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멋진 사람
“고요한 달밤에 거문고를 안고 오는 벗이나/ 단소를 손에 쥐고 오는 친구가 있다면/ 구태여 줄을 골라 곡조를 아니 들어도 좋다/ 맑은 새벽에 외로이 앉아/ 향을 사르고 산창으로 스며드는 솔바람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불경을 아니 외워도 좋다”
전북 부안 내소사에서 평생을 청빈하고 자애롭게 수행하셨던 해안 선사(1901~1974)의 ‘멋진 사람’이라는 선시입니다. 그 무엇에 얽매이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마음이 일상의 자연스런 몸짓으로 우러나오는 탈속과 여유입니다.
그러나 멋진 사람이 어찌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이나 문인 묵객들 중에만 있을는지요? 좀더 유심하게 눈을 열고 귀를 열어 세상의 벗들을 바라보면 속 깊고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걷고 있는 여행자. 사진 박미향 기자
두륜산 산문에서 대흥사까지는 십리 길입니다. 승용차를 들머리에 세워 두고 일찍이 유홍준 선생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감탄했던 그 아름답고 울창한 숲길을 천천히 걷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감성이 튼튼한 사람입니다. 속도와 몸의 편리함을 포기하고 나무들의 청신한 기운과 은은한 물소리 새소리를 온몸으로 느끼는 복을 누릴 줄 아는 멋진 사람들입니다.
부득이 차를 타고 숲길을 갈 때 거북이처럼 느리게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 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데 왜 이리 천천히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숲에 사는 나무와 작은 풀꽃과 새와 벌레들이 놀랄까봐 그렇게 천천히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한마디 덧붙입니다. 이 산의 주인은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우리 사람들이 숲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길을 내고 집을 짓고 신세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숲에게 많이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지요. 그런 생각을 간직하고 있는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숲해설가입니다. 이 사람은 참 깊은 사람입니다.
지난 겨울 대흥사 동국선원에서는 20명의 스님들이 석달 동안 산문을 나가지 않고 참선정진하였습니다. 이 스님들은 점심 공양 이후 산길을 걸으며 화두를 들면서도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말없이 줍습니다. 물었습니다. 줍고 주워도 늘 버려지는 쓰레기를 보면 화가 나지 않느냐고요. 스님들은 말 대신 서산 마애삼존불님 닮은 미소로 화답할 뿐입니다. 원망도 내려놓고 선행도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때 굳이 도를 묻는 일은 군더더기일 뿐입니다.
지난 2월14일 진도 팽목항에서 열린 세월호 팽목문화제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작지만 깊은 마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녁에 떡국으로 식사를 대접하였는데, 그릇 하나에 떡과 김과 김치 등을 담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무젓가락은 필요없다고 하였습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숟가락으로 충분하다는 것이지요. 특히 초등학교 학생들이 스님, 숟가락만 주세요, 할 때는 자식 잘 키웠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겠더군요. 그날 사람들은 나무젓가락 하나에 연결된 세상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작은 티끌 하나에 우주가 있다고 합니다. 한 송이 꽃에서 부처가 늘 설법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의미더군요. 우리 곁에는 참 좋은 사람 참 멋진 사람이 많습니다.
법인 스님(해남 일지암 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