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2014년>
'불통의 땅’에 큰 울림 준 소통
대통령이 외면한 세월호 유족 만나는 등
‘고통받는 이와 연대’ 강조한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있어서 목놓아 울 수 있었다. 기댈 곳 없이 지쳐 쓰러지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엄마의 포대기였고, 젖가슴이었다. 진상규명을 철썩같이 약속해놓고 헌신짝 뒤집듯 외면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표변에 절망하던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프란치스코란 징검다리마저 없었다면, 2014년은 건너기엔 너무도 시퍼런 강이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진상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한달이 넘게 단식하는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대통령이 만나주지조차 않는 불통의 나라에 왔다. 8월14일~18일 4박5일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이 땅에 큰 울림을 남겼다. 124위 시복식 장소인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하던 세월호 유족들은 하늘에서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내려오길 바라는 심정으로 그의 도움을 고대했다. 그는 어렵고 힘든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교황은 노란 추모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다녔으며, 광화문에선 유민 아빠를 찾아내 손을 잡아주었다. 실종자 가족에게 위로의 편지를 남기고, 유가족들이 진도 팽목항에서부터 도보순례하며 지고온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갔다. 로마로 가는 기내에서는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서 단 지 반나절쯤 뒤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면서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었다”고 고백했다.
먹고 살 길이 없어 세모녀가 자살하고, 차별과 냉대에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하고, 복직을 요구하는 해고 노동자들이 살인적 추위 속에서도 굴뚝에 오르는데도 높은 사람들의 응답을 기대하기 어려운 나라에 그는 낮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지도자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임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교회 지도자들에에게는 “교회란 교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약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했다. 그가 준 것은 위로만이 아니었다. 고통 받는 자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채근이야말로 프란치스코다운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