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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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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함부로 붙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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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민주적 기본질서, 그리고 말 
                                               
                                         

“이 사진을 보니 강연자로 나선 증인을 ‘천안함 영웅’이라고 플래카드에 써 놓았는데 증인이 영웅인가요? ”


엊그제, 국방부 천안함 침몰원인 발표에 문제를 제기하다 명예훼손죄로 재판에 회부된 이를 변론하던 중 나는 그만 성깔을 내보이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침몰하는 배에서 어렵게 목숨을 건진 젊은이를 상대로 말입니다. 그 친구는 입대 전 자신이 다니던 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천안함이 북의 어뢰공격으로 격침된 거라고 강연을 했더랬습니다. 


검사는 즉시 증인의 명예를 짓밟는 질문이라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나는 성질을 가라앉히고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변호인이 증인을 욕 보이거나 나무라자는 게 아니고, 병사들이 46명씩이나 죽었으면 그 지경에 이르게 만든 책임이 누구에겐가 있을 텐데 모든 건 북 잠수함의 신출귀몰 탓으로 미루고 불쌍한 수병들을 영웅이니 용사니 추어주면서 책임의 초점을 흐리는 사람들을 탓한 겁니다. 그들 중 누구라도 제대로 책임진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증인은 천안함 침몰이 국방부 합조단에 파견되었던 러시아 조사단 주장처럼 (이쪽에서 깔아놓은) 기뢰에 의한 건지, 북의 어뢰 때문인지, 그밖에 다른 원인 때문인지 아나요?”

“잘 모릅니다.”

나는 말단 수병에 불과했던 그를 불러놓고 서로 제 주장을 증명하려 옥신각신하는 이 법정이 정말 부끄럽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천안함.jpg

 

천안함 침몰 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런 저런 이익을 도모하기위해 그 불쌍한 수병들에게 “영웅” 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사건의 실상을 정확하게 볼라치면 영웅이니 용사니 하는 말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영웅이나 용사는 자신들이 속한 집단을 위해 제 스스로를 던져가며 능동적으로 싸운 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북 잠수함이 그랬건, 남쪽이 깔아놓은 기뢰 때문이든, 좌초든, 천안함은 그저 속절없이 일방적으로 당한 사건인데 아무 대응도 못하고 피해를 입은 수병들을 향해 영웅이라 이름 붙이는 건 오히려 그들에 대한 조롱이나 모독일 뿐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 ‘말’을 비틀어댑니다.


지난 성탄 직전 헌법재판소도 그랬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독재를 합리화하는 빌미로 삼던 ‘북의 위협’을 다시 꺼내들면서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해서 결과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망가뜨렸습니다.


본래 말이란, 끊임없이 변해가고,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지는, 이 세상의 실상(實相)을 제대로 집어낼 수가 없습니다. 말이란, 실상을 표현하기 위해 실상에 대해 뭐라고 딱지 붙이는 게 그 속성인데, 슬프게도 실상을 표현하려고 뭐라고 딱지 붙이는 순간, 그 딱지 때문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그 실상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이 세상의 실상은 끊임없이 변해가고,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지므로, 고정불변의 스스로에게서 유래하고 다른 것과는 독립되어 있는 실체(substance)는 없다는 걸 불가에서는 공(空)하다고 표현합니다. 나도, 저 산 위의 소나무도, 저 강물도,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고, 서로 연기(緣起)되어 그저 변해가므로, 공(空)합니다.

 

우리가 어쩔 수없이 “나”, “소나무” “강물”하고 이름 붙여 말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이 이름, 이 말들 때문에 이 이름, 이 말들에 상응하는 독립되고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되니, 실로 말은 실상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디딤돌이자, 실상을 착각하게 만드는 걸림돌입니다.


숲길이병학선임기자.jpg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노자가 “지자불언 (知者不言)이요, 언자부지 (言者不知)라”,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한 뜻이나, 선가(禪家)에서 “불립문자(不立文子)”라, 깨달음은 문자에 있지 않다는 뜻이 모두 말의 걸림돌적 측면을 강조한 것일 뿐, 하지만 어찌 우리가 말 안하고 살 수가 있겠나요. 인간의 진화 과정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수십억년 전 신경세포 하나가 빛에 반응하기 시작한 이래, 외부 세계를 감각하고, 이 감각들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토대로 일반화, 추상화하는 분류능력이 생기면서 개념이라는 게 생기고, 이 개념들에 대해 말을 상응시키는 언어 능력이 생겼습니다.

