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무심하시지
엊그제 겨우 스물 여섯 밖에 안 된 미국인 처녀가 죽었답니다. 시리아 난민구호활동을 하다가 ‘IS 이슬람국가’라는 단체에 붙잡혀 있던 중에 죽었는데, 이슬람국가 쪽은 요르단이 전투기로 폭격을 하는 바람에 죽은 거라 변명하고 미국은 이슬람국가가 죽인 거라고 주장합니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이슬람국가는 난민구호단체 사람이나, 평화를 위해 애쓰던 기자를 마구잡이로 잡아다가 참수형에 처해왔습니다. 그것도 신의 이름으로.
미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만족 해방을 부르짖던 베트남 사람들에게 십 수 년 간 폭탄세례를 퍼부었고, 대량 살상무기를 파괴한다는 명분으로 멀쩡한 독립국가인 이라크를 침공하여 대통령을 목매달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신의 이름으로.
후세인이 독재를 했다한들 미국의 국제법상 침략행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닙니다. 대량살상무기는 이라크 내 그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당신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저 이슬람국가며 미국의 집권자들에게는 막강한 권력이며 명예를 누리게 하시고,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려 애쓰던 저 착한 사람들은 어이하여 무서운 칼날과 폭탄 아래 스러지게 두시는지요.
그리고 작년 봄 저 수백 명의 어린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차디 찬 바다 속에 잠기게 하셨으며,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고통 속의 그 부모들 앞에서 무슨 폭식투쟁이랍시고 치킨이며 피자를 먹어대가며 조롱하는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건가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증오의 말을 막 퍼부어대는 당신의 종 목사님들은 또 어찌하실 건가요.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영화 <선 오브 갓> 중에서
우리가 그러길 바라고 믿는 신이 계시다면 이 잘못된 세상을 그 즉시 바로 잡아 주셔야 하는 건데. 하지만 이 뭇 중생들을 고통에서 해탈하도록 가르침을 주신 붓다가 오시고, 또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이 오신 지 이천년도 더 지났건만 예부터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쭉 세상은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의 이런 모습을 보면 당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나 악인들을 당신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그런 신은 없는 게 분명합니다.
나는 하늘도 참 무심하시다고 원망하면서, 하느님께서 절대자로 군림하여 당신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 잇속을 차리려고 신의 이름을 팔아 자기 형제들을 모욕하고 죽이는 악인들을 번갯불 한방으로 벌해 주시길 빌지만, 그게 아니라고 수천 년 전에 하느님 당신께서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느님”
하느님이 저 멀리 우주 밖에 보좌에 앉아 계시면서, 말 안 듣는 놈들을 벼락 치시는 게 아니라,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움을 느끼는 이 유한한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매달리셨다는 것이니. 당신이 그러셨을진대 우리 하루살이 인간들이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이란 사실이 바로 기독교의 복음, 복된 소식이라 하셨습니다. 이슬람국가나 미국의 권력자들도, 폭식투쟁을 하는 일베 청년들도, 그리고 숨 쉬기조차 힘든 고통을 겪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들이 모두 당신의 자녀들이요, 그래서 서로 서로가 한 형제라는 기쁜 소식. 내가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아들이라니 참 기쁘기도 하지만, 나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저 악인들도 내 형제라 하시니, 참 받아들이기 힘이 드는 “기쁜 소식”.
붓다의 정신을 이어받은 화엄경의 가르침도 그러합니다.
크고 바르고 너른 부처님 대방광불大方廣佛은 온 우주법계에 충만한 부처님으로, 모든 존재가 비로자나 부처님의 나타나심化現이 아님이 없습니다. 개개의 존재가 고유한 제 가치를 평등히 가지고 있으니 여래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 존재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그대로 부처임을 아는 것이 바로 깨우침입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아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하늘이 참 무심하시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온전히 남아날 놈은 하나도 없었을 겝니다. 그리고 당신은 무심함을 넘어서셨으니, 이 세상 만물로 당신의 존재를 나투셔서 우리와 하나이 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