쓰는 건 더 많다고 하시며 나랑 동생을 껴안아 주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 밖에 나와서 음악을 들으면서 울었다. 
아빠는 다음 날 회사로 떠나고 나와 동생 할머니의 생활은 오늘과 내일 또 내일 그저 그렇게 반복되었으나 달라진 점이 있었다. 내가 먼저 아빠한테 전화를 해서 아빠, 앞으로는 사고 안 칠게요. 했다. 가끔 아빠가 시간이 나면 먼저 연락을 해 주기도 했다. 이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기에 나는 이상하여 아빠에게 물었다. 

“왜, 전화하셨어요?”  
“너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피자 먹고 싶어요.”
“저녁에 아빠가 입금시켜 줄 테니 피자 시켜 먹어라.”
그 이후로 나와 아빠는 조금씩 친해졌는데 사고를 또 쳐서 멀어졌다. 그러니까 멀어졌다, 이만큼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졌는데  여기 들어와서 한 번에 단축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전화를 하면 예전과는 달리 자상하게 얘기 해 준다. 아빠 잘 지내셨어요? 안 아프세요? 밥은 드셨어요? 동생은 옆에 있어요? 묻는다. 만약 없다면 아빠와 난 서로 동생 흉을 보기도 한다.




욕을 장난으로 하는 너에게


안녕! 친구들아
나, 민율이야. 너희들이 왕따 시킨 민율이.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어.
특히, 날 왕따 시키는 데 주역을 했던 너에게 이 글을 보내고 싶어.


친구야!
왜 내가 우리 아빠 얘길 하다가 너를 부르는 걸까? 내가 처음 사고를 친 이유는 아빠한테 주목받고 싶어서, 관심 받고 싶어서가 진짜 이유 맞아. 그 당시에 아빠가 좀 더 나에게 다가와 줬으면, 학교에서 너를 비롯한 아이들한테 내가 얼마나 무시당하고 있는 지 알아달라는 반항이었어. 만약 너희들이 날 괴롭히지만 않았다면 난 평소에 아빠에게 서운한 감정은 있었으나 그것 때문에 아빠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애원하지도 기다리지도 않았을 거야.   
처음에는 아빠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 다음에는 왕따 당하는 스트레스를 난 사고를 치면서 풀었지. 그 다음에는 돈이 필요해서 계속 사고를 쳤어. 


친구야!
넌 날 계속 왕따를 시키다가 나중에는 잘 해줬어. 다른 아이들을 혼내주고 말이야. 그런데도 난 학교를 그만 두고 말았어. 물론 그 이유를 왕따 때문이라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아빠, 나 좀 봐달라는 사고를 치지 않았을 거야. 비록 공부는 못했을 것이나 적어도 졸업은 했을 거야. 그게 지금 너무 아쉬워.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렸지만 난 스스로 학교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


친구야!
다시 말할 게. ‘왕따’가 내가 학교를 그만둔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나 그 밑바닥의 근본 원인은 학교에서 당한 ‘왕따’ 이었어. 넌 나와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지. 그러다가 난 3학년 때 전학을 갔고 중학교생이 되었어.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중학교 <학교폭력 위원회>에서 우리 학교로 전학을 시켜서 온 아이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너였어. 그때가 중1,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한 날이었어. 그날이후부터 난 너랑 마주치지 않으려고 도망다녔어. 네가 또 나를 괴롭힐까봐. 너는 내 옆 반이어서 더더욱 초조해졌어. 그러다가 결국 부딪쳤어. 너는 나에 대한 소문,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다는 사실을 퍼트려서 아이들이 날 놀리고 때리고 물건을 던져서 맞게 했어. 
너는 나와 달리 키도 170센티에 등치도 아주 좋았어. 넌 또 아이들 사이에서 보스였잖아? 솔직히 너처럼 체격이 좋은 아이들에게는 중압감이 느껴졌어. 거기다가 세게 나오면 빼도 박도 못해.


친구야 너, 생각나니!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어. 어떤 아이가 내 어깨를 일부러 치는 바람에 배식용 식판에 담긴 음식물이 마구 섞어지고 식당 바닥에도 쏟아졌어. 그 애는 그냥 지나갔어. 난 아무렇지 않는 척 하고 앉아서 그 밥을 먹었어.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넌 나를 마주보고 앉아서 비웃으면서 말했어. 그런 밥을 왜 먹냐? 왜 배식을 해? 왜 흘리고 쳐 먹냐.
그때 난 너무 힘들어 밥을 다 버리고 나와서 선생님께 갔어.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좀 해 달라했어. 어떤 아이는 왕따를 당해도 부모나 선생님에게 알리지 않는다고 해. 그러나 난 어른들을 바로 찾았어. 넌 그 자리에서 처벌받았을 거야.

