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할렐루야 아줌마라 놀림받을 각오로 썼어요”
‘수도원 기행2’ 펴낸 공지영 작가
작가 공지영(51·사진)씨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성당에 다니기 시작해 중3 때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마리아’. 지금도 전자우편 아이디로 쓰고 있는 이름이다. 대학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온 고3 시절에도 일요일이면 종일 성당에 가 있거나 교도소, 양로원, 빈민촌 등을 찾아 봉사하는 ‘포콜라레’(focolare) 활동에 참여할 정도로 착실한 신자였다. 그러던 그가 1980년대 초 대학에 입학하고 학생운동을 만나면서 성당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수술비 100만원이 없어서 아픈 아이를 안고 돌아서는 가난한 노동자 부부를 본 게 그 무렵이었다. 세상이 끔찍했고, 혁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신앙을 버리고 마르크스의 혁명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랬던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써 온 그가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가는 ‘회심’(回心)을 체험한 것이 99년 크리스마스 직전이었다. 세번째 결혼 생활이 폭력과 수치 속에 파탄에 이르고 삶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몰린 극한의 순간 그는 절규하 듯 “주님! 주님! 어디 계세요!” 외쳤고, 대답을 들었다. “나 여기 있다. 얘야, 난 단 한번도 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무작정 차를 몰고 가다가 공사중이던 성당과 마주친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안내를 자처한 ‘천사’들의 도움을 차례로 받아 성체조배실에서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분’에게 마음속 말을 건넸다. “하느님, 저 왔어요.”
학창시절 세례받고 독실했던 ‘마리아’
80년대초 대학때 ‘마르크스 혁명’ 심취
99년 세번째 이혼 계기로 가톨릭 ‘회심’
“전혀 다른 글에 독자들 당황할 수도”
2001년 1권에 못밝힌 신비체험들 고백
고통·고민 토로하는 이들에 전하고파
“먼저 이 글은 내가 이제까지 써왔던 모든 글과 다름을 밝혀 둔다. (…) 그러므로 이제까지 내가 발표했던 작품에 대한 기대만을 가지고 이 책을 선택하신 분은 이 서문만 읽고 그냥 내려놓기를 권한다. 이 책은 당신을 아주 당황하게 만들 수도 있다.”
새로 나온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분도출판사) 서문에서 공씨는 이렇게 ‘선포’한다. 책의 기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는 독자를 작가 쪽에서 지레 내치는 모양새다. 일종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겠고, 독자의 당혹감을 미리 다독이려는 예방주사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조심스러웠다는 뜻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서 그는 신자들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체험을 거리낌없이 묘사하고 열렬한 신앙고백도 마다하지 않는다. 2002년 독일 쾰른에서 ‘유럽 한인 성령묵상회’에 참가했다가 직접 겪은 성령체험, 선배 언니 부부가 14살짜리 아들을 사고로 잃은 뒤 예수를 영접하고 죽은 아이까지 만나게 된 일 등이 그 예다.
“2001년 <수도원 기행> 1권을 낼 때도 쓰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이번에는 썼어요. 1권이 입문편이라면 2권은 심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성과 과학으로는 풀 수 없는 신비한 체험을 여러 수도원을 돌며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게 현실의 삶을 사는 데에도 좋은 것 같아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사후 세계를 믿음으로써 한결 여유롭고 부드러워졌으며 나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할렐루야 아줌마’라고 손가락질받을 각오를 하고 그런 얘기도 책에 넣었어요.”
26일 낮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지다 보니까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신앙 상담을 포함해 고통과 고민을 토로해 오는 이들이 많다”며 “그분들에게 일일이 응대해 주기 어렵기 때문에 책을 통해 대신 얘기해주자고 생각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수도원 기행 2>는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비롯해 나라 안팎 수도원 열한 곳을 찾아 신앙과 삶에 대해 궁구한 기록이다.
“사실 1권이 많이 팔리긴 했지만 2권을 쓸 생각은 없었어요.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를 쓰기 위해 취재차 왜관수도원을 찾은 2011년 12월이 이 책의 시작인 셈입니다.”
<한겨레> 연재를 거쳐 책으로 나온 ‘높고 푸른 사다리’는 6·25 전쟁 당시 흥남철수 때 피난민 1만4천명을 구조한 뒤 신앙에 귀의해 수도사로 삶을 마감한 미국인 마리너스 수사의 이야기와 21세기 현재 젊은 수도자들의 고민을 버무린 작품으로 왜관수도원이 주무대다.
“왜관수도원을 비롯해 제가 방문한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기도와 함께 노동을 신성하게 여깁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수도원이 자급자족 체제를 갖추고 있어요. 수도자들은 사유재산이 없지만,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뒤에까지도 수도원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져 줍니다. ‘능력껏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공산주의 사회가 바로 수도원 안에 실현돼 있더라구요. 꼭 혁명이 필요한 건 아니었던 거죠. 저한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마리너스 수사가 후반생을 보낸 미국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 역시 ‘높고 푸른 사다리’의 취재를 위해 방문했고, 지금 왜관수도원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된 박현동 블라시오 신부의 주선으로, 평소 좋아하던 안젤름 그륀 신부가 있는 독일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도 찾을 수 있었다. 이곳들을 포함해 프랑스 파리 기적의 메달 성당, 이탈리아 몬테카시노 수도원, 스페인 아빌라 등이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소개된다.
서문에서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이 책이 지니는 의미를 이렇게 표현한다. “이 글은 우주보다 큰 존재가 초라하고 불쌍한 여자에게 접촉해 온 기록이다. (…) 고통의 배를 가르고 솟아 나온 그 세계는 여태까지 여자가 알던 행복을 불행으로, 여자가 생각한 성공을 재앙으로, 대화를 소음으로, 적막을 아름다운 침묵으로, 여자가 생각한 사랑을 거짓으로 만들었다. 거꾸로 여자가 생각한 비참을 영광으로, 여자가 생각한 외로움을 축복으로, 여자가 생각한 모욕을 영화로, 여자가 두려워한 가난을 풍요로 만들며 모든 가치를 전복하기 시작했다. 이 글은 그 낡은 세계가 새로운 세계에 점령당해 가는 이야기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