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눈 트인 귀]
“하나님은 누구의 편인가”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직을 두고서 오바마와 클린턴 여사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던 때였다. 미국 방문 중 우연한 기회에 정치 전문 채널에서 두 후보를 상대로 날카로운 질의응답이 진행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저널리스트들은 유명 인사와 인터뷰 할 때 대체로 하나마나한 ‘뻔한’ 질문들을 해서 재미가 없지만, 미국 저널리스트들은 다르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들을 곧 잘 던진다.
*토론하는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오바마에게 던져진 질문은, “당신은 이라크 전쟁에서 하느님이 미국 편이라고 생각하는가?”였다. 내심 오바마를 지지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나 자신이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수 당시 바리사이파 율사들이 예수를 골탕 먹이려고 한 질문,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연상시켰다.
숨을 죽이고 귀 기울이고 있는 나에게 들린 오바마의 응수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 미국 편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미국이 하느님의 편에 있느냐는 것이다”라는 대답이었다. 순간 나는 온 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였고, “당신 정말 미국 대통령 될 자격 있어!”라는 감탄의 말이 절로 나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느님이 자기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 개인이 아니라 집단인 경우 더욱 그렇다. 개인의 이기적인 생각의 경우는 하느님이 자기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간혹 양심이라는 것이 방해가 되지만, 집단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을 때에는 문제가 다르다. 집단 이기주의는 언제나 옳고 선을 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단의 압력까지 작용하기 때문에 여론을 무시하고 양심의 소리를 따르기란 무척 어렵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 가족, 우리 회사, 우리 민족, 우리 교회, 우리 종교 편이기에 <우리>가 곧 신으로 둔갑하기 일쑤다.
선민의식의 원조는 이스라엘 민족이지만 그렇다고 그들만의 독점물은 아니다. 단군 자손을 외치는 우리나라 사람들, 천황을 천조대신의 직계 자손으로 모시고 사는 일본인들의 신도(神道) 민족주의, 미국은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은 땅이라고 굳게 믿고 사는 미국인들의 선민의식 모두 둘째 가라면 서럽다. 하지만 약소민족의 선민의식과 달리 강대국의 선민의식은 매우 위험하다. 현실 정치를 통해 드러난 정치인 오바마를 우리가 어떻게 평가하든, 하느님은 무조건 미국 편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긴박했던 순간에 침착하게 표현했다는 사실만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은 역사적으로 양날을 지닌 검과 같았다. 하느님과 특별한 계약을 맺은 하느님의 백성이었건만, 오히려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대로 정의롭게 살지 못하면 가혹한 징벌을 면치 못한다는 예언자들의 경고가 줄곧 그들을 따라다녔다. 하느님의 선민이라면 하느님이 무조건적으로 확실하게 밀어주어야 할 터인데, 실제 이스라엘의 역사는 홀로코스트에서 정점에 달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 후 이스라엘의 신앙인들은 하느님이 차라리 자기 민족을 좀 놓아줬으면 하는 심정을 토로한다. 하느님의 손에 잡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는 꼴이라고 신세를 한탄한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어둠 속의 빛>의 한 장면.
하지만 하느님을 믿지도 못하고 포기하지도 못하는 것은 이스라엘만의 고민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무수한 폭력과 끊임없는 부조리를 경험하면서 살 고 있는 양심적 신앙인들 모두의 공통된 경험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계셔도 탈이지만 안 계신다고 문제가 속 시원히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여하튼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계명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할 계명임에 틀림없다. 자칫 매우 위험한 신앙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길희성(서강대 명예교수·강화도 심도학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