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백양사 방장 지선 스님,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스님
지난 5일 3개월간의 동안거(겨울 집중 참선)를 끝내면서 백양사 방장 지선 스님과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스님이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한 법어를 내렸다. 한자 투의 중국 고문만을 인용한 기존 법어에서 좀더 쉬운 법문으로 삶의 현장에서 깨달음의 실천을 강조했다.
지선 스님은 “동안거 동안 애매모호했던 자신의 깨달음은, 실천이라는 실습을 통해 스스로가 점검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요한 선원의 깨달음은 삶의 현장에서 중생들에게 보살도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점검됨을 강조한 것이다.
지선 스님은 “경전과 선서에서만 배운 마른 지혜와 보고 듣고 검색하여 얻어진 지식과 상식의 전문성만 가지고 세상을 바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짧은 시간만이라도 소위 진실한 자기의 그림자라도 제대로 보았다면 삶의 커다란 변화로 연결되고 주위에 놀라운 영향이 발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선 스님은 “수행자들은 고요한 산중 밖에 나가서는 세간 사람들의 욕망과 희망에 대하여 매우 조심스럽게 가까이하여 무상·무아·열반세계를 온몸으로 얘기해주며 배려와 존중의 수평적 관계가 되어주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 양극화 속에서 생기는 불신, 불안, 불평등, 불륜, 부조리 때문에 겪는 고통과 환경오염 및 분단의 아픔에서 파생된 고난을 함께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선 스님은 이어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과 ‘오포’(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 젊은이들 속에 투신해 보는 것, 매사를 긍정 속에 부정하도록 함께하면서 그 과정에서 꿈과 희망을 열어주는 수행자의 외연하고 청정한 모습이어야 한다”며 “천경만론을 종으로 횡으로 외운다 해도 실천이 없으면 자칫 전천후 관념에 그치며 갈등하게 되고, 죽은 고목처럼 앉아서 삼매에 든다 해도 아라한의 흉내밖에 될 게 없으니 명심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선 스님은 “보석도 땅에 떨어지면 티끌과 섞이고, 천년학도 집을 나서면 들짐승의 침노를 받는다”는 서산대사의 말을 들며, 산문 밖을 나가서 살얼음을 걷듯 조심할 것을 수행자들에게 당부했다.
또 설악산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스님은 “수행자는 생사고해를 타파하고, 일대본분사를 해결할 때까지 진정한 해제를 한 것이 아니다”라며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끊임없이 탐구하고, 끊임없이 어리석으라’고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말과 올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그레이엄 무어가 ‘이상해도 괜찮아, 남과 달라도 괜찮아’라고 한 말을 소개했다.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이기도 한 무산 스님은 이번 안거 기간 동안 외부와 봉쇄된 채 하루에 한끼만 먹으며 수행하는 백담사 무금선원 무문관에서 정진했다.
무산 스님은 “스님들 말이 교황님이나 시나리오 작가의 수상 소감처럼 감동을 주거나 회자되지 못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며 평소 자신에게 장학금을 받는 한 학생이 안거 중 찾아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가며 넣어준 쪽지 내용을 소개했다. 무문관에 들어오면서 ‘내가 노망이 나서 여기에 들어와 있다’고 지인들에게 보낸 핸드폰 문자가 신문에 난 것을 그 학생이 읽고서 장학금을 못 받아 대학도 못 갈 것이 걱정이 되어 찾아왔다가, ‘장학금 못 받아도 괜찮아, 대학 못 가도 괜찮아’라는 생각을 했던 듯 ‘노망나도 괜찮아’라고 쪽지를 남기고 갔다는 것이다. 아파도, 실패해도, 가난해도, 늙어도 괜찮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이 소개로 전한 셈이다. 이번 안거에선 조계종 98개 선원에서 총 2196명의 승려들이 집중 참선을 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