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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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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그리스행 비행기 타는 사람 많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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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지기 ‘비포 시리즈’가 있어 행복했어
[한겨레 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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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가 개봉했을 때, 마침 내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로 밥 벌어 먹고 가끔은 밥을 빌어 먹기도 하던 그때, 청취자 한분이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극장 안을 뛰어다니며 깔깔대는 아이들 모습에서 1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며 감회에 젖은 그는 제법 긴 글을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언제나 나와 함께해준 10년지기 친구, 일부러 연락하고 찾아보지는 않아도 항상 다시 만나게 되던 내 친구. 이제 그런 해리를 떠나보낸다. 언젠가 또 만나게 되겠지. 모두들 너무 고마웠어. 내 10년을 함께해주어서.”

해리 포터의 ‘10년지기’가 남긴 꽤나 근사했던 작별 인사를 다시 떠올린 건 영화 <비포 미드나잇>(사진)을 보고 나올 때다. 나는 이 시리즈가 어쩌면 ‘어른들의 해리 포터’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시(이선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을 떠나보내는 심정이 호그와트의 친구들을 떠나보내는 기분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난 그들은 스물세살이었다. 파리행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셀린과 제시는 이내 서로 말이 통하는 상대임을 알아챘고, 비엔나(빈)역에서 내린 제시는 다시 뛰어올라와 이렇게 제안했다. “계속 얘기하고 싶어. 우린 뭔가 통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여기서 같이 내리자. 함께 비엔나를 돌아다니는 거야.”

해가 뜰 때까지 밤새 이야기하며 함께 거닐고 나서 6개월 뒤를 기약하며 헤어진 <비포 선라이즈>(1995)의 기차역으로부터 9년. 파리에서 다시 만난 그들은 서른두살이 되어 있었다. 제시가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70분 남짓, 그 짧은 시간 동안 둘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9년 전의 싱싱함에 대해, 9년 동안의 시시함에 대해, 그리고 어느덧 30대가 되어버린 현재의 시들함에 대해. 말이 통하는 상대를 다시 만난 설렘에 이끌려 결국 셀린의 집에 들어선 유부남 제시. 니나 시몬의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을 틀어놓고 그녀는 하필 이 대목의 가사를 따라 부른다. “넌 비행기를 놓치게 될지도 몰라.” 그리고 제시의 대답. “나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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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셋>(2004)의 그 매혹적인 오후로부터 9년이 더 흘렀다. <비포 미드나잇>에서 두 사람은 마흔한살이 되어 있다. 각자의 꿈은 점점 뭉툭해지면서 서로에게 던지는 말은 점점 더 뾰족해지는 나이. 차가워진 삶의 열정이, 그리고 무거워진 중년의 책임이 두 사람을 치고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시간의 뺑소니 현장에 남은 두 피해자끼리 사력을 다해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완벽하게 영화에 빠져들었다. 진심으로 제시와 셀린을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힘내!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래도 두 사람은… 결국 말이 통하는 사이니까!

‘해리에게 참 많은 일이 일어난 10년 동안 내 인생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지’ 하고 각자 제 인생 돌아보게 만든 해리 포터 시리즈 마지막 편의 특별한 마법이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재현된다. 제시와 셀린이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서 또다시 헤어질 위기에 처하는 18년 동안, 아스팔트 위 스키드 마크처럼 선명한 급정거의 흔적들이 내 인생에도 남았음을 기억하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종종 로드킬로 납작해지던 순간, 고약한 인연과의 접촉 사고를 미처 피하지 못한 한때를 다시 떠올리게도 만든다. 나는 여전히 내 삶의 초보 운전자. 하지만 나와 달리 그들은 더 늦기 전에 장애물 피하는 법을 알고 있으니. 서로를 향해 돌진하기를 멈추고 근사한 밤을 향해 함께 핸들 돌리는 운전법도 터득했으니. 이번에도 역시,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지구라는 별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포즈로 동행하는 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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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 시리즈를 어느 외신이 이렇게 평했다. “해리 포터는 해리가 사느냐 죽느냐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리가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비포 미드나잇>을 보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제시와 셀린이 계속 사랑하느냐 마느냐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삶과 사랑을 어떻게 ‘함께’ 바라보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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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방송작가
 
아이는 해리 포터 시리즈와 함께 어른이 되었다. 어른들은 비포 시리즈와 함께 ‘진짜 어른’이 된다. 제시와 셀린. 유별나게 사랑스럽고 특별하게 잘 어울리는 두 사람. 그동안 고마웠어. 내 허둥대던 이십대와 허전했던 삼십대를 모두 함께해주어서. 올여름엔 많은 이들이 그리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될지도 모르겠네. 너희 같은 로맨스를 꿈꾸며 참 많은 사람들이 괜히 비엔나 역에서 서성이던 그때처럼 말이야. 

김세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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