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 제일 먼저 내 가슴을 노크한 분이 안젤름 그륀 신부님이었다. 그분은 냉철하지만 말할 수 없이 따스한 언어로 많은 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계셨다. 그분의 책들을 읽고 나면 내 영혼이 한 뼘은 자라 있는 것 같았고 상처는 조금 더 아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아직도 그 구절을 기억한다. 우리는 가끔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우리의 배심원으로 앉혀 두고 언제까지나 피고석에 앉아 변명을 지속하려고 한다.
…그때 내게 천둥같은 충격이 다가왔다. 글쎄, 책을 읽고 이렇게 깊은 충격을 받는 것은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아직은 없었다. 깊이 새길 구절도 많았고 두고두고 좋았던 구절들도 많았지만 나는 내가 바로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인생을 심판하는 권한을 쥐여 주고 '언제까지나!'피고석에 앉아 변명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아 버린 것이다. …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약간 술에 취해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부터 내 배심원들 다 해고야!" 물론 그들은 그날부터 해고되지 못했다. 나도 우물거렸고 그들의 저항도 심했다. 그러나 기준을 한번 정해 놓고 나자 그 방향으로 쭉 나갈 수는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배심원들을 해고시켜 나갔고 자주 피고석을 이탈하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아예 그 법정에 가지 않았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2>(분도출판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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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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