세상의 실상은, ‘없지 않으니’ 우리가 말을 할 수 밖에 없으되, ‘있지 않으니’ 말에 매달리지 말 일입니다. 얼핏 이 세상의 실상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듯 보이는 소나무니 강물 같은 존재론적인 말들도 그저 임시방편의 가설에 불과할진대, 정의니 평화니 민주주의니하는 추상적인 가치론적 성격을 띤 말들은 오죽할 것입니까.


이 말들은 자신들의 이익이나 신념을 정당화시키는 하나의 도구, 수단이기 십상입니다. 저 불쌍한 ‘천안함 영웅’의 예에서 보듯 말입니다.


헌법재판소가 말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는 국민주권주의, 기본권 보장, 권력분립, 의회주의, 복수정당제등이 보장되어 있는 체제를 말합니다. 일단 북의 체제는 그렇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남의 체제는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 1조에 적혀 있지만 국민은 그저 투표권을 행사하는 3분 정도만 권력이 있을 뿐. 선거가 끝나고 나면 4년이고 5년 내내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허울 아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정부관료, 하다못해 국민 기본권 보장의 보루라는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 의해서도 사정없이 휘둘리며 지냅니다. 49대 51의 비율로 이긴 대통령이라도 100퍼센트 싹쓸이로 나머지 49퍼센트 국민들을 무시하니 ‘국민주권주의’라는 ‘말’은 그저 승자 독식을 정당화시켜주는 이데올로기, 허위의식에 불과합니다.

남쪽이‘기본권 보장’이 되어있는 체제인가요? 


겉으로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대등하게 계약을 맺고 노동자에게 파업권이 보장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비행기 사무장은 해고의 두려움 때문에 사용자의 딸 앞에 무릎꿇고 빌다가 비행기에서 쫓겨납니다. 검찰이 엄정 처벌 운운하지만 나라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니 마지못해 그러는 거지 일상에 이런 상황은 너무도 흔한 일일 겁니다. 파업 뒤에 돌아오는 건 해고와 전 재산의 압류, 업무방해죄로 인한 형사처벌.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 있을 권리는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게 우리 체제입니다. ‘권력분립’? 일 퍼센트라도 지지를 더 얻은 세력이 입법, 행정, 사법을 싹쓸이합니다. 대통령과 국회, 사법부가 형식적으로는 나뉘어 있지만 실제로는 다 한편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복수정당제의 보장’은 이번 진보당 해산 결정에서 보듯 헌재 스스로 복수정당제의 취지를 부인했습니다. 사실 진보당의 일부 주요세력들이 북을 지향했다면 그건 북의 미 제국주의와의 전쟁을 지지했다는 점일 겝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보듯 미국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들어내고 있다고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북의 시각과 마찬가지로 미국을 바라보고 있다 해서 그것만으로 바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나아가 이 일부 세력의 의견이 진보당 전체의 견해로 채택된 일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전혀 없어 보입니다.

진보당의 지향에서 국민주권주의나 기본권보장, 권력분립 같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인하는 구석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그리고 우리 체제도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적 기본질서인지 의구심이 드는 마당에, 진보당이 기득권 자신들의 이해나 신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말해 그냥 제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해산!”이라니.


연기적 세계에서 각 개체들은 제 이익과 주장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서로 얽혀 있습니다.
이런 연기라는 존재론적 실상에 비추어 볼 때,‘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가치론적인 말이 어느 특정세력만의 이익이나 신념을 관철시키는 이데올로기나 도구로 쓰여서는 안됩니다.

그건 서로 다른 이익과 신념을 가진 개개의 개체들이지만, 전체로서 유전자와 말과 문명을 공유한 연기적 존재로서, 끊임없이 변해가는 정치, 경제, 사회, 과학 기술적 조건에 맞추어 그때그때 서로의 이익과 생각을 존중하고 조화하는 방향으로 채워 나가야 할 미완의 숙제입니다.

 

김형태 <공동선> 발행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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