중2때 난 처음 사고를 치고 아빠에게 엉덩이를 호되게 맞았지. 그 다음날부터 학교 갈 때마다  방석을 가지고 다녔어. 그냥 앉으면 아프니까. 그런데 아이들이 그 방석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색도 칠하고, 누가 그랬냐고 선생님이 물어도 아무도 안 나타났어. 나중에는 방석을 개인함에다 넣고 자물쇠를 두 개씩 잠갔으나 맨 날 풀려있었어. 그런 와중에 학교에서 짱이었던 네가 나한테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어. 처벌 받은 후부터 그런 것 같아. 요즘 불편한 거 없어? 하고 물어보고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으면 떨어지게 하고 보호해 주었지. 왜 갑자기 이러지? 아이가 좀 바꿨구나. 했어. 함께 밥도 먹고 놀이공원도 가고 하면서 너랑 친해지면서 학교생활이 조금은 편해졌어. 그러나 난 이미 멀리 가 있었어.


친구야. 우리 수학여행 갔을 때 생각나?
난 여행을 가기 전부터 장염으로 열이 계속 났어. 평소에도 신경만 쓰면 설사와 고열에 자주 시달렸지. 그날도 약을 먹었는데 낫지 않았어. 너는 나에게 어디 아프냐고 묻고 나와 다른 반인데도 내 옆에 와서 같이 자면서 간호해 줬어. 끙끙 앓고 땀을 흘리니까 땀도 닦아주고 새벽까지 도와줬어. 다음 날 나는 열이 내렸는데 네가 아프기 시작했어. 그래서 내가 간호해 줬잖아.


그럼에도 친구야.
너에 대한 내 감정은 나를 왕따 시킨 친구, 잘 해줬던 친구 두 가지야.
넌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친구들 말로는 잘 지낸다고 하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난 몰라. 너의 핸드폰 번호도 있으나 연락하고 싶은 마음은, 솔직히 없어.


친구야!
넌 날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괴롭혔어. 똑같은 방식으로 말이야. 일방적으로 놀리고, 화도 내지 않고 그냥 사람들한테 대화하듯이 온갖 욕을 다 했어.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어. 중3, 어느 날은 계단을 올라가는데 아이들이 날 모두 쳐다봤어. 그즈음 난 왕따에, 사고치는 아이로 학교에서 모르는 친구들이 없었지. 계단에서 만난 아이들이 소곤댔지.
“저 새끼 학교는 왜 나와?”  “꼴 보기 싫어.” “더러워. 나가 뒈지지.”
난 학교를 2년 반만 다니다가 그 후로 가지 않았어. 교장선생님까지 기회를 주셨지만 난 그만 두겠다고 했어.


친구야!
학교는 그만 뒀지만 가끔 길을 가다보면 너희들을 우연치 않게 만날 때가 있었어. 그러면 어떤 친구는 “어, 잘 지냈어?”하고 안부를 묻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아, 내 눈깔 썩어, 아 짜증나”하면서 자기 눈을 손으로 가렸어. 나를 봤기에 자기 눈이 썩는다는 거야. 내가 그렇게 싫다는 걸 그런 식으로 보여주는 거지. 나도 그런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바랐으나 어디서든 나타났어. 마주보기 싫을 때만 나타났어. 그래서 피하지 못하고 그 옆을 지나가야 할 때면 난 동생한테 전화를 거는 척 하면서 무시하고 지나갔지만 사실은 도망가는 심정이었어.


친구야!
너희들이 나에게 했던 욕 가운데 가장 아픈 욕이 뭔지 알아?
“왜 사냐?” 라는 딱 한 마디.
그 말이 참 많이 힘들었어. 그때 내 심정은 그 말대로 살기가 싫었어.
난 왜 태어났을까? 내가 그 말을 똑같이 너희한테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랑 똑같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친구야!
지금도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이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나와 같은 아이가 있겠지?
“너 왜 사니?”


 



푸른 생명들에게
                                             

                                                   남민영 수녀님


세상의 모든 푸른 생명들은
그 존재를 조건없이 품어주는 부드러운 토양과
목마를 때 갈증을 씻어주는 촉촉한 단비와
세상을 향해 용기 있게 걸어가라는 응원의 햇살을 먹고 자라난다.


‘넌 사랑받기 충분하단다.’
사랑의 시선은
풍부한 영양을 담은 토양!


‘많이 속상하지. 내가 곁에 있어줄게’
아픔을 공감해주는 위로의 손길은
촉촉한 단비!


‘넌 할 수 있어. 힘을 내봐!’
응원의 목소리는
햇살 한 줌!


외롭지 않게,
혼자 견뎌내지 않도록…….


주님! 우리 모두는 푸른 생명들에게
부드러운 토양과,
촉촉한 단비와,
따사로운 햇살 한 줌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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