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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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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학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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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과 깸]


한세영 추모영상-.jpg

단원고생 한세영양 추모영상 속에서 울고 있는 세영이 아빠 한창수씨



광화문 농성장 설교-.jpg

광화문 세월호농성장에서 설교하는 필자 남오성 목사



남오성 아내와 두딸-.jpg

필자가 함께 진도 팽목항에 간 아내와 두딸이 바다를 보는 뒷모습을 찍었다.




남오성 목사 부인 캘리그래프-.jpg

필자의 부인 최윤희씨의 캘리그라피





약속이 겹쳤다. 4월 말, 바람 차던 그 밤, 대학 동창 모임 약속이 있었다. 졸업 후 처음 만나는 반가운 자리다. 나는 꼭 가야 했다. 그 모임 회장이었고, 연락 돌린 게 바로 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오르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번호가 떴다. 장례를 알리는 부고였다. 창수 딸이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았다가 축 쳐진 몸으로 올라온 아이다. 문상하러 가야 했다. 그 날 밤 아니면 갈 수 없었다. 선택해야 했다. 


창수를 처음 만난 건 스무 살 어느 날이다. 그는 내 친구의 자취방 룸메이트였다. 그는 트럭을 몰았고, 나는 대학에 다녔다. 우리는 그 누추한 방에서 새우깡을 펼쳐놓고 술을 마셨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는 아빠가 되었고, 나도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연락이 끊겼다.


유학하고 돌아와 어느 철공소 많은 동네 교회 주일학교 목사로 있을 때, 전화를 받았다. 창수였다.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워 연락했단다. 어떻게 사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안산에서 딸과 둘이 산다고, 요즘 많이 힘들다고, 그래서 교회도 다니기 시작했다고, 자기 친구 중 목사된 녀석 있다고 자랑하고 다닌다고.


그리고 다시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8년이 지났는데, 오랜만에 연락이 왔는데, 그게 이거다. 딸의 장례를 알리는 부고장. 나는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 선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건 변명에 불과하다. 겁이 났던 거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분노와 슬픔을 위로하기가 두려웠던 거다. 눈물의 바다에 같이 빠져 숨이 막혀 버릴까 무서웠던 거다. 그래서 외면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안 간 거다.

구약성경 전도서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요즘 우리 사는 세상과 많이 닮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학대하는 자”는 누구일까?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려본 적이 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람이 두렵다는 것을. 왜 전단지 돌리냐며 매섭게 다그치는 사람이 두려운 게 아니다. 받은 종이 박박 찢어 바닥에 내치는 사람이 두려운 게 아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두려운 거다. 내미는 손길 무시하고 자기 길만 열심히 가는 사람이 두려운 거다. 외면하는 사람이 두려운 거다. 전도서가 말하는 “학대하는 자”는 이런 사람 아닐까? 외면하는 학대자 말이다.


창수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그를 만났다. 세월호 생존자 회복 캠프 도우러 갔었다. 단원고 아이들이 여의도로 걸어올 때 마중 나갔다. 유가족들이 국회에서 농성할 때 하룻밤 같이 있었다. 가족여행 때 팽목항에 다녀왔다. 목회자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서 철야 기도를 했다. 40일 단식하시던 목사님들께 아이들 데리고 문안 다녀왔다. 찬바람 맞으며 광화문 기도회에서 설교도 했다. 나는 매일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세월호를 말한다. 왜냐면 미안해서, 


그 날 못 가서, 아니 그 날 안 가서, 그 날 내 마음에 음흉하게 기어오르던 외면하는 학대자의 마음이 너무 미안해서다.

청와대 앞 농성장 철수했단다. 결국 대통령은 유가족을 외면했다. 특별법이 통과된단다. 결국 국회의원들은 유가족을 외면했다. 창수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그리고 말해야겠다. 미안하다고. 학대해서 미안하다고. 외면해서 미안하다고. 그러나 다시는 외면하지 않겠다고.


 남오성 목사(일산은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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