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란 천지만물, 생명이 움직이는 근본이오." "또 저놈의 천지만물, 일물도 뜻대로 안 되는데 만물은 무슨 만물인고." "천지만물을 떠나서 내가 있겠는가. 정을 더나서 내가 있었겠는가. 정이란 생명을 이루게 하는 것이오. 부부의 근원은 생명을 탄생하게 하고 그 생명을 이루게 함이니 미세한 벌레도 생명을 낳게 할 뿐만 아니라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 곳에 알을 까고 초목도 열매를 맺기 위하여 꽃을 피우며 나비를 부를 뿐만 아니라 땅 속의 진기를 숨가쁘게 빨아올려 열매를 이루게 함이니 만물의 생사는 더불어 있는 것, 더불어 있다 함은 정으로 엮어졌다. 정이 물(物)을 다스리고 정이 물로 향할 때 물에도 생명을 부여할 수 있으나 물이 정을 침범하고 다스리려 들 적에는 생명이 깨어져. 만물의 특성이 깨어지고 인성도 깨어지고 더불어 있을 수도 없거니와 천지만물은 서로 떠나서 나도 없게 되고 천지만물도 없게 되는 것, 좁게 보고 좁게 생각지 마시오. 다스림은 물을 빼았는 것, 물로써 인성을 누르는 것, 그게 아니외다. 다스림은 고루 펴는 일이며 고루 편다 함은 마음이 하는 짓이고. 물은 언제나 그곳에 있지만 마음이 그것을 적소에 혹은 부적한 곳으로 옮기는 법. 부적한 곳에 물이 옮기어졌을 때 물에 사(邪)가 생기어 생명을 먹어치우고 천지만물을 파괴하여 천지지옥을 만드는 것인가. 극락도 지옥도 물로 인한 흥정이니 극락이니 지옥도 없는 것이 극락이라." <토지15권 4부3권>(박경리 지음, 나남출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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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도 지옥도 없는 것이 극락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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