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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미터 고지에서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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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있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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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전경.  김종수 기자


 

전도사 시절 몇 차례 중·고교 학생들과 중국의 서북지방으로 선교여행을 갔었다. 란저우에서 버스로 여섯시간을 가면 샤허다. 거기서 네시간을 더 가면 라부렁쓰(납복릉사)라는 사원마을에 도착한다. ‘납’(拉)이란 ‘끌고 간다, 끌려간다, 바람소리’를 가리키고, ‘복’(卜)은 ‘점, 점괘, 짐바리’ 등을 뜻한다. 생각해보면 ‘인간세상 전체의 운명을 끌고 가는 사원’ 정도의 의미일 것인가. 사원 입구부터 경건함과 엄숙함에 부산한 마음이 절로 압도된다. 보이고 들리는 것은 오로지 일념의 기도다. 본 절로 들어가는 긴 담벼락을 따라 ‘마니퇴’라 불리는 경전통이 설치되어 있었다. 고원의 적막한 사위를 깨우는 바람의 독경과 함께 땅 위의 배를 끌듯 기어서 산문에 다다른 순례자들은 세상의 운명을 짐바리처럼 끌고 라부렁쓰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산통이 깨진다’는 말은 딱 이런 것이었다. ‘얼마나 더러운가. 얼마나 반문명적인가. 얼마나 쓸데없고 어리석은 노력인가. 글로벌 자본주의와 최첨단의 시대에 이런 방식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갈 때마다 거의 같은 반응들이었다.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 똑같은 탄식들을 터트렸다. 누군가는 머리가 어지럽고 왠지 영적으로 눌린다고도 했다. 크리스천의 우월과 사명을 품고 단기선교에 임한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 또한 깊이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겨우 이런 생각을 할 게 아니다.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이냐? 

해탈하고 부처가 되려는 것이냐? 그런 것이 허무맹랑하게 들리고 보이느냐? 아니다.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은 세계의 운명을 위한 일이다. 자기들이 믿는 진리를 통해 세상 전체를 평화의 세계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인이라지만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이렇게 전부를 바쳐 뭔가를 해보려는 마음이 있느냐? 영적으로 눌려 머리가 어지럽다는 괜한 소리 말아라. 여기는 해발 3000미터 고지이니 머리가 어지러운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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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시사만화 작가 나지 엘 알리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의 뒷모습이다. 십자가에 가려 예수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가시 면류관을 쓴 뒤통수와 앙상한 왼쪽 옆구리, 돌멩이를 던지느라 뻗친 오른팔이 고작이다. 도대체 왜, 십자가에 매달려 모든 것을 다 이룬 예수가 다시 몸부림치며 돌을 던져야만 했을까? 누구에게? 삽화 출처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www.palbridge.org 



목청 높여 훈계를 해보지만 그때마다 내 마음엔 이런 메아리가 되돌아왔다. ‘그러는 나는 누구인가?’ 그들을 라부렁쓰까지 데리고 간 건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요즘 자주 떠오르는 것은 “절망이 기교를 부르고 기교가 다시 절망을 부른다”는 시인 이상의 말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의 문제이기도 하고, 뭉뚱그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전체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기독교의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들 모두의 정신 문제이기도 하다. 나를 포함해 지금 내 주변엔 온통 우리 스스로에 관하여 어쩔 수 없다는 절망들이 쌓여간다. 절망 때문에 사람들이 교묘해지고 교묘해졌기 때문에 다시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흡사 몸의 부활을 믿는다면서도 온몸을 바쳐 이룩해보려는 신학이 점점 쇠퇴해지는 것과 같다. 비유에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있다. 기독교뿐이 아니고 정치뿐이 아니고 어느 분야라 딱 한정할 것이 아니다. 어떻게 깨우칠 것인가? 과연 천국은 마음속에나 있는 것인가.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가는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이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 


천정근 목사(안양 자유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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